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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28. 2022

그녀, 우츄프라카치아 - 6

여름휴가 특집 중편소설 특별선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307



  “그래요. 독립. 이모랑 사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사람들한테 내가 있는 거 굳이 말하는 것도 쪽팔리잖아요. 내가 그렇게 이모한테 창피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왜 이제까지 길렀어요. 외국에 어디 입양이라도 시키면 좋잖아요. 차라리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힘들게 싸우면서 살 필요는 없지 않느냐구요.”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리고 학교에선 어떻게 굴었길래 집으로 전화가 다 오게 만드는 거니? 너 지금 니 나이에 새삼 때늦은 사춘기 타령이라도 하자는 거니? 그래? 뭘 하려고 돈이 필요한 건지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됐어요. 돈은 필요 없어요. 그리고 어디서 살든 어떻게 살든 내가 뭘 하는지 상관하지 말아요. 어차피 우리한테 서로 그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나, 그냥 화나서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내 말에 동의할 꺼잖아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냐? 어디 오늘 얘기 한번 해보자.”


  “말하고 말 것도 없어요. 난 이모란 사람이 나한테 엄마 시늉을 내면서 왜 이렇게 복잡한 관계를 억지로 만들어가면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그 젊은 놈팽이랑 결혼을 할 거면 그냥 해버리고 말 것이지, 굳이 이런 식으로 사람들 보기 쪽팔리게 이 모양으로 지내는지도 도통 이해가 안 가요. 난 모르겠다구요. 왜 이모가 이러는지….”


  “니가 그렇게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현준이는 내보내마. 하지만 그게 문제의 본질은 아니잖니? 그리고 이모가 너한테 뭔가 커다란 걸 기대고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이모가 글을 쓰는 게 너에게 부끄러울 일도 아니고 니가 학교에 가서 이모가 하는 일 때문에 창피하고 그런 일도 아닌데 왜 넌 그렇게 이것저것 다 마음에 안 들어하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까지 유난을 떨 필요는 없는 거 아니니?”


  “이모가 왜 날 끝까지 놔주지 않고 힘겹게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서로 힘겨운 짓이잖아요? 이모는 안 힘들어요, 이렇게 맨날 서로 실랑이하는 거? 나 안 보면 이모도 편하지 않겠어요? 이모도 더 늙기 전에 자기 생활을 찾아요. 솔직히 난 그런 생각해요. 이모가 결혼해서 다시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거냔 말이에요.”


  “그건 니가 아직 철 모르는 소리를 하는 것 같구나. 어떤 때 보면 넌 다 자란 어른 같다가도 어느 때 보면 한참 어린 어린아이 같은 시늉을 잘 내는구나. 어릴 때처럼…”


  “어릴 때 얘기는 하지 말아요. 또 옛날 얘기를 꺼내고 싶은가 본데, 내가 뭐 그때 그렇게 된 다음에 갑자기 변했다는 말 난 절대 동의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구요.”


  “그래, 알았다. 학교 가야 하니까 오늘은 이만하자. 그리고 집을 나간다 어쩐다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린 다신 입밖에도 꺼내지 마라. 이 집에서도 넌 충분히 혼자 지내는 아이처럼 굴고 있잖아. 그리고 외박을 한다거나 특별히 엇나가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네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절대 상관하지 않으마. 그리고 이건 네 생일 선물이다.”


  여자는 예쁘장한 종이로 포장된 상자를 소녀에게 내밀었다.


  “뭐예요. 내 생일 같은 거 이젠 까먹어버리라고 했잖아요. 선물 같은 거 챙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이딴 거 필요 없으니까 그 남자나 내보내요. 제발이니까!”


  “혜진아!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리고 그 사람이랑 이모랑은…”


  “됐어요. 내 생일이라고 이런 거 준비하는 것도 너무 역겨워요. 내가 이모한테 무슨 장신구나 이모가 받아오는 문학상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난 그저 이모가 그 너절부레한 껍데기를 벗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이모 삶이니까 이모가 알아서 하도록 해요. 난 내 인생을 사는 거니까요.”   


  “아침은 꼭 먹고 다니도록 해라. 그리고 이거 가지고 나가.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왜 생일날만 되면 니가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그만해요. 학교 갈 거예요. 이건 받아둘게요. 그럼 된 거죠?”


  끔찍이 싫다고는 말했지만 마지못해 소녀는 여자가 내미는 그 상자를 받아서 나왔다. 학교를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소녀는 상자를 뜯어보았다.


  아주 작고 예쁜 귀걸이였다. 버스 차창으로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언젠가 잃었다고 여겼던 그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직 소녀의 귀는 뚫어져 있지 않았다.     


                          7


  시간은 별로 중요한 의미가 되지 못한다. 늘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사람들이 만남을 소중하게 여긴다면서 그 만남을 통해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도 또한 시간이 죽음과 그리 밀접한 연관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여자는 여기까지 쓰고서는 원고지에 쓰던 펜을 손에서 빙글거리며 돌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만년필로 글을 쓴 지도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늘 누런 빛이 감도는 흰색 원고지에 푸른색의 병 잉크를 앞에 두고 이 만년필을 사용한 것도 근 10년이 넘은 일이다. 커피를 다시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커피를 다시 내리려면 시간이 조금은 걸릴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될 수 있는 대로 담배를 끊는 방향으로 몰고 가겠다고 스스로 했던 약속이 생각나 들고 있던 담배를 다시 구겨 버린다. 그저 녹차나 마실까 하고 다시 주방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그것마저도 그만둔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물끄러미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는데 생소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그마하긴 했지만 폭죽 소리와 함께 터지는 불꽃들이 눈 안 가득 차창 채운다. 멀리이긴 하지만 한강 쪽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쏘아 올린 불꽃은 아래서 보는 것이 아름다울까? 위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름다울까? 아니면 멀리서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아름다울까? 바로 아래서 불꽃을 쏘아 올린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쏘아 올린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위에서 보는 건 아름다울까? 불꽃을 쏜 것을 위에서 본다는 것은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나 있을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불꽃은 위에서 보는 것이 가장 익숙하지 않을까? 꽃은 늘 내려다보기 나름이니까. 아니면 불꽃을 멀리서 보는 이들은 소리도 안 들리는 그 멀리서 보는 불꽃이 아름다울까?

  그 전체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전부가 아닌걸. 그들은 결코 불꽃놀이를 하면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생동감이나 그 커다란 폭발음에서 느껴지는 혼란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화약냄새가 매캐하게 섞여 나오는 현장의 화려함이 그저 시끄럽고 안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다시 펜이 멈췄다. 언젠가 보았던 ‘러브레터’라는 일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첫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건 자신의 글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뭔가를 생각해내는 것보다는 손으로 뭔가 쓰거나 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생각되자 피식 웃음이 흘렀다. 혜진이가 외박을 하던 날, 친구들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 몰래 들어가 보았던 혜진의 책상에서 보았던 노트가 생각났다. 혜진도 뭔가 써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벌써 혜진이도 열아홉이구나.


  그녀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바쁜 삶 속에서 혜진이라는 흔적 한 가지만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자신을 옥죄이기보다는 자신의 사람의 목적이었던 것이 어느 사이엔가 희석되어 버렸고 자신이 왜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고 헐떡였는지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다. 그럴 정도로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이 남겨준 그 또 다른 작은 자신이 그렇게 성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작업실을 빼놓고는 모두 어둠이었다. 이제까지 터지던 폭죽도 소리를 멎었다.


  전화기가 눈에 띄었다. 이 집에서 전화를 쓰는 일은 아주 드물다. 물론 전화가 아주 자주 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녀가 직접 전화를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줌마가 받거나 앤써링 머신이 받거나 낮시간엔 현준이 대신 받아 처리하는 일이 많았다. 그 전화가 바로 그녀의 눈앞 어둠에 놓여 있었다.


  이럴 땐 누군가에게라도 전화가 왔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금세 그것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튕겨내 버렸다. 장식장에 수많은 양주 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상시 즐겨 마시던 헤네시 꼬냑이 눈에 들어왔다.


  한 잔쯤은 나쁘지 않겠지.


  고풍스러운 18세기 양식을 본뜬 전화기는 영국에 여행 갔을 때 소더비에서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해서 한국의 전화에 직접 쓰기 위해 속 안의 구조까지 바꾼 자신의 물건이랄 수 있는 하나였다. 술잔을 기울이며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


  “언니야? 나야. 응? 아니.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건 아니구, 언니두 잘 있지? 요 며칠 전에 우리 혜진이 생일이었어. 벌써 열아홉이다? 세월 참 빠르지? 언니. 나 요즘 조금 힘들어. 작업은 아니구. 작업은 오히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잖아. 난 왜 늘 뭔가 적는 시간엔 편안해하잖아. 언니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나두 이제 벌써 마흔을 넘겼잖아. 언니가 생각하는 행복은 뭐야? 아니, 그렇게 물으면 안 되겠다. 언니 행복해?”


  여자가 마신 헤네시는 어느새 두 잔째로 접어들었다.


  “혜진이가 내 맘을 잘 몰라주네. 그래. 언니 말마따나 내가 어릴 때 엄마 속을 그렇게도 썩이더니 결국 내가 붕어빵 같은 거 낳아서 나랑 똑같은 사람이 또 하나 생기면 어떻게 될지 굉장히 궁금했었거든? 언니는 혜진이 보고 싶지 않아? 혜진이 정말 많이 컸어. 혜진이도 나 몰래 글을 쓰고 하나 봐. 나한테? 나한테는 말하지 않지. 그런데 왜 그걸 그렇게 싫어했었는지… 나? 나두 아직까지 글을 쓰는 것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병적으로 써대는 거지. 그런데도 내가 쓴 걸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이상하지? 언니도 내가 쓴 글을 읽은 건, 어릴 적 동화 이후로는 한 번도 없잖아. 그래도 내가 쓴 글을 처음 읽어주던 건 늘 언니였는데, 언니가 그랬잖아 나이에 맞지 않게 굉장히 성숙된 글을 써서 참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고 말이야. 언니가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혜진이랑 있을 때면 문득문득 들곤 해. 이상하지? 언니랑도 참 많이 닮아 있어, 혜진이는. 누굴 닮아서 저 꼴인가? 싶다가도 내 모습도 아니고 언니의 모습도 아닌데싶다가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짓을 할까? 어디서 저런 구석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언니 기억나? 혜진이가 말 배우기 시작했을 때 엄마라는 말 대신에 이모라는 말 먼저 하기 시작한 거 말이야.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는데 난 뭔가 그렇게 신기했는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말을 가르친 꼴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팠거든. 다른 얘들은 다들 엄마라는 말 먼저 배우는데 우리 혜진이는 이모라는 말을 먼저 배우고 말이야. 다섯 살 때 그 일만 해도 그렇지. 아직도 혜진이는 그때의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해. 자기 생일날만 되면 밖으로 나가서 나랑은 점점 말도 안 하고 지 하고 싶은 대로 막 나가려는 거지. 우리도 사춘기 때 그랬었나? 내가 엄마한테 말도 하지 않고 서울로 올라와서 대학부터는 내가 알아서 다니겠다고 글을 쓰겠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쓴 걸 말하는 거야? 언니두 참 기억력도 좋네, 이제 오십이 다된 사람이… 아니야. 내가 왜 울어? 안 울어. 나 여간해선 눈물 같은 거 안 흘리는 독종으로 유명했잖아. 언니랑 머리끄덩이 잡아가며 뒤엉켜 굴러서 피가 나와도 절대 언니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독종이었잖아. 정말 독한 년이라고 엄마가 내 손에 있던 언니 머리칼을 떼어내는데도 나는 그때까지도 분이 삭히지가 않아서 혼자서 씩씩대면서 내가 손해 봤다고 그제사 울었었잖아. 그 생각 아직도 생각하면 지울 수가 없어. 언니는 기억이 하나도 않나? 어쩜! 사람 일이라는 게 그런 가봐. 자기가 잘못한 거 있거나 자기 가슴에 맺힌 거 있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잖아, 왜. 우리도 그런 건가 보지 뭐. 언니 너무 늦었는데 내가 너무 길게 언니 잡았나 보다. 자. 그렇지 않아도 언니는 잠도 많았잖아. 나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그럼. 괜찮으니까 자. 혜진이 일도 그렇게 내가 엄살 피웠던 것만큼은 아냐. 나중에 언니한테도 한번 데리고 갈게, 그럼 끊자.”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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