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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7. 2022

공부하지 않은 자, 실전에서 그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왜 그렇게 기본을 강조하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하는 자들에게.

子路使子羔爲費宰, 子曰: “賊夫人之子.” 子路曰: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然後爲學?” 子曰: “是故惡夫佞者.”     
子路가 子羔(高柴)로 費邑의 邑宰를 삼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자식을 해치는구나.” 子路가 말하였다. “人民이 있고 社稷이 있으니, 하필 책을 읽은 뒤에야 배움을 하겠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이 장은 앞서 17장에서 공자가 제자들의 단점을 통해서 설명했던 제자 중에 ‘어리석다(愚)’라는 평가로 가르침을 받았던 자고(子羔)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참고로 당시 그를 평가했던 의미는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이는 ‘고지식하다’는 의미로 풀이한 바 있다. 그런데 계손씨의 가신으로 있던 자로(子路)가 동문 후배인 자고(子羔)를 채읍(採邑)인 비읍(費邑)의 읍재로 추천하게 되는 상황에서 스승인 공자가 의견을 내는 상황이다.

     

계손씨에 대해서는 앞서 몇 번 설명했던 바와 같이 공자가 인정할 수 없는 참람한 대부였던 터라 그의 가신으로 갔던 자로가 그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신하가 되던지 그것을 못할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배운 대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한 상황이라 영 마뜩잖아 않던 상황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또 한 사람의 동문 후배를 자신이 추천하며 그 밑에 와서 일을 하라고 하였으니 공자가 곱게 생각했을 리가 만무하다.

이 상황에 대해 주자는 간단하게 한 줄로 설명하며 이 장의 배경을 말한다.


자로가 계씨의 가신이 되어 그를 등용한 것이다.     


그랬더니, 공자가 길지도 않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마디를 남긴다.  

공자의 이 폐부를 후벼 파는 강렬한 꾸짖음에 대해 주자는 주석을 통해 다음과 그 속뜻을 풀이한다.    

 

‘賊(적)’은 해침이다. 자고(子羔)가 자질이 아름다우나 아직 배우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백성을 다스리게 하면 다만 그를 해칠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자고(子羔)

주자의 주석에 계손씨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자로(子路)가 추천하고 실전에 투입시키고자 했던 제자가 자고(子羔)였다는 점을 부각하여 그가 아직 실전에 투입될만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으므로 설명을 대신하였다. 이것은 사실이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는 계손씨의 스카우트 제안에 대해 과감하게 ‘참람된 일이니 나는 당신의 가신이 되지 않겠다.’라고 멋지게 거절한 민자건(閔子騫)의 일화에 대해 ‘옹야(雍也) 편’ 7장에서 이미 공부한 바 있다.     


당시 민자건(閔子騫)을 지금 이 장에서 언급되는 비읍의 읍재로 삼으려고 계씨가 먼저 제안하는 상황이 똑같이 펼쳐진다. 그러니 당시는 같은 동문이던 자로(子路)가 계씨의 가신으로 가기 전의 일이었기에 계씨가 직접 민자건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시기적인 설명이 나와 있는 기록이나 언급이 없기 때문에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먼저 제안이 갔었는가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이 어떻게 그것에 대해 대응하였는가에 태도의 차이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이 장에서 꾸지람을 받은 자로(子路)에 대해 공격하며 말 그대로 공자왈 맹자왈을 읽어댔겠으나 이제 현실비판적인 시각으로 논어 읽기를 해온 학도들이라면 현실적인 입장에서 동문 후배를 추천하고자 했던 자로(子路)의 속내를 모두 파악한 것이 아닌 이상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민자건이 그저 단순하게 계씨가 스승이 비난하는 참람된 군주였기 때문에 묻고 따지지도 않고 거부하였다는 편향된 시각으로 행간의 의미조차 무시하며 일도양단식으로 시비를 가릴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수준은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아직 이 장의 이야기가 안 끝났다. 앞서 민자건(閔子騫)의 변(辨)은 들을 수 없었지만, 자로는 이 장에서 스승의 그 살벌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을 듣고 자신의 변(辨)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 말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백성을 다스리고 귀신을 섬김이 모두 학문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소 시트콤 같은 이 상황은 자로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준다. 변명이 자신의 생각이 아닌 스승에게 배운 곧이곧대로의 상식을 그대로 내밀어 자신의 변으로 삼은 것이 바로 그것인데, 문제는 상대가 다름 아닌 변화무쌍한 시중(時中)의 논리를 구사하는 성인 공자였다는 것을 자로는 망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로의 생각에는, ‘스승님에게 제가 전에 배우면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아직 공부가 부족하고 실전 경험이 없는 자고(子羔)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찌 스승님의 밑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배우는 것이겠습니까? 기본을 익혔으니 현장에서 익혀가면서 적용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괜한 아는 척을 하는 바람에 자로는 듣지 않아도 될 뻔했던 스승의 꾸지람을 된통 듣게 된다.


“이 때문에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사실 이 대답은 자로(子路)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자로의 캐릭터가 어디 말을 잘하는 이던가? 그렇다고 자로의 의도대로 스승이 이미 전에 말씀하신 것이 있으니 자신의 논리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어설픈 변명이 먹혀서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어설픈 말재간을 피우는 것으로는 진리를 바꿀 수 없음을 공자는 반대로 이야기하여 본래 말재간이 있는 인물이 아니었던 자로(子路)의 안일함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사실 앞에서 공자의 지적에 대해, 주자가 주석을 통해, 자고(子羔)를 추천한 자로에 대해서 계씨의 가신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고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한 것은 이러한 대화의 맥락에 의거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즉, 자로의 변명을 통해 스승 공자가 반대했던 이유가 계손씨의 참람된 행위를 돕는 가신으로 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제시한 것보다는 아직 자고(子羔)가 현실 정치에 참여할만한 공부가 완성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는 것을 역추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를 배우는 자들이 함께 깨달을 수 있도록 주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달아 이해를 돕는다.     


백성을 다스리고 귀신을 섬김은 진실로 배우는 자의 일이나 반드시 학문이 이미 이루어진 뒤에 벼슬하여 그 배움을 실행할 수 있으니, 만약 애초에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았는데 그로 하여금 벼슬에 나아가 학문을 하게 한다면 귀신에게 慢忽(만흘, 불경)하고 백성을 학대함에 이르지 않을 자가 드물다. 자로의 말은 그의 본의가 아니요, 다만 논리가 굽히고 말이 궁하여 입으로 변론함을 취해서 남의 말을 막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夫子(부자)께서 그의 그름을 指斥(지척)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말재주만을 미워하신 것이다.     


내가 논어를 풀이함에 있어 ‘제대로’라는 부사어를 제법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눈치챈 학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단어의 의미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제대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지면이 부족하고 사례가 부족해질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대상에 따라 다르며 시기에 따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논어를 읽고 바른 도를 공부하기 위한 시비(是非)를 가리게 될 줄 알면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장에서 공자가 궁핍한 논리에 아무말대잔치를 하며 스승이 이전에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것으로 변명을 삼은 것에 대해 그를 탓하지 아니하고 엉뚱하게 말만 잘하는 이를 탓하며 말재주만 늘어서는 ‘제대로’에 이를 수 없음을 완곡하지만 강력하게 일러준다.    

 

그래서 범 씨(范祖禹(범조우))는 이 장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옛날에는 배운 뒤에 정사에 들어갔으니, 정사로써 배운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도의 근본이 몸을 닦는 데 있으니, 그런 뒤에 사람을 다스림에 미치는 것이다. 그 내용이 책에 갖추어져 있으니, 책을 읽어서 안 뒤에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로(子路)가 마침내 자고(子羔)로 하여금 정사로써 학문하게 하려고 하였으니, 선후와 본말의 차례를 잃었다. 그런데도 그 잘못을 알지 못하고 口給(구급,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므로 夫子(부자)께서 그의 말재주를 미워하신 것이다.”

공부라는 것, 그리고 배운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저마다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어설프게 주워들은 풍월이라고 있는 자들이, 그렇게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아침마다 풀어주는 이 논어 공부를 통해, 제대로 된 배움을 통해 시비(是非)를 가리는 공부를 해야 함을 강조하고, 무엇보다 배움의 완성은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쌓여 사욕(私慾)을 채우고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를 쌓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바르게 바꾸려는 노력으로 완성된다고 목이 터지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그래서 논어 공부와 별개로 펼쳤던 캠페인을 통해서도 실천하지 않은 공부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그리고 마치 사회 부조리를 보고 분노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동참하고 실천할 것처럼 거들먹거리던 이들이 실천 앞에서 갖가지 변명과 아무말대잔치를 하며 자신의 비겁함을 포장하고 줄행랑쳤던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여 설명한 바 있다.     


가슴 아프지만 현실이 그랬다. 그런데 더 기가 막혔던 것은 그렇게 자신이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지 않고, 더 알려 들지 않으면서 참람되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그 행간의 의미도 알지 못하면서 내게 ‘강요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라던가 ‘선생님과 같지 않은 것이 옳지 않은 것으로 매도하지 말고 다름을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 따위의 아무말대잔치를 해온 것이다.     


자아, 오늘 이 장을 공부하며 자로의 그 궁핍하기 그지없는 아무말대잔치의 논리에 대해 공자가 그 말이 틀리다고 하던가? 아니다. 공자도 알고 자로도 알고 하늘도 아는, 공자가 했던 그 가르침, 자로가 선생님의 말씀이 전에 이랬지 않습니까?라고 했던 논리는 지금의 이 상황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여기에서 갑툭튀 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캠페인에 나온 사안이 사안에 대해 국가기관이나 그것을 확인하고 조사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이들에게 알려 사안의 진실부터 제대로 파악하자고 그렇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음에도 뜬금없이 ‘그 사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이나 설명만을 듣고 다른 사람을 매도하는 일에 함부로 동참하기 어려웠습니다.’라는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 하는 사람에게 내가 일일이 설명하고 훈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그런 언행을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문해력이 떨어져 상대가 무엇을 말하는지조차 사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일 테고, 또 다른 하나는 다 이해했으면서도 엄한 소리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불편한 양심에 '아카쟁키'(머큐륨액이나 요오드액이라는 말보다 이 어색한 일본어가 주는 친숙감이 있어 그대로 사용한다.)를 바르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응급처치(?)를 하는 언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자고(子羔)로 사례화되기는 했지만, 정작 제대로 시비를 가릴 혜안을 갖춘 공부를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실전에 투입되어 많은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심지어 자신이 리드하겠다며 앞에 나서, 자신을 망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큰 피해를 양산하는 자들은 작금의 대한민국에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을 포함한 그 주변에도 너무 많이 눈에 띈다.

그렇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실천으로 이어질 정도의 공부가 되려면 지금 당신이 해온 사욕을 위한 방편의 공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평생 수행과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한다는 진실을 과연 당신이 정말로 모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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