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되었을 때, 그리고 몇 백일이 되었을 때, 그리고 1년이 되었을 때만에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더랬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즈음은 <논어 읽기>도 그렇고 <어른들을 위한 위인전>도 그렇고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그저 담담한 생각을 남기는 가벼운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가볍다고는 하지만, 매일같이 글을 쓰기 시작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거친 일필휘지를 던지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글을 매일같이 그것도 다른 이의 글을 읽고 관련 서적들까지 읽어가며 생각을 정리하여 쓰는 글이 본업과 상관없이 연재된다는 것은 전문 글쟁이에게도 큰 부담인 것만은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렇게 100여 일을 지났을 즈음 여름을 보내고 본의 아니게 해외 홀아비 생활을 하면서 오롯이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주어지면서 강의와 연구 외에 다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중량 치기라는 이름으로 시리즈를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하루에 A4 20장에 이르고 주말까지 연재를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양질의 글이었는지는 자부할 수 없겠으나, 분량만으로 보면, 1주일에 두꺼운 300페이지가 넘는 단행본을 한 권씩 출간할만한 초고였음에는 그만한 시간과 공을 들였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연재를 요청받고 거액의 게재료를 받는 칼럼 시리즈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자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실어내면서 가장 먼저 그 글을 읽는 독자이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은 참으로 분명했더랬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진정한 정치(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를 글로 해보려고 했지만 역시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내 맘 같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배우는 결과를 얻고 말았습니다.
요즘 많이 변질(?)된 브런치를 보면, 많이 읽히는 브런치북이랄 것이 자신의 이혼이야기를 거칠 게 이혼일기로 써 내려간 글들이 대부분이거나 맞춤법조차 제대로 정돈하지 않은 낙서글이나 시라는 이름으로 가져다 부친 차마 라이킷을 누르기조차 민망한 수준의 글들이 적지 않음을 보며 이곳을 정리할 때가 된 건가 싶은 생각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내가 보기에 부족하기 그지없다고, 비난하거나 폄하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배운 자가 해서는 안될 마음가짐이라 배우고 가르쳐왔기에 그것은 그저 다른 것일 뿐 틀리다고 할 권리나 권위는 저에게 없음을 잘 압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말보다 높은 언성과 주먹이 먼저 튀어나오는 다혈질인 철부지라 세상은 여전히 눈에 차지 않고, 그 세상을 좀먹는 것들이라 판단되는 것에 있어 도무지 타협이라는 것을 할 줄 몰라 같은 침대를 쓰는 분에게 늘 이렇게 욕을 먹곤 합니다.
"당신의 삶은 아직도, 여전히, 정말 스펙터클 하네요."
물론 비난이고 비아냥입니다.
그렇게 구박을 받고 그렇게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샤워를 당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늘 아침 <논어 읽기>를 통해 다스리고 수양하려고 글을 썼고, 세상에 속고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나를 위해 250여 명의 위인(?)들이 실패했던 인생 이야기들을 스스로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정작 <논어>를 정말로 모든 장을 정독이자 완독 할 줄 모르고 '학이편'의 끝자락에서 시작했던 탓에 지난주에 <논어>를 마쳤음에도 온전한 숙제(?)를 완성하겠다고 '학이편'을 다시 채워나가고 있는데, 이제 열흘정도면 정말로 <논어 읽기>도 마침표를 찍을 듯합니다.
일전에 한번 언급했지만, 글에 공감하고 세상을 함께 바꿔나가자는 메아리가 부족하고 씨가 말라버려 스스로에게 지쳐버려 이제 <논어 읽기> 연재가 끝나면 계속해서 인문학 글쓰기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채근담> 풀어쓰기도 그렇고, 잠시지만 생각하며 계획했던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완성편도 그저 생각뿐인 것으로 접을 듯합니다.
세상에 실망하고, 사람에 실망하여 글쓰기를 대폭 줄여버리긴 하였지만, 그래도 발검스쿨의 학도들이 분명히 있다고 여기고 부족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구독(?)해주시는 1234명의 글지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을 발행하고 나서 알게 되었고, 댓글로 교류하다가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면서 카톡으로 가까워졌던 이들조차 이제는 하나둘 브런치를 떠나갔거나 소원해져 버렸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도 모르지만 소원해지다 못해 차단을 누른 이들도 몇 명 있기는 했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단 한 사람도 구독하지 않지만, 나를 스쳐 지나갔던 이들의 모든 글을 읽고 그들의 글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고 그렇게 사람을 알아갔습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알고 파악하고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정말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만나서 교류하는 것도 아니고 글만으로 그러기에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 시간의 법칙이니 뭐니 떠들지만, 브런치를 쓰기 전보다 지금이 아주 조금은 뭔가 더 나아졌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도 해봅니다. 글을 처음 써보는 것도 아닌 글로 밥을 먹는 글쟁이 입장에서도 브런치에 매일같이 장르가 다른 글을 쓰고, (물론 본업상 쓰는 학술논문은 전혀 다른 글쓰기라 차치하고 말이지요) 그것의 첫 독자가 되어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겹지만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출간에 목을 매는 브런치의 많은 이들과는 달리, 사실 제가 처음 출간을 했던 이유는, 내가 쓴 글을 떡제본이나 출력본이 아닌(당시에는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출력이 쉬웠던 시절도 아니었으니까요.) 깨끗한 단행본으로 읽고 싶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만큼 내가 쓴 글을, 내가 가장 먼저 독자로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내왔던 2년간이었습니다.
덤으로 라이킷을 넘어 댓글을 통해 공감한다고 그리고 위로받았다고, 그리고 덕분에 제대로 된 공부를 한다고, 그리고 사소해 보였던 것들에 숨어있는 의미를 배우게 되었고 댓글을 달며 소통해 주신 분들에게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었다고 꼬옥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신기하고 특이한 케이스라 하던데...
브런치를 하지도 않으면서 제 하루 글의 절반이상을 네이버와 구글을 통한 검색만으로 들어와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우연히 쑤욱 찾아왔다가 브런치까지 알게 되었다고 하니 감사의 인사를 남기긴 해야 하겠네요.(사실 이건 카카오가 저에게 감사해야 할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발검무적이 누구인지 제 지인은 브런치의 제 글을 알지도 못하고 우연이라도 읽고서 저를 유추해 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니 추적(?)당할 일도 이제까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는 이들에게 내 글을 읽으라며 브런치를 소개하고 구독자를 늘리는 행위는 최소한 저에게는 불필요하거니와 낯부끄러워하지 못할 짓이거든요.
그러니 지금까지 제 브런치의 글을 읽어준 여러분들은 모두 저와 일면식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남을 가졌던 것은 지금 부인의 지병 때문에 브런치를 떠난 발검스쿨의 반장, 단 한 사람뿐이었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어떤 일면식도 없이 글로만 만난 사이인 셈입니다.
매일같이 필사를 하라고 해도 팔이 아파서 못할 정도의 분량을 2년간 꾸준히 해온 이 무지막지한 발검무적에게 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참으로 수고했다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그리고 늘 기다리며 재미나게 읽었고 읽으며 눈물 흘렸고, 웃었으며 함께 분노하고 기뻐했노라고,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제일 먼저 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