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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30. 2022

나를 다스리되 남과 나를 다르지 않게 여김이 仁이다.

공사 구분을 못하고 사욕을 찾는 것에서 혈안인 자들에게.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仲弓曰: “雍雖不敏, 請事斯語矣.”     
仲弓(冉雍)이 仁을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뵌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祭祀를 받들듯이 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으며 집안에 있어도 원망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仲弓이 말하였다. “제(雍)가 비록 不敏하나 청컨대 이 말씀에 종사하겠습니다.”     

앞서 첫 장의 시작을 안연이 인(仁)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였는데, 바로 뒤이어 염옹이 똑같은 인(仁)을 묻는다. 앞에서 누차 공부한 바와 같이 같은 것을 물어도 누가 언제 어떤 식으로 묻는가에 따라 공자의 대답은 당연히(?) 달라진다.      


염옹(冉雍)이 누구인지 가물가물하다면 아직 공부가 많이 부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편명을 시작한 사람으로 ‘옹야(雍也) 편’의 바로 그 인물이다. 그 첫 장에서 공자가 임금을 시킬만한 인물이라고 극찬한 바로 그 인물이 염옹(冉雍)이다.     

염옹(冉雍)

굳이 염옹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옹야(雍也) 편’의 첫 장에서 공자가 허여 했던 그 인물이기에 이 편의 첫 장에서 안연(顏淵)이 보여줬던 그 경지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여 이해하는 관전의 묘미를 충분히 느껴보라고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장에서도 염옹은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해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형이상학적인 대답과 뒤이어 다시 형이하학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를 융합시킨 형태의 대답으로 새로운 가르침을 보여준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뵌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祭祀를 받들듯이 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으며 집안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공자의 이 설명을 보면, 앞에서 말하는 세 가지는 기준이 있다기보다 다양한 방식을 말하되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로 인(仁)을 표시한다. 그것이 바로 이 장의 핵심문장이자 인(仁)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다.     

이 내용은 앞서 ‘이인(里仁) 편’의 15장과 뒤에 배울 ‘위령공(衛靈公) 편’의 23장에서 설명하는 개념인 ‘서(恕)’로 대변된다. 앞서 설명한 적이 있다시피 ‘서(恕)’라는 개념은 자신의 마음을 확장시켜 상대의 마음과 일치시키는 것, 상대방의 마음과 일치시켜 그 마음을 헤아려 동정하는 것이라고도 표현된다. 하지만, 동정이라는 개념이 한정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환치시켜 동일화하는 작업을 의미하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공자의 대답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주석에 덧붙인다.     


敬(경)으로써 자기 몸을 지키고 恕(서)로써 남에게 미친다면 私意(사의)가 용납할 곳이 없어서 마음의 덕이 온전해질 것이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원망함이 없다는 것은 또한 그 효험으로 말씀하여 스스로 고찰하게 하신 것이다.     


이 대답에서는 두 가지 유의해서 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세 가지 서로 다른 기준에 대해 이야기한 것과 별개로 뒷문장에서는 ‘재방(在邦; 나라에 있는 것)’과 ‘재가(在家;집안에 있는 것)’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공자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경우에 대해 처음 배우는 자들은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설명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부연한다.      


두 번째는 ‘無怨’이라는 말에 대한 해석이다. 이 단어는 아주 간단하지만, 능동인 ‘원망함이 없다’로 단순히 해석하기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즉, 피동으로 원문에서 내가 해석한 바와 같이 ‘원망을 사는 일이 없을 것이다.’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속의 의미가 자신이 개인적인 면에서 혼자서 누군가를 원망한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디에 있던 ‘자신’이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존재임에도 경우와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단 한 기준밖에 없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다.     


앞서 세 가지 기준 없는 언급에 대해 혼란스러워할 학도들을 위해 정자(伊川(이천))가 다음과 같은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공자께서 仁(인)을 말씀하실 적에 다만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뵌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제사를 받들듯이 하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기상을 보면 모름지기 마음이 넓고 몸이 펴져서 動容(동용)하고 周旋(주선)함이 예에 맞는 것이니, 오직 謹獨(근독)이 바로 이것을 지켜내는 법이다.”     

이러한 정자의 설명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았을 학도들을 위해 의문을 가진 혹자를 가상으로 등장시켜 정자의 대답을 논어의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혹자가 묻기를 “문을 나가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이와 같이 하는 것이 可(가)하거니와(옳지만) 아직 문을 나가지 않고 백성을 부리지 않을 때에는 어찌해야 합니까?” 하니, 정자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엄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할 때이다. 敬(경)이 심중에 있은 뒤에야 외모에 나타나니, 문을 나가고 백성을 부릴 때에 공경함이 이와 같음을 보았다면 이보다 앞서의 敬(경)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을 나가고 백성을 부림을 인한 뒤에 이 敬(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자의 이러한 설명방식을 모두 고찰한 주자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가르침을 정리해준다.    

 

내가 상고해 보건대, 克己復禮(극기복례)는 乾道(건도)요, 敬(경)을 주장하고 恕(서)를 행함은 坤道(곤도)이다. 顏子(안자)와 冉子(염자)의 학문은 그 높고 낮음과 얕고 깊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배우는 자가 진실로 敬(경)과 恕(서)의 사이에서 종사하여 얻음이 있다면 또한 장차 이길 만한 사욕이 없게 될 것이다.     


주자의 이 해설은 앞서 안연(顏淵)이 했던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과 지금 염옹(冉雍)이 했던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닌, 궁극적인 의미에서 상호보완적인 설명으로 인(仁)의 실체에 대해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공자의 지극한 마음이었음을 풀어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주자의 이해에 대해 그 둘 사이의 설명에 있어 차이가 있다고도 하지만, 다산(茶山; 정약용)은 ‘克己가 곧 恕이므로 공자의 가르침은 一貫(일관)되어 있다’고 자신의 이해가 주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증한다.      

앞서 공부할 때도 비슷한 질문을 하는 학도들이 많았지만, <논어>를 공부하면서 ‘인(仁)’이나 ‘예(禮)’, ‘서(恕)’, ‘경(敬)’ 등의 개념어가 갖는 함의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옛날에 배우는 이들에게도 그 개념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정작 그 개념을 물어오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장 피부에 와닿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스승 공자의 몫이었다.      

조선시대의 유학이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인 성향과 결탁되면서 나라를 말아먹고 후세에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것도 결국 그들이 형이상학적인 고담준론(高談峻論)을 펼치는 것처럼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뜬구름 잡는 식의 개념어들을 남발하며 현실에 와닿지 않는 소리로 현실과 유리된 학문을 만들었기에 조선 후기에 명말청초의 학문 흐름과 맞물려 ‘실학(實學)’을 해야 한다는 깨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원류가 되는 공자의 설명을 보라. 그 어느 부분이 도대체 애매모호하며 뜬구름 잡는 설명으로 지금의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을 부분이 있단 말인가?      


‘세계화’라는 것이 고유명사화되어 세계적인 이슈의 한가운데 등장했을 즈음 뉴욕 <타임즈>에서는 세계화를 하는 이들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바로 인(仁)의 개념에 해당하는 ‘己所不欲, 勿施於人’의 개념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세계화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글을 실은 일이 있었다. <타임즈>에서 굳이 중국어를 그것도 고문을 아는 사람이 세계화를 이룬 사람이라고 역설하려고 그런 글을 게재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논어>를 공부하고 실제적으로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인(仁)의 핵심 개념을 실천궁행 하는 사람이야말로 세계화라는 아주 어렵고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아마도 그 문장 자체가 어려운 중국어 정도일 거라고 파악하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사람과 그 문장이 <논어>에 나온다는 것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대략 파악한 사람과 그 행간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고 자신의 사람에 투영하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라는 작가의 의미를 이해한 사람이 초중고급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앞서 첫 장에서 왜 인(仁)을 설명하면서 예(禮)가 갑툭튀 하였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며 공자가 가진 인(仁)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 바 있다. 앞서의 설명보다 조금 내려오기는 했지만 염옹(冉雍)역시 그 어렵다는 성인 공자의 허여(인정)를 받은 몇 안 되는 제자 중 하나였다. 그렇게 공자는 보다 실제적인 생활에서 그 배움들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데 예의와 공경함을 말했고, 그것이 단순히 태도나 행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어 자신을 중심으로 내 주변의 사람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파급되는 것을 충분히 강조하여 설명하였다.     

요 며칠 전에 <그대가 조국>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누차 아침공부에서 시사논평을 곁들이며 내가 조국이나 그 가족이 벌인 일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밝힌 바 있다.      


한 시골 낙도 분교 교실에 자신이 조금 덩치가 크고 선생님이 반장을 시켜줬다는 이유로 그것을 권력이라고 휘두르며 다른 급우들에게 맛있는 과자나 엿을 받고 귀한 장난감을 받는 것으로 누군가는 자신이 보호해준다고 하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그런 것들을 내놓을 수 없는 친구들에게는 원리원칙대로 처리한다면서 혹독한 법과 원칙을 강요한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그런데 그 원칙이 하나가 아니라 왔다 갔다 하며 고무줄처럼 달라지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 반장을 따르고 믿을 급우들이 과연 있겠는가?     


당신에게 반드시 이 사회에서 바로잡아야 할 부조리, 즉 ‘법비들의 비리’가 있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가장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로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다 치자.      


이 장의 내용을 빌어 말하자면, 그것은 옳고 그름을 배운 자들에게 있어 잘못된 것이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 맞았고, 지금도 달성하지 못하여 나라를 썩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것을 바로잡겠다고 마음을 먹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는 의사를 만들고 변호사를 만들기 위해 적당히 부정을 저지르고 나서 자신들과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학교 동문이고 사회지도층이라는 소리를 듣는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나 판검사 혹은 의사들이 다들 그렇게 하는데 나만 잡아서 뭐라고 한다고 억울하다거나 나를 잡았던 그 혹독함으로 쟤들도 잡아달라고 징징거린다면 어떨 것 같은가?     

나쁜 짓을 해서 치부하여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자들을 겁박하고 그들의 재산을 터는 활빈당은 그저 의적(義賊)이라는 이름으로 서민들의 찬사를 받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범죄자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자가 첫 장과 이 장을 통해 보여준 인(仁)의 개념에서 예(禮)와 공경(恭敬)이 등장한 것은 바로 그러한 ‘염치’에 대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치계에서 탄생한 듣기에도 어색한 신조어 ‘내로남불’은 공자가 말하는 가르침의 반대 사례로 아주 적확한 용어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나나 내 편이라고 하는 자들에게는 괜찮다고 하는 잣대를 내미는 순간,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도 그 가치가 땅에 떨어져 버려 3초 안에 주워 먹을 수도 없는 지경의 더러움이 덕지덕지 묻어버린다는 점을 왜 알면서도 지키지 못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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