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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21. 2023

한국인들은 왜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싸우나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8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46    


  한국에서 여럿이서 음식을 먹게 되면 그 음식값을 계산하는 사람은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개 나눠서 계산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요즘 젊은 세대들의 경우는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국에서는 함께 식사를 한다는 개념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에 가깝지 않은 사람과 식사를 하게 될 경우 식사를 초청한 사람이 계산을 한다는 무언의 룰이 작용한다거나 남자와 여자가 데이트를 할 경우 남자가 계산을 한다는 묘한(?) 룰 아닌 룰이 적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식사를 하고 나서 계산대 앞에서 여럿이서 돈을 나눠서 내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매우 어색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서양인들이 음식점에서 각자가 먹은 것만 계산하는 것을 보고 꽤 당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답니다. 이렇게 음식값을 각자 자기 것만 내는 습관은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콩글리시로 ‘더치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용어를 국립국어원에서는 ‘각자내기’라는 용어로 번역한 바 있다.) 이 용어는 원래 ‘터치 트리트(Dutch treat)’라는 것으로 네덜란드 사람이 한턱낼 때 쓰는 용어인데 그런 네덜란드인을 경멸한 영국인에 의해 ‘더치페이’로 바뀌어 오늘날의 뜻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잔치를 벌일 때, 음식을 모두 한 상에 차려놓고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그렇게 음식을 같이 먹어놓고 음식값은 따로 계산한다는 것은 오히려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어색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한국인들의 생각입니다. 음식을 같이 나누며 함께 먹는 사이라면 남이 아니라 이미 ‘식구(이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죠)’ 사이가 된 것인데 함께 음식을 공유하는 식구 사이에 돈을 각자가 따로 내는 것은 그야말로 정나미가 똑 떨어지는 아주 매정한 행위라 여겨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냥 공짜로 먹을 수는 없고, 음식값을 누군가가 내긴 내야 하는데 과연 그게 누구여야 맞는 것일까? 여기에는 한국인 사이에만 통하는 무언의 합의가 작용하게 됩니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돈을 내고 안 내고 하는 일이 이미 결정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지요. 우선 가장 먼저 우선시되는 기준은 바로 나이입니다. 한국인에게 나이란 절대적인 우선 기준과 같아서 나이를 가지고 예의상의 아래위를 엄격히 구분합니다. 그래서 여러 명이 같이 음식을 먹게 될 경우, 일단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돈을 내야 하는 의무(?)를 가장 먼저 부여받게 됩니다.


  그다음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직위입니다. 사회적 직위, 조직 내에서의 직위, 그 무리 내에서 그가 갖는 위치가 모두 이것에 해당합니다. 상사(혹은 선배)와 부하(혹은 후배)가 같이 식사를 했을 때 대부분의 경우, 상사에 해당하는 사람이 음식값을 내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그야말로 불문율로 붙여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예외적인 때도 없지 않긴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위 두 가지 기준의 이유에 대해서 외국인들이 묻는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반대의 경우를 상정해 보라고 하면 됩니다. 더 나이가 많고, 사회적으로나 조직 내에서 더 위에 있는 사람이 더 나이가 어리가 위계가 더 낮은 이에게 ‘얻어먹는’ 경우는 차라리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죠. 앞에서 작은따옴표로 ‘얻어먹다’에 방점을 찍은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입니다. 내가 먹은 것을 내가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어로 다른 이에게 얻어먹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지위가 낮은 자는 사회적으로 나보다 약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것은 안될 일이라 여기는 것이 한국의 문화적 정서라는 것이죠.     


  그 다음 기준은 남녀구분인데 물론 이때에도 모든 경우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녀가 같이 음식을 먹을 때 남자가 사는 것이 사회적 통념으로는 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최근 들어 페미니즘과 맞물리면서 묘한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는데요. 여성 동등을 부르짖는 페미니스트들조차 남자와 데이트에 나가서 자신의 지갑을 열려도 들지 않는 것을 합리주의자들이 ‘꼴페미’라고 비난하며 이중적인 여성의 심리를 비판한 것이죠. 사실 남녀의 데이트비용을 남자가 내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라고 할만한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초식남이 즐비한 일본의 경우, 일본 여성들은 데이트 비용을 결코 여자에게 지불하게 하지 않는 한국의 남성의 마초적인 매력에 묘하게 매료되기도 한다는 공식적인 통계도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사회적 위치를 감안할 때, 상위에 있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오래된 유교문화의 영향에 힘입어, 한국에서는 윗사람으로서 해야 할 책무가 분명히 있습니다. 윗사람으로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모종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나보다 어리고 지위가 낮은 이들에게 이른바 ‘대접’이라는 것을 받는 것이 유교문화의 잔재라 당연한 것이 아니라 예의범절을 현대에까지 유지하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해야만 하는 매우 합리적인 권리와 의무의 조화라는 해설이 성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식사비용을 낸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예컨대, 사회적 지위나 위치 등과는 상관없이 만나는 친구나 동창들 간의 모임이 그러하고, 아이들의 학교로 연결된 학부모 모임이 그러하며, 취미를 위해 만난 동호회 모임 멤버 간의 식사도 그럴 수 있죠. 그래서 한국 사회는 더 발전하게 되면서, 식사비용을 누가 낼지에 대한 그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회비’라는 것을 만들어 식사비용에 대한 한 개인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됩니다. 여럿이 식사를 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를 그 모임의 참여자들에게 미리 회비라는 형태로 돈을 거둬서 그 회비로 식사비용을 충당하는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럿이 식사를 했을 경우, 자신의 순번을 놓칠세라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서 몰래 먼저 계산을 하거나, 계산을 할 타이밍이 되었을 때 쏜살같이 계산대로 달려가 먼저 계산을 하려는 한국인만이 보이는 이 독특한 문화의 특징은, 내가 다른 이에게 얻어먹는 신세를 지지 않고 상대에게 베푸는 무형의 빚을 만들어두는 것이 더 편하다는 심리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식사는 식사 자체도 의미를 갖지만 그 식사를 누가 대접했는가가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단순히 식사 비용을 내는 문제를 넘어서 그 식사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상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가 등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한국적 문화의 특이성에 대해서는 다시 ‘마음의 빚’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상세히 논하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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