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와 공경을 갖추고 범죄를 행하는 자가 있던가?

근본이 갖춰지지 않은 자, 그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by 발검무적
有子曰: “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有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무니,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서 亂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다. 君子는 根本을 힘쓴다. 근본이 확립되면 仁의 道가 생겨나니, 孝와 弟는 아마도 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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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두 번째 장에 바로 등장하는 인물이 공자가 아닌 有子라는 인물이라는 점에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유자(有子)라는 인물은, 노(魯) 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인 유약(有若)으로, 그 자(字)는 자유(子有)이다. 공자보다 13세가 적었다는 설과 33세가 적었다는 설이 있다.

여기서 주의해서 살펴야 할 부분은, <논어(論語)>에서 공자의 제자들을 지칭할 때는 주로 자(字)를 썼는데 증삼(曾參)·유약(有若)·염유(冉有)·민자건(閔子騫)을 극존칭을 사용하여 증자·유자·염자·민자라 지칭한 경우가 무려 각기 17회, 3회, 3회, 1회나 있다는 사실이다. 대개 이와 같은 극존칭은 자신의 스승의 이름이나 자(字)를 함부로 칭하지 않는 유학적인 전통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논어(論語)>가 증삼(曾參)과 유약(有若)의 제자에 의하여 편찬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요 논거가 되기도 한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효와 제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복습이자 재생산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먼저 그 가르침에 대한 주자의 풀이를 살펴보자.


유자는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은 약(若)이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효’라 하고, 형과 어른을 잘 섬기는 것을 ‘제(悌, 제)’라 한다. ‘犯上(범상)’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범함을 이른다. ‘鮮(선)’은 적음이다. ‘作亂(작란)’은 悖逆(패역)하고 다투고 싸우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능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하면 그 마음이 和順(화순)해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이가 적으니, 반드시 亂(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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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 기본적으로 다루는 개념은 바로 효(孝)와 제(悌)이다. 부모를 잘 섬기고 주변의 형과 어른들을 잘 섬기는 것, 이른바 아주 작지만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할 수 있는 실천의 범위에서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을 비유하는 것에 가장 큰 범위라고 할 수 있는 난(亂)을 언급하는 것은 그야말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강조되었던 공자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표방하고 있다.


굳이 충(忠)의 개념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결국 충(忠)의 기본도 효제(孝悌)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강조했던 공자의 가르침은 이 설명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윗사람에 대한 마음가짐은 부모를 대하고 형을 대하며 집안과 주변의 어른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그 기초에서부터 제대로 다져졌다면 위로 올라거든 그 범위가 더 확장이 되든 간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핵심으로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것을 유약(有若)은 ‘근본(根本)’이라는 용어로 규정하고 배우는 이들의 목표지향점인 군자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으로 그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하며, 그것을 확립하게 되면 비로소 仁의 道가 생겨난다고 하며 그 근본이 孝와 弟임을 강조한다.


이 가르침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務(무)’는 힘을 專一(전일)하게 쓰는 것이요, ‘本(본)’은 根(근)과 같다. ‘仁(인)’은 사랑의 원리이고 마음의 덕이다. ‘爲仁(위인)’은 行仁(인을 행함)이란 말과 같다. ‘與(여)’는 의심하는 말이니, 겸손하여 감히 단언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는 모든 일에 오로지 그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그 도가 저절로 생겨난다. 윗글에서 말한 바 ‘孝弟(효제)’는 바로 이 仁(인)을 행하는 근본이니, 배우는 자들이 이것(효제)을 힘쓰면 인의 도가 이로부터 생겨남’을 말한 것이다.

search.pstatic.jpg 유약(有若)의 초상

굳이 <논어(論語)>에 실린 순서대로 가르침의 우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첫 번째 장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공부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두 번째 장에 공자의 입에서 나온 가르침이 아닌 제자 유약(有若)의 입을 통해 나온 가르침임에도 불구하고 <논어(論語)>의 두 번째 장에 실리게 된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태어나서 처음 대하는 윗사람인 부모에서부터 시작하여 형과 어른들로 확장되는 웃어른들에 대한 효제(孝弟)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더 확장되고 높이 올라가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이 가르침에서는 명확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효제(孝弟)의 마음가짐과 공부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난(亂)을 일으킬 수가 없다는 설명인데, 이것은 반대로 설명하자면, 난(亂)을 일으킨 인물들은 모두가 효제(孝弟)라는 기본을 배우고 익히지 못한 기본부터 엉망인 인간이라는 설명을 성립하게 한다.


이 필요충분조건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정자(伊川(이천))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개념과 내용을 정리한다.


“효제는 순한 덕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어찌 다시 常理(상리)를 거스르고 어지럽히는 일이 있겠는가. 덕은 근본이 있으니, 근본이 확립되면 그 도가 충만하고 커진다. 효와 제가 집안에 행해진 뒤에 인과 사랑이 남에게 미치니, 이것이 이른바 ‘친한 이(친척)를 친히 하고서 백성(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을 행할 때에는 효제를 근본으로 삼고, 본성을 논할 때에는 인을 효제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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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정자는 초심자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을 혹자(或者)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문답을 통해 효제(孝弟)가 왜 인(仁)의 근본이라 칭해지는지에 대한 논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준다.


혹자가 “효제가 인의 근본이 된다 하였으니, 이것은 효제로 말미암아 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까?” 하고 묻자, 나(이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아니다. 인을 행함이 효제로부터 시작됨을 말한 것이다. 효제는 인의 한 가지 일이니, 〈효제가〉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이른다면 괜찮지만, 이것이 인의 근본이라고 이른다면 불가하다. 인은 본성이고 효제는 용이다. 性(성) 가운데에는 다만 인 · 의 · 예 · 지 네 가지만 있으니, 어찌 일찍이 효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인은 사랑을 주장하고, 사랑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효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말장난같이 들릴 수 있겠으나, 효제(孝弟)를 하는 것만으로 인(仁)에 이를 수 없다는 설명은 초심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자의 설명을 결과론적으로 정리하자면, 효제(孝弟)가 근본인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모든 기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님을 강조한다. 즉, 기본으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은 효제(孝弟)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그 두 가지만으로 근본의 전부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에서 효제(孝弟)를 근본이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도 부연하면서 그중에서도 강조함에 지나침이 없는 개념이라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주 기본적인 가르침을 풀어놓은 것 같지만, 이 두 번째 장에서는 이미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인 효제(孝弟)에서부터 군자(君子), 인(仁), 도의 근본(根本) 등의 설명은 물론이거니와 그 성취의 과정에서부터 왜 그런 과정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까지 모두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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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배우고,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대한 거대하고 애매모호한 담론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논어(論語)>의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을 통해 아주 명료하고 간단하게 규정하고 정리하며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작업을 거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굳이 인(仁)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원문에서 강조한 ‘근본(根本)’이라는 단어는, <논어(論語)>의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간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은 파장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근본이라 함은, 곧 모든 일의 기본이 되는 연원(淵源) 임을 뜻한다. 주석에서 비유까지 섞어가며 상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이는 모든 일의 기초작업이자 그것을 거치지 않고서는 시작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의미한다.


굳이 그 뻔하고 당연한 것을 이렇게 공부의 첫머리에 규정하고 강조하는 데에는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지적되고 있는, 바로 그 누구나가 알고 있고 당연한 부분을 현실에서 실행하고 실천하고 있지 않음으로 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원문에서 가장 심각하고 커다란 잘못이랄 수 있는 ‘반란(反亂)’을 사례로 들어 강조한 것은 그것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그저 과장한 것이 아니라 그즈음의 역사를 통해 명확하게 입증된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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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신뢰를 바탕으로 뭇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모범이 되는 이들이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것이 정치라는 분야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정치를 하겠다는 자들은 봉건제를 지나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로 국민들의 신임을 받아야 정치를 행할 수 있다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그 간사한 입에 ‘국민을 위해’, 혹은 ‘국익을 위해’라는 참람된 거짓말을 당당하게 담아낸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존경에 마지않는 인물이라서이거나 모범이 되는 이들이라서거나 진정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뒤로할만한 자들이라 믿는 국민들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곁에서 보좌하며 입에 풀칠하는 자들이나 그들과 이익을 공유하거나 그들과 이익을 함께 한다는 공동된 입장이기 때문에 공범(?)이 되어 그들이 정치행위를 할 수 있도록 모종의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쓰레기처리장이나 동물 화장터를 만든다고 할 때 자신이 사는 곳에 해당 시설들이 들어선다는 말만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자신들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며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피켓을 들고 나오는 자들은 바로 국민이라는 탈을 쓴 공범들이다. 그들은 해당 시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우리나라를 위해 어떻게 개선되어 설치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저 내가 사는 곳에 설치되어 나의 이익에 위해를 가하게 되지 않을까만이 주요 관심사일 뿐이다.


병원에 가면 의사와 간호사가 협업을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진료행위나 병원을 운영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심지어 119 구급대에 포함된 구조사들에 이르기까지 서로 간의 이익을 혹여 침해받을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은 파업을 입에 담고 거리에 뛰어나와 정부와 국민들을 겁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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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원칙대로 준법투쟁을 한다는 말을 간혹 듣게 된다. 그 의미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본래 법대로 다 지키면서 일을 하게 되면 현장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제까지 서로 간의 암묵적 동의로 인해 양해하던 그 불법의 범위를 용인하지 않겠다면서 법대로 규정대로 일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딜의 대상으로 하지 않고 그저 법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논의를 통해 수정해 나아가야 하고 현실에 법이 유리되지 않도록 적용시켜 나아가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제까지 그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부분을 용인해 주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대로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그것을 트집 잡아 준법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의 곤란함을 당장 느끼게 해 주겠다는 양아치들의 겁박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 근본(根本)을 논하는 이 장을 풀이하면서, 왜 저마다의 직업군이 갖는 이익을 챙기겠다고 으르렁거리며 파업이니 준법투쟁을 하겠다는 자들에게 회초리를 드는지가 의아한가? 그들에게 근본이라는 것이 갖춰져 있다면 그따위 짓을 감히 감행할 것인가? 그들의 부모가 지금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데, 본래 의사가 해야 할 일과 간호사가 해야 할 일이 법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니 하지 않겠다며 그들이 팔짱을 끼고 딜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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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대의명분이 뭐가 되었든 간에, 그들이 효제(孝弟)를 포함한 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는 자들이라면 이와 같은 방약무인(傍若無人) 한 짓을 감행하며 감히 정의(正義)를 입에 담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불편하게 들리는가? 그 이유는 당신도 그들의 범위에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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