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사건 이후 새로운 담임도 영어였고, 그 역시 잔머리는 빨랐다. 그들은 한 교무실에서 지냈다.
“그래, 담탱이는 왜 갑자기 불렀대냐?”
재석이 날 불러 세웠다. 그나마 밥을 같이, 점심시간에 먹는 녀석이었다.(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는 일은 그리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손에 든 봉투를 구기는 내게서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던지 녀석도 상황파악이 이미 끝나 있었다.
“늘 그렇지 뭐.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이런 쪽지까지 만들어서 돌린다. 야!”
“이런 쓰벌! 뭐 그리 할 말들이 많어! 잠 좀 잘라는데 너무 시끄럽잖아?”
쇳가루 긁는 소리가 내 대답 전에 튀어나왔다.
설레바리. 재석이와 난 녀석을 그렇게 불렀다. 반에서 주먹으로 설치는, 전원일기의 금동이를 닮아 금동이라고 불리우던 녀석의 옆에서 설치고 다니는 녀석. 어디에나 정작 위에 있는 녀석보다는 그 밑에서 설치는 녀석이 소리는 더 요란한 법이라고 하던가. 그것이 아니라도 녀석들은 바로 윗선배들이 나로 인해 징계를 먹어서 더 많은 린치를 당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녀석들은 언제고 나에게 으르렁대던 참이었다.
“오호? 또 너냐?”
“동민아! 그냥 나가자. 다음시간 체육이잖아.”
재석이 먼저 체육시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눈을 찡긋해 보이며 피하자고 싸인을 보냈다. 그러나 재석일 뒤따라나가던 내 앞을 금동이 녀석이 막아섰다. 놈의 주위로 또 다른 녀석들이 하나씩 꼬여 들며 나를 에워싸듯 섰다.
“비켜. 나가봐야 돼.”
“이 새끼가 눈에 뵈는 게 없나!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냐? 너! 겁대가리 짱 박았어?”
아예 노골적인 시비는 이제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터였다. 녀석들에게 시빗거리를 주어봐야 결과는 뻔했다.
“그만 두자.”
“어쭈구리? 이 새끼가···그만두긴 뭘 그만둬.”
설레바리가 또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름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녀석은, 부모가 땅장사를 해서 부자가 된 전형적인 졸부집안의 망나니였다. 금동이가 녀석을 끼고 다니는 이유도 설레바리가 돈줄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먼저이기 나서는 경우보다 늘 누군가의 뒤에서 상대를 억누르거나 협박하는 것에 익숙해 있는 ‘익명성의 집단 따돌림’에 능한 녀석이었다.
“너 꽤 컸다. 선생들이 좀 알아준다구··· 공부 좀 한다고 그렇게 뻗대는 거야? 권기 새끼도 가만히 있는데··· 너 같은 새끼가···”
권기. ‘공부 하나만큼’이라는 표현이 들어갈 정도로 녀석은 공부광이었다. 다만 말을 더듬고 어눌하며 몸짓이 사이코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는 자기 폐쇄적인 전형적인 ‘범생이’였다. 그런 점에서 공부를 포기한 양아치들과 흔히 말하는 모범생 측의 아이들 사이에는 무형의 경계 같은 것이 있었고 그 경계는 철저히 지켜졌었다.
그런데 그들로 하여금 과감히 나를 침범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계기가 바로 그 겨울의 커닝사건이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어머니까지 다녀가신 이후, 그 일은 완전히 해프닝처럼 되었고 원하던 원치 않던 나만 더 유명한 녀석이 되어 아이들에게 회자되는 일화를 남겼다. 그러나, 사건의 파급은, 늘 그러하듯 돌멩이의 크기에 관계하지 않고 똑같이 커다란 파문을 만들어 낸다.
나를 사이에 두고 커닝을 했던 날라리 2학년 녀석들은 당연히 정학을 맞았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그들이 정학을, 유기정학으로 그것도 3일을 받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교련에게 현행범으로 걸리면 무기정학까지, 아니, 적어도 정학 2주 정도에 화장실 한 달 정도는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는데 일이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처리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이 이상했던 것은, 구타가 비일비재했던 학생부에서 그날 처음 빼고는 전혀 구타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기말고사가 끝나던 날 내 옆에 앉아 있던 양아치의 똘마니들이 모두 내가 있는 교실로 몰려와 나에게 사과를 했다는 점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점심시간이면 늘 앉아 있던 운동장 한켠 나만의 자리를 어떻게 알고 찾아와 ‘미안하다. 넌 별일 없을 거다.’라고 던졌던 무뚝뚝하지만 진실되었던 사과에 비해 똘마니들 모두가 찾아와 사과를 한 것은 너무도 이례적이었고 겉치레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해답은 시간이 천천히 풀어주었다. 똘마니들의 집단 사과가 있던 날, 하교하던 길에 우리 반의 ‘날라리’라 불리던 녀석들이 하나둘 교문 사이의 담 쪽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꾸역꾸역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발로 애꿎은 바닥을 찍는 모습이 죽기 싫어 뻐팅기는 소와 한치 다를 바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긴 했지만, 잠깐 스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시선이, 그것도 아주 적의에 불타는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그렇게 원망을 살 일은 이제까지도 없었고 최소한 내 생각에는 이후로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분명히 뭔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교문 밖으로 나오는 길에 낯이 설기는 했지만 대강 그렇고 그런 아이들의 얼굴, 아마도 한 학년의 위라고 생각되는 그런 녀석들이 인상을 잔뜩 구기고 주먹을 얽으며 서 있었다.
그 원인을 알게 해 준 것은 고등학교를 재수해서 올라온 우리 반의 삼중이라는 녀석을 통해서였다. 녀석이 나를 보곤 우리보다 한 학년 위의 제 친구들에게 뭐라고 속닥이며 힐끗 노려봤다.
“오늘 또 한바탕 하는 모양이네.”
재석이 내뱉은 말에, 나는 그제까지의 호기심에 당연히 반문의 물음꼬리표를 달았다.
“무슨 한바탕···?”
“여태 몰랐냐? 한 학년 위의 선배들이라는 놈들이 지들 기분이 그렇고 그렇거나 뭔 껀수가 있는 날은 군기 잡는다고 끌고 가서 그냥 밟는다잖아.”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듣고 나서도 이해가 되지 않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정기행사였다는 말이 우스웠다. 그렇게 당한 녀석들은 재수 없이 당한다고 욕하면서도 지들이 선배가 되면 똑같은 짓을 그대로 재현해서 그들 또한 미래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니 결국 지들이 자기 얼굴에 종주먹질을 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문제의 원인이 늘 문제의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모든 일의 원인이 문제의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늘 외부, 혹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에게 툭하면 있어왔던 그 정기행사가 원인이 나였다는 루머 아닌 루머가 우리 반 양아치들에게서 돈 것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그게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무형의 경계를 내게서 헐어낸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이다.
그런 녀석들이 또 걸고 넘어온 것이다.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의 무덥던 체육시간 전에.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떠들고 지랄이야 지랄이! 너 그렇게 잘났어? 야! 문 걸어!”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아이들이 거의 없었고, 대강 체육시간 때문에 나갔던 아이들까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바람잡이가 아이들을 밀치며 그들의 용어로 ‘짱 보는 일’을 하기 위해 천천히 문을 닫아걸었다.
“금동아! 서로 귀찮아질 일은 벌이지 말자.”
난 뭔가 경고를 강하게 해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무리 지어 다니며 다른 아이들을 으름장 놓는 녀석들을 깨는 법은 의외로 이쪽에서 강해게 나가면 해결이 쉬워진다는 이론에서였다. 두목급이 되는 녀석의 기선을 제압하는 것. 그렇지만 나 역시 그쪽으로 베테랑이 아니었던지 말이 그닥 위협적이지 못했었던지 바로 상대의 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 새끼가 누구한테 금동이라 그래!”
금동이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자신의 위치를 옹고히 하려는 생각에서였는지 설레바리와 녀석의 옆에 있던 또 복싱부 녀석이 의자를 발로 쓰러뜨리며 주먹을 날려왔다. 일단 수적으로도 열세였지만 싸움이라고는 영 젬벵이던 나에겐 유리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밀리고 나면 녀석들의 밥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누구보다 직감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위기를 넘겨야 했다.
삼중이는 녀석들 무리의 뒤, 의자를 붙이고서 누워 있다가 무슨 일인가 하며 부스스 일어났다. 녀석이 멍하니 나와 녀석들을 번갈아 봤다. 삼중이와 금동이가 눈이 언뜻 마주치자 삼중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금동이는 삼중이에게 말은 놓으면서도 형이라는 존칭을 써주는 묘한 그들만의 서열을 정해둔 것 같았다.
“야! 수업 끝났다. 얘들 들어와!”
뒤에서 망을 보던 녀석의 말과 삼중이의 이상한 반응으로 그들과의 힘겨루기는 한 번의 주먹질과 발길질을 대강 피하고 얼추 매듭지어졌다. 물에 흠뻑 젖은 머리로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을 한 아이들이 들이닥쳤고, 금동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며 삼중이에게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힐끔 나를 흘겼다. 그때 반장 녀석이 그들의 틈으로 끼었다. 녀석은 어느 정도는 그들에 있어 협력자였고 동조자였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용돈 명목으로 돈을 긁어내거나 개인적으로 갈취하고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일삼을 경우 그것을 눈감아 주고, 담임의 추궁이 있을 때에도 어느 정도 거짓증언으로 중간에서 무마시키며, 시험 때면 시계를 이용하거나 질문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점수를 주었다. 물론, 자신 역시 공부하지 않아도 대강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는 등 그들의 평가로는, 그 방면에 있어 탁월한 재주꾼이었다. 물론 그런 녀석과 내가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녀석과는 마음에 들지 않는 웃음을 지으며 그저 적대관계가 아닌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녀석도 내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눈의 가시로 여겼다는 점에 있었다.
녀석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에게는 가장 컸을 아픔이 나와 관련이 있었다. 우등반에서 문과생들로만 이뤄졌던 스터디 그룹에, 육성회장이던 어머니 덕으로 겨우 끼게 된 녀석은 공부보다는 떠들고 야한 사진이나 비디오를 돌려보는 것에 더 열중했었다. 그런 녀석을 공부하던 우리들은 과감히 빼기로 했다. 그런데 녀석은 자신을 스터디 그룹에서 빼기로 한 것이 나였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그때 녀석은 거의 울먹이듯 소리 질러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