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솔직히 망해가고 있다는 표현을 쓰는 게 맞을 지경이더구나.
크리스마스이브.
계획하지 않았던 한국행으로 인해 해넘이를 한국에서 하게 되었다.
일요일의 복작거리는 공항에서 쌀쌀한 바람을 뚫고 밖으로 나서고서 엊그제 다시 이곳으로 컴백했다.
한국은 여전했다.
아니 더 암울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일해야 할 배우의 자살 소식에 맘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무슨 인증관례라도 되듯이 정치인에게 칼부림이 이어졌고, 정치엔 관심이 없다고 허접스레를 하던 자가 예의 정치판에 등판했다.
별장에 가서 잠시 묵으면서도 내내 삭아서 손을 봐야지 해야 하던 방부목 데크를, 내가 없는 동안 관리가 편하도록 합성목 데크로 바꾸는 공사를, 하필이면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에 종일 감독하며 확인해야만 했다.
이젠 지난 일이라고 키득거리며 자신들의 반전을 노리고 있을 외교부 감사실과 국제교류재단의 것들에게 해당 채용비리건에 대해 드디어 1시간에 걸친 탐사프로그램의 열혈피디가 제대로 한번 보도하겠다고 취재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소기의 성과라면 성과였다.
https://brunch.co.kr/@ahura/1700
한글날 대대적인 저격보도를 통해 채용비리 사건을 들췄던 장인수 기자는 끝내, 김건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감히(?) 손댔다는 이유로 자신의 회사에서 자발적인 형태로 비자발적인 사표를 내고 부유하고 있었다.
관할이라는 서귀포 경찰서에서 팀장인 경감이, '이건 피의자가 너무 많고 피의 사실이 너무 많아서 우리 팀 전체가 달라붙어도 1년 안에 해결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라며 상위 경찰청에 이송을 요청했더니 9월에 제주경찰청에서 관할을 빌미로 가져갔는데, 제주 경찰청 반부패 수사대에서, 경감은 고사하고 경위도 아닌 경사 단 한 명이 사건을 캐비닛에 넣고 뭉개고 있었다.
그것을 지적하겠다고 국가수사본부에 항의를 했더니 기가 막힌 답변이 돌아왔다.
"해당 사업을 주관하는 국제교류재단이 서귀포에 있으니 관할 문제로 도저히 서울경찰청이나 본청으로 이송이 '지침상' 불가합니다."
내가, '아 그러냐?'고 물러설 이가 아님을 그는 몰랐을 터이다.
"그래요? 외교부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나요? 외교부 본부의 감사실에 제보가 들어갔고, 그 제보가 4개월에 걸쳐 시간을 끌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뭉개졌습니다. 그들은 외교부 인원이 아닌, 검찰과 감사원 특별조사국에서 파견 나온 에이스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윤석열 감사원의 특별조사국에서 방송취재에 못 이겨 3년에 한 번 하는 정기감사결과 보고서에 채용비리가 명백했다고 8월 1일에 보도자료로 배포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외교부 감사실의 인원들에 대해서 직무유기로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그들의 근무지가 어디죠? 광화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채용비리의 실제적인 범죄자들은 심사위원들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삼류대든 어쨌든 대학교수들이 90%이구요. 그들은 95%가 제주도가 아닌 뭍에서 일합니다. 그런데 해당 재단이 서귀포에 있기 때문에 관할이 어쩌고를 따져요? 사건 관련 피의자의 90%가 제주도가 아닌 뭍에 있는데? 게다가 외교부 감사관실의 직무유기 피의자들은 대부분 공수처에서 다뤄야 할 고위 공직자들인데?"
"......"
늘 그렇듯 핵심 폐부를 찔리면 그 대상들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맞다. 내가 한국에 와 있었지.
별장의 스페니시 기와를 정리하는 공사를 굳이 이 엄동설한에 해야 하냐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공사를 진행했는데, 공사 업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여지없이 그들의 바닥을 보여주며 여기저기 잔머리에 눈탱이를 맞출 심산에 눈을 데구루루 굴려댔다.
아, 내가 한국에 들어와 있었지,를 실감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환경부 관련 이슈로 6개월 동안이나 아무런 피드백이 없던 연구사라는 놈이 그러하였고.
정작 외교부 채용비리를 제보받고서도 자기 정치적인 야욕을 버리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기간에도 단 한 마디도 입 뻥긋하지 않고 있다가 버젓이 탈당선언에 정치를 비난하며 자신들이 깨어있는 자라고 마케팅을 하며 내년 총선에 치킨런을 하고 있었으며,
강남 한복판의 경찰서의 담당 수사관이라는 놈이 금품과 향응을 얼마나 쳐드셨는지 1년이 넘도록 사건을 뭉개고 있었으며,
금감원의 조사역이라고 하는 젊은 공무원이 보험사의 규정은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며 헛소리를 해댔으며,
대형 보험사의 대인사고 담당이라는 놈이 그러하였다.
보험사의 센터장에게 담당 직원의 업무 해이와 잘못된 업무를 지적하고 담당을 바꿔달라고 호통치려고 전화를 하자, 그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내 말을 낚아채며 이렇게 답했다.
"오늘 금요일이잖아요. 우리 다음 주면 인사이동입니다. 담당은 물론이고 저도 다른 센터로 갑니다. 그러니까 후임자가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담당자라는 녀석이 소위 대형보험사에서 대인사고 업무의 차장이라는 느기작거리며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놈이 해외진료 부분을 한번도 처리해 본 적이 없다면서 자신에게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던 마지막 날이었다.
녀석은 자신의 근무 마지막날까지 질질 끌다가 그냥 일을 던져두고 도망칠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그래, 내가 한국에 와있었구나.
그렇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시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곳에 돌아오고 짐을 풀면서 아, 편한 내 집에 왔구나. 를 느끼는 이질감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설연휴를 앞두고 검찰 측 증인으로 나쁜 놈을 혼내러 다시 한국을 가게 되는 일정을 조율하면서 내심 걱정스러워지는 것이 조건반사가 아니길 바라본다.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연재하던 글을 그대로 연재하려고 크리스마스 이튿날 글을 한편 올려놓고는 도저히 그 이후의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던 점, 행여 기다리고 있었을 독자에게 양해를 뒤늦게나마 구한다.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인.
어쩔 셈인가, 너희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