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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11. 2022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 과연 상대의 잘못일까?

실제로 상대는 모두 알아듣고 당신을 비웃고 있어도?

哀公問於有若曰: “年饑, 用不足, 如之何?” 有若對曰: “盍徹乎?” 曰: “二, 吾猶不足, 如之何其徹也?” 對曰: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     
哀公이 有若에게 물었다. “年事(농사)가 흉년이 들어서 財用이 부족하니, 어찌해야 하는가?” 有若이 대답하였다. “어찌하여 徹法을 쓰지 않습니까?” 哀公이 말하였다. “10분의 2도 내 오히려 부족하니, 어떻게 徹法을 쓰겠는가.”有若이 대답하였다. “백성이 풍족하면 군주가 누구와 더불어 不足하시며, 백성이 풍족하지 못하다면 군주가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시겠습니까.”     

이 장은,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꽤 세월이 지나고 나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애공(哀公)과 대화는 인물인 유약(有若)이 나이가 어느 정도 지긋해진 상황에서 공자의 학통을 계승한 것을 인정받은 뒤에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공은 노쇠하였고 삼환씨들의 대부들은 참람한 행동을 자행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애공은 당연히 자신에게 세상을 바로 보는 지혜를 일깨워주던 공자의 존재를 그리워하였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공자의 학단을 꾸리고 있던 유약을 불러 자신의 답답함을 하소연하고 싶었던 상황이라고 추정된다.     

유약(有若)

그런데 애공(哀公)은 이미 공자가 살아 있을 때에도 비슷한 질문을 이미 하고 공자의 가르침을 들은 바가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의 ‘현군(賢君) 편’에 보면 비슷한 대화를 애공과 공자가 나누는 기록이 전한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정치의 급한 것은 백성들을 부하게 하고 오래 살게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어떻게 하느냐고 애공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백성에게 부역을 덜어주고 세금을 적게 하면 백성이 부하게 될 것이며, 예절과 교육을 독실하게 하고 죄와 질병을 멀리하면 백성이 오래 살게 될 것입니다.”

애공이 자신도 공자의 말대로 행해보고자 했지만 나라가 워낙 빈약하기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자 공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개제(愷悌;용모와 기상이 화락하고 단아함)한 군자는 백성들의 부모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말하자면 자식이 부하게 살면 부모들이 빈약한 자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굳이 이 장을 설명하기 전에 공자의 가르침을 먼저 정리하여 소개하는 것은, 앞 장을 공부할 때 설명했던 바와 같이,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배운 가르침을 다른 장소와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이에게 질문을 받거나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부분을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위의 공자의 가르침이 이른바 오리지널 스승 공자의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그 내용을 숙지한 상태에서 공자에게 배운 유약이 어느 정도 학문이 완성된 시기에 똑같은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왜 원문에서 스승과의 대화도 아닌데 유약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지에 대해서 주자는 애공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그 설명은 단순히 예법을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애공의 질문에 그저 궁금함이나 진정한 정사에 대한 도움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변명과 대의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비꼬는 해설의 형태이다.     


有若(유약)이라고 칭한 것은 군신 간의 말이다. ‘用(용)’은 국가의 財用(재용)을 이른다. 애공의 뜻은 賦稅(부세, 조세)를 더 올려 재용을 풍족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자 유약(有若)은 바로 ‘徹法’이라는 세법을 꺼낸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왜 그 얘기를 꺼낸 것인지에 대한 미묘한 행간의 의미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해주고 있다.     


‘徹(철)’은 통함이며 균등함이다. 주나라 제도는 한 가장이 토지 百畝(백무)를 받아서 〈鄕遂(향수)에서〉 도랑[溝(구)]을 함께 하고 〈都鄖(도운)에서〉 井(정)을 함께 한 사람과 함께 노동력을 통하여 합작해서 畝(무)를 계산하여 수입을 균등하게 하니, 대체로 백성들은 10분의 9할을 얻고, 公(공, 국가)은 그 1할을 취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철이라고 이른 것이다. 노나라는 선공 때로부터 畝(무)에 稅(세)를 내게 하여, 또 무마다 10분의 1할을 더 취하였으니, 그렇다면 10분의 2를 취함이 된다. 그러므로 有若(유약)이 단지 오로지 徹法(철법)을 행할 것을 청한 것이니, 公(공)이 財用(재용)을 절약하여 백성을 후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중국 고대의 세법(稅法)이기 때문에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으나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徹法(철법)’은 자신이 수확한 수확량의 10분의 1반을 세금으로 내는 것으로 애공이 하는 소리에 유약은 가차 없이 주나라에서 사용했던 세법이 왜 백성을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차치하고 바로 그 철법을 사용할 것을 강권한 셈이다.      


이에 대해, 애공은 그것만 받으면 자신이 거둘 세금이 부족하여 나라가 빈궁해진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는데 그 대답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二(이)’는 바로 이른바 10분의 2라는 것이다. 公(공)은 유약이 자기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말하여 부세를 더 올리려는 뜻을 보인 것이다.     

애공의 말과 태도를 보고 유약이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라 그랬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주자의 의도가 의미심장하다.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에 대한 근거는 바로 이어지는 유약(有若)의 대답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던 스승 공자의 오리지널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를 보았기 때문에 이 장에서의 유약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소화하고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스승 공자의 이야기와 비교하여 제자의 설명방식이 과연 어떤 차이를 갖는지 배우는 자들이 봤을 때 그 차이를 읽어낼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같다. 위정자를 중심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결국 백성이 중심이 되어 생각하고 실행하다 보면 모든 것이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다.     


유약(有若)의 설명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해설로 본래의 공자의 가르침이 보여주었던 의미와 본의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설명해준다.     


백성들이 부유하면 군주만이 홀로 가난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백성들이 가난하면 군주만이 홀로 부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약(有若)은 군주와 백성이 일체인 뜻을 깊이 말하여 공이 세금을 많이 거두려는 것을 저지하였으니, 인민의 윗사람이 된 자가 마땅히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앞서 공부했던 문(文;형식)과 질(質;내용, 본질)로 비유하자면 공자와 애공과의 대화에서 공자가 본질에 대한 부분을 좀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설명해주었다면 이 장의 유약이 애공에게 해준 대답은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형식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한 문(文;형식)에 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의미를 모두 파악한 양 씨(楊時(양시))는 이 장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人政(인정)은 반드시 경계를 다스림으로부터 시작되니, 경계가 바루어진 뒤에 井地(정지)가 균등해지고 穀祿(곡록)이 공평해져서 軍國(군국)의 쓰임이 모두 이것을 헤아려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번 徹法(철법)을 시행하면 온갖 법도가 거행되니, 상하가 어찌 부족함을 걱정하겠는가. 10분의 2로도 오히려 부족한데 〈유약(有若)이〉 철법을 시행하라고 가르쳤으니, 의심컨대 우활한 듯하다. 그러나 10분의 1은 천하의 中正(중정)한 법이니, 이보다 많으면 桀王(걸왕)이요, 이보다 적으면 북쪽 오랑캐의 법이니, 고칠 수 없는 것이다. 후세에는 그 근본을 연구하지 않고 오직 지엽적인 것만을 도모하였다. 그러므로 세금을 거두는 것이 법칙(원칙)이 없고, 비용의 지출이 일정한 법이 없어서 상하가 곤궁하였으니, 또 ‘왜 철법을 쓰지 않습니까?’라는 말이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 어서 우활함이 되지 않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앞서 주자의 주석을 문답처럼 받아 해설하는 양 씨의 해설이 참으로 절묘하다. 양 씨는 앞서 주석에서 주자가 설명했던 애공의 의심에 일침을 가한다. 유약이 공자만은 못하였지만 그래도 애공이 의미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철법을 꺼낼 정도가 아니었는데 오히려 철법의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조차 정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애공이 우활(迂闊)했던 것을 지적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실생활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경험하곤 한다. 자신이 더 똑똑하고 상황을 제대로 판단했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해보면 자신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서 혼자서만의 오독(誤讀)으로 미소 짓는 경우를 말이다.     


그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는 이 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주 간단명료하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된 파악이 될 정도의 공부가 되지 않았다는 점과 상대의 태도와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계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있다 보면, 자기 전공 분야의 정점에 닿은 사람들과 늘 이야기가 하고 논문을 쓰고 세미나를 한다. 세세한 것을 설명해줘야 하는 학부 교양수업도 아니고 전문가들끼리 늘 얘기하는 경우에는 주석을 따로 달아야 하는 귀찮은 설명도 필요 없이 모두가 알아듣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고수들끼리나 하는 이야기이지 워낙 사이비들이 많아진 요즘에는 껍데기만 교수 입네 학자 입네 하는 자들이 늘어 아주 간단한 주석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엄한 소리를 하는 자들이 많다. 그렇다고 학자라고 세미나장에 앉아 있는데 그것도 못 알아듣느냐고 핀잔을 주거나 지적하기도 애매하다.      


당신은 지금 이 장을 해설을 통해 읽으며 지금 그 상황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 자신이 그런 뻘짓을 할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지만 이렇게 한 발자국만 물러나서 두 사람 간의 대화를 행간의 의미까지 모두 파악하고 나면 도대체 누가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 아주 명확하게 파악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위의 애공이 그러하고, 현실의 사이비 학자들이 그러하고, 정치를 한답시고 여의도 문법이니 정치인식 어법이니 하는 자들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상대방을 모두 파악하고 상황을 자신이 장악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여기저기 헛발질을 해대며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는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지?’와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등이다. 말을 말같이 하지 못하니까 상대방들이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혼자만의 망상으로 재해석을 하고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구니까 자신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착각하거나 오해를 사는 것이다.     


잘못된 지식을 주워듣고 그것이 자신만 알고 있는 대단한 지식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는 지식 자체에 대한 정보도 틀리기 때문에 더 말할 것도 없겠으나 그것이 자신만 알고 있거나 혹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그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확인하지 않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코웃음을 치며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어쩌면 이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자신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신들이 정말로 사회 지도층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이야기를 나누기 전부터 태도에서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목이 쉬도록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사거리에서 굽신거리다가 막상 당선되고 나면,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임명되고 나면 언제 국민들에게 머리를 굽혔느냐는 듯이 거들먹거리고 다닌다. 심지어, “내가 당신‘따위’와 겸상하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아니다.”라고 꼴값을 떤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런 작자들을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뽑아놓고 상전으로 모시는 자들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오직 나만의 착각이고 오만인가?

여자가, 그것도 대학 교수라고 하는 사람이 술이 만취가 되어 면허 취소 수준의 상태로 경찰에 적발되었는데도 당당히 정식 재판을 청구하여 자신의 돈과 권력으로 ‘선고유예’라는 초유의 면죄부를 받아낸 것에 대해, 검찰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상황에 따라 법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못 알아듣는 것이 듣는 사람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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