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올라 깎기 시작한 나무 장난감으로

전 세계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 재벌 되다

by 발검무적

1891년에 덴마크 필 스코프에서 무려 열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목수를 직업으로 삼고 일을 시작한 그는 1916년에 목공소인 '빌룬 기계 목공사'를 사들였는데, 집과 목공소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던 이 건물은 1924년 그의 두 아들들이 난로에 불을 피우는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홀랑 태워버리고 만다. 일찍 아내가 세상을 떠나버려 홀로 4명의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는데, 아이를 제대로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이후 다시 큰 집을 새로 지었지만, 그로 인해 빚을 지게 되었고, 거기에 대공황의 타격을 입고 1932년에는 폐업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게 그는 폐업의 위기에 몰려할 것이 없어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줄 돈도 없어 나무 자투리 조각을 깎아 장난감을 만든다. 이 장난감은 의외로 인기를 끌었고, 이 장난감을 주력 사업으로 삼으며 '레고'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 1934년이었다. 원래는 집에서 담근 레드 와인을 상품으로 내걸고 이름을 모집받았지만, 다행히도(?) 이 레드 와인이 어지간히도 맛이 없었던지 어떤 직원도 제안을 하지 않아서 결국 그가 '레고'라는 이름을 짓게 된다.

덴마크의 블록 장난감 회사로 정확히는 레고 그룹(The Lego Group)을 창업한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Kristiansen)의 이야기이다.

레고라는 이름은, 덴마크어로 '재미있게 놀다(play well)'라는 뜻을 가진 'leg godt'(원래 발음은 '라이 커트'라고 읽는다.)를 줄인 것으로, 이것이 회사 이름이자 완구의 이름이 되었다.

'레고'라는 이름을 짓고난 후, 사업은 순조로웠고, 1939년에는 직원을 10명으로 늘릴 만큼 성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1940년에 덴마크가 항복해서 나치군의 치하로 들어가자, 수입 장난감의 판매가 금지되었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레고가 폭발적으로 성장을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재미를 보던 올레는 나무라는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화재와 악연이 있었는지, 1942년에 다시 장난감 공장이 화재로 인해 불타버리는 악재를 또 겪게 된다.

나무로 인한 화재에 지긋지긋하던 올레는 고민하던 중에 1940년 대에 나온 '플라스틱'이라는 신소재를 만나고 나서부터 플라스틱 장난감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1944년에 레고사는 정식 기업으로 등록되었다. 1947년에 레고 사는 합성수지의 도입을 결정하고 작은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구입하는데, 이는 덴마크에서 최초였다.

원래 올레는 비싼 영국제 대형 사출 성형기를 구매하려고 했지만 고트프레드가 사정을 한 끝에 작은 것을 구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전해진다. 올레의 셋째 아들인,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은 아버지의 장난감 사업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기에 10대 시절부터 직접 모델 개발에 참여하곤 했다. 결국 고트프레드는 1950년에 30살의 나이로 상무이사로 정식 취임한다.

올레의 셋째 아들이자, 레고의 2대 회장이었던 고트프레드

레고 사에서 생산한 최초의 플라스틱 장난감은 금붕어 모양 딸랑이가 되었다. 그 뒤를 이은 제품은 페르구슨 트랙터였다. 이 트랙터는 부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걸 개발하는데 진짜 페르구슨 트랙터 한 대 값이 들었지만, 곧 그 정도는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트랙터 장난감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49년에 레고 사가 출시한 플라스틱 장난감 중에는, 오늘날 알려진 레고 블록의 전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 블록은 1953년에 '레고 브릭'으로 이름을 바꿨음에도 인기를 끌지 못했다. 블록끼리의 접합이 약한 것이 문제였는데, 이 점은 1957년에 블록 아래에 파이프를 설치해서 해결되었다.

아래쪽 부분이 브릭의 위쪽 홈 사이에 껴서 빠지지 않는 걸 보고 수정 작업을 거쳐, 다음 해인 1958년 1월 고트프레드는 이 모든 방식을 특허로 신청하였고 이것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조립형 레고 블록의 시작이 된다.


1958년 3월 11일에 창업주인 올레가 오늘날의 레고 브릭의 탄생을 보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떠났고, 결국 이전까지 상무이사로 일하면서 실질적인 경영과 제품 개발을 맡아왔던 3남 고트프레드가 곧바로 2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고트프레드는 취임 직후인 1959년에 새로운 레고 세트의 디자인을 구상하고 관리하는 전담 부서인 레고 푸투라를 설치하는 한편,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으로 진출하기 위한 지사 설립에 매진한다.

그런데, 1960년 2월 레고 본사에서 또 화재가 일어난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불타버린 부분이 이미 수익이 많이 감소한 목각 완구 부서 건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레고사는 목각 완구 생산을 중단하고 레고 시스템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이 부분은 레고의 선진화를 촉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성장은 순조로워서, 1964년에는 47개국에 진출하게 되었다.
1963년에 고트프레드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레고의 10대 원칙을 제창하게 된다. 이는 그로부터 9년 전 코펜하겐의 Magagin du Nord 백화점의 구매과장에게 들은, "현재 출시된 모든 장난감에는 무언가 고차원적인 규칙이 없다"는 불평을 들었던데서 기인한다. 고트프레드는 자사의 제품들 중 플라스틱 벽돌 장난감이 아래 규칙에 가장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각 완구의 단종과 맞물려, 이때부터 레고 사는 가장 완벽한 장난감에 체계적인 구조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아 '레고 시스템'이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여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것

남녀 성별에 초월할 것

나이를 초월할 것

일 년 내내 질리지 않을 것

활기차고 흡입력을 가질 것

세대를 초월할 것

상상력, 창조력, 발전성 지향

놀수록 가치가 높아질 것

늘 아이들의 화제가 될 것

안전성이 높고 품질이 좋을 것


'레고'라는 기업이 오늘날의 재벌회사가 되기까지는 여러 실패와 고난과 부침이 있었다.

올레는 목수라는 직업을 버리고, 화재로 잿더미가 된 자리에서 다시 건물을 지어 자신이 계획하지 않았던 하지 않았던 목재 장난감을 만드는 것에서 기업을 창업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이에게 있어, 공장이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만 한 악재가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레고사는 화재가 있을 때마다 기업이 흥성했다.

화재는 사고였지만, 그것을 기회로 만든 것은 올레였고, 그의 후계자 아들이었다.


레고는 아직까지도 주식 시장에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비상장 가족기업이다.

3대 회장까지 혈연인 손자 켈 크리스티얀센이 회장 업무를 수행하며 이어오는 동안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레고그룹의 위기가 시작되고 적자 구조로 돌아서자 2004년 파산 직전까지 위기에 내몰린다.

당시 회장인 켈 크리스티얀센이 외부인 맥킨지 출신의 요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에게 경영을 맡기게 되면서 4대 CEO는 전문 경영인 체계로 형태를 바꾼다. 크누스토르프를 이어 2017년 10월부터 레고 본사의 CEO를 맡고 있는 닐스 크리스티안센 역시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의 외부 인사이다.

레고사의 최고 외부 경영인이 된 요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

화재가 일어날 때마다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새로움으로 위기를 극복했던 올레는 가족경영의 형태를 택했지만, 화재보다 훨씬 더 큰 경영의 위기에 그의 손자는 가족경영을 버리고 전문경영인을 초빙하여 위기를 극복한다.


2대 회장이 판매현장의 직원에게 들은 내용으로 기업을 혁신하고 브랜드 가치를 위한 원칙을 천명했던 것처럼 외부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기업을 회생시킨 데는 철저한 자기 분석이 있었다.

사실 2004년 그 위기를 초래한 것은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레고사가 더 이상 주력 상품인 블록으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기존 브릭 제품과는 호환되지 않는 정해진 모습으로 쉽게 조립하는 세트를 개발하는 한편. 아동복, 영화, 테마파크 사업까지 진출한다.

한 마디로, 본질을 잊고 외도를 한 것이다.

무분별하게 신상품 수량을 늘리면서 생산·물류비용이 증가하지만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며 재고 비중도 늘어나게 되자 공급망의 비효율성이 증대된다. 결국 레고그룹은 2003년 대규모의 적자를 떠안게 되면서 매각설이 돌기도 했다.


2004년 레고그룹의 새 CEO가 된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는 초대 창업가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의 창립취지에 맞게 초심으로 돌아간다. 크누스토르프 CEO는 우선 약 3억 달러에 달했던 적자를 줄이기 위해 테마파크 '레고랜드'를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그룹에 매각한 뒤 기존 레고 강점인 블록에 집중해 고전적인 레고 블록으로 전면 교체하기 시작한다.


또한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는 줄어드는 아이들의 수요만으로는 안된다고 판단, 어른들의 관심을 끌어야만 한다는 해법을 내놓는다. 이에 레고 제품에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1년에 출시된 닌자고, 2012년에 출시된 프렌즈 모두 스토리를 담고 있으며 이는 모두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 '레고 무비'의 경우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3주 연속 1위를 달성했다.

2004년부터 약 10년간 레고 그룹의 매출은 4배 이상 증가했으며 적자였던 영업이익도 83억 3천600만 덴마크크로네(약 1조 5천억 원)로 올랐다. 레고그룹은 지난해 9월 미국 컨설팅회사 RI 조사 결과 사회적 책임을 가장 잘 실행하는 착한 기업 1위로 선정돼 제2의 전성기를 맞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를 이끌어낸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는 혁신적인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화재로 잿더미가 된 집이자 공장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있을 올레의 모습을 그려보라.

그는 빚을 내서 다시 더 큰 집을 짓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위의 두 아들이 있었음에도 장난감 연구에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던 셋째 아들을 회장을 결정하기까지 올레에게 아무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 셋째 아들은 특허를 내면서 레고사를 키웠고,

현장의 일개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대원칙을 천명할 정도의 현명함을 갖췄었다.

3대 회장을 맡은 손자가 철저히 가족회사였던 회사를 외부인사를 불러들이기까지 쉬운 결정이었던 것은 어느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위기에서 주저앉지 않고 늘 새로움을 모색했다.

레고를 창립한 올레부터 3대의 가족사진


말은 쉽다.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라고.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은 드물고

그나마 그렇게 성공까지 도달하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뤄내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들을 통해,

그들이 위기를 극복 해내가는 것을 보며

내가 그럴 수 있도록 배우고 깨닫고자 노력한다.


그것은 어느 한순간

책 한 줄 띡 읽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올레가

그리고 올레의 레고사가

장난감으로서의 추억만을 주는 것이 아닌,

당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키는데

이만한 교훈을 3대에 걸쳐 주는 것은

여간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격하게 감사하며

당신의 것으로 온전히 만들 수 있기를

고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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