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옆자리에서 시험을 치렀어야 했을 학생회장이자 그 반의 반장이었던 녀석은 마치 사건의 배후를 몰랐던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달려와 내가 커닝 따위를 할 아이가 아니라는 증언과 자기가 쫄았던 문제아가 얼마나 나쁜 녀석인가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얘기했다.
물론 그 양아치가 교련에게 얻어맞느라 고문실에 들어간 짧은 틈을 이용해서였다. 그 절묘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나에게는 교통사고 순간처럼 아주 천천히 그러나 매우 명료하게 보여졌다.
권력이라고 말해는 것, 양아치들에게 있어서는 ‘주먹’이었을 테고,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을 꼼짝 못 하게 하는 학생부 선생들의 ‘강압력’, 그러나 나는 증거물이 될 내 손에 쥐어있던 답안지만을 생각 중이었다.
내 시험지의 답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2학년 답안지를 억압에 못 이겨 전달해줬다는 사실이 내 결백의 증명에 한몫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문실 문이 쬐금 열리고 얻어터져 땀을 흘리는 양아치를 뒤로 하고 나온 교련의 생각은 나와는 달랐다. 이미 그의 손에는 그 답안지도 없었다.
- 답안지가 어디로 갔지?
그 갑갑한 기억의 더듬기를 깨어준 건 담임의 목소리였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의 멘트.
“어머니, 오시라고 전해드려라. 내일이다.”
-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부모님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는 나도 모르게 놀란 눈을 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교련이 그 사건으로 학교를 옮기고 나서 지금 놀란 내 표정을 보는 교련선생이 왔다. 나는 놀라 교련선생에게 눈인사를 하고선 다시 고개를 돌려 담임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 분명히 잘못 들은 건 아닌데… 다시 한번…
“저어···”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그가 대답대신 그저 한번 씨익 웃어 보였다. 하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분필가루를 먹기 시작한 그에게 있어서 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았으리라. 그에게 나 정도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팔을 비틀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 그는 베테랑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반항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머리가 빠르면 포기가 빠르다고 어떤 놈이 했던 말이 떠오르기도 한 탓이었다. 그저 열리던 입을 다시 꽉 무는 정도가 다였다.
“말씀드릴 게 있어 그래. 뭐···, 니가 잘못한 거 있어 오시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할 건 없구··, 이거 가져가서 보여드려라. 내일 이 시간쯤이면 좋겠다.”
이젠 나에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자신의 철제 책상을 소리 나게 열고는 봉투를 한 통을 삐죽하니 꺼내서는 쑥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는 손을 한번 공중으로 휘저어 그만 가보라는 표시를 했다. 예의 그 진도도 나가지 않는 낡은 타임스 지를 보는 척하며.
그렇게 교무실을 나오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제비였다. 1학년 당시의 담임. 그날과 똑같은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였다. 빼빼 마른 사람이 어깨를 쫙 벌리고, 벌리다 못해 꺾고서 걸어오는 꼴이라니. 그는 늘 그렇게 여유 있어 보였다, 바로 그때처럼.
결백이 입증될 거라고 떨고 있던 고등학교 1학년 짜리 꼬마가 교련에게 잡아먹혀버리기 직전, 나타난 응원군(그때는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이 그였다.
“으음…무슨 일이지? 동민아?”
그는 대학을 5수 끝에 들어간, 역시 지금의 담임과 같은 영어과목을 맡고 있었다. 내게 그는 그저 제도권에 의해 의지가 꺾인 한때 의욕적이었던 젊은 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학생들 간의 소문에 의하면, 그는 학교의 지시와 철저한 제도들에 반대하고 좀 더 자유스러운 교육을 만들자고 개혁의지를 불살랐다고 한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그가 문제선생으로 찍히고 이사장의 퇴직강요와 여러 선생들의 린치에 어느 사이엔가 그저 그저 모든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에 익숙해 있는 이가 되어 버렸다고 전한다.
그런 그가 내게 곱게 보였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그 일처리만큼은 원만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도 진실은 늘 밝혀지고, 옳은 것이 언젠가는 이긴다고 믿었던 열일곱이었으니까.
교련 앞에서 나를 한쪽 베란다로 데리고 나온 제비는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 특유의 표정으로 목소리를 짐짓 깔아가며 내게 말했다.
“만약 이번 일이 무슨 일인지 잘 몰랐다면 모르겠다만…. 넌 그 녀석들을 도운 거야. 그건 잘못된 것을 보고 따랐다는 걸 의미하지. 오기 전에 몇몇 녀석들에게 물어보니까 넌 아무것도 안 했고 나 역시 너의 평소 행동을 보고 그것이 녀석들의 강요일 거라는 생각은 한다. 음…, 하지만 말이다. 넌 그걸 거절했어야만 했다. 아니면 아예 외면을 하던가. 그런데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건 네게도 다소간의 책임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됐습니다. 선생님도 다 알고 계시네요. 그러면 제가 괜한 청백리(淸白吏) 흉내를 내는 바람에 반 아이들에게 못 당할 꼴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자알 아시겠군요?”
순간 그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울컥하는 반발심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지만 그 나이또래의 반항치고는 꽤나 세련되고 아이러니컬한 말투였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그가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에 대한 다음 수 읽기까지는 되어있지 못했다.
하긴 당시 나는 상당히 건방지긴 했던 것 같다.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바꿔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고, 직언이라고 판단이 된다면 상대가 윗사람이라고 해서 머뭇거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주로 선생)이 느끼기에 상당히 건방진 선까지도 넘나드는 꽤나 당돌한 녀석으로 유명했다. 교장실에서도 그런 비슷한 선례로 수석입학이라는 특권을 튀지 않게 해 달라며 반편성이 잘못되었다고 논박해서, 괘씸하고 당찬 녀석이라는 말을 들으며 입학한 것도 바로 그 해의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폭력에 못 이기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 사실이었고, 그 점을 지적당하자 움찔한 것이 당연했다. 물론, 학교생활이 고달파질 거라는 위협을 해대는 양아치들에게 내 방법을 고수할 수는 없었다는 자기 합리화의 변명거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허나 그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말이 통하지 않는 이에게 논박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 냉장고를 선물하는 꼴이거늘.
그렇게 그 사건은, 쉽게 해결되리라는 나의 기대를 뒤집고 주모자들과 함께 ‘절대절명’의 정학(물론 절대절명이란 표현은 나에게만 해당되었겠지만)이라는 코너에까지 내몰았다. 그때까지 나를 알던 누구라도 듣고서 말도 안 된다고 비웃을 일이 버젓이 아귀에 맞아 돌아가고 있었다.
‘정학’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선생들 사이에서 삐져나왔다는 얘기를 들은 나는 조금씩 이성을 잃어갔다. 교련의 정교한 수 읽기는 고문실에서 이루어졌다. 내 개인기록을 재빨리 뒤진 그의 정보력이나 증거를 없애고 나를 주범들과 동일선상의 처벌을 해야 한다고 몰아 부모님을 통해 두둑한 촌지라도 받아낼 수 있을 거라는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끝냈을 거라는 것을, 혼자 똑똑하다고 여기던 당시의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수였다.
도통 모를 일이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이 되기보다는 새로운 당혹감에 휩싸인 것은 내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던 일상이 엇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당장 나는 중간책이었다는 얘기만 하면 풀려나올 줄 알았던 나의 태도에는 분명히 교만함 아닌 교만함이 섞여 있던 터였다.
내가 커닝한 것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한 기대가 무너지고 처벌문제가 언급되자 나는 혼란스럽고 더 어리숙해져만 갔다. 더 이상 수 읽기나 심리분석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불안하면 더더욱 허우적거리기 마련 아니던가.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뭔가 잘못되어 가는 상황에 확실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 상황에서 그걸 거절할 수 있는 학생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그런 것들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 게 버티고 있는지 알기나 아시냔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교무실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울부짖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교련 앞에서 그런 행동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선생은 물론 같이 끌려왔던 양아치들까지, 흠칫 놀란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꽂혔다.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의 그 반발은, 내게 이미 정당성을 신권인 양 부여받은 것 같은 당당한 태도였다.
“너···,너···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뭐가 어떻게 됐어? 얼마나 얘들이 괴롭혔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엉? 버티다니···그건 또 무슨 소리야?”
확 터져버린 내 발작과 주위 선생들의 시선을 이리저리 살피며 교련이 당혹스레 말을 주워 담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놀란 내가 뻣뻣하게 굳어버린 거였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상황이 현실에서 펼쳐졌다.
“어…, 어머니?”
내가 가장 끔찍해하는 부모님의 교무실 호출. 그 불명예관이 내 머리에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눈앞이 아득했다. 어머니가 보였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외침에 들어서며 놀란 것은 오히려 어머니였을지도 몰랐다.
‘빌어먹을···, 제기랄!’
눈치 빠른 제비가 교련의 수 읽기에 동조하고 어머니에게 연락을 재빨리 취한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하고는 쏟아져 나올 뻔했다. 속이 뒤집혔지만 눈이 튀어나올 만큼 분통이 터졌지만 그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단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열일곱 살의 남자아이가 그 상황에서 냉정을 찾는다면 얼마나 냉정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 어머님이 보시기엔 평소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어찌하지도 못해 분해하는 내 표정이 더 불안함을 안겨드렸던 것 같았다.
어머니와 교련 그리고 재빨리 앞서 나타난 제비의 소개와 인사가 끝나자, 교련은 아까와는 판이하게 어머니를 향해 아주 역한 미소를 지으며 헤죽거렸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이번 중간고사 때에 나쁜 녀석들이 동민이를 중간 전달책으로 삼았나 본데, 그저 원칙상으로 조사를 좀 하는데··· 아이구. 날도 추운데 좀 앉으시죠.”
-더러운···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이런 식으로···
“놀라셨나 보군요. 동민이가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우리 선생님들이 잘 알고 있거든요. 이제 다 끝나서 데리고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그럼 선생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죄송했습니다. 어머니 가시죠.”
보다 못한 내가 교련의 말을 끊고 벌떡 일어섰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경직된 내 말에 놀란 어머니는 교련과 나를 바라보시다가는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약간은 씁쓸한 듯 눈을 흘기며 입맛을 다시는 교련을 뒤로하고 어머니를 끌다시피 하곤 황급히 그곳에서 벗어났다.
“얘, 동민아. 담임 선생님은···”
“됐어요. 그만 집에 가요. 오늘, 너무 지쳤어요. 가서 쉴래요.”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야.”
결국 어머니는 교련보다 조금 더 노련하게 머리를 굴린 담임을 만나고서야 나오셨다. 나는 다시 한번 담임을 만나기 전의 어머니에게 다짐에 또 다짐을 해댔다. 모종의 선물을 어머니가 그들에게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