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7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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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이것은 서양인이 동양인을 봤을 때 일반적인 특징으로 대별되는 것이니 꼭 한국에 한정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인들 중에서도 한국인들은 생각보다 무서운 무표정으로 더더욱(?) 유명한 편이긴 하지요.
굳이 이것을 서양과 동양의 문화차이로 설명해 보자면 파티의 예가 가장 좋겠군요. 파티에 가서 만난 사람들이 원래부터 아는 사람을 만날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초면인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서양과 동양의 문화차이는 극명하게 그 차이를 드러냅니다. 서양인은 초면인 사람들과도 아무렇지도 않고 일상적이고 사교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이른바 스몰토크가 처음 만난 사이에서도 작동되는 것이죠.
그런데 동양인들에겐 이러한 친근한(?) 대화가 스스럼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할 정도로 전혀 모르던 사람과 스몰토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조금은 학술적인 문화인류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개인주의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기 때문에 어느 누구를 처음 만나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누구도 그러한 행위 자체를 가지고 기분 나빠하거나 오해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대화하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 헤어지면 자연스럽게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강한 학습을 통한 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 같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이나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는, 길을 물어보는 것 같은 기본적인 상황을 묻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뜬금없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라는 의미입니다. 더구나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고 거기에 친절하게 대하며 스몰토크까지 시도한다면 정말로 오해받기 십상인 상황이 연출되어 버리는 거죠. 저 사람이 나에게서 무언가 빼앗아 가려고 친절하게 대한다거나 뭔가 나를 해코지하려고 시동을 거는 모양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티에서 초면인 서양인이 자연스럽게 동양인에게 말을 걸면 동양인들은 당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거나 짧게 대답하고 더 이상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최근 젊은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제법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것은 예외일 뿐 기본적으로(?) 동양인, 특히 한국인들에게 모르는 사람과의 초면에 자연스러운 스몰토크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인 셈이죠.
그래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애써 상대방에게 무관심한 척하면서 어떤 우호적인 표정도 지어서는 안 된다고 학습합니다. 친절한 것처럼 행동하면 앞서 말한 대로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오해받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내집단과 외집단을 강하게 구분하는 경계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서로가 웃으면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내집단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게 대한다는 공식 아닌 공식이 성립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집단주의 문화권 사람들은 길거리나 공공장소에 있을 때 주위에 있는 타인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고립된 섬처럼 취급하곤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신체 접촉이 있어도 그것이 경미할 때에는 굳이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격식을 갖춘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라고 학습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상대방도 접촉이 가벼울 때는 그다지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서로 모른 체하고 그냥 지나가는 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눈치채셨나요? 생각보다 오픈 마인드 같아 보이는 서양인들은 오히려 사교적인 가면(?)을 쓰고 적당히 자신이 상대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보이는 악수로 시작해서 스몰토크로 자신이 악당이 아님을, 그리고 적이 아님을 보여주는 문화를 형성한 반면, 동양인, 특히 한국인들은 늘 자신과 흉금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거리의 지인들과의 관계가 아니고서는 사교적인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고 배우고 생활해 왔던 것입니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아주 가벼운 접촉이 발생하더라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반드시 자신의 의견을 표시해야 합니다. 개인주의 문화권 내에서는 그렇게 행동을 하지 않으면 상당한 실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화권에서 개인은 개인으로서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모르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자신의 태도를 명확히 표현해야 한다는 학습과 무언의 동의가 사회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모르는 사람은 투명 인간 취급당하기 일쑤입니다. 따라서 모르는 사람끼리는 서로 모른 척하고 먼저 다가가 친한 척을 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르는 척할 뿐만 아니라 그를 배려하지 않아도 별문제 없다는 암묵적 동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과장이 섞여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한국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 사회에서는,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은 조금 색다른 사람들로 분류됩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교회에서 나와 전도하겠다고 하는 사람이나 ‘도를 아십니까’ 따위의 말을 하면서 접근하는 종교집단 소속의 사람, 그리고 다단계 판매 같은 것을 하는 좀 이질적인 사람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죠.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여러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알든 모르든 자기의 태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학습하고 그 학습 방식을 표출합니다. 만일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라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여 있으면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말을 건네고 자신이 상대에게 적대적인 적이나 악당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야만 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리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그에 반해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아는 사람끼리 있으면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사람이 모여 있으면 서로 쉴 새 없이 떠들어야 하는데 아는 사람들과 같이 있다면 더더욱 조금도 쉬지 않고 그들과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공고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상대에게는 물론 자신에게까지 명확하게 확인받아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감지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 서먹서먹함을 견뎌내지 못하거든요.
집단주의 이론에 의하면, 서로 아주 잘 아는 사이의 경우에는 이미 내집단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에 강한 연대감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굳이 서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입장이나 상대방에 대한 태도를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어떤 대화를 통해 정적을 깨고 친교를 표시하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충분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인들은 밥 먹으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서양인들의 눈에는 아주 강력한 적대적인 태도가 형성되었다거나 그 테이블에는 아주 안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불안하게 여길 것입니다.
같은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의 경우, 한국인의 중간이 없는 사교태도에 상당히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특히 여성의 경우 동성임에도 불구하고 모르고 지낼 때는 아주 차고 무뚝뚝했는데 정식으로 소개하고 나서는 이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갑자기 친한 사람으로 돌변하는 모습이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경악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보기엔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소개를 받고 몇 번 만났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격의 없는 사이만이 할 수 있는 언행을 스스럼없이 보이는 것에 당혹스러워한 것이죠.
이 부분은 다시 한국인만의 독특한 문화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일단 한국인들이 평상시 무표정한 것은 일부러 데드 마스크처럼 하고 다니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 담백함(?)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한국인의 무표정은 다른 감정을 드러낼 필요가 없을 때의 휴식기이지 부러 화가 났다는 표현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만 간과하지 않으면 됩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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