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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12. 2022

공정과 상식은 말로 꾸며댄다고 명분이 되는 게 아니다.

어느 한 가지 무너지게 되면 그 사회는 곧 무너지고 만다.

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野哉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     
子路가 말하였다. “衛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政事를 하려고 하시니, 선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반드시 명칭을 바로잡겠다.” 子路가 말하였다. “이러하십니다. 선생님의 迂闊(우활)하심이여! 어떻게 바로잡으시겠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비속하구나, 由여! 君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는 제쳐놓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명칭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순하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 禮樂이 일어나지 못하면 刑罰이 알맞지 못하고, 刑罰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君子가 이름(명칭)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고, 말을 하면 반드시 행할 수 있는 것이니, 君子는 그 말에 있어 구차히 함이 없을 뿐이다.”     

이 장은 ‘자로(子路) 편’의 이름값을 하듯, 스승이자 성인(聖人)인 공자에게 당당하게, ‘세상 물정에 어두우시군요.’라며 핀잔을 주는 자로(子路)의 캐릭터가 마치 시트콤처럼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이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공자의 나이 64세이던 기원전 488년에 공자가 마지막으로 위(衛) 나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학자들이 고증하였다.     


스승에게 당당하게 핀잔을 주는 당돌한 제자에게 일침을 가하며 스승이 주려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하나씩 차분히 살펴보기로 하자.     


실제로 위나라에서 스승을 등용하여 다스리게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냐는 자로의 질문에 스승은 정명(正名)을 언급한다. 이 내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당시 위나라의 정세를 설명해준다.     


‘위나라 군주’는 出公 輒(출공 첩)을 이른다. 이때는 노나라 애공 10년이니, 공자가 초나라에서 위나라로 돌아오셨다. 이때 出公(출공, 衛輒(위첩))은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자기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삼아 명칭과 실제가 문란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명칭을 바로잡는 것을 우선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앞서 공부했던 ‘술이(述而) 편’의 14장과 ‘옹야(雍也) 편’의 26장의 ‘오주(吳註)’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어 재차 설명을 생략하기로 한다.    

  

한편, 정명(正名)은 내가 앞서 몇 차례나 설명했던 바로 그 ‘정명(正名) 론’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명칭을 바로잡는다’라고 해석을 한 이유는, 기원전 493년 위령공이 죽고 나서 벌어진 괴외(蒯聵)와 그의 아버지, 出公(출공, 衛輒(위첩))사이에 싸움을 염두에 두고 나온 이야기인데, 그 행간에는 아들인 첩이 당연히 그 아버지 괴외에게 우선 임금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정명(正名)이라는 공자의 견해가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라는 의미를 두고, 이 부분에 대해 사 씨(謝良佐(사양좌))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명칭을 바로잡는 것은 비록 위나라 군주 때문에 하신 말씀이나 政事(정사)를 하는 도리는 모두 당연히 이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스승의 설명에 대해 스승에게 감히(?) 어리석다는 표현을 쓰며 도대체 어떻게 바로잡겠느냐고 자로(子路)가 비아냥거리듯 묻는다. 왜 자로(子路)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迂(우)’는 事情(사정)과 거리가 멂을 이르니, 오늘날의 급선무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할 때 그것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의견을 내보인 것이다. 그러자 자로(子路)의 눈높이에 맞춰 공자 역시 돌직구를 날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드는 경박함에 ‘비속하다’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일침을 놓는다. 그 의미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野(야)’는 비속함을 이르니, 의심스러운 것을 제쳐 놓지〔闕疑(궐의)〕 못하고 경솔하게 함부로 대답함을 책망하신 것이다.     


이어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이 이 장의 핵심이자, 순차적인 다스림의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한 내용, 되시겠다.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먼저 앞부분을 살펴보자.     


명칭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순하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정명(正名)’의 명(名)은 명분(名分)으로도 쉽게 바꾸어 설명한다. 이 설명은 대의명분이라고 내세우는 것이라면 어물어물 대강 넘어갈 수 있는 것 따위여서는 안되고, 누가 보고 듣더라도 떳떳하고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고 또 실행할 수 있는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설명이다.     


그래서 양 씨(楊時(양시))는 이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배우는 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명칭이 실제에 합당하지 않으면 말이 〈이치에〉 순하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순하지 못하면 실제(실상)를 살필 수 없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대의명분이 그러한 실체를 갖지 못하게 되면 말부터 뒤엉키게 되어 어물어물거리게 될 것이고 실제로 그 사안의 실체나 말하고자 하는 진리도 내세울 수 없게 되어 일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 앞부분에 이어 그것이 왜 다스림을 다 망치고 나라를 망치며 사회를 망치게 되는지에 대해 자로(子路)의 눈높이에 맞춰 공자는 연결고리를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이어 확장 범위를 다음과 같이 넓혀 설명해준다.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 禮樂이 일어나지 못하면 刑罰이 알맞지 못하고, 刑罰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왜 갑자기 일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예악(禮樂)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 형벌(刑罰)을 알맞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의아하게 여길 만한 이들을 위해 범 씨(范祖禹(범조우))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이 그 순서를 얻음을 禮(예)라 이르고, 사물이 그 和(화)함을 얻음을 樂(악)이라 이른다.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순서가 없고 和(화)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禮樂(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政事(정사)를 시행함에 모두 道(도)를 잃는다. 그러므로 형벌이 알맞지 못하는 것이다.”     


예악(禮樂)을 애매하게 알고 있어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한 명확한 뜻을 먼저 확실하게 알려준다. ‘일이 그 순서를 얻음을 禮(예)라 이르고, 사물이 그 和(화)함을 얻음을 樂(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가 새롭게 주창한 것이 아니다. 본래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개념을 환기시켜준 것뿐이다. 공자가 자로에게 이 가르침을 주면서 굳이 연쇄법을 통해 듣는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순서를 생각하게 만든 것도 큰 그림의 일환이다. 


마지막의 순서를 살짝 바꾸어 정사가 예악을 통한 순서에 맞춰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 기본이 되는 도(道)를 잃게 되고 결국 그 결과로 표출되는 형벌이 알맞게 행해질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공자는 이 가르침의 결론을 명분이라는 것이 결국 말로만 대강 얼버무려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의명분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어야만 말할 수 있는 것이 되고, 그렇게 말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것을 설명하거나 꾸미려고 하는 구차함이 생길 이유도 상황도 필요 없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 결론에 대해 정자(明道(명도))는 다음과 같은 간략한 설명으로 자신의 이해를 갈음한다.     


“명칭과 실제는 서로 필요로 하니, 한 가지 일이 구차하면 그 나머지도 모두 구차하게 된다.”     


결국 순서도 순서지만 그 어느 하나라도 도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다면 결국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에 다름 아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형이상학적인 정리에 대해 구체적인 당시 시대적 상황을 두고 이야기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며 호씨(胡寅(호인))가 그 부분을 상세하게 다시 설명해준다. 

    

“위나라 세자 蒯聵(괴외)가 그의 모친인 南子(남자)의 음란함을 부끄러워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죽이지 못하고 외국으로 도망하자, 靈公(영공)은 둘째 아들인 공자 郢(영)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영이 사양하였다. 영공이 죽자, 夫人(부인, 南子(남자))이 영을 세웠으나 또다시 사양하니, 마침내 괴외의 아들인 輒(첩)을 세워 괴외를 막게 하였다. 괴외는 어머니를 살해하려 하여 부왕에게 죄를 얻었고, 첩은 나라를 차지하고서 아버지를 막았으니, 모두 아버지가 없는 자들이니, 이들이 나라를 소유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夫子(부자)께서 政事(정사)를 함에 명분을 바로잡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으니, 반드시 장차 이 일의 본말을 갖추어 天王(천왕, 天子(천자))에게 아뢰고 方伯(방백, 霸權國(패권국))에게 청해서 공자 郢(영)을 명하여 군주로 세웠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륜이 바루어지고 천리에 맞아 명칭이 바르고 말이 순해져서 일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夫子(부자)께서 상세하게 말씀해 주신 것이 이와 같았는데도 子路(자로)가 끝내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輒(첩)을 섬기고 떠나가지 않다가 마침내 그 난리에 죽었으니, 이는 한갓 그 사람의 녹봉을 먹었으면 그 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義(의)가 되는 것만 알고, 輒(첩)의 녹봉을 먹는 것이 義(의)가 아님은 알지 못한 것이다.”     


자로(子路)의 처연한 죽음에 대해서는 앞서 공부한 바 있는데, 이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자로(子路)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까지 더하여 이 장의 가르침이 얼마나 자로(子路)에게 중요하고 그의 인생을 바꿀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무게 있는 설명을 더하였다.    

 

시트콤처럼 시작했지만, 결국 스승의 진중하기 그지없는 설명은 결과적으로 자로(子路)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여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역사적 결과를 낳고 말았다.      

칠순을 앞두고 천하를 주유했지만 어디에서 쓰이지 못한 공자에게, 이제 위나라 군주가 자신을 중용하게 되면 무엇을 가장 우선시하겠는가라는 자로(子路)의 질문은 공자에게 굴욕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다.      


처음엔 세상을 경영하겠다고 했지만, 그 어느 위정자도 중용은 고사하고 등용해주지 않고, 막상 시작했던 벼슬길은 현실적으로 치이기만 했던 입장이라면 칠순을 앞둔 나이였지만 마지막 인생의 큰 기회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성인(聖人)이었다. 그의 사상과 마음가짐을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공자가 위나라에 머무는 사이 자로(子路)가 기대했던 것처럼 중용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 장의 선언적 가르침처럼 공자는 그대로 행했을 인물이다. 공자의 의견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이 대화가 있고 나서 몇 년 뒤 괴외(蒯聵)는 다시 왕위에 올라 ‘장공(莊公)’이라 불리며 정권을 잡는 듯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다시 아들 출공 첩에게서 쫓겨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검찰총장직을 내던지고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기어코 대통령까지 발탁된 인물이 지금 우리나라의 통수권자라고 한다. 그가 잘 안다며 함께 일했던 검사들을 중용하며 검사들의 전성시대를 만들며 어퍼컷을 흔들고 현재를 누리는 듯 보인다.     

어제 전 법무부 차관이라는 자가, 9년간의 송사 끝에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는 소식이 뉴스를 탔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그렇게 떠들어대던 공정과 상식이 도대체 어디에 존재한다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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