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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07. 2022

국가기관 채용비리 내부고발자의 고백 – 3

국민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기관의 민낯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440


국민권익위원회에는 내부고발자들을 위한 ‘비실명제보’라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채용비리 같은 특성상 내부에 있어 정보를 직접 목격한 이들이 아니고서는 고발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서 직접 대놓고 신고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 제보자를 보호해준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파란당 출신 전 국회의원이 위원장직을 버티고 있다면서 빨간당에서 그렇게 내치려고 감사원까지 동원해서 개망신을 주었다고 하는 바로 그곳.


국민권익위원회였다.

홈페이지를 통해 비실명제보를 알아보니, 국민권익위에 등록되어 있는 변호사들을 통해 사건을 제보하여 변호사들이 직접 사건을 법적으로 처벌해야 할 사안인지 검토하고 난 후, 정말로 사건이 될만하다고 판단되면 제보자를 대신하여 국민권익위에 고발을 대행하는 구조였다.


홈페이지에 등재된 변호사들 중에서 채용비리를 충분히 다루어봤을 법한 연차가 15년 이상된 베테랑 변호사에게 정리된 문건과 증거를 보냈다. 말이 정리된 문건과 증거이지 본부 감찰실에 보냈던 자료를 그대로 공유한 것이 다였다.


그리고 이 건은 국민의 혈세를 무단으로 전횡한 채용비리를 포함한 국가기관의 비리라고 판단된다는 회신이 변호사들에게 도착하였고 그중에서 가장 먼저, 가장 자세히 내용을 피드백해준 변호사를 낙점하여 비실명제보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변호사의 고발장 초안을 보고 다시 검토한 후 드디어 국민권익위에 제출했다.


그렇게 제출된 고발장은 국민권익위의 심사기획과라는 곳에서 정말로 진행할 사안인지에 대해서 심사를 거치게 된다고 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비리들이 차고 흘러넘치는지 일이 너무 많다며 한 달여의 시간이 다시 소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변호사에게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도착했다.

“교수님. 저희들이 고발한 내용에 대해 심사 기획과의 조사관이 기각을 한다면서 이런 회신이 돌아왔습니다.”

1.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권익 보호, 신뢰받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 우리 위원회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부패방지 권익위법’)제4호의 부패행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 금지법’) 위반행위 신고 등 접수받아 처리하고 있으며, 각 해당 법률에 따르면 신고자는 ‘신고대상’과 ‘증거’를 함께 제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3. 귀하께서 제기하시는 사안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피신고자(국가기관 해당 업무 임직원)는 해당 지원사업을 하면서 교수의 선발에 있어 규정과 공고를 위반한 사실이 있다.
4. 귀하의 제기 사안은 기재된 내용만으로는 업무처리의 적정여부에 대해 감사 사항에 해당하여 본 건을 부패신고로 접수 처리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안내드리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 아울러 귀하의 제기 사안은 신고서의 해당 기관 감사부서의 답변을 받은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감사부서의 해당 답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실 사안이며, 해당 기관의 감사부서가 한 답변이 위법 부당하다면 그 상위 기관인 본부의 감사부서에 진정하실 사안입니다.
6. 한편, 해당 교수 선발 관련 금품수수 또는 부정청탁의 사실(예산 불법전용 및 비자금 조성 포함)이 있다면 우리 위원회에 증거를 첨부하여 부패행위 신고를 하실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제기된 신고는 법령에 따라 처리됨을 안내드립니다.
7. 이외에 궁금하신 사항은 국민권익위 담당 사무관에게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다시 한번 어이가 없었다.


빨간당으로 정권이 바뀌고 마치 잔다르크처럼 정의수호를 위해 버티고 있다는 파란당의 전 여자 국회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그곳은 위원장이 누구든 정권이 어떻든 어차피 그렇게 복지부동의 자세로 임해왔거나 누군가의 음모이론처럼 위원장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장 공무원들이 현재 정권의 입맛에 알아서 기어가며 진실을 덮어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함인지는 정확히 알 도리가 없었다.


문건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은, 그는 고발장의 내용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거나 반대로, 고발장의 내용을 명확하게 확인하고서 해당 고발 사안을 어떤 식으로든 뭉개기 위해 모른 척 덮으려 들었다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이미 본부 감사실에 해당 채용비리와 비위사실에 대해 감찰을 제보하였음에도 본부에 감찰을 요청하라는 둥, 사건의 진실을 덮으려 들었다는 해당 기관의 감사실에 요청하라는 말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궤변에 가까웠다.


요즘은 공기업은 물론이고 사기업까지 내부 감사실이라는 것을 두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을 버젓이 한다. 그런데, 국가기관에 대한 비위사실에 대해 감사원이나 국민권익위에 비실명제보의 형태로까지 고발하고 제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당 기관에서 먼저 목소리를 내도 내부 감사실이나 상위 본부 감사실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덮으려 들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믿고 제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공식문서의 첫 줄부터 그럴싸하게 공표하듯 써제껴 놓고서는 그 후안무치한 민낯으로 고발장에 적시되어 있는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티를 당당히 적을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그가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나보다 더욱 당혹스러워했던 것은 20년 차의 변호사였다.

하지만 그는 당혹스러움 뒤에 이미 이런 꼴을 처음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뭔가 청탁이 있거나 뒤에 누군가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상 보건대 아예 이 일을 담당하는 현장 조사관들의 복지부동이 몸에 배어 있어 그저 일하기 싫어서, 자기 업무를 더 보태지 않으려고 기각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의신청을 해보기로 하지요.”


변호사의 이의신청을 기다리기보다 성격이 급했던 나는 바로 기각을 결정한 조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목조목 논리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그에게 물었다.


“감사실이 없는 국가기관이나 공기업이 있나요? 그러면 그쪽에 먼저 문제 제기했음에도 그들이 뭉개버리면 감사원이나 국민권익위에는 뭐하려 고발을 하고 제보를 하나요?”


“네? 아니, 그게....”


어차피 그는 대개의 국민들이나 수많은 업무에 지친 변호사들이, 자신처럼 그저 그러려니 넘어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듯했다.


“고발장의 내용을 제대로 보기는 하신 건가요?”


궁지에 몰린 그가 발끈 후안무치하게도 본색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그러시면 우리 기관에도 감사실이 있으니까 감찰을 요구하시던가 하세요. 그럼 전화 끊습니다.”


사과하고 사안을 제대로 다시 검토하라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마도 내가 그 귀찮은 감사실에 자신의 복지부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귀찮음을 감수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바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민권익위 감사실에 해당 조사관에 대한 어이가 없는 복지부동과 잘못된 업무처리를 바로잡아달라고 민원을 제기하였다.


역시나 업무기간까지 연장해가면서 국민신문고 담당자는 더욱 경악할만한 답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과 같이 보내왔다.


1. 우리 위원회에 관심을 가져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며, 귀하께서 신청하신 국민신문고 민원의 처리 결과를 알려 드립니다.
2. 귀하의 민원은 '귀하께서 비실명대리 부패신고로 접수하신 사건(이하 "이 민원 사건")을 청렴 포털상 일반신고 종결처리한 것에 대해 이의 제기 및 진정'하시는 취지로 보입니다.
3. 귀하의 민원에 대해 감사담당관실에서 소관 부서 및 담당 조사관을 통해 확인한 사실을 답변해 드립니다.
  가. 이 민원 사건은 국가기관에서 해외에 교수를 파견하는 사업을 하면서 선발할 때에 규정과 공고를 위반한 사실이 있다는 내용으로 신고자가 청렴 포털로 비실명대리 부패 신고하였으며, 동 신고에 대한 처리에 대해 청렴 포털상 일반신고 종결 처리된 건입니다. 이 민원 신고가 일반신고 종결처리된 것이 위법·부당하다고 귀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나. 이 민원 사건의 내용만으로는 부패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고 입증을 위한 증거가 부족하여 신고사건으로 처리하기 어렵다는 소관부서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제58조(신고의 방법)에 따라 신고를 하려는 자는 본인의 인적사항과 신고 취지 및 이유를 기재한 기명의 문서로써 하여야 하며, 신고대상과 부패행위의 증거 등을 함께 제시하여야 합니다. 또한, 같은 법 제59조(신고내용의 확인 및 이첩 등) 제3항 제7호, 같은 법 시행령 제58조(조사기관에 이첩하지 않는 경우) 제1항 제2호에 의거 신고내용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부패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경우 위원회에 접수된 신고사항을 조사기관에 이첩하지 아니하고 종결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신고 사건에 대해 부패행위에 대한 설명 및 입증 증거의 부족으로 일반신고 종결 처리한 심사 기획과 조사관의 업무처리는 상기 법률에 의한 업무처리로 볼 수 있으며, 위법·부당한 업무처리로 판단하기엔 상당한 곤란함이 있음을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다. 아울러, 심사기획과에서는 부패행위의 증거가 있다면 증거를 첨부하여 신고해 줄 것을 안내하고 종결한 사항이오니 해당 부분 확인 바랍니다.
4. 위 답변 내용과 관련하여 기타 궁금하신 사항은 감사담당관실 담당 조사관에게 문의하시기 바라며, 귀하와 가정에 늘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5. 국민신문고에 신청하신 민원의 답변을 확인하신 후, 답변과 처리과정 등 민원처리결과에 대해 만족도 평가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귀하의 평가결과를 반영하여 더 나은 민원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국민권익위원회라는 곳이 어느 한 명의 복지부동하는 자에 의해 좀먹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감사실의 조사관이 여지없이 증명시켜주는 공식적인 증거물에 해당하는 문건이었다.

국민혈세로 월급받으며 복지부동하는 놈이 도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이미 채용비리에 해당하는 자의 실명과 대학명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였고, 규정까지 어겨가며 장기 혜택을 누리는 자에 대한 실제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구체적 증거가 없네 어쩌고 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것이라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심사 기획과의 조사관이나 감찰실의 조사관 역시 그들은 그저 일을 하기 싫어하는 티가 너무 많이 났다.


분명히 심사기획과에서 해당 사안을 기각시킨 사유는, 문제의 기관 내 감사실에 제보하였으니 중복해서 다루지 않는다는 감사원의 복지부동 답변과 닮아 있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해당 기관의 상위부서에 이미 감찰 제보를 했지만 몇 달째 뭉개고 있음을 적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기관 감찰실에 제보하라는 식의 어이없는 답변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복지부동을 감찰하여 바로잡아달라고 했더니, 국민권익위에 버젓이 마련되어 있는 비실명제보로 고발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실명으로 신고하지 않아 정식으로 처리해주지 않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각한 것은 정당하다는, 정말로 기가 찬 답변을 공문서로 보내온 것이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전화번호까지 남긴 조사관은 하루에 20통씩 전화를 걸어도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신공(神功)을 발휘했다.

그들의 뒤에 해당 국가기관의 본부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음모이론으로 소설까지 쓰지 않더라도 만약 현장의 담당 공무원이라는 작자들이 아예 일하기가 싫고 자신의 업무가 더 많아지는 것이 싫어 복지부동이 몸에 쩔어들어 그런 짓을 한다면 그것은 전자(前者)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에 온몸이 분노로 떨려왔다.


그렇게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에 공식적인 항의가 들어갔던 소식이 본부의 감사실에 전해졌는지 뜬금없이 넉 달이 되도록 연락도 없던 본부 감사실 여자 조사관에게서 이메일이 한통 도착해 있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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