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국회의원 친구라며 뭉치는 자들에게.
子游曰: “吾友張也爲難能也, 然而未仁.”
子游가 말하였다. “나의 벗, 子張은 어려운 일을 잘하나 그러나 仁하지는 못하다.”
이 장에서 자유(子游)가 동문인 자장(子張)에 대해서 직접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스승 공자의 인물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복기하는 듯한 인상은 여전히 느껴지지만 역시 공자의 그것과는 동격으로 평가하기에는 98% 부족함이 있다. 참고로 자유(子游)는 자장(子張)보다 3살이 많았다. 중국의 문화적 특성상 지금도 그렇지만 3살 정도 차이가 나는 이들이 서로를 친구라 칭하고 교유하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 있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장에 대한 의미를 깊이 있게 해석하기 전에 왜 자유(子游)가 자장(子張)에 대해 이렇게 적나라한(?) 평가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후대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대표적인 사유 두 가지 정도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실제로 능력이 출중한 것과는 별개로, 자장(子張)의 사람됨이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특히 젊은 시절에는 그 부족함으로 인해 스승 공자를 비롯하여 많은 동문들에게 지적을 받을 정도로 구분되는 부분이 있었다는 의견이다.
가장 대표적인 근거로 제시되는 부분은 앞서 공부했던 ‘선진(先進)편’의 17장에서 ‘사(師; 자장의 이름)는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 공정하지 못하다.’라고 하는 공자의 직접적인 평가이다. 한쪽으로 편향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어느 쪽인지를 구체적으로 논하기 이전에 공정을 잃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공자가 강조에 마지않았던 중도(中道)와 중용(中庸)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결정적인 결함이라고 지적될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질문하는 이의 성향과 상황을 모두 분석하여 그의 눈높이에 맞춘 답변을 주는 공자 특유의 가르침을 감안하자면, ‘안연(顏淵)편’의 14장에서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정사(政事;정치하는 행위)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의 답변, “거처할 때에는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행할 때에는 진심을 다해야 한다.”의 내용을 통해 자장(子張)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부족했는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별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지만, 마지막 문구의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이 장에서도 다시 살펴보게 될 이른바 ‘성의(誠意)’라는 부분이 자장(子張)에게는 결여되어 있다고 공자는 분석하였다.
내가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오제덕(五帝德)’에서 공자가 자장(子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말한 ‘겉치레만 가지고 사람을 취하고자 한다면 자장(子張)에게서 이 방법을 고쳐야 할 것이다.’라고 한 대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내용을 공부하여 전후 과정을 모두 파악한 주자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의미를 풀이하였다.
자장(子張)이 행동은 지나치게 높으나 성실하고 간곡한 뜻이 부족하였다.
이 장에서 자유(子游)가 자장(子張)에 대해 적나라한 비판을 감행한 배경에 대해 풀이한 두 번째 해석에는 후대 제자들 간의 미묘한 알력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앞서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다시피,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남아 있던 공자학파를 대변하는 이들 중에서는 자유(子游)와 자장(子張)의 세력이 만만치 않은 백중세로 세간에 이름이 높았다.
공자의 사후에 한참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 <논어(論語)>가 편집된 책임을 감안하자면, 책을 편집할 당시의 두 학파 간 알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아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내가 적나라한 비판이라는 평가를 하기는 했지만, 자유(子游)가 자장(子張)에 대해 앞 구절에 표현했던 ‘어려운 일’이라는 용어도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정도의 간단한 의미가 아니다. 자유(子游)가 표현한 ‘어려운 일’의 쉽고 어려움의 기준은 결코 세간에서 말하는 힘든 일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조선시대 학자 이식(李植)은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는데,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예컨대 은나라 말기에 비간(比干)이 바른말을 하다가 죽음을 자처한 일이나 기자(箕子)가 거짓으로 미친 척했던 일 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원문에서 ‘未仁’을 번역하면서 ‘인(仁) 하지는 못하다’로 풀이하기는 했지만, 조금 더 정확한 의미로 풀이하자면, ‘그가 아직 인(仁)을 이루지 못하였다.’라는 뜻으로, 정통 유학에서 말하는 단계로 말하자면 성현의 단계의 가장 첫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였다는 냉엄한 평가인 것이다.
자장(子張)은 스승 공자보다 48세나 어렸으니 당대 기준으로 보자면, 손자뻘의 제자였다. ‘위정(爲政)편’에서는, 벼슬 구하는 법을 스승에게 물었다가, 많이 듣고 의심 나는 것은 빼놓는 ‘多聞闕疑(다문궐의)’와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은 빼놓는 ‘多見闕殆(다견궐태)’를 실천하여 후회도 없고 허물도 없게 되면 저절로 벼슬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충고를 듣기도 하였다.
자유(子游)의 냉정한 평가에 의하면, 자장(子張)은 스승의 가르침을 공부하여, 남이 하기 어려운 충실하고 결백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과 동문들에게 보였던 그의 결점은, 지성측달(至誠惻怛)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행동으로 이어진 실천이라 할지라도 외적 요인에 이끌려 그 행동을 멋있게 여기거나 사람들이 그렇게 여길 것을 생각해 보이기 위해 행한다면 그것은 구차할 따름임을 같이 밥 먹고 생활했던 친구들과 스승은 분명히 부족함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용어라고 규정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고 했던 ‘인(仁)’에 대해서 앞서 다양한 경우를 통해 공부했지만, 여전히 어렵게 여기는 학도들이 많을 것이라 본다. 이 장에서 자유(子游)가 언급한 인(仁)의 속성은, 공자가 자장(子張)을 평가하면 지적했던 ‘중용(中庸)의 도’를 강조하고 있다.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실천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子游)가 세 살이나 어린 자장(子張)을 벗이라 칭하며 아직 인(仁)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하는 이 장의 표현은 같이 밥 먹고 자고 생활하는 동문이었기에 가능한 진정한 충고와 조언이 담겨 있다. 단순히 스승이 했던 분석과 가르침을 다시 원용하며 동문을 놀리거나 비아냥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승이 했던 분석이 갖는 의미를 자신도 읽어냈음을 자부하는 뜻도 약간은 담겨 있다.
그저 스승의 가르침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스승이 자기 친구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내놓은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되, 과연 스승이 보았던 그 미묘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눈에도 비로소 보였기에 그 의미를 복습하는 의미를 담아낸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이 거울치료를 하듯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함께 먹고자며 공부하여 조금이나마 객관화할 수 있는 동문을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공자의 의도도 담겨 있다. 같은 스승이 내가 물을 때의 개념과 똑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물었을 때 다르게 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스승이 어떤 관찰을 통해 분석과 통찰을 해냈는지 역으로 읽어내기 위한 공부가 가능하다.
그리고 스승의 고원(高遠)한 가르침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상황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함께 먹고자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친구의 장점과 단점을 스승이 분석해 주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그리고 애매하고 어렵기만 하던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이 실제 적용을 통해 어떤 의미인가를 감잡는 데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앞서 설명했던 이 장에서 자유(子游)가 했던 자장(子張)에 대한 후대 학자들의 평가는 조금은 뒤로 미루어 생각해도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다시 말해, 자유(子游)는 굳이 자장(子張)을 평가를 위한 평가를 위해 이 말을 했던 것도 아니거니와 두 학파 간의 첨예한 알력 대결 때문에 이 말이 등장한 것도 아니라는 의미이다. 자유(子游)는 자장(子張)에 대해 평가하는 듯한 이 내용을 통해 결국 스스로를 돌아본 것이고, 스승이 꿰뚫어 보았던 친구 자장(子張)의 보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그제야 자신도 파악해 내고는 스승이 어떤 근거에서 그런 판단을 했으며 성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실천이 더 필요했는지를 깨달았음을 복습한 것에 다름 아닌 고백이라 할 것이다.
여럿이 한 선생님에게 바둑을 배우는데, 선생님이 다른 친구의 악수(惡手)를 지적하며 그의 기풍(棋風)을 바로잡기 위해 꾸지람 아닌 꾸지람의 방식으로 호통을 칠 때, 곁에서 그 대국을 바라보던 이들은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워낙 기재(棋才)가 부족한 친구였으니 매번 저렇게 혼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신경 쓰지 않고 속으로 비웃을 수도 있고, ‘선생님이 오늘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셨나 왜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가지고 저렇게 화를 내시지?’라며 영문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을 것이며, 정확하게 친구가 저 문제점의 원인을 계속 해결하지 못하여 그 한 단계를 넘지 못하는 것에 선생님이 다소 냉혹하게까지 언성을 높이며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것을 읽어내고는 선생님의 애정과 함께 이제까지 친구가 이룬 성과에 나 역시 분발해야 한다는 다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공부는 엄청나게 비싼 학원에 보낸다거나 시간당 수백만 원을 받는 족집게 강사에게 과외를 받는다고 성과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엄청나게 비싼 학원이나 수억을 받는 족집게 강사에게 수업을 받게 되면 혼자서 할 때보다는 훨씬 더 빨리, 더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전혀 부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은 당장의 제도화된 시험의 성적을 얻는 것에 한정된 것일 뿐, 그가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성공된 삶을 보장한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그 학원의 방식을 통해 어떻게 공부하는 것인지에 대한 방식을 몸에 익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공부하면서 혼자서 취득하기 어려운 정보나 노하우를 얻어 이용한다면 그저 학원의 스케줄과 방식에 헐떡거리며 따라 외우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높은 단계를 인생에 적용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전제는 자신이 그 방식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시켜 자신만의 실천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장(子張)이 젊어서부터 보여왔던 어찌 보면 타고나 천성으로서의 기질이라 할 수 있는 단점을 얼마나 부단한 노력으로 고쳐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자유(子游)가 자장(子張)에 대한 스승 공자의 지적이 갖는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하고 나서 감탄하듯이 내뱉었을지도 모를 이 장의 내용이 이후 자유(子游)의 발전에 얼마나 더 큰 계기가 되었을지 역시 우리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그 중요한 모멘텀을 만드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스승이 있다한들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거듭하여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자기 학습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그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릴 수 없다. 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아 보일지라도 그것은 금세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그러한 점에서 이 장은 함께 군자(君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친구의 존재가 얼마나 내 공부에 도움이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자가 공자학파를 이끌며 1대 1 방식의 교육을 포함하여 왜 수많은 제자들에게 들리도록, 또 보이도록 하였는지, 그리고 왜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 마저도 수발을 드는 제자들이 보고 들어 익힐 수 있게 하였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례대표로 한번 국회의원 배지를 한번 달았답시고 기레기 종편방송에 하루가 멀다 하고 튀어나와 다음 총선에 자신이 다시 권력의 한가운데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강한 욕망을 온몸으로 뿜어대던 여자는, 파란당의 돈봉투 사건에 대해 마이크를 침 홍수로 막아버릴 정도로 열변을 토해대며 비난을 공세를 높였더랬다.
정작 그녀에 대한 돈봉투 사건이 1년도 더 전부터 경찰에서 수사해 왔고, 심지어 파란당의 돈봉투 사건과 똑같이 적나라한 그녀의 대화 내용들이 녹취로 보관되어 있고, 직접 그녀에게 돈을 뜯겼다(?)는 이들의 자백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 무섭게 그녀는 기레기 종편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빨간당에서 차떼기 당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뒷돈이 오간 지저분한 정치를 스스로 언급하면서 자신들은 당시 법적인 책임을 모두 졌다고 떠들어대는 모양새를 보며, 파란당의 돈봉투를 ‘쩐당대회’라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며, 과연 그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국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유당 때도 아닌데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비난하고 싶은가? 생각해 봐라. 뒷돈을 줘도 받지 않고 그것으로 표를 던지지 않고 선관위나 검찰에 고발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바보가 돈을 뿌리겠는가? 왜 당신은 돈 안 주냐며 기웃거리니 그 짓이 반복되는 것 아니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