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다른 말로 '책씻이'라고도 한다. 한자로 쓰면 세책례(洗册禮). 한국 고유의 풍습인데, 옛날 서당에서 글을 가르칠 때 학동들이 책 한 권을 다 배우면 학동들이 훈장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간단한 음식과 술 등을 마련하여 훈장을 대접하는 작은 행사를 말한다.
어제로 아침마다 연재하던 <논어> 읽기 공부가 끝이 났다.
498장이나 되는 <논어>를 매일 아침 한 장씩 풀이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이 거대하고 고된 작업을 매일같이 2년 동안이나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브런치를 시작했던 2년 전 5월 말, 본래 의도했던 <채근담>을 현대인들에게 편하게 풀어 일상의 에피소드로 재해석하여 소개하는 작업을 조금씩 적어나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그 사소한 출발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채근담>을 시작하기 전에 동양고전의 대명사 <논어>의 널리 알려진 문구들을 가볍게 시와 에세이 중간정도의 무게로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논어>의 첫 편이던 '학이편'의 마지막 장이 하필이면 첫 <논어> 읽기의 사소한 첫 발이었다.
이미 그 처음을 기억하는 이들이나 찾아본 이들조차 브런치를 떠나거나 공부를 작파하고 제 갈길을 간 터라, 알 리도 궁금할 리도 없겠으나 그렇게 시작된 글은 가볍게 A4 1~2장 정도의 가벼운 글이었다.
그렇던 것이 백일을 넘어가고 해외 대학으로 나가는 것이 결정되고 자의 반 타의 반 홀아비 생활을 타국에서 하게 되면서 원문과 번역을 정식으로 소개하고, 그간 수백 권이나 나왔던 해설서의 오역이나 말도 안 되는 오독을 바로잡고 논란을 정리해 주고 마지막에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풀이하는 방식으로 A4 4장의 분량의 최종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렇게 1년 반정도를 매일 아침 집필하게 되었다.
어제 마지막장까지 공부를 끝내고 우연히 검색하는 과정에서 고대에서 철학으로 석사까지 마치고 하버드에 가서 동아시아 사상사로 학위를 받은 모 교수의 3년 전쯤 했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한겨레 신문에서 2년간 <논어>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그와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시선을 끌었던 것은 그가 왜 <논어>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의 내용이었다.
그는 <논어>를 일반인들이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에세이로 형식으로 쓰는 것 외에, 정식으로 전공(?)을 살려 내용에 담긴 시대적 배경이나 콘퍼런스는 물론,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해석과 기존의 해설서들이 잘못 번역하거나 오독했던 부분을 나름 바로잡는 형식으로 10권 이상이 될지도 모르지만 1년간 매년 당시 꾸준히 출간하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겨 있었다.
A4 4장의 형식을 기준으로 보면, 내가 매일아침 한 장씩 해왔던 <논어> 읽기 공부는 한 달에 두꺼운 단행본 1권이 완성되는 분량이다. 그러니까 2년 기준이라면 최소한 24권 정도의 어마어마한 시리즈의 사상초유 <논어> 완독 버전이 나온다는 말이다.
물론 이 거친 연재글을 모두 그대로 활자화하지 않고 다듬는 대대적인 수정작업들로 인해 분량은 20여 권으로 줄어들지도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모 교수가 10개년 계획으로 당찬 포부를 밝힌 일을 2년여에 걸쳐 나는 겨우 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비슷한 생각과 구상을 한 전공자가 또 한 명 있긴 했구나 싶어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후한 원고료를 제시하며 칼럼으로 연재하자고 시작한 일도 아니기에 통장에 원고료가 따박따박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원고 기한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안부를 빙자하여 걸어오는 담당 기자의 전화채근도 없는데, 단 하루의 펑크도 내지 않고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모든 아침에 나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왔다.
돌이켜 생각하건대, 이 글쓰기 작업은 나에게 있어 수양과 같았던 것 같다.
소설가 하루키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원고지 20매(A4 2장이 채 안 되는 분량)를 채우는 자신과의 약속이자 스스로의 루틴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아마도 나는 나 스스로의 루틴을 통해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혹은 머릿속에는 모두 들어있다는 오만대신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남겨 쇼미 더머니 정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얼굴도 한번 보지 못했던 이들이 발검스쿨이라 불리던 <논어> 아침 공부를 오롯이 따라온 이는 이제까지 단 한 명도 없다. 처음부터 응원하며 차곡차곡 공부하던 발검스쿨의 반장도 아내의 암투병을 지켜주기 위해 브런치를 떠났고, 나이가 칠순이 훌쩍 넘어 미국에 살면서 장성한 딸에게 추천까지 하며 열독하며 공부하던 아주머니도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구독을 끊고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딸아이를 둘 둔 중대장도 어느 사이엔가 사라졌고, 나름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수많은 <논어> 해설서를 공부하다가 최고 버전을 만났다며 매일 새벽 첫 장부터 복기하듯 공부하며 따라오던 노년의 만학도 역시 실천의 문제에 부대끼자 스리슬쩍 매일같이 달던 댓글을 멈추고 자취를 감췄다.
가볍게 낙서 같은 글이나 사진 한 장 정도 보는 것도 꾸준히 하기 어려운 현실에, 매일같이 내용도 묵직한데 분량까지 A4 4장이나 되는 긴 글을 공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을 매일같이 써내려 온 사람은 오죽했으랴?
아마도 요 2년간 내가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에 대한 증명은 오롯이 브런치의 글쓰기 공간에 남겨져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첫 편인 '학이편'의 후반 장부터 시작하였던 지라, 진정한 책거리는 어제로 마침표를 찍지는 못할 듯싶다. 아마도 다음 주부터 '학이편'의 남은 십 여편을 채우고 나서야 당당하게 498편을 '전부' 해제하였다고 할 것이다.
10살에 동네 도서관의 서고에서 우연히 손에 잡았던 <논어>를 들고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턱대고 원문을 선비처럼 읽고 외워내려 가던 인연은, 머리가 크고 나서 북한산 기슭에 자리 잡은 서당에서 3년간을 늦은 밤 시간을 쪼개가며 여러 스승을 두고 고문을 배워나갔고, 그것과는 별개로 겨우 혼자서 하는 공부로 수십 년을 한 끝에 겨우 고문을 더듬거리며 읽을 수 있는 문턱에 겨우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남은 '학이편'의 글을 마치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년의 시간이 꽉 채워질 듯싶다.
처음부터이든 중간이든 아니면 최근에 합류했든 발검스쿨의 학도로서 함께 글을 읽고 공부해와 주었던 이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결코 쉽지 않은 2년간의 작업을 매일 아침 차곡차곡, 묵묵히 해왔던 나에게 정말로 수고했다고, 전공 교수조차 10개년 계획으로 아직 시작조차 엄두 내지 못한 그 힘겨웠던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완성한 것이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결산보고(?)를 하고 다음 주부터는 다시 <논어>의 첫 장으로 돌아가 마지막 남은 숙제를 마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