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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27. 2022

인(仁)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란다.

인(仁)은 사욕(私慾)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克伐怨欲不行焉, 可以爲仁矣.” 子曰: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原憲이 물었다.〉 “이기려 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탐욕함을 행하지 않으면 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렵다고 할 수는 있으나 仁인지는 내 알지 못하겠다.”     

이 장은 앞의 첫 장에 이어 원헌(原憲)이 공자에게 인(仁)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였는지에 대한 확인성 질문을 던지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 ‘인(仁)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과 ‘~한 것이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의 차이는 비슷한 것 같지만 격이 다르다. 앞의 질문이 다소 포괄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어떤 상황을 겪거나 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물어보는 것과 달리, 뒤의 질문은 자신이 그 개념에 대해서 그렇다고 이해하고 노력한 바, 즉, 자신이 갖추고 성과를 이룬 부분에 대한 것이 인(仁)의 경지에 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을 스승에게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역시나 공자의 대답이다. 결코 제자의 이해나 성과에 대해 쉽게 허여(인정)해주지 않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겠으나, 그렇다고 인(仁)의 개념에 부합하거나 그 경지에 들었다고 볼 수 없다는 단호한 선 긋기, 그 대답의 이면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를 읽어내는 것이 이 장을 이해하는 주요한 포인트라 하겠다.     


먼저 원헌(原憲)이 이해한 인(仁)의 개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면 될 지에 대해 주자의 주석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 또한 원헌이 자신의 능한 것을 가지고 질문한 것이다. ‘克(극)’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고, ‘伐(벌)’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고, ‘怨(원)’은 분하게 여기고 원망하는 것이고, ‘欲(욕)’은 탐욕하는 것이다.     

이기려 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탐욕함을 행하지 않았다는 설명 안에는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고 수행해왔다고 하는 원헌(原憲)의 자부심이 가득 담겨져 있다고 주자는 해설한다. 뒤에 이어지는 공자의 대답처럼 이 네 가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간의 방만한 본능을 모두 절제하고 통제하는 경지에 올랐는가 하는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원헌(原憲)이 스승에게 스스로 이룬 부분이 스승의 가르침에 부합했는가를 당당히 물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성취도는 물론 그의 성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에 그것이 정말로 이루기 어려운 수행이었음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그것이 과연 인(仁)의 경지에 든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겠냐는 단호한 선긋기 답변이 공자에게서 나온다. 아마도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스승의 허여함을 바랐던 원헌(原憲)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라 추정된다.     


왜 공자가 그렇게 답변했는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며 배우는 자들의 의구심을 풀어준다.     


이 네 가지가 (마음속에) 있는데도 능히 제재하여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어렵다고 이를 만하다. 仁(인)은 천리가 渾然(혼연, 완전)하여 저절로 네 가지의 累(루)가 없으니, 행해지지 않음을 굳이 말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 주석에서 주자가 말하고자 하는 공자의 가르침이 담아내고 있는 핵심은, 그것을 인위적으로 수양해서 통제하고 절제하는가, 이미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그렇게 하려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당연스레 행해지는가에 대한 차이임을 배우는 자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가 설명해주는 주석의 논리는 명확하나 배우는 자들이 선뜻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여겼던 탓인지 정자(伊川(이천))가 공자의 대답에 행간의 숨은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사람으로서 이기려 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탐욕하는 일이 없는 것은 오직 仁者(인자)만이 능할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이 마음속에 있는데도 그 情(정)을 제재하여 행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이 또한 능하기 어려우나 仁(인)이라고 이르는 것은 안 된다. 이는 성인이 열어 보여주기를 깊이 하신 것인데, 애석하다. 원헌이 다시 묻지 못함이여!”     


정자는 조금 더 나아가 공자가 명확하고 명징하게 설명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여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부연한다. 앞서 주자의 해설처럼 원헌(原憲)이 설명한 네 가지 인간의 본능적인 부족함에 대해 아예 그런 마음조차 없게 하는 것이 인(仁)이라 설명하고, 그 상태가 아직 마음속에 있으면서 그것을 억제하거나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은, 역시 일반인으로서는 이르기 어려운 단계이기는 하지만 인(仁)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인정할만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왜 정자는 원헌(原憲)이 다시 묻지 못한 것을 애석해한다는 표현까지 쓰며 그가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던 것일까?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 의문점을 포함하여 이 장에 대한 이해를 종합하여 주자는 누군지 확인되지 않은 배우는 이와의 문답 형식을 빌어 이 장의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네 가지가 행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진실로 仁(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어찌 이른바 克己(극기)하는 일과 仁(인)을 구하는 방법이란 것이 아니겠는가.’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겨 버려서 禮(예)로 돌아간다면 私慾(사욕)이 남아있지 않아서 천리의 본연을 얻게 될 것이나, 만일 단지 제재하여 행해지지 않게만 할 뿐이라면 이는 병의 뿌리를 뽑아 버리려는 뜻이 있지 아니하여 가슴속에 몰래 감추고 은밀히 숨어 있음을 용납하는 것이니, 어찌 극기(克己)와 求仁(구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배우는 자들이 이 두 가지 사이를 살펴본다면 仁(인)을 구하는 공부가 더욱 가깝고 절실하여 빠뜨림이 없게 될 것이다.”     


혹자의 질문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주자와 정자의 해설을 통해 일부 이해하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해도 그 네 가지를 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수양하는 노력이 어찌 인을 구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앞서 정자가 주석을 달면서 원헌(原憲)이 다시 묻지 않은 것을 마치 부족하다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는 변호처럼 들린다. 얼핏 들으면 그의 항변이 틀린 말도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그에 대해 주자는 바로 그의 말이 틀렸다고 하지 않고 다시 한번 공자의 설명을 풀어 부연하며 왜 그 미묘한 이해의 차이가 생기는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핵심적인 설명은 사욕을 ‘버리는’ 것과 ‘억누르는’ 것의 차이라는 말이다. 버리게 되면 자신의 안에 사욕(私慾) 자체가 남아 있지 않으니 없애고 말고 할 것이 없으나 제재하고 통제하여 행해지지 않게만 할 것이라면 언제고 그 병의 뿌리가 재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사욕을 없애는 것만이 진정한 극기(克己)이고 구인(求仁)이라는 최종 목표점을 명확하게 규정하여 그것을 통제하는 수양 행위가, 인(仁)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은 될 수 있을지언정 궁극적인 그 행위의 일환으로 볼 수는 없다는 엄중한 설명이다.     

완전히 그러한 사욕(私慾)을 뽑아 버리려는 뜻을 목표로 삼고 그리 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가슴속에 몰래 감춰져 은밀히 숨어 있음을 ‘용납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인(仁)에 이르기 위한 마음가짐과 그 과정이 얼마나 엄중하고 엄격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 장에 대한 논의는 자신은 물론이고 규장각 문신들에게까지 공부를 강조했던 정조마저도 공부하면서 규장각 문신들에게 위에서 살펴보았던 의문을 “克伐怨欲을 행하지 않음이 克己復禮만 못한 것이 아닌데, 공자가 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문제로 제시한 바 있다. 정조의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이라 꼽힌 내용은 앞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극기복례는 克伐怨欲이라 할 만한 것 자체를 아예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였다.      


한편, 양명학자 나홍선(羅洪先)도 克과 怨을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제2의의 공부이며, 마음의 본체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제1의의 공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장의 무게는 그래서 다른 인(仁)에 대한 개념을 논했던 다른 장들의 내용에 비해 훨씬 더 무거운 편이다. 만약 원헌(原憲)이 스스로 부족함에도 자신이 일정 정도 일가를 이뤘다고 자만한 자라면 꾸짖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나 원헌(原憲)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겸양스러우면서도 노력을 경주한 인물이었는가를 알고서 읽는다면 더더욱 공자의 인(仁)에 대한 인지와 설정이 얼마나 높고 어려운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원헌(原憲)은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벼슬자리에 오르지 않은 채 한평생을 초야에 묻혀 지냈던 인물로 유명하다.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그런 원헌(原憲)을 자공이 찾아간 일화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당시 원헌(原憲)은 띠로 만든 집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이틀 만에 나물밥 한 그릇씩 먹는 가난뱅이였지만, 선왕의 의를 이야기하는 데는 즐거움이 가득 찬 안색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자공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무 심하군. 자네는 어찌 이다지도 병들어 보이는가?”


그러자 원헌(原憲)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듣기에는 재물이 없는 자를 가난하다 하며, 도를 배워서 능히 행할 줄 모르는 자를 병들었다고 한다는데, 지금 나는 가난한 것이지 결코 병든 것이 아닙니다.”


자공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여 죽을 때까지 자기가 말을 지나치게 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스승인 공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엄격하게 지키며 살아갔던 원헌(原憲)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일화이자, 원헌이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장은 인(仁)을 표방하며, 진정으로 참된 공부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모델을 아주 잘 보여준다. 공자가 원헌(原憲)이 자부했던 경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해주면서도 그것이 인(仁)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던 것은 그저 더 높은 경지를 향하라는 의미에서 완곡하게 설명한 내용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였다.     

공자의 가르침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으로, 결코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일반인들이 결코 이를 수 없는 경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욕(私慾)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자 감정이며 그것을 자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원헌(原憲)의 생각은 공자의 이 한 마디 가르침으로 진정한 인(仁)의 개념을 깨닫게 한다.     


궁극적으로 공자가 배우고 익히고 그것을 실천하고 수행하여 이르게 되는 경지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노력이 계속되는 과정을 거치며 근본적인 바르지 못한 사욕(私慾)이 자연스럽게 없어져버리게 되면 언제고 다시 그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우려 자체가 멸절(滅絶)되어 버린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仁)의 경지가 그렇게 때때로 실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면 오르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평생을 수양하며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우리의 시대는, 원헌(原憲)의 경지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익혀 사욕(私慾) 자체를 없애버리는 목표를 높여야 하는 지경은 고사하고 원헌(原憲)이 노력하여 이르렀던 네 가지 본능을 절제하는 수준에조차 차마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행하는 이들로 가득 차 가고 있다는 역설적인 점이다.     


세계의 전문가들과 자웅을 겨루는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참석한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제대로 된 준비를 갖추지 못하여 형편없는 성적을 받는 것도 비난을 받겠지만, 정작 시합에 임하는 태도마저도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고 욕설이나 비속어를 카메라 앞에서 남발했다면, 우리 얼굴에 침 뱉기라며 그 진실을 감추려 드는 미디어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그 광경을 본 국민들이 그를 과연 성숙한 한 명의 인간으로 봐줄 것인가에 대한 부분 또한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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