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교에 3번이나 떨어지고도

현대 조각의 아버지로 우뚝 서다.

by 발검무적

1840년 파리 빈민가에서, 경찰서 말단 직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늘, "나는 바보 같은 아들을 두었어."라고 한탄하며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아들을 부끄러워했었다고 한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삼촌이 운영하던 기숙학교에서 3년, 14세 때 국립 공예실기 학교에 입학하여 3년을 다닌 것이 고작이었다. 미술학교에 다닐 때, '진흙'의 매력에 빠져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순수 미술 교육기관인 '에꼴 데 보자르'에서 배우고 싶었으나, 3년 연속 입학시험에 떨어지는 충격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자신과 함께 공예학교에서 공부했던 누나가 수녀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1862년 천연두에 걸려 25살의 나이로 죽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한동안 사제가 되겠다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다만, 예술적인 천분이 도저히 신부의 길을 가는 것에는 맞지 않음을 알아본 수도원장이, 스스로 가끔 그의 조각과 스케치의 모델이 되어줄 만큼 그를 무척 신경 써주었다.


결국 수도원장의 설득으로 수도원 생활마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세속으로 나와 조각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환속한다.

작가의 얼굴은 몰라도 위 사진의 작품, <생각하는 남자>는 남녀노소 모두 알아본다는,

천재 조각가로 일컬어지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이야기이다.


서양의 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는 19세기 초부터 등장한 수많은 화가들 중 어느 한 명을 꼽을 수 없지만, 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는 로댕, 오직 단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그는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천재 미켈란젤로와 유일하게 견줄만하다고 언급되는 조각가로, 19세기 말 이전까지 시대에 뒤떨어져버린 장르로 전락한 조각을 다시 미술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끌어올린 혁혁한 공로가 인정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코가 부러진 남자(1864년)

제대로 된 체계적인 조각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는 카리에-벨뢰즈의 밑에서 다양한 장식 조각을 꾸미는 일꾼으로 고용되어 생계를 꾸려나가며 어깨너머로 주변 조각가들을 보며 조각 공부를 독학한다.

1852년 그는 처음 자기 작업실을 마련하고 위의 사진에 보이는 '코가 부러진 남자'를 제작하여 이듬해 파리의 살롱전에 제출하지만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만다. 그가 낙선한 이유는 너무도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심사의원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1870년 보불전쟁이 터지고 징집되었지만 근시에 눈병까지 있다는 이유로 1년도 채 되지 않아 제대하게 된다. 전쟁으로 일감이 없던 파리에서 브뤼셀로 가 먼저 가 있던 카리에-벨뢰즈의 밑에서 잠시, 그리고 벨기에인 반 라스부르와 파트너가 되어 공공조형물과 건물 장식 조각 등을 제작하며 생계를 근근이 유지한다. 1875년 낙선했던 위 작품을 약간 수정하여 대리석으로 만들고 'B 씨의 초상'이라고 제목만 바꿔 다시 살롱전에 출품하여 겨우 입선하게 된다.


그렇게 30대 중반이 넘도록 그는 무명작가로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이 수치스러웠다. 1875년부터 준비작업을 하던 그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결정적인 가르침을 얻고자, 작업을 중단하고 1876년 이탈리아로 떠난다. 피렌체, 나폴리, 시에나, 베네치아 등을 거쳐 브뤼셀로 다시 돌아온 그는 이탈리아 기행을 통해 이전부터 존경해왔던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거장들과 고전 걸장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그간 자신의 노력을 모아 제작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청동시대>이다.

이 <청동시대>는 실제 사람에 찰흙을 붙여 모델링을 했다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완벽했다.

청동시대(1877년)

이 작품의 전시를 시작으로 로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그의 예술의 정점까지 달려간다.

그가 모든 것을 접고, 떠났던 이탈리아 기행을 통한 르네상스 대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그의 영혼에 새겨온 그 영감과 경험은 그가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발휘한다.

지옥의 문(1880년)

이렇게 능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댕은 유명해지지 못해 생활고에 내내 시달린다. 1864년 평생의 반려자인 재봉사 로즈 뵈레를 만나 동거하기 시작하였으나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1900년이 돼서야,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특별 개인전을 가지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로댕은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으로부터 찬사를 들으며 유명해져 정식 결혼식을 1917년이 되어서야 올리게 된다.

정작 결혼식을 올리고 2주 만에 너무도 행복해하던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로댕은 큰 상실감에 빠져있다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아내의 곁으로 떠난다. 그의 나이 77세였다.


미술사적으로 로댕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의도적인 왜곡'에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칼레의 시민>을 보면 손이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더 크게 묘사가 되어있는데 이로써 더욱 효과적인 감정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이는 회화에서 인상주의가 등장하면서 사실묘사에서 벗어난 것과 필적하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사실주의 작가가 아님에도 사실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조각 자체에 감정이입이 잘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실제 인간은 잘 취하지 않는 동작 등을 통해 역동성을 부여하며, 미켈란젤로로 대표되는 인체 비례와 사실주의적 조각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여질 만큼 정밀성보다는 일부러 미완성을 의도한 것 같은 조각기법으로 감정과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탈리아 기행전의 그의 작품이 미켈란젤로로 대표되는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의 수준에서 멈춘 것이라면, 이탈이라 기행 후 그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를 뛰어넘은 자신만의 재해석이 작품에 생생하게 투영되었다는 점이다.

입맞춤

예술 중에서도 미술은 천부적인 감각이 그 어느 분야보다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곤 한다.

때문에 타고난 재능이 없이 노력으로 미술천재들을 따라잡는 것은 쉽게 할 수 없다고 여겨지곤 한다.

로댕이 처음 미술을 시작했을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더라면, 미술학교에 4수를 하면서까지 낙방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젊었을 때부터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말년의 십여 년을 제외하고는 생활고에 시달렸고, 77세가 되어 치매가 오기까지 제대로 된 결혼식조차 치르지 못했던 힘겨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그를 천재로 기억하고, 그의 천재적인 작품을 감상하며 감동을 받는다.

로댕의 얼굴 조각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고

이번에는 합격할 것 같은데 또 떨어지는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면

당신은 아마 당신이 재능도 없고,

그 길이 당신의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좌절할 수 있다.


당신이 쏟아부을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로댕처럼 원점부터 다시 한번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냉철하게 살펴볼 것을 권한다.

로댕은 계속 반복되는 작업과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 고전 대가들의 작품을 공부하는 여행을 떠났다.

그저 마음을 비우는 여행이 아니었다.

그는 철저하게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과 그 혼을 자신의 머리와 마음에 담아왔다.

그저 담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변화시켜 자신만의 작품을 펼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신이 이제까지의 방법으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냉철히 분석하고

당신에게 부족한 것을 파악한 후

그것을 집중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저 계속해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행위를

똥고집이라는 이름의 아집과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여 지속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고

조언이 중요한 것이며

무엇보다

당신 자신의 깨달음이

그리도 중요한 것이다.


당신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일깨워줄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깨닫겠다는 구도의 마음가짐이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성공의 바로 반 발짝 앞에서

헤메이고 있다고 착각하고

불안해했었기 때문이다.


불안해하지 마라.

당신이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

자신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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