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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09. 2022

당신은 친구라 부를만한 이가 있는가?

요즘 시대에 친구란 단어가 갖는 의미에 대하여

曾子曰: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曾子가 말씀하였다. “君子는 文(學問)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仁을 돕는다.”     

이 장은 드디어 ‘안연(顏淵) 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르침이다. 공자의 가르침이 아니어서 아쉬울 수는 있으나 증자의 이 가르침은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내용이기도 하기에 배우는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친구를 어떻게 사귀냐고 묻고 답했던 앞선 가르침에 이어 과연 군자가 보여주는 진정한 사귐이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以文會友(이문회우)라 함은, 학문을 통하여 벗을 모은다는 뜻으로, 세속의 이익이나 재화를 바탕으로 한 이해관계가 아닌 학문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진정한 벗을 만들고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용어이다.     


둘째, 以友輔仁(이우보인)이라 함은, 벗을 통하여 자신의 부족한 어짊을 보탠다는 뜻으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영위하는 바탕에는 타인과의 건설적인 관계 속에서 긍정적인 자신의 삶이 축적되는 것이고, 훌륭한 인격과 덕성 역시 올바른 벗과 같이 타인과의 바른 관계로부터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학문을 講(강)하여 벗을 모으면 道(도)가 더욱 밝아지고, 善(선)을 취하여 仁(인)을 도우면 德(덕)이 날로 진전된다.     


증자는 <논어>에 총 15회에 등장한다. 실제로 15개의 장에 이름이 증자로 17회, 삼(參)이라는 이름으로 2회 언급된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불리는 열명 안에도 들지 못하고 비교적 나이도 어린 증삼(曾參)이 증자로 나온 것은 앞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논어>의 편찬자들이 증자 계열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론적 근거에 의거하여 분석하게 되면 증자가 등장하는 장들이 다소 맥락의 흐름에 맞지 않는 다소 생뚱맞은(?) 점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이 장에서 말하는 군자(君子)란 주체적 인격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또 여기서 말하는 문(文)이란 시서(詩書) 예악(禮樂)을 가리키는데 학문과 문예, 지식과 교양을 포괄한다. 다산(茶山;정약용)은 문(文)이 아니면 벗을 모을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문(文)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행간의 의미를 새겼다.      


종합해서 살펴보면 벗을 사귐에 학문으로 친구를 모은다는 의미는 학문이 도구로서 친구를 모은다는 방법론으로 제시된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에 군자라는 말이 나온 것은 그 이유에 대해서 합리적인 추론을 하기 위한 방편이다. 즉, 벗을 모으는 방법이나 도구가 아니라 도를 깨우치기 위해 배우는 자들이 그 목적하는 지향점을 함께 하기 때문이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함께 배우고 함께 익히며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그것을 위해 서로를 일깨우고 도와주며 함께 성장하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해주는 것이 서로 간의 친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유추하고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벗으로써 仁을 돕는다.’


이 묘한 의미는 앞에서 주자가 주석을 통해 풀어서 해설한 내용과 같이 ‘善(선)을 취하여 仁(인)을 도우면 德(덕)이 날로 진전된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책선(責善)을 하고 그것으로 의를 상하거나 자신을 욕되이게 만드는 귀결로 맺어지지 않게 되면 서로가 군자로서의 인(仁)을 완성하는 존재로서 각인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윤리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오륜(五倫)은,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夫婦), 형제(兄弟), 붕우(朋友)의 다섯 조목으로 구분된다. 고려말의 이곡(李穀)은 오륜의 차서(次序;순서)와 상관없이 붕우가 다른 네 관계에 비해 결코 뒤처지는 듯 보이나 실제 쓰임에서는 다른 넷에 앞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우정이라는 개념 또한 중국에서는 명나라 말기에, 조선에서는 19세기에 시대적인 사상으로까지 확대되어 식자(識者)들에게 유행을 일으킨 바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모두 담아낼 수 없으나 조선 실학을 대표하는 연암이 친구 이덕무를 먼저 보낸 아픔에 대해 위로의 편지를 쓴 내용을 통해 우리 옛사람들은 이 장의 가르침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아, 애통한 일일세! 내 일찍이 친구를 잃은 슬픔이 아내 잃은 슬픔보다 훨씬 크다고 말한 적이 있었네. 아내를 잃은 자는 두 번, 세 번 재혼할 수도 있고 첩을 얻는다 해도 안 될 것이 없네. 마치 솔기가 터지고 옷이 찢어지면 깁거나 꿰매면 되고, 기물이 깨지거나 이지러지면 새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과 같은 걸 테지. 그러나 어찌 친구와 같겠나.”     


연암 박지원이, 편지에서 언급하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는 바로 1793년 1월에 세상을 뜬 이덕무(1741-1793)를 의미하는 것으로 편지는 그 해 6월 하순쯤에 보낸 것으로 수신인은 이서구 또는 유득공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이 편지에 연암의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언급되고 있으나, 유독 두 사람만 빠져 있기 때문이다.      


“듣자니 재선(在先)은 벼슬에서 물러났다던데, 그가 돌아온 후 몇 번이나 만났는가? 재선은 이미 조강지처를 잃은 데다가, 설상가상 이덕무 같은 좋은 친구마저 잃었네. 막막한 이 세상에 외로운 신세가 되었으니, 그 모습은 보지 않아도 알 만하오. 정말 천지간 궁한 사람이라 하겠네그려.”      


여기서 언급되는 ‘재선’은 바로 박제가를 말한다. 일찍부터 학문이 뛰어나 연암이 아꼈던 문하생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그였다. 1792년(정조 16) 8월에 부여 현감으로 임명됐으나, 이듬해 5월 암행어사가 ‘가뭄에 따른 행정처리를 잘못했다’고 올린 잘못된 보고서로 인해 파면됐다. 연암이 ‘벼슬에서 물러났다던데’ 운운한 말은 이를 가리킨다. ‘조강지처(糟糠之妻)’란 술지게미나 쌀겨 같은 거친 음식을 함께 먹은 아내라는 뜻으로, 몹시 가난하고 천하던 시절 함께 고생한 아내를 말한다. 박제가는 부인과 1792년 9월에 사별했다. ‘천지간 궁한 사람’은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덕무의 초상

맹자는 홀아비, 과부, 늙어 자식 없는 사람, 고아, 이 넷을 천하의 궁한 백성이라고 했다. 박제가가 아내와 벗 이덕무를 연이어 잃어 가엾게 되었기에, 그런 위로의 말을 비유하여 전한 것이다. 박제가는 이덕무보다 9살이나 적었지만, 허물없이 어울렸다. ‘너무 마음에 들어 즐거움을 견디지 못할 만큼 서로 통했다’고 한다. 박제가는 한겨울 밤 해금 연주를 듣다가 눈길을 헤치고 그리운 벗 이덕무를 찾아갈 정도였다. 편지는 계속 이어진다. 연암은 더욱 절박하고 비장하게 말한다.     


“벗이 없다면, 행여 내게 눈이 있다 하나 대체 뉘와 함께 볼 것이며, 행여 내게 귀가 있다 하나 뉘와 함께 들을 것이며, 행여 내가 입이 있다 하나 뉘와 함께 맛볼 것이며, 행여 내게 코가 있나 하나 뉘와 함께 향기를 맡을 것이며, 행여 내게 마음이 있다 하나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와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부인은 잃어도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말은 쉽지만 부모라면 몰라도 그 자리에 당당히 친구를 언급하는 것이 당시의 우정론이 가진 가치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연암은 박제가를 위로하고 이끌어주었고, 박제가는 다시 10살짜리 추사 김정희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열 동량(棟梁)을 마련하게 된다.    

 

연암의 우정론은 단순히 수사적인 ‘우정 예찬’ 정도에 그치지 않는 것임을 윗글에서도 충분히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친구와 우정이 삼강오륜 중 ‘붕우’가 나머지 ‘사륜’의 순서를 바꿀 정도라는 점은 앞서 고려말 이곡(李穀)만의 의견이 아니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연암이 추구하는 우정은 지금의 허탈한 자들이 말하는 세속적인 술이나 함께 마실 친구 정도의 차원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나를 보완해주고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     


연암의 우정론은 <회성원집(繪聲園集)> 발문에서 한결 깊고 넓어진다. 시서화에 뛰어났던 청나라 문인 곽집환의 문집에 써준 서문이 바로 그것이다. 홍대용이 1776년 북경에서 그의 문집을 가지고 왔는데, 연암이 읽고 서문을 지어줬다. 미지의 중국인에게 건넨 첫 번째 인사가 ‘벗이란 어떤 존재인가’였다.     


“벗을 일러 ‘제2의 나’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한자를 만든 사람이 ‘날개 우(羽)’ 자를 빌려 ‘벗 붕(朋)’ 자를 만들었고, ‘손 수(手)’ 자와 ‘또 우(又)’ 자를 합쳐서 ‘벗 우(友)’ 자를 만들었다. 친구란 마치 새에게 두 날개가, 사람에겐 두 손이 있는 것과 같다. 한쪽 날개를 잃은 새는 날 수 없고, 한쪽 손을 잃은 사람은 제대로 운신할 수 없다.”     


벗 우(友) 자는 손 모양(又)이 두 개 포개져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 연암은 “친구가 없다면, 장차 누가 자신을 위해 ‘제2의 나’가 되며, 누가 자기를 위해 주선인이 되어 나선단 말인가?”라고 묻는다. “벗은 함께 꿈꿀 수 있고, 함께 날 수 있으며, 함께 들어주고, 함께 잡아준다. 좋은 벗이 없어 한쪽 날개를 잃고, 한쪽 손을 못 쓰는 삶이란 얼마나 쓸쓸한 것인가.” 연암에 앞서 세상을 뜬 이덕무는 일찍이 단 하나의 친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묘사한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이렇게 하리라.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을 물들이리라. 열흘에 한 색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되니라.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단련한 금침으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그러고 나서 귀한 비단으로 표구하고 오래된 옥으로 축(軸)을 달겠다. 그리곤 우뚝이 높은 산, 아득히 흘러가는 강물 사이에 친구의 얼굴 그림을 펼쳐놓으리라. 서로 마주 보며 말없이 있다가, 저물녘 해가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어릴 적 불알친구라는 이름으로 소꿉친구들을 격의 없이 대하고 그때부터 만난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 시절의 사귐이 어떤 대가를 위함이거나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사특함이 끼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커가며 그런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그 친구의 보증을 섰다가 배신을 당하고 하는 것 또한 우리 주변에서는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굳이 오늘 ‘안연(顏淵) 편’의 마지막 장을 설명하면서 조선시대 북학파의 연암을 필두로 한 인물들의 글 속에서 우정론을 언급한 것은, 작금의 우정과 그 시대의 우정이 결코 같지 않음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학도들이 왜 그리 되었는가에 대해 한번쯤 되새겨볼 시간을 가지라고 일러주기 위함이다.     


단순히 옛날이기 때문에 더 운치가 있었고, 현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격이 무너지고 사람됨이 중요한 가치가 되지 않는다는 이분법은 잘못된 인식일 것이다. 시대가 흐르고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할수록 인간미가 없어지고 비인간화가 가속화된다는 것 역시 편견이다. 그것은 과학이 발달하기 때문도 아니고 시대가 흘러 사람들이 더 교활해지거나 더 이익을 밝히게 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더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 그 존재가치를 생각하지 않으려 들고 그저 가시적인 것들에만 천착해가면서 본연의 올바름을 점차 잃어가기 때문일 뿐이다.      

돈이 많이 있으면 내 친구고, 돈이 없고 보잘것없어지면 친구는 고사하고 지나가는 걸인만도 못한 취급을 하는 것이 지금의 세태라면, 그 세태가 잘못된 것이지 당연한 현실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런 인식이 당연한 것이 되면서 말도 못 하는 아기 때부터 부모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행동을 보고 듣고 익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맞다. 내가 뜬금없이 내연을 확장하여 이야기를 삼천포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 장의 가르침은 아주 단순하고 군자의 우정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제대로 된 가치관을 표현한 듯 하지만, 결국 왜 공부하는지 왜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과 똑같은 궤를 하고 있으며 아울러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어떤 방향을 향해 공부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지시하고 있는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정신없는 여름날에 폭우처럼 안 좋은 일들이 연이어 생각을 상념으로 가득 차게 만들고 몸을 고되게 만들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어느 하나 없는 것과 같은 시름으로 밀어 넣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논어> 20편 중에서 12편까지 기어코 끝을 냈습니다.


연재하던 다른 시리즈들을 접고 글을 쓰는 것으로 벗을 모으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듯하여 마음이 더 무겁고 답답하긴 하지만, 13편을 향해 다시 나아갑니다.


그렇게 묵묵히 앞을 보고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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