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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3. 2022

스승을 아버지처럼 여기게 만든 추동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람 간의 신뢰는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子畏於匡, 顔淵後. 子曰: “吾以女爲死矣.” 曰: “子在, 回何敢死?”
孔子께서 匡 땅에서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계실 적에 顔淵이 뒤처져 있었는데, 〈그가 오자〉 孔子께서 “나는 네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대답하였다. “선생께서 살아 계시니 제가 어찌 과감히 죽겠습니까.”

이 장에서는 앞서 ‘자한(子罕) 편’ 5장에서 상세하게 풀어 설명한 바 있던 광(匡) 지방의 사람들이 험악한 분위기에서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가 풀어준 뒤에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도망을 치던 중에 제자 안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을 확인한 공자가 급하게 안연을 찾는다. 어디서 언제 낙오되었는지도 모른 채 바로 합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지만 안연은 나타나지 않았다. 


혹여 그 험한 분위기에 휘말려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온갖 상상이 공자를 괴롭게 하던 중, 안연이 기적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헐레벌떡 스승에게 달려와 생존을 고한다. 그 모습을 보고 공자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긴장이 풀려 주저앉으며 말한 것이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라는 말이다.


이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뒤이어 나오는 안연의 대답이다.


“선생님이 살아 계시거늘 제가 어찌 감히 죽을 수 있겠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주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아 해설하고 있다.


‘後(후)’는 서로 잃어 뒤에 처져 있음을 이른다. ‘어찌 과감히 죽겠느냐’는 것은 달려가 싸우지 않아 반드시 죽지 않음을 이른다.


이 말은 다소 상투적인 사극투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자세히 뜯어보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승이 살아계신 상황에서 스승에게 감히 누가 되게 싸우러 나가 개죽음을 당할 수 있겠느냐는 표면적인 의미는 바로 어제 공부했던 내용과 연관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 급박한 상황에서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약간 고민하게 만드는 묘한 행간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스승이 살아 있다는 것과 자신이 죽는다는 것의 연관성, 스승이 생존해 계신데 자신이 죽을 수 없다는 것은 예(禮)에서 출발한 말이다. 부모보다 혹은 부모와 똑같은 반열에 있는 스승보다 자식이나 제자가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은 그만한 불효가 없는 것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만 보자면, 부모님이나 스승이 집에서 아무 무탈할 경우에 쓰는 것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상황은 일촉즉발 생명이 위태로운 위기상황임은 스승도 마찬가지로 스승의 안위를 내내 걱정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겨우 스승을 발견한 제자 안연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온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 스승의 무탈함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자신은 만족한다는 안도 속에서 그간 그가 자신의 안위보다 스승을 얼마나 걱정했는가에 대한 마음이 드러난다. 두 번째로 가지고 있는 의미가 다소 무거울 수 있는데, 스승 공자가 함부로 이런 일 따위에 휘말려 죽을 운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절대적인 확신 같은 것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무슨 사이비 종교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절대자에 대한 확신 따위에서 오는 낮은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공자가 누차 강조했던 하늘의 뜻을 강조했던 부분과 맞닿아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한 믿음이다. 


공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나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그 상황을 고난이나 역경이라고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하늘이 자신을 이 세상에 내었을 때는 무엇인가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 공부를 해 나가고 세상을 배워나갈수록 강해져 갔다.


그래서 하늘이 자신에게 덕을 주신 것이고, 문왕의 문화에 참여하게 한 것이라는 확신이 ‘술이(述而) 편’ 22장과 ‘자한(子罕) 편’ 5장에서 그대로 그의 당당함에서 드러난다. 앞서 죽을 위기라고 언급되었던 바로 이 ‘선진(先進) 편’ 2장과 ‘위령공(衛靈公) 편’ 1장에서 배우게 될 진채지액(陳蔡之厄)의 위기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대신 사태를 관망하고 수습책을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심하는 그런 상황이 ‘자한(子罕) 편’ 5장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어렵사리 위기를 넘기고 장소를 옮기고 난 뒤 한숨을 돌리면서 그래도 전혀 두려워하지는 않고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를 조심하는 상황이 바로 이 장의 내용이다. 그래서 원문에서 사용된 ‘두려울 외(畏)’라는 글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한다’로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이해한 호씨(胡寅(호인))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내용을 정리한다.


“선왕의 제도에 사람은 세 사람에 의해서 살아가니, 이들을 섬기기를 한결같이 하여 오직 자신이 처한 곳에 따라 죽음을 바친다. 하물며 안연은 공자에 대해 은혜와 의가 아울러 극진하였으니, 또 다른 사람의 사제간과 같을 뿐만이 아니었다. 만일 夫子(부자)께서 불행히 難(난, 난리)을 만나셨다면 안회는 반드시 생명을 버리고 싸움에 달려갔을 것이요, <생명을 버리고 싸움에 달려가서> 다행히 죽지 않았다면 반드시 위로는 천자에게 아뢰고 아래로는 方伯(방백, 패권국)에게 고해서 토벌할 것을 청하여 복수했을 것이요, 그대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자께서 살아 계시다면 안회가 어찌 그 죽음을 아끼지 않고서 匡(광) 땅 사람들의 칼날을 범하겠는가.”


이 긴 주석에는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을 공자와 안연이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어 부자지간도 이루지 못한 강한 결연으로 맺어진 관계임을 강조한다. 


스승의 안위가 확인될 때까지는 어떤 판단도 유보했던 안연의 입장이 어떤 상황에서 그리된 것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한 이유는, 만에 하나 주석의 설명처럼 스승이 황당한 죽음을 당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복수를 했을 것이지만, 스승의 안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신의 목숨조차도 스승에게 누가 되고 무례가 될까를 우려하여 주저하였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주석의 시작하는 말이 심상치 않다.


“선왕의 제도에 사람은 세 사람에 의해서 살아가니, 이들을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


이 말은 본래 『국어(國語)』, 「진어(晉語)」1권에 나오는 말인데, 진(晉) 나라 애후(哀侯)의 대부인 난공자(欒共子;共叔成)가 武公에 의해 살해된 애후의 뒤를 따라 죽으면서 했던 말이다. 하는 말이다. 난공자는 무공의 할아버지인 환숙(桓叔)의 師傅 아들이기에 무공은 그의 죽음을 만류했다. 그 본문의 내용을 약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난공자)은 듣건대 백성은 셋(父 師 君)에 의해 삶이라.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 하니, 아비가 낳아주시고, 선생이 가르쳐주시고, 인군이 먹여주시기 때문이다. 아비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먹여주지 아니하면 자라지 못하고, 가르침이 아니면 알지 못하니, 삶의 겨레라. 그러므로 한결같이 섬겨서 오직 그 계신 곳에서 죽음을 다하니, 생에 보답함을 죽음으로써 하며, 베풀어주심에 보답함으로써 사람의 도이다. 신이 감히 사리로써 사람의 도를 폐한다면 임금께서 무엇으로써 가르치겠는가? 또한 임금은, 완성된 따름(報生以死)이란 것을 알고, 무공이 있는 곳에서 기다림(난공자가 무공을 섬긴다는 뜻으로 이것은 두 임금을 섬긴다는 것이기에 불충을 의미한다)을 알지 못하니, 임금을 따르면서 두 마음이면 임금이 어찌 쓰겠는가, 하고서는 마침내 싸우다 죽었다.


주석에서는 짧은 글로 전체의 글을 설명한 것이지만, 정작 이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주석이 다시 주석을 부르는 꼴이 되어버리기에 초심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의미여서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렇게 이야기를 알고 보니, 왜 주석의 첫머리에 백성들이 세 가지를 의존해서 산다고 하였으며 그 세 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왜 그 이야기로 안연이 죽지 못하고 스승을 찾아 헤매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 장의 의미를 이렇게 하나하나 다 이해하고 보면, 바로 전 장에서 공부했던 자로의 이야기와 이 장의 이야기가 분리된 이야기가 아니고 논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설사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감히 목숨을 거는 것에는 부모나 스승이 계신다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논리는 바로 이 장의 주석에서 설명한 그 내용들이 상식적으로 작용한 전제에서 이해가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장의 방점이라 여겼던 안연의 말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학자들도 상당히 많은 주석을 달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바 있는데, 고려 말의 李穡(이색)은 안연의 말에 공자가 평소의 삶이 神明(신명)의 뜻과 부합하므로 기도를 일삼을 필요가 없다고 했던 것과 같은 뜻이 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앞서 내가 설명했던 공자의 하늘에 대한 당당한 믿음과 연관되어, ‘述而(술이)’편에서 공부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공자가 위독하자 子路(자로)는 산천에 제사 지내려고 했지만 공자는 “내가 기도해 온 것이 오래되었다”라고 말하면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목은 이색

이색은 시 <獨夜(독야)> 제7수에서 “深知無所禱 悐若度朝暮(목숨을 빌 데가 달리 없음을 잘 알기에 하루하루를 조심조심 지낸다.)라고 하여 이 의미를 은연중에 녹여내기도 하였다. 다산(茶山;정약용)은 안연이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여겼기 때문에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풀이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근원적인 힘은 정녕 누군가에 대한 신뢰와 존경, 그리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작금에 이런 사제지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 물론 그것은 공자 당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런 제자가 창졸간에 생을 다하였으니 공자의 아픔이 어떠했을까에 대해 미루어 짐작케 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제 내일로 이번 학기가 끝이 난다. 이번 학기를 마치며 이 나라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이 나라 학생들의 밑바닥을 또 본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 나라 이 학교에 남아 있으면서 자신들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교수가 아니라면 굳이 유종의 미를 거두려 들지 않는다. 물론 예를 갖춰 유종의 미를 가두는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미 기말고사를 치르기도 전에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을 접하고 밑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었다. 그것이 이 나라 학생들만의 민낯이던가? 한국의 학생들, 아이비리그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가?


이 장의 가르침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스승과 제자 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공자가 그렇게 많이 강조하고 보여주었음에도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인가 내 족적을 거슬러 올라가 찬찬히 곱씹어본다. 


전에 몇 번 말한 바 있지만, 나는 지금까지 스승이라고 존경할만한 이를 단 한 명도 두지 못하였다. 내 성격이 모난 탓도 있겠으나 공부하는 내내 도제 방식의 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탓인지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며 학부 때에는 강의에서만 보아왔던 교수들의 민낯을 연구실에 상주하며 지근거리에서 본의 아니게 속속들이 보면서 도저히 존경은 고사하고 경멸하지 않기가 더 어려운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경험은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가르치고 내 삶의 족적을 지근거리에서 학생들이나 제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진정 부끄럽지 않았던가? 

작금의 문제점이 갖는 원인의 대부분은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 느꼈던 것을 교수가 되어 반복하고, 자신이 민원인의 입장이었을 때 불합리를 9급 공무원이 되어 민원창구에 앉게 되는 순간, 자신이 욕하던 복지부동 공무원으로 반복하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공고히 이어갔다.


공자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렇게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었다. 각자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부끄럽지 않은 최선의 모습으로 배우고 익히기를 꾸준히 하되, 그것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삶의 목표를 잡는다면 그것이 학생이든 교수이든 아니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사회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논리였다.


하지만, 공자의 시대는 물론이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사제지간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경해져가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라도 볼 수 있었던 열혈교사와 청춘들 간의 어우러짐은 이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나오질 않는다. 


모두가 그것이 비현실적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런 현실을 만든 것이 자신들임을 알지 못한다. 당신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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