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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8. 2022

내 부족함을 아는 순간, 그 부족함은 채워진다.

자신의 부족함이 2%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 夫子哂之. “求, 爾何如?” 對曰: “方六七十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赤, 爾何如?”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點, 爾何如?” 鼓瑟希, 鏗爾舍瑟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夫子喟然嘆曰: “吾與點也!” 三子者出, 曾晳後. 曾晳曰: “夫三子者之言何如?”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 曰: “夫子何哂由也?” 曰: “爲國以禮, 其言不讓, 是故哂之.” “唯求則非邦也與?” “安見方六七十如五六十而非邦也者?” “唯赤則非邦也與?” “宗廟·會同, 非諸侯而何?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     


子路 · 曾晳 · 冉有 · 公西華가 〈孔子를〉 모시고 앉았었는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 〈나이가〉 다소〔一日〕 너희들보다 많다 하나, 나 때문에 어려워하지 말라.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떻게 쓰여지겠느냐?” 子路가 경솔히(성급하게) 대답하였다. “千乘의 諸侯國이 大國 사이에서 속박을 받아 師旅(침공)가 加해지고 이어서 饑饉까지 들거든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하고 또 〈義理로〉 향할 줄을 알게 하겠습니다.” 夫子께서 〈이 말을 듣고〉빙긋이 웃으셨다. 〈孔子께서〉 “求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자, 〈求(冉有)가〉 대답하였다. “方(넓이) 6, 70리, 혹은 5, 60리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으나 그 禮樂에 있어서는 君子를 기다리겠습니다.” “赤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자, 〈赤(公西華)이〉 대답하였다. “제가 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宗廟의 일 또는 諸侯들이 會同할 적에 玄端服을 입고 章甫冠을 쓰고서 작은 相(執禮)이 되기를 원합니다.” “點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자, 그는 瑟 타기를 드문드문하더니, 땅 하고 비파를 놓고 일어나 대답하였다. “〈저의 뜻은〉 세 사람이 갖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기 자신의 뜻(포부)을 말하는 것이다.” 하시자, 〈點(曾晳)이〉 대답하였다.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冠을 쓴 어른 5, 6명과 童子 6, 7명과 함께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 夫子께서 ‘아!’ 하고 감탄하시며 “나는 點을 許與한다.” 하셨다. 세 사람이 나가자 曾晳이 뒤에 남았었는데, 曾晳이 말하였다. “저 세 사람의 말이 어떻습니까?”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또한 각각 자기 뜻을 말했을 뿐이다.” 〈曾晳이〉 “夫子께서 어찌하여 由를 빙긋이 웃으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라를 다스림은 禮로써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웃은 것이다.”〈曾晳이〉 “求가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方 6, 70리, 혹은 5, 60리이면서 나라가 아닌 것을 어디에서 보았느냐?” 〈曾晳이〉 “赤이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宗廟의 일과 會同하는 일이 諸侯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赤이 小가 된다면 누가 大가 되겠느냐.” 

이번 장은 드디어 ‘선진(先進) 편’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내용이 상당히 긴 편인데, 등장하는 제자도 4명이나 되지만 어려운 사유를 직접적으로 논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스승이 허심탄회하게 제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방식을 취해 그들이 성취한 배움의 정도와 깊이를 스승이 가늠하며 대화를 듣고 읽는 이들을 통해 비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이 긴 편이니 주자의 주석을 참조하며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공자가 제자인 子路 · 曾晳 · 冉有 · 公西華를 앞에 두고 자신이 나이가 많은 스승이라는 어려움을 감안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라며 운을 띄우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증석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이라 생각했는지 주자가 그를 ‘曾參(증참)의 아버지이고, 이름이 點(점)이다.’라고 주석을 달아 소개한다. 사실 이 장의 피날레를 증점이 화룡점정으로 마치기 때문에 복선을 제공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이어서 공자가 스스로를 표현함에 약간 나이가 많다는 식의 표현이 재미있다.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내가 비록 나이가 다소 너희들보다 많으나 너희들은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말하기를 어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는 유도하여 말을 다하게 해서 그 뜻을 관찰하려고 하신 것이니, 성인의 온화한 기운과 겸손한 덕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다음으로 공자는 평상시에 제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불만(?)에 대해 봉인을 해제하며 각 제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라고 한다. 대개 이런 상황이 더 어렵고 복잡하기 마련이다. 질문으로 던진 내용이 돌직구이다.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쓰여질 것인가에 준다면 어떻게 쓰여지겠느냐?”     


이 질문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상세히 풀어 설명한다.     


‘너희들이 平居(평거, 평소)에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희들이 장차 어떻게 쓰여지겠느냐?’고 말씀한 것이다.     


이에 성격 급한 子路가 먼저 나서서 대답한다.     


“千乘의 諸侯國이 大國 사이에서 속박을 받아 師旅(침공)가 加해지고 이어서 饑饉까지 들거든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하고 또 〈義理로〉 향할 줄을 알게 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공자가 그저 말없이 빙긋이 웃는다. 주자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率爾(솔이)’는 경솔하고 급한 모양이다. ‘攝(섭)’은 管束(관속, 속박)이다. 2천5백 명을 師(사)라 하고, 5백 명을 旅(려)라 한다. ‘因(인)’은 이어서이다. 곡식이 성숙하지 않음을 饑(기)라 하고, 채소가 성숙하지 않음을 饉(근)이라 한다. ‘方(방)’은 향함이니, 의리로 향함을 이른다. 백성들이 의리로 향하면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君長(군장))을 위해 죽을 수 있다. ‘哂(신)’은 미소이다.     


다음으로 염구(冉有)는 자로의 성급한 사례를 보며, 禮樂과 君子를 언급하며 자신을 훨씬 더 낮추는 어법으로 스승에게 좀 더 높은 포인트를 따려는 기민함을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한 주자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求爾何如(구이하여)’는 공자께서 물으신 것이니, 아래도 이와 같다. 方(방) 6, 70리는 작은 나라이다. ‘如(여)’ 는 或(혹)과 같다. 5, 60리는 더 작은 것이다. ‘足(족)’은 풍족한 것이다. ‘군자를 기다린다.’는 것은 자신의 능한 바가 아님을 말한다. 염유는 謙退(겸퇴, 겸손)하였고, 또 자로가 웃음을 당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 말이 더욱 겸손한 것이다.    

 

스승의 반응이 없자, 다음으로 예법으로 스승에게 인정을 받은 바 있는 赤(公西華)이 대답에 나선다.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예법의 달인답게 자신은 더 배워야 한다며 비근한 사례를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의 대답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을 덧붙인다.     


공서화는 예악의 일에 뜻을 두었는데, 군자로 자처함을 혐의하였다. 그러므로 장차 자신의 뜻을 말하려 하면서 먼저 겸손의 말을 하여, 자신이 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다. ‘宗廟(종묘)의 일’은 제사를 이른다. 제후가 때때로 뵙는 것을 會(회)라 하고, 여러 제후가 함께 뵙는 것을 同(동)이라 한다. ‘端(단)’은 玄端服(현단복)이고, ‘章甫(장보)’는 禮冠(예관)이다. ‘相(상)’은 임금의 禮(예)를 돕는 자이다. ‘小(소)’라고 말한 것은 또한 겸손의 말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점점 더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핵심으로 가는가 싶은 상황에서 마지막에 나이가 가장 어리지 않았음에도 말석에 있던 증점에게 공자가 다시 확인 질문을 던진다. 가장 마지막에 물었던 이유는 대화에 집중하기보다 악기를 연주하며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는데, 스승의 확인 질문에 대해 증점은 앞서 세 사람과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굳이 왜 이런 표현이 나왔는지에 주목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전히 엉뚱하다 싶은 표현방식을 차용하여 대답하는데, 그가 어떤 의도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를 간파한 공자가 바로 그를 허여(인정)한다고 대답한다.     

사실 이 마지막 장의 증점의 대답은 <논어>의 다른 유명한 장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비유이다.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상세한 주석을 통해 배우는 자들이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을 준다.


네 사람이 모시고 앉음에 연치로써 차례를 한다면 曾點(증점)이 마땅히 두 번째로 대답해야 할 것이나 막 비파를 타고 있었으므로 공자께서 먼저 求(구)와 赤(적)에게 물으신 뒤에 點(점)에게 미치신 것이다. ‘希(희)’는 간헐이요, ‘作(작)’은 일어남이다. ‘撰(찬)’은 갖춤이다. ‘暮春(모춘)’은 온화하고 따뜻한 시절이요, ‘春服(춘복)’은 홑옷과 겹옷이다. ‘浴(욕)’은 세수하고 씻는 것이니, 지금 3월 上巳日(상사일, 삼짇날)의 祓除(불제)가 그것이다. 沂(기)는 물 이름이니, 노나라 도성 남쪽에 있다. 《漢書(한서)》 〈地理志(지리지)〉에 온천이 있다고 했으니, 이치상 혹 그럴듯하다. ‘風(풍)’은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이다. 舞雩(무우)는 하늘에 제사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니, 壇墠(단선)과 수목이 있다. ‘詠(영)’은 노래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말 그대로 글을 해석해준 것이고, 왜 공자가 그의 말에 허여 한다고 했는지 의문을 가질 이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주자의 설명은 따로 안배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증점의 학문은 인욕이 다한 곳에 천리가 유행하여 곳에 따라 충만해서 조금도 欠闕(흠궐, 부족함과 결함)이 없음을 봄이 있었다. 그러므로 動靜(동정)할 때에 從容(종용, 차분하고 자연스러움)함이 이와 같았고, 뜻을 말함은 또 자신이 처한 위치에 나아가서 일상생활의 떳떳함을 즐기는 데에 지나지 않았고, 애당초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하려는 뜻이 없었다. 그리하여 가슴속이 悠然(유연, 한가롭고 자연스러움)하여 곧바로 천지 만물과 더불어 상하가 함께 유행하여 각각 그 곳(제자리)을 얻은 묘함이 은연중 말 밖에 나타났으니, 저 세 사람이 事爲(사위, 정사)의 지엽적인 것에 規規(규규, 급급)한 것에 견주어 보면 그 기상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夫子(부자)께서 감탄하시고 깊이 허여 하셨으며 문인들이 그 本末(본말, 전말)을 기록함에 특히 더 자세히 하였으니, 〈기록한 자〉 또한 이것을 앎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네 명의 제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모두 듣고, 증점에 대해서 허여 한다고까지 했는데 이 장은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스승과 독대하게 된 증석(曾晳)이 앞서 스승이 보인 태도에 대해 이유를 물은 것이다. 증점이 왜 그것을 물었는지에 대해 주자는 배우는 자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點(점)은 자로의 뜻이 마침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夫子(부자)께서 웃으셨으므로 그 설명(이유)을 요청한 것이다. 공자가 직접 왜 자로의 경지가 부족했는지에 대해 직접 본문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준다.     


“나라를 다스림은 禮로써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웃은 것이다.”  

   

夫子(부자)는 그의 능력은 허여 하시고 다만 그 겸손하지 못함을 웃으신 것이다.     


염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曾點(증점)이 冉求(염구)도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였으나 웃음을 당하지 않았으므로 은미하게 물었는데, 夫子(부자)의 대답이 폄하하는 말씀이 없으셨으니, 이 또한 허여 하신 것이다.     


즉, 일정 부분에 대해 모두 허여 하는 모습을 보여주되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원포인트 레슨으로 대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어 공서화의 대답에 대해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이 또한 曾晳(증석)이 묻자, 夫子(부자)께서 답하신 것이다. ‘누가 大(대)가 되겠느냐.’고 하신 것은 그를 뛰어넘을 자가 없음을 말씀한 것이니, 이 또한 그를 허여 하신 말씀이다.     


물론 그다음에 증점에 대한 해설은 따로 있지 않다. 굳이 앞서 허여 하였다고 짧게 평점 하였는데 자신의 내용에 대해 물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에 대해 정자(伊川(이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옛날의 학자(배우는 자)들은 優柔(우유)하고 厭飫(염어)하여 선후의 순서 가 있었다. 예컨대 자로 · 염유 · 공서적이 뜻을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자, 夫子(부자)께서 허여 하시기를 또한 이로써 하셨으니, 본래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세의 학자들은 高遠(고원)한 것을 좋아하여, 마치 사람이 마음은 천 리 밖에 노닐지만 자신의 몸은 다만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뒤이어 정자(明道(명도))가 이렇게 정리한다.     


“공자께서 曾點(증점)을 허여 하셨으니 이는 聖人(성인)의 뜻과 같은 것이니, 이는 바로 요순의 기상이다. 진실로 세 사람이 갖고 있는 뜻과는 달랐으나 다만 행실이 말을 가리지 못함이 있을 뿐이니, 이것이 이른바 狂者(광자)라는 것이다. 자로 등 세 사람은 소견이 작았다. 자로는 다만 나라를 다스림에 예로써 하는 도리를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자께서 웃으신 것이니, 만약 통달했다면 이것도 바로 그러한 기상이다.”     


마지막으로 정자(이천)가 이 장에서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증점의 답변이 갖는 행간의 의미에 대해 공자의 이해를 다음과 같이 풀어준다.     


“세 사람은 모두 나라를 얻어 다스리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취하지 않으신 것이다. 증점은 광자이니, 반드시 성인의 일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부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沂水(기수)에서 목욕하고 舞雩(무우)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오겠다.’고 말하였으니, 즐거워하면서 그곳(제자리)을 얻었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의 뜻은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고 붕우를 미덥게 해 주고 젊은이를 감싸줌에 있어서 만물로 하여금 그 본성을 이루지 않음이 없게 하셨는데, 증점이 이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아!’하고 감탄하시며 ‘나는 증점을 허여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정자(명도)가〉 또 말씀하였다. “증점과 漆雕開(칠조개)는 이미 큰 뜻을 보았다.”




이것으로 드디어 선진편의 공부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새벽에 해커가 뿌린 랜섬웨어의 공격으로 오늘 <논어 읽기>의 발행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기다리셨던 학도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이제 절반을 훌쩍 넘어 내일부터는 ‘안연(顏淵) 편’으로 들어갑니다.     

공부는 간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끊김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숨쉬기와 같다는 점,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공부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그럼 내일 아침 먼저 책 펼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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