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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0. 2022

도리를 말할 것이 아니라면 그냥 입 다물고 있으라.

자신은 새롭지 않은데 새로운 껍데기는 원하는 자들에게.

魯人爲長府, 閔子騫曰: “仍舊貫如之何? 何必改作?” 子曰: “夫人不言, 言必有中.”
魯나라 사람이 長府라는 창고를 고쳐 짓자, 閔子騫이 말하였다. “옛 일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필 고쳐지어야 하는가.”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夫人〕이 말을 하지 않을지언정 말하면 반드시 〈道理에〉 맞음이 있다.”

이 장에서는 민자건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스승 공자가 그의 인격에 대해 칭찬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민자건이 어떤 부분이 뛰어난 제자였는지를 부각시키는 것과 동시에 당시 사람들이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해서 꼬집고 있는 두 가지 효과를 모두 거두는 방식을 보여준다.


노나라 사람들이 창고를 고쳐 짓겠다고 하자 민자건이 굳이 왜 고쳐서 짓느냐고 한 마디하는 데 그냥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옛 일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며 왜 자신이 그것에 대해서 이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명 혹하게 밝힌다. 이 상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長府(장부)’는 창고의 이름이니, 재화를 보관해 두는 곳을 府(부)라 한다. ‘爲(위)’는 아마도 고쳐 지은 것인 듯하다.


여기서 옛 일을 따른다는 말이 일반적인 고문의 한자를 쓰지 않고 고어(古語)를 사용하여 주자가 글자에 대한 의미를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풀이해준다.


‘仍(잉)’은 따름이요, ‘貫(관)’은 일이다.


민자건의 언급이 갖는 의미에 대해 배우는 이들이 의구심을 가질 것을 우려했던 왕 씨(王安石(왕안석))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주석을 달았다.


“고쳐 짓는 것은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손상시키니, 그만둘 수 있다면 옛 일을 그대로 따름이 좋음만 못하다.”


‘옛 일을 따른다’는 의미는 따로 뭔가 법도를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전에 지어둔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전의 형태가 굳이 다시 지을 정도의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짓는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왕안석이 해설한 바와 같이, 결국 창고를 다시 짓는 것은 비용과 재료가 소용되고 인력으로 백성들을 동원하게 되니 백성들이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고 부역에 동원되는 번거로움으로 여러 가지 이득이 되는 행동이 아님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공자는 제자인 민자건이 말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한번 말을 하면 반드시 사리에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며, 그 말의 의미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러한 공자의 허여함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말을 망발하지 않고 말을 내면 반드시 이치에 맞음은 오직 덕이 있는 자만이 능하다.


민자건에 대해서 앞서 간략하게 몇 번 언급하기는 했지만, 왜 공자가 민자건이 평상시에 말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는가에 대해서는 민자건에 한한 내용이 아니라고 주자는 주석을 통해 말하고 있다.


즉, 공자가 <논어>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말만 익숙한 이에 대해서 거부감과 경계의 의미를 담아, 반대로 함부로 말을 내뱉지는 않지만 한번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이치에 맞는 것은 평상시에 생각이 곱씹어져 나오기 때문이라는 역설에 다름 아니다.




권력과 출세를 좇아 노(魯) 나라의 권세가인 계손씨(季孫氏)에게 빌붙어 공자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명예를 더럽힌 제자가 염구(冉求; 염유)였다면, 권력과 출세보다는 스승의 가르침과 명예를 지킨 인물이 바로 민자건(閔子騫)이다.


앞에서 공부했던 내용을 잠시 상기해보자면, 공자가 생존할 당시, 노(魯) 나라는 소위 ‘삼환 씨(三桓氏)’라고 불리는 세 권문세족(權門勢族)이 권력을 전횡하고 있었다. 삼환 씨(三桓氏)란, 노(魯) 나라 제16대 제후인 환공(桓公)의 후손들로, 계손씨(季孫氏)·숙손씨(叔孫氏)·맹손씨(孟孫氏)의 세 가문을 이른다.


이 세 가문 중에서도 특히 계손씨(季孫氏)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노(魯)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논어(論語)>에는, 당시 계손씨(季孫氏)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했는가에 대한 여러 기록들이 등장한다.

그 가장 대표적이 사례로,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게 팔일무를 했던 것에 대한 공자의 일갈이 있다.


공자가 계손씨(季孫氏)에 대해 말했다.


“집안 마당에서 팔일무(八佾舞)를 추게 한 것을 참는다면 무엇인들 참지 못하겠는가!”


계손씨(季孫氏)·맹손씨(孟孫氏)·숙손씨(叔孫氏)의 세 가문 사람들이 옹가(雍歌)를 부르면서 제사를 끝마쳤다. 이에 대해 공자가 말했다.


“<시경(詩經)>에서는, ‘제후(諸侯)들은 서로 제사를 돕고, 천자(天子)는 매우 기뻐했다’고 했다. 어찌 세 대부(大夫)의 집안 사당에서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팔일무(八佾舞)’는 천자(天子)만이 즐길 수 있는 춤이고, ‘옹가(雍歌)’는 천자(天子)가 종묘 제사를  

끝마칠 때 부르는 노래이다. 즉, 천자가 아닌 사람은 팔일무(八佾舞)와 옹가(雍歌)를 추거나 부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 세 권문세족(權門勢族)은 팔일무를 추고 옹가를 불러 자신들의 권력과 세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더욱이 계손씨(季孫氏)는 백성들을 수탈하고 착취해 자신의 부(富)를 축적하고, 신하의 몸으로 천자국(天子國)인 주(周) 나라 선왕(宣王)이 직접 봉(封)한 전유(顓臾)를 공격해 차지했다. 이러한 계손씨(季孫氏)의 무도(無道)한 행동을 직접 보좌하며 곁에서 도운 사람이 공자의 제자인 염구(冉求; 염유)였다.


계손씨(季孫氏)는 공자의 제자들 중 우수한 인물들을 끊임없이 자신 집안의 가신(家臣)으로 삼으려고 했다. 공자 학파(學派)의 학문과 덕행으로 자신의 권력욕을 가리고, 또 그들이 지닌 정치적 능력과 수완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나라 계보 속의 삼환씨

‘옹야(雍也) 편’에 나오는, 계손씨 가문의 수장인 계강자(季康子)가 공자를 만나 자로(子路; 중유)와 자공(子貢; 단목사) 그리고 염구(冉求; 염유)의 정치적 능력에 대해 질문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덕행(德行)으로 이름이 높았던 민자건(閔子騫; 민손) 역시 계손씨(季孫氏)가 탐내고 있던 인재 중 한 명이었었다. 그 내용은 ‘옹야(雍也) 편’ 7장에서 이미 공부한 바 있다.


계씨(季氏)가 민자건(閔子騫 : 민손)을 비(費) 고을의 읍재(邑宰)로 삼으려고 했다. 이에 민자건이 말했다.


“부탁입니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만약 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문강(汶江)을 건너 제(齊) 나라로 떠날 것입니다.”


민자건은 계손씨(季孫氏)의 벼슬 제안을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만약 다시 자신에게 벼슬 제안을 한다면, 노(魯) 나라를 버리고 제(齊) 나라로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까지 내보이며 완강한 거부를 확실하게 못 받은 것이다.


민자건에게는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백성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계손씨(季孫氏) 밑에서 권력과 출세를 얻는 것이야말로 가장 수치스럽고 파렴치한 짓이라 여겼고, 그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것었다.


민자건이 권력과 출세의 길을 과감하게 버리면서까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덕행(德行)과 효행(孝行)이었다. 그는 권력과 출세를 통해 얻는 이름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에게는 덕행(德行)과 효행(孝行)을 통해 얻는 이름만이 진실로 값진 것이었다.

공자(孔子)는, 지금 배우는 ‘선진(先進) 편’의 첫머리에서 배고픔과 굶주림 속에서 젊은 나이에 죽은 안연(顔淵)과 문둥병에 걸려 비참하게 죽은 염백우(冉伯牛; 염경) 그리고 중궁(仲弓; 염옹)과 더불어 민자건(閔子騫)을 자신의 제자들 중 가장 덕행(德行)이 뛰어난 인물로 꼽았다. 그와 함께 이 장에서 앞서 살펴보았던 효행에 대한 부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민자건(閔子騫)은 평소 온순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다가도 의로운 일에는 의연하게 나서 정확하게 따지고 비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 장에서 민자건이 평상시에는 말이 없지만, 입을 열면 반드시 옳은 말만을 한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청와대가 개방되었다고 신이 난 온갖 촌사람들이 그곳을 밟아보겠다고 청와대를 들어가고 금지구역이던 북한산의 산길을 걸으며 난리 아닌 난리가 났다고 한다.


본래 청와대를 견학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유치원생들서부터 아줌마 아저씨들까지 청와대 구경을 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새로운 대통령이 된 이가 무슨 신의 계시를 받았는지 ‘절대로’+‘단 하루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며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청와대는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되어 사람들에게 이상한 유언비어가 돌게 만들었다.


“아! 저명한 도사가 저곳에 기운이 다했다고 했다더라. 그래서 이제까지 그곳에서 있었던 대통령들이 다 감옥에 가거나 죽거나 했구나!”


참! 유언비어가 만들어지는 사연을 취임하면서부터 그렇게 난리를 부리고 새로운 집무실을 꾸민다며 원래 있던 국방부 인원을 모두 이사시키고 그쪽에 새롭게 둥지를 틀겠다며 용산시대를 열었다.


꿈에도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대통령 자리를 어부지리로 얻었으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주위에서 부추기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해주고 싶은데, 천성이 삐딱한 터라 그게 잘 안된다. 이 장에서 민자건의 입장이 내게 빙의되는 것은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창고를 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 것임을 모를 리가 없는데, 왜 그걸 알만한 자가 저따위 짓을 하고 있는지 나는 도저히 알지 못하겠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정치를 한답시고 설치는 자들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한때 연말만 되면 지방 곳곳 지자체에서 도로를 뒤집는 공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세대들이 있을 것이다.

멀쩡한 도로를 뒤집고 공사를 한다고 설쳐댔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공사를 했다고 해야만 연말정산 보고서에 세금을 환수하지 않고 오롯이 자기들의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멀쩡한 건물도 부수고 짓는 판에, 아파트가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불리게 되어버린 대한민국은 아파트를 지어대던 방식으로 몸집을 키운 건설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제는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콘체른을 형성한다.


건설사의 입장에서는 한번 지은 건물이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30년, 50년이 기본인 상황이 되면 그렇지 않아도 코딱지만 한 국토에서 바다 건너 낙도에 아파트를 짓지 않는 이상 먹고 살 건더기가 없어져버리고 만다.


한때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낡은 산동네를 다 깔아뭉개고 아파트를 세우며 호황기를 누리며 룸살롱의 매출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려주었던 시대에서 실리콘 밸리를 표방하며 테헤란밸리의 IT붐은 어마어마한 정부의 지원과 대출 완화로 거품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여기저기를 속으로 멍들게 만들고, 그 와중에 정부 관련 공무원들이나 지원을 결정하는 부서장급 간부나 대출과 관련된 간부들은 저마다 한몫씩을 움켜쥐며 챙겨나갔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그렇게 해서 경기가 부양되었나? 건설사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부유해졌나? 대한민국이 그렇게 부유해졌냐 말이다. 아니. 어차피 하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룸살롱에서 밀실 로비를 했던 건설사를 가진 그룹 재벌들만 배를 불렸다.


공사장에서 안전장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떨어져 쥐도 새도 모르게 장례를 치러버리고 산재보험은 고사하고 그저 몇 푼 보상금이랍시고 받고서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며 아빠는 어디 갔느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공사의 로비를 위해 룸살롱을 향했다.

무언가를 새로 하자고 할 때,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면서 멀쩡한 사무실을 새로 꾸미고 이전에 그 방을 쓰던 사람이 쓰던 걸 어떻게 내가 다시 쓰냐며 다시 새로운 것으로 싹 개비하고 인테리어 다시 하고, 하는 등의 행동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졸부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전부터 놓여있던 책상이나 소파를 그대로 쓴다고 그 사람의 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새로 임명되었으니 모든 것을 새로 채워놓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자에게 ‘니 돈으로 다 하라고 하면 하겠나?’라고 물으면 그는 이젠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대답한다.


“눈먼 나랏돈이 있는데, 내가 안 써도 누군가 써버릴 건데 내가 그거 쓰려고 이렇게 위에 올라온 건데 당연히 써야지. 누가 써도 쓸 걸 왜 나만 안 쓰냐?”

입을 열기만 하면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런 이에게서 무슨 새로움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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