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보는 것이다.

당당하지도 못하면서 잘못을 사과할 줄도 모르는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並爲仁矣.”
曾子가 말씀하였다. “당당하구나, 子張이여. 함께 仁을 하기 어렵도다.”
至聖先賢半身像_冊-015-顓孫師.jpg 자장(子張)의 초상화

이 장에서는 바로 앞의 자유(子游)가 했던 자장(子張)에 대한 평가에 이어 증자(曾子)가 자장(子張)을 평가하고 있다. 자장(子張)의 입장에서는 뼈가 아플 수도 있는 것이, 다시 인(仁)을 함께 하기 어렵다는 완곡하지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그저 인(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했던 자유(子游)의 평가는 모두가 그 높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니 그런가 보다 하며 넘길 수 있겠지만, 증자(曾子)의 표현은 대놓고 함께 인(仁)을 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표출되거나 지향하는 바 자체가 달랐다고 구분하는 것이기에 뼈 때리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자하(子夏)는 29살이었고, 자유(子游)는 28살이었고, 증자(曾子)는 27살이었으며, 자장(子張)이 가장 어린 25살이었다. 굳이 다시 공자가 세상을 떠나던 시기의 나이를 정리한 것은 그들의 젊은 시절, 가치관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시기가 공자의 말년이었다는 점이고,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이 처음 시작에서부터 가진 천성과 습관은 평생 그 학자의 색깔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두 고만고만한 또래였던 터라 네 사람이 친구처럼 지냈다고는 하지만 지금 지적당하는 자장(子張)이 가장 막내였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두 살이라도 많았던 형들이 보기에도 자장(子張)의 내적인 부족함은 결코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도드라졌던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정도로, 공통적인 지적을 받고 있다.

search.pstatic.jpg 증자(曾子)의 초상화

이번 장에서 증자(曾子)는, 앞서 자유(子游)가 그나마 자장(子張)을 인정했던 부분조차도 비판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것이 바로 ‘당당(堂堂)’이라는 표현인데. 이는 현대어의 당당하다는 의미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주자가 이 표현을 어떻게 풀이하여 이 장의 의미를 해설하였는지 먼저 살펴보자.


‘堂堂(당당)’은 용모가 훌륭한 것이다. 외면만 힘쓰고 스스로 높은 체하여, 도와서 인(仁)을 할 수 없고 또한 남의 인(仁)을 도와줄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주자의 주석에 의하면, 앞서 자유(子游)는 그나마(?) 완곡하게 자장(子張)이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충실하고 결백한 행동을 실천했던 것의 의미조차, 그 행동이 지나치게 높기만 하고 진심을 보이는 성의(誠意)가 부족하므로 仁에 이르지 못했다고 논평한 것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주자가 ‘외면’이라 설명한 부분은, 얼굴의 생김새나 외모가 출중한 것을 한정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 있어 보이는(?) 행동거지들을 지칭한 것으로 실질적인 진심이 느껴지는 행동이 아닌 것을 비판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증자(曾子)가 보건대, 자장(子張)은 용모가 장중하고 훌륭해서 그 속내까지 읽어낼 수 있는 측근이나 친구가 아닌 남들이 보면 마치 자만하는 것으로까지 보일 수 있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와 더불어 서로 도와 인(仁)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증자(曾子)의 이러한 비판을 다시 바꿔 말하자면, 가장 가까이에서 자장(子張)과 함께 먹고 자고 공부했던 증자(曾子)의 눈에는, 그가 내면보다 외관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이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스승의 본래 가르침에 의거하여 자신은 그와 같은 방식에 동의할 수 없기에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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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러한 앞뒤 정황을 문헌을 통해 모두 공부하고 이해한 범씨(范祖禹(범조우))는 이 장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자장이 외면은 有餘(유여)하였으나 내면이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문인들이 모두 자장과 함께 인을 하는 것을 허여(인정) 하지 않은 것이다. 공자께서 ‘강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한 것이 인에 가깝다.’ 하셨으니, 차라리 외면이 부족하고 내면이 유여하면 거의 인(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주석에서 인용한 ‘剛毅木訥, 近仁.(강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한 것이 인에 가깝다.)’이라는 공자의 언급은 앞서 ‘자로(子路) 편’에서 강조된 가르침으로, ‘近仁(인에 가깝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새겨야 한다. 다시 말해, 剛毅木訥 자체가 바로 仁이라고 지칭할 것은 아니겠으나 仁에 가깝다는 표현으로 대신한 것이다.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설명했던 그 네 가지 항목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풀이하여 부연하자면, 剛은 의지가 강해 물욕에 휘둘리지 않는 것, 毅는 기가 강하고 과단성이 있는 것, 木은 나무처럼 질박한 것, 訥은 말수가 적은 것을 뜻한다. 자장(子張)의 초상을 보더라도 당시의 미적기준에 맞춰보았을 때 그가 얼마나 출중한 미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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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한 바와 같이 외면에 대한 설명이 단순히 자장(子張)의 외모에 대한 부분은 아니라고 하지만 왜 자장(子張)이 그런 비판을 받을 빌미를 제공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역시 바로 앞 장에서 자유(子游)가 지적했던 내용을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남들이 하기 어려운 행동을 과감히 해내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행동의 발원이 되는 의지나 마음에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공부의 발로로 표출된 것이 아니라면 결국 밖으로 보여지는 것에만 경도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신경 쓰기만 하다가는 정작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내 의지나 생각이 갈 길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공자의 본래 가르침도 그렇거니와 그 의미를 제대로 새긴 제자들이라면 당연히 인간을 평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행위의 순수한 동기이며, 진심으로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측달의 감정이었다. 기부행위를 하면서 자신이 백만장자로서 1억 원 이상의 기부를 하는 아너스 클럽에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목적이라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서 없는 이들을 돕는 기부행위를 하는 이를 보기에 부끄러워야 하는 것이 맞다는 이치이다.


물론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존경받고 부러움을 사는 입장이 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라도 기부행위를 하거나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말과 얼굴빛을 교묘하게 꾸미는 ‘巧言令色’으로 점철된 이들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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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이 장의 증자(曾子)도 그러하고, 앞서 자유(子游)도 그러한 친구이기에 자장(子張)이 진정한 성취를 통해 인자(仁者)의 길로 향하라는 의미에서 그와 같은 뼈 때리는 비판은 분명한 선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앞 장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히 세간에 높은 평가를 받는 자장(子張)을 질시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였다면 굳이 이와 같은 한 단계 높은 방식의 조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 시대에 이제 다시 공자학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무리의 막내였던 자장(子張)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자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그것이 지엽말단의 작은 부분이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이 추구했던 인(仁)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마음가짐이라면 더더욱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친구이기에 그리고 같은 스승을 둔 동문이기에 자장(子張)을 둘러싼 여러 동문들의 평가는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후대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막내 자장(子張)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동문 형들의 비판이나 조언이 썩 듣기 좋았을 리만은 없다. 그리고 후대의 기록에도 자장(子張)이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학문의 일가를 이뤘다는 극적인(?) 언급이나 설명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정말로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여 더 겸허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학자로 성장하였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군주를 보좌하는 신하 된 입장에서의 직언은 친구의 조언보다 훨씬 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친구의 경우에는 그가 듣기 싫어한다고 여겨 오히려 더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뼈 때리는 조언을 피해버릴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에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이 도의적인 측면이 강조되겠으나 신하는 군주의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에 대해 바로잡도록 직언해야 하는 것이 책무이고 자신이 녹을 먹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search.pstatic.jpg 이렇게 말하고는 결국 자기 권력 잡겠다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가

내가 늘 강조에 마지않다시피 사회를 올바른 쪽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꼭대기에 있는 군통수권자가 혼자서 깨어있다고 설쳐대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아래에 있는 몇몇이 사회를 바로잡자며 목이 터져라 외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더라도 어차피 밑에서부터 자신들의 무리가 조직의 성격을 결정했다고 설치며 우두머리가 누구냐에 따라 상관없이 자신들이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하겠다고 밀어붙이는(?) 공직사회의 썩어빠진 모습을 검찰을 필두로 외교부, 기재부, 경찰조직, 법원 등등을 통해 아주 여실히 확인한 바 있다.


행정이나 정치은 고사하고 외교분야에 대해서도 정작 영어통역을 하는 것으로 장관직까지 올랐던 여자 장관을 패싱 했던 당시 외교부 무리들은 지금 국회의원을 겸직하며 대통령이 외교무대에서 말실수를 해도 바로 옆에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후안무치함을 드러내는 정치꾼을 수장으로 두고서도 특별히 해외공관에서부터 국내 본부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부정을 가리는 데에만 급급할 뿐 대한민국 국민들을 해외에서 보호해야 하는 본분이나 다른 나라의 월권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고쳐나가려는 노력 따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빨간당 대변인이라는 국회의원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대통령의 헛발질을 무마해 보겠다고 한국언론 잡아 누르듯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주어가 생략된 것이었을 뿐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와전된 것이다.’라며 어쩌고 헛소리를 해대고 그 말에 혼자서 떠들면 힘이 죽는다고 곁에서 변죽까지 울리던 목소리 큰 여자 국회의원까지, 녹취록 공개로 개망신을 초래했다.


일곱 살에 이민 가서 미국의 시민권자로 한국국민이라고 할 수 없는 88년생 도쿄지국장의 녹취록 공개는 그야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실과 여당에 대한 일침에 다름 아니었다. 대부분 진실을 호도하거나 자신이 뒤에서 옳지 못한 일을 꾸민 자들일수록 구체적인 증거나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지적하지 못하고 뭉뚱그려 대강 말하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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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신문의 소위 ‘대기자’라는 직함을 쓰는 자의 칼럼에 대놓고 ‘대통령의 의도는 아마도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라는 웃지 못할 워딩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서 그가 비난한 파란당의 외교 안보식견 수준을 언급하기 전에 스스로의 직함에 어울리는 표현을 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도대체 어느 나라 언론에서 자국에 굴욕적인 자세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말실수를 두고, 정작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도 않았는데, 그 속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포장하고 변호한단 말인가? 그것이 언론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자가 할 행위란 말인가? 그것이 대통령실과 여당이 죽도록 외쳐대는 국익에 부합한 기레기 언론의 충성이란 말인가?


일곱 살에 어머니와 이민 가서 2011년에 시민권을 획득한 도쿄 지국장은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미국이라서 자국의 국익을 위해 그 녹취록을 깠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기레기종편을 끼고 있는 기레기 언론이고 저마다 이미 정치판에 그렇게 귀여움을 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단 선배의 전철을 밟고 싶은 사리사욕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자신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서 더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금기라는 것을 알지 못하겠는가?


백악관 현지에서조차 기자가 ‘대한민국을 도청한 사실에 대한 미국의 정식 사과나 입장표명을 들었는가?’ 혹은 ‘향후 그런 행위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약속 같은 것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음에도 기레기 종편이나 신문에서 그 부분을 언급하는 진짜 기자는 보이지 않는다. 국제 정세 뉴스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이번 사태는 얼마 오래지 않았던 오바마의 독일도청에 대한 정식 사과와 그것을 이끌어낸 메르켈 총리의 강력한 항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search.pstatic.jpg 이 그래프대로라면 이전 정부의 성과가 어마어마 한 것이란 도식이 성립하나?

넷플릭스가 투자를 한다는 것인지 투자를 받아온다는 것인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파란당의 정신 나간 아줌마 국회의원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손치더라도,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칼잡이 대통령이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그간 한국 콘텐츠가 투자대비 회수 성과비가 엄청나게 좋다는 결과를 그들에게 각인시킨 결과일 뿐이다.

그걸 모르는 관계자들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마치 그걸 칼잡이 출신 대통령이 일궈낸 외교 성과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기레기 언론의 첫 현지뉴스에서부터 그들이 손에 쥔 성과라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일천한 것인지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지 싶다.


자장(子張)은 그나마 외견으로 사람들에게 있어 보인다는 평가라도 받았는데 동문들에게 제대로 하라고 지적받았다. 하고 다니는 꼴조차도 인정받지 못하는데, 연이은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할 줄도 모른다면 누가 그를 끝까지 따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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