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단편소설
“···그런데요. 뭐. 어쩌시라는 건데요? 왜 나한테 이래요?”
“······”
선수를 놓쳐버린 황당함에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렸다. 전화를 걸자마자 수화기너머로 들려온 소리는, 상대방이라고 하는 자의 떠들어대는 말뽄새를 보건대, 옆 사람과 얘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주더라도 생뚱스럽기 그지없는, 혹시나 혼선된 것은 아닌가 하고 전화를 끊을 만한 정도의 것이어서, 날 함구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먼저, ‘여보세요’라 말할 기회를 놓쳐버린 내게, 수화기 저 편의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전화를 잘못 건 것인지 하는 의문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계속됐다.
“···아, 여보세요?”
다시 수화기 저 편에서 내가 원하는, 당연한 흘러나왔어야 할 그 말이 나왔을 때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입을 뗄 수 있었다.
“여보세요? 수고하십니다. 저어, 내일 수영접수 말인데요? 언제쯤인지, 시간 좀 알 수···”
그의 말은 사무적인, 그에게 있어서는 당연한-그만이 가지고 있지는 않은, 이젠 녹(祿)을 먹는 말단 공무원들에게 있어 온전한 것으로 인식되어 버린 아주 고질적인 업무 태도-태도 외에도 그의 자리와 성격을 다분히 재확인시켜주려는 듯한 의도가 녹녹지 않게 섞인 느낌이었다. 아주 불쾌한 전조를 깔고 있는.
“글쎄요. 원래는 1시부터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일찍 한 번 나와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뭐.”
괜찮겠네요. 뭐?
뭐어?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니겠지? ‘뭐’라니?
처음부터 딱히 계획이라고 할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대로 게으른 몸을 추스르며 부러 찾았고, 게다가 내 나름대로 알고 있던 루트를 통해 미리 전화로 확인까지 하는, 평소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준비를 했었다. 나의 이런 준비성에 은근히 자긍심마저 느끼면서 별로 문제 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라 확신했었는데, 그의 대답은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 이전의 치밀함이라고 믿었던 기대를 한꺼번에 모두 앗아가 버려 내게 남겨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사뭇 치도록 방종했다. 파도를 처음 봤던 날, 찝찔한 소금물로 내 발을 휘감아 모두 적시고 난 다음, 비웃듯 사라지는 파도처럼.
물론 그 이전까지 느긋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 최소한 그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젠 와도 소용없어요.”
바로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어제 전화받았던 직원과는 또 다른 어감의, 그렇지만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무례함은 역시 갖춘 듯한 남자가 계속 고압적인 목소리로 뇌까리며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글쎄. 지금은 와도 소용이 없을 거라니까요. 어젯밤부터 밤을 여기서 새운 사람도 있고, 줄이 벌써부텀 완전히 빽빽하게 늘어섰다고요. 1시까지 접수를 시작한다고는 했는데 그것도 어떻게 된 건지 원. 등록과 사람이 그랬었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귀찮아 죽겠다는 말이 수화기 끄트머리에 달려 나오는 느낌.
“전 남잔데요. 남자수영도 그렇게 여유가 없습니까?”
“예? 남자요? 진작 그렇게 말씀을 하셔야... 그러니까... 남자는···”
다시 그가 말을 얼버무리며 멈칫하는 것 같다. 그나마 한숨 돌릴 여유를 남기는구나.
극성스러운 아줌마들이 기다렸다는 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아니면 접수가 안 되는데 그럼, 남자들도 그에 못지않다는 건가? 설마, 남자들이 그 극성을 부리며 수영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추측에서 막연히 던져본 질문이었다. 그게 내 어쭙잖은 예감이라면 예감이랄 수 있었는데, 어느 정도 그가 말끝을 얼버무리며 머뭇거리는 폼으로 보건대 어느 정도 내 예상이 맞아 인원이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속은 탔지만 그런 욕지거리는 생각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욕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한한 것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의 말이 떠올라 저속한 말을 갈무리해 버리곤 다시 머리를 내저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밤을 새울 수가 있지? 단지 수영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그런 극성스러운 여자들이 과연 있기는 있구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가며 수화기에서 다시 그의 말이 사념들을 흩뜨렸다.
“···남자요? 글쎄요. 남자들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지금 서 있는 줄을 보면, 접수하기 아마 힘들 것 같은데요. 뭐, 한 번 와서 직접 보시던가요.”
“원래 접수가 1시부터라고 들었는데요.”
빤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원래 우리들-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사람들. 그런 이들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공적인 기관이 가지고 있어야 할 질서의식 따위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모범 시민적 태도를 기대한 나에게 그의 반응은 단칼에 얼음이라도 벨 기세로 튀어나왔다.
“아니 자기네들이 그렇게 밀어닥친 걸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밤까지 새워가면서 등록을 해야겠다는데···그걸 막아요? 우린 그렇게까진 못해요. 도대체 뭘···”
찰나, 그 짧은 틈새로 언젠가 들었던 조카 녀석의 유치원 등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던 형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화를 받고 있는 당시도 너털웃음을 지어버리고 말았지만, 형수의 불만을 들으면서도 나는 손을 훼훼 내저으며 웃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랬었을 것이다.
어떻게 질서를 말하는 사람들-동물에 반대된다는 개념의-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관이나 시설을 이용하는 신청을 하면서 담요를 가져다가 그 안에 들어가 철야를 각오할 수 있겠냐며 형수의 넋두리에 조소를 던졌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건 뭔가. 게으른 몸을 위해 아침에 운동 좀 시작하겠다는 생각에···, 겨우 얻은 정보를 가지고 수영을 하겠다는데. 결과는··· 이게 뭔가? 결코 우습지는 않았지만 웃음이 자꾸만 입가로 새어 나왔다.
“그렇게···, 정 못 믿겠으면 한 번 와보든가 마음대로 하쇼! 거참!”
남자의 말은 이젠 사무적이다 못해 어눌한 말투로 왜 자신을 귀찮게 구는 것인가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띄며 적의를 내보였다. 이내, ‘거참’ 하고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는 목소리가 멀어지며 수화기를 통해, 난 당신과의 통화를 거부하겠소,라는 기계음만이 계속 중얼거리며 남자를 그 뒤로 사라져 버리게 만들었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물리적으론 짧은, 심리적으로 꽤 긴 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나도 한마디 해준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렇지만, 요즘 부쩍 아저씨처럼 몸이 불어만 가면서도 운동량이 부족해 제대로 작업을 하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고는 겨우 친구 녀석을 통해 알게 된 운동할 기회를 이대로 무산시키고픈 생각은 없었다.
“좋아, 미친 척하고 한 번 가보지 뭐.”
미친 척.
내 행동에 대한 합리화이긴 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특권이란 점에서 난 곧 후회할 말과 행동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비극은 늘 인간이 후회할 짓을 저지르고난 뒤, 그것을 뒤늦게 깨닫는 데 있다.
아침나절의 러시아워가 지난 전철은 그리 밀리는 편이 아니어서 다소 감정적이었던 행동과 이제까지의 사건들에 대해 정리할 여유를 주었다. 무턱대고 나오기는 했는데 무슨 생각에서 이렇게 무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건가 하고 생각하다가 맞은편 검은 어둠 속의 앞에 반사되어 날 보고 있는, 대강 걸쳐 입고 부스스하게 나온 또 다른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홍대입구역까지 기껏해야 15분 정도. 사람들의 모습과 나 이외의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는 아직까지는 남아있었다.
“삼촌이 몰라서 그러시는 거라구요. 요즘 아이들한테 유치원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나 아세요?”
“물론 그건···”
오히려 정색하는 형수의 얼굴은 나에게 뭔가 전하려는 의지가 뚜렷해 보였다. 이제 말을 배우고 겨우 뛰어다니기 시작한 조카 녀석을, 내 생각에는 학교 들어가기까지 아직 3년이나 남은 어린아이에게는 실컷 놀고 충분히 쉬고 잠자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그 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나 있는 조카를 위해 형은 물론이고, 형의 몫까지 대신하며 뛰어다니는 형수의 모습은 가히 희생적이라고 표현하는 데 전혀 지나침이 없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게 내 눈엔 그리 대단한 희생이라기보다 부모와 아이 중 누가 먼저 지치나를 내기하는, 우리나라 교육 도박꾼들이 하는 인내심 싸움으로만 보였다. 누가 먼저 떨어질 것인가? 하는.
최소한 그때까지의 생각은 그랬다. 내가 그날 아침, 식사 전부터 시작해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내내 형수에게 유치원 교육의 중요성을 듣기 전 까지는.
“요즘 이 근처 유치원들이 많은 건 사실이죠. 그러니까 자리가 없어서 못 보낸다는 소리는 못해요. 그 많은 유치원들이 그렇게 모두 넘쳐나는 건 아니거든요. 이건···, 탤런트가 원장이라선지 아니면 뭐가 그리 대단하게 달라서인지, 시설부터 삐까뻔쩍하게 만들어놓고 아예 들어갈 때부터 가입비 받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봐서는 무슨 왕족 보모들이 사는 집 같더라니까요. 어제도 그렇지 않아도 두꺼운 파카잠바까지 입고 10시쯤 나갔었는데 글쎄, 겨우 접수가 바로 제 앞에서 짤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얼마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지···. 형님은 잘 몰라서 그저 대강대강 해두라고 하지만 직접 나가서 그런 광경을 봤으면 그렇게 편하게만 얘기할 순 없을 거예요. 한참 나중에 와서 새치기하곤 원래 자기가 맡아둔 자리라고 우기질 않나. 가관이 아니더라구요. 이젠 어딜 가나 줄을 서도 그렇게 어기는 사람들이 나오긴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얘들 공부 보내는 거니까 그러지 말았으면 싶은데 정말 못할 짓이라니까요. 삼촌이 글을 쓰시니까 하는 말이지만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올바른 생각으로 제대로 행동하면서 살아가나요? 하긴, 그렇기만 하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런 모습 어디 한 번이라도 보기 쉬운 가요?”
기가 막혀서, 아니, 내가 그들을 변호하기에는 나 자신도 검사인 형수가 지적하는 피고의 대열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형수가 생각하는 ‘글쟁이’의 직업관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와서 짐승들처럼 모여 있을 사람들을 그려보는데 형수의 경험이 치밀어 오르는 듯 튀어나온 것도 이상한 느낌의 전조였다.
“삼촌이 아시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볼게 아니에요. 요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교육을 받는다구요. 그 유치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주변 여자들이 자기 자식들 더 좋은 유치원으로 보낼 생각으로 갑자기 그렇게 몰리기 시작하고 나서는, 특별한 것도 없이 돈은 더 받는데···, 들여보내겠다는 여자들은 더 많아지고 다른 지역에서 주소까지 옮기고 들어오려고 한다니까요. 그래놓고 그걸 이젠 유치원계에 대단한 전통을 만들었다고 자랑처럼 홍보하는 전단물까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유치원의 개념은 이미 조카에게는 물론, 형수에게도 거리가 먼 얘기 같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와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경함이랄까.
“그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값도 더 비싸게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받으면 되지 않나요?”
“삼촌도 참! 어떻게 그렇게 해요. 그럼 다른 곳이나 다를 게 없잖아요. 시장원리나 주식처럼 얘들 유치원도 마찬가지라고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당연하더라고요. 그 유치원 정원은 되려 다른 유치원 정원보다 더 적게 뽑는다니까요. 그게 다 고도의 장사 속이죠 뭐. 그리구 절대 정원이상은, 줄 닿아서 뽑는 것 같은 낙하산두 연줄 없는 사람들은 별 수 없거든요. 다른 방법 있나요? 그저 얘를 위해서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죠. 다른 사람들은 그 유치원의 교사를 안다 뭐다 해서 따로 자리하나 빼고 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들어갈 틈도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휴우.”
괜시리 한마디 했다가 오히려 형수에게 듣게 된 훈계의 분량이 배는 많아진 느낌에 나도 같이 한숨을 쉬었다. 요새 아이들 교육 교육한다더니 그렇게 대단한 거였구나. 내 주위의 실례를 통해 말로만 듣던 사교육의 열풍의 진면목을 산증인을 통해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엄밀하게 말해 아직까지 내 얘긴 아니었다. 그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회현실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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