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의 법칙
지난주 지인이 급하게 법률상담을 요청해 왔다.
문의해온 내용은 간단했다.
3대가 여름휴가를 다녀왔는데, 장난꾸러기 손주가 까불며 놀다가 할아버지의 고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깨 먹은 일이 발생하였는데, 마침 해외여행자 보험을 들어서 갔기 때문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청구했더니 보험사에서 다음의 사유로 면책, 즉,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피보험자와 세대를 같이하는 친족(민법 제777 조규정의 범위와 같습니다) 및 여행과정을 같이 하는 친족에 대한 배상책임은 지급하지 않는 사유에 해당한다.
지인은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나는 정작 그가 들고 온 보험사에서 내민 위의 문구에 흥미가 갔다.
약관이나 법령 같은 경우, 법률적인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국어학적인 지식이 생각보다 아주 중요하다. 조사 하나에 따라 틈새를 파고들어 '등'이라는 한 글자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누구처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801043
그래서 법제처에서는 법령의 문구가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야든동, 본래의 사안으로 돌아와 보면, 결국 위 문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어학적으로는 '및'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고 문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법률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은 '및'을 사이에 둔 '친족'이라는 용어가 같은 의미로 왜 두 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먼저, '및'에 대한 국어학적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둘 이상의 체언을 나열할 때 맨 마지막 체언 앞에 쓰여 '그리고', '그 밖에', '또'의 뜻을 나타내는 접속 부사. 주로 법령, 공문, 약관, 논문 등 문어체에서 쓰인다.
여기서 혼란이 올 수 있는 것이 영어로 'and(그리고)'로 볼 것이냐? 'or(또는)'로 볼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그리고(and)'로 볼 경우에는 앞과 뒤가 모두 부합해야 하는 경우로 해석될 것이고, 'or(또는)'로 볼 경우에는 앞과 뒤를 별개의 경우로 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 통화를 했던 금감원의 젊은 보험감독관도 혼란스러워했던 것처럼 '와'나 '과'가 '및'과 같은 의미라고 해석하여 '사과와 배'처럼 '사과 및 배'라고 쓸 수 있다고 자신의 무지를 상식이라고 우기는 뻘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어학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그 부분을 명쾌하게 비교 정리한다.
조사 '과/와'와 비슷한 면이 있으나, '과/와'가 and와 with를 모두 뜻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및'은 오로지 and만을 뜻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과/와' 대신 '및'을 쓰면 중의성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및'은 '와/과'와는 비슷한 듯 하지만 두 표현 모두 '또는(or)'으로는 사용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및’은 개념적으로 ‘그리고’의 뜻으로 풀이되어 있어 연결한 양쪽 성분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 국어학적으로 맞다. 예를 들어, '결석으로 처리되지 않으려면 학생의 입원 및 치료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문장에서와 같이, 결석으로 처리되지 않으려면 '입원과 치료' 모두에 해당되어야 한다고 해석된다는 의미로, 둘 중의 하나를 결격한, 예컨대, 입원하지 않고 통원치료를 했다면 결석의 면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의 약관을 법률적인 상식을 탑재하고 다시 꼼꼼히 살펴보자.
및을 사이에 두고 전면에는 '피보험자와 세대를 같이하는 친족(민법 제777 조규정의 범위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여행과정을 같이 하는 친족'이라고 구분하여 삽입된 두 경우가 있다.
앞부분의 세대를 같이하는 친족은, 너무도 당연히 같이 사는, 그러니까 법적으로 세대를 함께하는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같은 동거가족을 의미한다. 그런데 뒷부분을 넣게 된다면 친족이면서 세대를 분리하여 이 살지 않아도 여행을 같이 갔다면 적용되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을 넣은 셈이다.
여기서 너무도 당연한 법률적 상식이 필요하다.
만약 보험사의 주장대로 같이 사는 친족이어도 보장을 안 해주고, 같이 살지 않아도 친족이면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굳이 구구절절이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면서 '및'이라는 용어를 구사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한 마디로 '친족 간에는 배상책임이 면책된다.'라고 하면 끝날 부분을 왜 굳이 두 가지로 나눠서 콕 짚어 설명했을까?
이미 눈치챘겠지만 본래의 이 약관 제정의 의미는 앞서 살펴본 국어학적으로도 그러하듯이 두 가지의 경우를 모두 포함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의미로 설정된 것이다. 다시 말해, 같은 집에 살면서 여행을 함께 떠난 가족만이 면책대상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이는 매일 같이 먹고 자는 가족들이 실제적인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보험을 악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꼼수 약관에 다름 아니다.
어차피 괄호 열고 민법 777조까지 들먹일 정도였다면 그냥 친족끼리의 배상책임은 보험사에서 지지 않는다라고 하면 그뿐인데, 그러면 가족 간에 운전하다가 서로 차를 들이박을 수도 있는데 그 보험과 형평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소한의 범위로 함께 사는 사람들까지만이라도 교집합을 넣어 청구할 수 있는 범위를 최소화하겠다는 보험사의 구질구질한 꼼수가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설명을 거두절미하고 보험사의 변명이 헛소리라는 결론만 챙겨간 지인은 내 의견을 등에 업고 금감원까지 언급하며 보험사에 큰소리를 지르며 결국 보상을 제대로 잘 받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보험사의 손해사정사가 저 약관의 의미를 모르고 처음에 당당하게 그를 약관으로 억눌렀을까?
지난 몇 회의 글에서 등장했던 지하수 펌프를 고치며 먹고사는 이나, 뺑소니 사고를 내놓고 더 큰소리치며 동승하지도 않은 자기 부모의 병원비를 보험사에 청구했던 이나 그들이 과연 진실을 모르고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짓을 벌였을까?
오늘 전화 걸어서 이야기를 나눴던 금감원의 보험감독관마저도 자기 개인적인 생각은 '두 가지 모두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라는 꺼벙한 소리를 해댔다. 내가 까칠하게 한 마디하고 가르쳐주었지만 그는 겸허하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못하고 '제가 모든 약관을 다 알지는 못하고, 그 전후 맥락에 따라서 워낙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게 약관이니까요'라는 엄한 소리까지 해댔다.
모르면, 배움을 청하면 된다. 잘 모르면서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명백한 진리인 양 구는 것은 결국 자신을 헤어 나오지 못한 구렁텅이로 밀어버리는 꼴을 자초하고 말뿐이다.
보험사의 약관은 보험사가 돈을 챙기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험을 가입한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보장을 하기 위해 만들어져야만 한다. 악랄하게까지 보험사의 이익을 챙기겠다면 싸움을 벌이는 자들 역시 퇴근하고 회사를 나오면 그저 일반 서민일 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악랄하고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짓을 하면서 그것이 회사원의 숙명인 양 말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정말로 문제가 없다면, 왜 공업용수나 농업용수로 지들 땅에 뿌릴 것이지 바다가 쓰레기하치장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그런 짓을 하는지 이 정부의 누군가는 설명할 수 있을까?
잘못된 것을 잘못이라 말하고 그것을 고쳐나갈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병든 사회이고 죽어가는 사회일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스스로 잘못한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용인되는 사회는, 그 사회의 리더라는 자가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는 더 지켜볼 가망이 없는 사회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