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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3. 2022

상대의 수준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자들을 가르치는 법

공자가 제자에게 깨달음을 주는 다양한 방식에 대하여.

子曰: “由之瑟, 奚爲於丘之門?” 門人不敬子路. 子曰: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由(子路)의 瑟(큰 거문고)을 어찌하여 나의 門에서 연주하는가.” 門人들이 子路를 공경하지 않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由는 堂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이 장은 다시 자로(子路)와 스승 공자 사이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배우는 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주는 내용이다. 단순히 보면, 공자가 제자 자로가 악기를 다루는 것이 서툰 것을 탓하고 그것을 본 다른 문인들이 무시하자 그 말을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그렇게 간단한 내용이 아니다.


왜 내가 이 일화가 단순히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는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들여다보기로 하다.


첫 장면은 자로(子路)가 큰 거문고를 집에서 타는 것을 보고 공자가 탓하는 내용이다. 내용으로 보면 정확하게 왜, 무엇을 지적하는 것인지 애매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어찌하여 나의 집에서 연주를 하느냐?’는 집안에서 연주했다는 것을 탓하는 것인지, 아니면 연주를 잘 못하는데 왜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만들어내느냐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자(伊川(이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아 해설한다.


“그 소리가 조화롭지 못하여 자신과 같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자의 주석을 보면 연주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좀 더 정확한 해석을 위해 주자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주석을 살펴보자.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자로가 瑟(슬)을 탐에 북쪽 변방의 살벌한 소리가 있었다.”하였으니, 이는 그 기질이 굳세고 용맹하여 중화에 부족하였으므로 그 소리에 나타남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자아, 주자의 주석에 의하면,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이 당시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한 내용이 있다고 하니, <공자가어(孔子家語)>의 ‘변악해(辯樂解)’에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자로(子路)가 큰 거문고를 타고 있었는데, 공자가 그 소리를 듣고 염유(冉有)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由)는 못난 짓을 하는구나. 대개 문왕(文王)이 음악을 제정할 때 적중한 소리로 절조도 맞게 하고, 화평한 것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그 소리가 남쪽으로는 들어갈지언정 북쪽으로는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남쪽이라는 곳은 만물이 나서 자라는 지방이고, 북쪽은 만물이 죽는 살벌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적중한 것으로써 만물을 생육하고 길러내는 것이다. (중략) 은나라의 주(紂)는 북방의 비루한 소리만 좋아하다가 마침내 망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오늘까지 왕공대인(王公大人)들이 모두 경계하는 터이다.(중략) 지금 유(由)로 말하면 필부(匹夫)의 몸으로써 일찍부터 선왕(先王)의 좋은 제도에는 뜻을 두지 않고, 저 망국의 소리만을 익히고 있다니 이래 가지고야 어찌 그 7척(尺)의 몸인들 보전할 수 있겠느냐?”


염유(冉有)는 공자의 말을 듣고 자로(子路)에게 그대로 일러주었다. 자로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하였고 스스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걱정한 나머지 자로는 밥을 먹지도 않고 몸이 야위어 뼈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유(由)는 허물을 고쳤으니 앞으로 진보가 있을 것이로다.”




이 내용을 읽고 나니, 이제 명확히 공자가 자로(子路)의 연주에 대해 어떤 것을 비판했는지 알 수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는 그 사람의 성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자신의 성정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자로(子路)가 큰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느껴진 악조는 음악을 제대로 공부한 공자의 귀에는 그대로 제자의 부족한 성정이 드러났다. 감미로워야 할 악조가 자로의 거칠고 급하며 살벌하게까지 들려오자 그 음에서 느껴지는 성정을 파악한 공자는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하여, 제자가 부족한 인격 소양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고 그 부분에 더 노력하라고 일침을 가한 것이었다.


스승의 그러한 지적에 대해 그 강건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자로(子路)가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후회하였다는 것은 충분한 자숙과 자성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고 이에 공자는 그가 보인 자성의 노력에 ‘그렇게 노력하라’라며 허여의 가능성을 비춰준 것이다.

참고로, 자로가 연주한 악기가 원문에는 ‘슬(瑟)’이라고 적혀 있는데, 고대 악기에 대한 상식이 없는 자들이 그저 그것을 ‘비파’라고 해석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흔히 부부사이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금슬(琴瑟)’에서와 마찬가지로 ‘슬(瑟)’은 큰 거문고를 이르는 것으로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비파와는 전혀 다른 악기이다.

비파는 긴 타원형을 세로로 쪼개 놓은 듯한 넓은 면에 4줄이 걸려 있고 4개의 기러기발로 받친 현악기로 여성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악기인데 반해, ‘슬(瑟)’은 일단 크기부터가 상대적으로 비파보다 엄청나기 크고 보통 25현이며 안족이 있다. 경우에 따라 23현이나 27현짜리도 있기는 한데, 결론적으로 이 두 악기는 구조와 음색 또한 전혀 다르다. 이번 기회에 상식으로 새겨두고 ‘슬(瑟)’만 나오면 기계적으로 ‘비파’라고 말하는 무식을 범하지 않길 바란다.

비파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스승은 제자 자로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제자의 성정에 대한 소양 공부가 부족함을 지적한 것이었고, 자로도 그 부분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였기에 스승과 제자 간의 독특한 가르침은 그것 자체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스승의 그러한 깊이 있는 지도방식이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뭇 제자들과 문인들이 스승에게 한 꾸지람 들은 대선배 자로(子路)를 우습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스승 공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깊이 있는 자로 맞춤형 교육에 대한 것을 일일이 무지몽매한 제자들 전부에게 해명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공자는 다시 자신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해명함과 동시에 무지몽매하게 자신의 뜻도 헤아리지 못한 제자들에게 자로(子路)가 그렇게 만만하게 무시해도 될만한 존재의 인물이 아님을 이 유명한 말로 대신한다.


“由는 堂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이 유명한 비유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해설로 배우는 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문인들이 부자(夫子)의 말씀으로 인해 마침내 자로(子路)를 공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해석해 주신 것이다. 당에 오르고 방에 들어감은 도에 들어가는 차례를 비유한 것이다. 자로(子路)의 학문이 이미 정대하고 고명한 경지에 이르렀고, 다만 정미하여 심오한 곳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니, 한 가지 일의 잘못으로 대번에 경홀히 해서는 안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은 유명하지만, 지금 주자의 해석대로조차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이 없다. 쉽게 설명한 것 같지만, 자칫 잘못 해석하면 결국 자로가 방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것으로 오독하기에 딱 좋다.

여기서 방이라고 하는 것은 ‘내실(內室)’을 의미하는데, 고대 중국의 방식으로 치자면, 당(堂)은 본래 그 건물의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고, 내실(內室)이라는 것은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석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계를 이른 것이다.


이 단계로 보면, 공자의 말에는 일단 어리석고 무지몽매하여 대선배 자로(子路)에게 무례를 범한 뭇 제자들을 호되게 꾸짖는 내용이 들어있다. 자로의 성취 단계를 설명하는 말임에도 그 말을 듣는 제자들은 그 당에조차 오르지 못하고 바깥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수준이라고 일침을 가하여 입을 다물라고 죽비를 든 것이다.


마당에 있는 자들은 당(堂) 위에 오른 자를 당연히 올려봐야 한다. 예법을 논할 때도 그렇지만 당 아래에 있는 자와 당(堂) 위에 오른 것은 신분부터가 다르다. 게다가 당(堂) 위에 오른 자도 내실에 들어선 자의 자취를 보기는 했으나 그가 내실(內室)에 들어가 있는 모습은 보지 못한다. 하물며 당(堂) 위에 오르지도 못한 자들은 당(堂) 위만 보일 뿐 내실은 보일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이미 당(堂) 위에 올라섰다고 스승이 인정한 대선배, 자로(子路)를 가벼이 여기고 무시한 뭇 제자들은 공자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이미 당 위에 올라있는데도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으니 그들은 당위가 보이는 안쪽 마당도 아닌 저 문 밖에 바깥마당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즉, 자로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은 상대의 레벨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핏덩이라고 눈앞에 별이 보일 정도로 세차게 후려친 것이다. 물론 그나마 그 말귀를 알아듣는 자들에게 한한 이야기이다.


이 장에서 유래하여, 학문에 造詣(조예)가 깊어짐을 ‘升堂入室(승당입실)’이라고 일컫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같은 비유 차원에서 더 낮은 단계들로 ‘창으로 몰래 엿본다’는 의미의 ‘규유(窺窬)’라는 단어나 ‘담장 너머로 목만 빼꼼히 내밀고 엿본다’는 의미의 ‘窺墻(규장)’도 단계별로 이르는 용어로 사용된다.

늘 말하지만, 공자식 논법은 알아듣는 자들만 심한 내상을 입을 뿐, 무식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자신이 얻어터진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는 신비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학문의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하다못해 무예를 배우거나 운동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그 단계를 거쳐온 이들에게는 아주 쉬운 설명도 그 단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있어 그것을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에는 물론이거니와 이해를 시키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배우고 또 끊임없이 익히라고 하는 것이다.


배우고 익혀본 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것을 체득하고 온 몸으로 영혼으로 그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집필하는데, 모나미 볼펜 한 박스를 다 쓸 때까지 초고부터 퇴고를 해보지 않은 자는 그것이 몇 장정도의 원고를 쓰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쓰고 나면 어느 정도 글이 매끄러워지는지 그것이 초고와는 상관없이 다 쓰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퇴고에 공을 들인다는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대학교 졸업 논문을 써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A4 2~3장짜리 레포트 쓰기도 버거워서 미뤄두는 일이고, 석사 학위논문을 쓰는 일을 해보지 못한 자들은 그것이 얼마나 지겹고 지난한 작업임을 알지 못하며, 박사학위 논문을 써보지 않은 자들은 학술적인 글쓰기가 얼마나 힘겹고 피와 영혼을 날려먹는 일인지 알지 못한다.


그뿐인가? 이 장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해외의 이름 없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돈 내고 사서 받아오다시피 한 자들은 소위 세계 유수의 명문대나 경성제대에서 피와 영혼을 바쳐가며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보내며 논문을 쓴 이들의 레벨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들에게는 박사학위가 다 똑같은 박사학위논문이지 뭐가 다르냐며 우기고 싶어 한다.


만약 당신이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더 힘들다는 한국의 양궁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 나갔는데, 동남아의 어느 신생국에서 이제 막 양궁을 시작하여 국가대표라고 올림픽에 참가한 이들이 똑같은 국가대표인데 무슨 실력의 차이가 있느냐며, 차분히 연습을 시작한 당신을 비웃거나 같은 레벨이니 겸상하자고 하면 그러시라고 인정하겠는가?

한국의 양궁 국가대표는 올림픽이든 세계대회에 나가 자신들이 세계적인 신궁이라고 뻗대거나 나대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나대지 않아도 세계에서 활을 잡는 이들은 한국의 국가대표가 어떤 존재인지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 신생국의 이들이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몰라본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지거나 그들의 건방처럼 같은 레벨이라고 그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양궁 국가대표는 그저 자신이 올라서야 할 위를 바라보고 묵묵히 걸어갈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든 비유에 당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굳이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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