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허례허식이 본질을 호도할 수는 없다만,

본질을 망각하게 만들 정도의 허접함을 용납할 수는 없다.

by 발검무적
子游曰: “喪致乎哀而止.”
子游가 말하였다. “喪은 슬픔을 극진히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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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앞서 ‘팔일(八佾)편’의 4장에서 공부했던 ‘喪, 與其易也, 寧戚.(상(喪)은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한다.)’는 가르침을 그대로 다시 자유(子游)의 목소리로 반복 재생한 것이다. 상사(喪事)와 관련된 언급으로는 ‘학이(學而)편’의 9장에 ‘신종(愼終), 부모의 상에는 예를 다한다’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있고, 이번 편의 첫 장에서 자장(子張)이 말했던 ‘喪思哀(상사에는 슬픔을 생각한다)’도 있으며, 뒤에 공부하게 될 17장에서 다시 증자(曾子)가 말했던 ‘必也親喪乎!(친상을 당하면 반드시 스스로 힘쓴다.)’등 적지 않은 언급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설명해주면, 대부분의 초심자들은 유학자들에게 있어 상사(喪事)가 꽤나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자연스럽게 오독(誤讀)의 지뢰밭을 밟을 수 있기에 다시한번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들이 왜 그렇게 상사(喪事)에 대한 언급을 강조한 것인지 그리고 그 행간에는 어떤 의도가 감춰져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이 죽는 일은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중에서도 ‘애(哀)’의 가장 대표적인 인간사(人間事)에 해당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상투어구가 그대로 반영된 일생일대의 가장 주요한 일중의 하나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충성해야하는 군주의 죽음은 그야말로 슬픔의 가장 극대화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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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자의 가르침에서부터 그 가르침을 다시 되새기는 이 장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상사(喪事)가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하거나 그 슬픔이 극대화된 사실로 인해 무언가를 설명하는 구절이 단 한구절이라도 있었던가? 아니다. 그렇게 슬퍼 이성을 챙기지 못할 정도의 중대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상사(喪事)를 언급한 이유는, 형식이 아닌 슬픔 본연의 감정에 충실해야할 것을 강조하기 위한 극단적인(?) 사례로 제시한 것뿐이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이 갖는 본래 의도를 자유(子游)가 제대로 이해하고 다시 강조했음을 배우는 자들도 오독(誤讀)하지 말라며 주자는 다음과 같이 아주 간략하지만 묵직한 주석으로 대신한다.


슬픔을 극진히 하고 文飾(문식)을 숭상하지 않는 것이다.


본래 공자가 강조하려고 했던 ‘형식보다는 본질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을 가장 명확하게 배우는 자들에게 와닿게 하기 위해 상사(喪事)를 언급한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큰 일이고 중대한 일이며 무엇보다 감정이 극대화된 슬픔의 정점에 해당하는 일이 바로 상사(喪事)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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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 더해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사례를 위해 상사(喪事)를 가져온 공자의 의도는 그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비판에 다름 아니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공자의 예학(禮學)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것임과 동시에 배움을 실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아주 중요한 담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 가르침의 근본이라고 소개한 ‘팔일(八佾)편’의 4장에서도 임방(林放)이 공자에게 물은 내용은 ‘禮의 근본’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공자는 “예는 외관상 성대하게 거행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 낫다”고 한 것이니 그것이 바로 공자의 예법(禮法)에 대한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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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같은 ‘팔일(八佾)편’에서 공자가 “남들의 위에 있으며 寬大(관대)하지 않고, 예식을 거행하며 恭敬(공경)하지 않으며, 상례에 임해 슬퍼하지 않는다면, 무어 볼 만한 것이 있겠는가?”라고도 하였는데, 공자가 禮의 근본을 ‘성의(誠意)’에 있다고 다시한번 강조한 바에 다름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의 장례문화가 슬픔의 본질에 집중되기보다는 사회적인 지위나 살아남은 이들이 그들의 명예나 부를 강조하기 위한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해버리는 것에 대한 통렬한 현실적 비판이 이 비유에는 녹아들어가 있다.


누차 강조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 정치논리로 변질시킨 성리학자들의 성리학과 공자가 추구했던 원시유학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공자가 강조했던 예법(禮法)은 입는 예복이나 어떻게 절을 하고 어떤 순서로 하는 등등의 껍데기에 해당하는 형식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에 보면, 자로(子路)는 공자에게서 “‘상례는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여유 있기보다는 예가 부족하더라도 슬픔이 충분한 것만 못하다’는 가르침을 들었다.”고 했다. 당대에도 세간에서는 유학자들이 상장(喪葬)을 지나치게 존중한다고 비난하였으나 공자는 결코 그러한 허례허식(虛禮虛飾)을 인정하지 않았다.

search.pstatic.jpg 유가의 허례허식을 비판한 묵자

사람들이 행여 후대에라도 성리학같은 정치학의 논리로 본질을 변질시킬까 우려했던 공자는 이와 같은 극단적인 강조어법을 통해서라도 본질에 충실해야지 결코 형식에 경도되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속담, ‘정승집 개가 죽으면 장례에 사람들이 들끓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그 장례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이 보여주는 속뜻에서, 그 허례허식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권력이나 재력에 의해 감정에 대한 본질표현을 훼손시켰는지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계승한 자하(子夏)의 생각을 바로 읽어낸 양씨(楊時(양시))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의미를 정리한다.


“喪(상)은 형식적으로 잘 다스려지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하니, 禮文(예문)이 부족하고 슬픔이 유여함만 못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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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본래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하는 듯 하지만, 이 장의 마지막 두 글자 ‘而止’에 대해 고문의 문법적인 해석상 다소 한정짓는다는 부분이 있다고 파악한 주자는 그 부분에 대해 자유(子游)의 의견이 微細(미세)한 것을 소홀히 여겨 지나치는 부분이 있다고 여기며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而止(이지, 그뿐이다)’ 두 글자는 또한 高遠(고원)한데 지나쳐서 세미한 것을 소홀히 하는 병폐가 약간 있으니, 배우는 자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예기(禮記)>의 ‘잡기(雜記)’를 보면, 자공(子貢)이 부모의 상에 대해 묻자, 공자는 그 설명에 대해 상중하로 나누어 “敬(경)이 上, 哀(애)가 다음, 瘠(척)이 下”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敬’은, ‘시신에 입히는 옷과 관 속에 넣는 물건을 공경하고 성실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哀’는, 이 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슬픔을 지극히 하는 것’을 말하며, ‘瘠’은, ‘지나치게 슬퍼해서 상례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상하는 것’을 말한다. 상중하로 설명했지만 이것은 상하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양극단의 사이에 본래의 본질에 해당하는 哀(애)가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슬픈 일이고, 실제로 그 슬픔이 너무 넘쳐 혼절할 지경이 되고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상해버릴 정도에 이르게 되면 본질을 유지하는 것에는 역시 실패하게 된다. 그렇다고 슬픔의 감정을 뒤로 한 채, 장례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인 듯 장례를 치르는 것 역시 형식에 경도된 것이라 옳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자의 이 설명이야말로 상례(喪禮)를 비롯하여 예법이라는 것이 그 행사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경도하지 않은 공경함을 다하는 중도(中道)를 유지하는 것이 어떠한 형태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하게 해주는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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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예기(禮記)>의 내용을 마지막에 소개하는 이유는, 자칫 이 중도(中道)의 이치를 설명해주지 않으면, 자유(子游)처럼 스승의 가르침을 그저 형식을 강조하지 말라는 것에 충실한 해석으로 일관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슬픔의 본질에 집중한다고 하여, 세상을 떠나보낸 이의 슬픔으로 인해 울다 혼절할 지경의 지극한 슬픔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도 예가 아니라는 것은 공자가 언제나 가르쳤던 바와 같이 본질과 형식을 두루 겸비한 중도(中道)를 찾는 것이 배우고 익힌 자가 갖춰야할 실천의 요체임을 다시금 보여준다.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와 함께 자리할 때 다른 나라의 국기에 경례를 하거나 그 나라 국민으로서의 예를 보이는 것은 예법이 아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으로서의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알 리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에게는 그러한 국가 의전과 관련된 사소한 형식까지도 일러주는 의전보좌관이라는 것이 있다.


만약 대통령이 통상적인 외교 예법상 어긋난 행동을 했다면 그것이 처음부터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의전보좌관의 잘못인지 아니면 제대로 가르쳐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행동한 대통령의 실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잘못이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부분이 있으면 사과하고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하등하다고 회초리를 들어마지 않은 행동은 그러한 잘못과 실수를 하고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려 들지 않은 자에게 있다. 실수와 잘못의 차이는 거기서 발생한다. 자신이 실수하고서도 끝까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의 행위를 ‘잘못’이라고 한다. 잘못은 똑같은 실수를 다시금 또 저지를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 대통령과 있을 때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실수가 아니라고 우기고 ‘상대국을 존중하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면, 그 다음부터 똑같은 행동으로 대우하지 않은 나라의 원수들은 홀대받아 마땅하다는 논리로밖에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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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의 국익을 위해 한국의 주요 인사들의 대화나 통화를 도청한 나라에 국빈으로 찾아간다고 하면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이루어진 그 나라의 주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버젓이 “100년 전 일을 갖고 (일본에게)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는 허언을 내뱉은 것에 대해 빨간당의 아부쟁이 1중대 요원들이 충성을 먼저 드러내 보이겠다며, 주어가 생략되었다는 둥 국민들을 문해력이 없는 개돼지로 여기는 공작(?)이 단 하루만에 개수작이라며 뽀록이 나버렸다.


최근 한국의 국민 듣기평가와 문해력 평가에 해당하는 코미디에 더 이상 장단 맞춰줄 생각이 없다는 해당 언론 여자 도쿄지국장의 녹취록 원본 공개였다. 그녀가 속한 언론사가 국내 언론사였다면 다시 그녀의 언론사는 대통령과 동행하는 비행기에 돈을 내도 타지 못할 것이고 국익을 해치는 언론사라며 여러 가지 불이익과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다른 여자들에게 헤헤거리며 호인(好人)노릇은 다 하면서 집에 들어와 자기 아내를 홀대하며 구박하는 가장을 가리켜 ‘찌질이’ 혹은 ‘병신’이라고 한다. 아버지라는 작자가 자기 자식의 올바른 행동에 대해서는 온갖 비난과 힐난으로 언성을 높이며 다잡으면서도 밖에 나가 힘있는 회사 상사의 자식에게는 똑같은 행동도 아닌 잘못된 행동을 보고서도 역시 훌륭하다고 굽신거릴 경우, 그를 가장으로서 가족의 존경을 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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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을 국익을 해치는 자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80년대 총부리를 쳐들며 국민을 기만했던 군바리정권에서조차 하지 않았던 짓이다. 하물며 논문 표절에 이력서 위조까지 드러나며 대선의 패인이 될까 두려워,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대선에 이기더라도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그의 처가 전대미문의 ‘VIP2’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는 것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그것 역시 국익을 해치는 일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그야말로 어이상실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도 예전에 벗어난 느낌이다.


한일간의 역사적 배경과 그 상황을 모르는 이들에게 묻더라도 이번 대통령의 발언이 한국 대통령이 내뱉은 공식적인 발언이라 말할 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 총리가 그런 망언을 했다 하더라도 도처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을만한 후안무치한 발언이라 할 것이다. 굳이 독일의 사죄의식을 사례로 들지 않더라도 100년전이 아니라 200년전이나 300년전에 벌어졌던 일이라도 그것이 자기 조상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인해 벌어진 잘못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 잘못을 개선하고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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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여전히 자신들의 땅이고, 전범들을 위인이라며 참배하고, 위안부는 몸팔아 돈 벌려던 행위자들이었고, 강제 징집공들은 외화벌러 일본에 자발적으로 왔던 자들이라는 인식을 현재도 고수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100년전 잘못까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민을 심각하게 재고해봐야할 시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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