飼 育 - 2

신년 특집 단편소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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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여자의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내 의식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한 자리야 없겠어?’


늘 그렇지만 서툰 기대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과 함께 주술력이 달려 있는 듯이 매달려 들어간다. 뭔가 생각하고 그것을 하려고 하는 순간 내 앞에서 그 줄이 끊길 것만 같은, 그놈의 머피라는 자가 말했다는 법칙이 본능적으로 날 비웃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것이다.


‘이런···,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뭐 하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지며 앞에 늘어선 줄이 시선을 하나 가득 메웠다. 그건 엄밀하게 말하자면 줄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무리, 또는, 떼거리로 표현되는 그저 일단(一團)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순간적이나마 마치 동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모여있는 것과 오버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일종의 착시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오버랩된 모습이 내가 그리 잘못 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안에 들어가서 확인하게 되었다.


“여기···, 밀지 좀 말아욧!”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 한쪽은 신문지를 깔고 앉았고, 다른 한쪽은 아예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팔목을 봤다. 겨우 8시를 조금 넘은 시간인데. 나도 굉장히 서둘렀다고 생각하고 나온 건데. 눈앞의 푯말들이 그제서야 사람들 틈을 피해 언뜻언뜻 시선으로 담겨 왔다.


남자 월 수 금. 7시 40분에서 8시 40분

남자 화 목 토. 7시 40분에서 8시 40분


다른 쪽은 푯말을 볼 새도 없었다. 여자들의 힘. 그리고 아이를 가진 소위 아줌마라는 사람들이며 룩색을 멋지게 매고 피곤한 기색으로 손에 워크맨을 만지작거리는 뚱뚱한 여학생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은 그야말로 용감무쌍했다. 푯말들이 쭉 놓아져 있는 것이 보였고, 그 앞에 사람들이 미리 서기 시작한 것 같은데 보는 것만으로도 먼저 온 사람들의 눈빛은 ‘넌 이미 늦었어. 이제 와봐야 괜한 헛수고니까, 꺼져!’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완전히 접수할 인원이 다 찬 건가요?”


그냥 아무나 들었다면 대답이 나오겠지. 그렇지만 그건 말 그대로 누군가 내 얘기에 답을 해달라는 무언의 행위 그 자체였다.


“그래요. 여기가 남자들 줄이니까 일단 서 봐요.”


일단? 일단이라니.

나는 속 좋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그 중년여자의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교적 미소는 사회생활에서 얻은, 무언의 몸에 밴 맘에 들지 않는 습관이긴 했지만, 그 와중에 머릿속으로 재빨리 그녀의 말을 조사까지 하나하나 분석해 나갈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 말은 내가 줄을 서도 지금은 소용없단 뜻인가? 혹은, 줄은 일단 서보는 것이 좋은 것이니까 그다음 일은 줄을 서고 난 후 기득권을 인정받아라. 하는 뜻이든가. 두 가지 정도로 의 해석여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남자 모집인원이 각각 21명과 11명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나는 원래 월수금을 택하고 싶었으니 그렇게 결정한 게 오히려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 여자들에 비해서는 얼마나 행운인가.


“여긴 남자줄인데 여자가 서면 어떻게 해요?”

“언제쯤 등록이 시작되죠?”


다시 이어진 내 물음에, 뻔한 것을 알지도 못하고 줄을 섰냐는 식으로 여자의 시큰둥한 답변이 튀어나온다.


“원래 오후 1시에 등록이 시작된다우. 여기까지 기다려야 할 꺼유.”

‘오후 1시···? 지금이 겨우 아홉 시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은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보고 웃음 짓는 여자의 얼굴을 봤다. 그녀의 얼굴을 보건대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오히려 아까 잠시 스친 불안한 예감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얼토당토않은 수긍에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먼저 알아보는 건데···.

후회하는 건가? 아니다. 분명히 알아볼 만큼 알아봤다. 내 생각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멍하니 그 앞에 서서 십여 분을 흘려보냈다.


“원래 여기서 그렇게 한데요?”


이젠 대꾸도 하지 않고 씩 웃는다.


“잠깐 이 줄 좀 봐주실래요?”


뚱뚱한 여학생이 남자 줄 바로 내 앞쪽에서 아는 척을 하며 중년의 여자에게 웃음을 짓는다. 웃음으로 모든 호의적인 뜻이 통하는 건가? 많이 웃는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그건 서로 잡아먹어야 잡아 먹히지 않는 사회생활에서 가장 먼저 얻어지는 가장 나쁜 습관 중의 하나였다.


“그래. 갔다 와!”


벌써 친근해진 사이처럼, 분명히 아는 사이가 아닌 두 사람의 친분감이 날 이질감으로 내몬다. 잠시 후 그녀는 전화를 걸지도 못했다며 다시 돌아왔다. 그때서야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아니, 한 명의 사회인이 그 사회 구성원으로서 질서는 고사하고 짐승처럼 사람들을 한쪽으로 모아놓고 이렇게 시간을 죽이게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 항의를 던져야 할 것 같은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래. 뭔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고쳐져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여자들에게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만 전하고 사무실이라는 곳을 찾았다. 그곳의 관장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를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실무급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위로 몇 단계를 거쳐 올라가는 수고를 덜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한 탓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곳을 보고 있던 수위는 갑자기 관장이나 이곳의 행정사무실을 찾는 내 표정을 보고 사뭇 진지해졌다.


이 사람이 뭔가 있는 건가 보다, 이렇게 당당한 걸 보면.

그렇지 않아도 이 시점에는 늘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이 나오길 사람들은 기대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이끌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가 사무실 맞습니까? 이곳 관장님이...”


원래 공기관(公機關)이라는 곳이, 늘 그렇고 그런 곳이라고 사람들의 인식에는 이미 굳어져 버린 것 같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뭘 기대하는지, 그것도 국립도 아닌 시립도서관에서. 게다가 이곳은 내가 늘 이용하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작년 6월에 생긴 이 시립도서관은 수영장 등 시민들의 편의시설을 도모한다는 취지가 그 건립배경엔 깔려 있었다.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나 역시 하루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담배만 피우고 결혼도 하기 전에 배까지 나와서, 그것을 소설가로서의 연륜이라며 자위하기엔 내가 아직 젊다고 생각을 했고, 무엇보다 노총각이긴 하지만 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신을 다듬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정당한 사유를 가지고 찾아온 곳이 바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시립도서관의 대민 편의시설이었다. ‘시립’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이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하고 왔는데, 이건 뭔가 달라도 크게 달랐다. 그래, 어디서부터 뒤바뀐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이 모두 충돌해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국가기관에 사람들의 못 미더운 구석이 있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부족한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그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늘 귀결되기 마련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행정사무실 문 쪽으로 앉아있던 여자의 질문이 황당한 일들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사념들 속에서 날 끌어내 주었다.


“예? 아, 뭘 좀 물어보려고 그러는데요.”

“뭐죠?”


나만 진보적인 지식인은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허무함에 절어 있는 김 빠진 웃음.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한 사람씩 맨투맨으로 파트너를 배정받은 것처럼 따지고 있었다. 자신이 원래 앞자리를 점유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사람부터 자신에게 먼저 접수할 수 없느냐는 청탁성 짙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건 너무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불만스러운 구석들이 몰려 화가 났던 것 같다. 순간, 모든 직원과 그곳에 와서 따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무슨 생각에서 저렇게 막무가내인가 하고 꾸짖는 것 같은 시선이 물음표로 변해 내게 날아와 꽂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뭐가 불합리합니까? 불합리라니···”


자신의 권위에 도전받은 직원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꺼운 뿔테 안경의 앞을 가로막고 질문을 던진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가 나에게 응전의 의사를 보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그렇지 않아요!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오후 1시까지 기다리라고 합니까? 그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라는 게 그럼 합리적인 거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 사람들 그냥 놔두면 그렇게 서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는 의외로 딱딱하게 자신의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다른 직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던가 싶다. 뒤에 널브러져 신문쪼가리를 보고 있던 관장인 듯해 보이는 사람이 그제야 앞으로 어기적거리며 나타났다.


“선생님.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늘 그렇지만 지난번에도 새벽부터 와서 기다렸답니다. 오늘 아니라도 또 새벽에 기다리는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어제 새벽에 여기서 잤답니다.”


아까 그 여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으이그!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길 바랍니까? 접수하실 거면 어서 내려가서 기다리세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오히려 밀리듯이 내려와야만 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계단을 터벅거리며 내려오는데 아까 자신을 좀 먼저 등록시켜 달라고 애원하던 중년여자가 한마디 툭 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지금 내려가야 등록할 수도 없잖아요.”


별 수 없이 다시 내려온 자리에는 달라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까보다 뒤늦게, 그렇지만 자신은 상당히 일찍 왔다고 고개를 빳빳이 새우는 사람들 때문에 자리는 더욱 모자라 보였다.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아까부터 내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있던 여자에게 다가섰다.


“어떻게 됐어? 가능성 있겠어?”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오려고 그러는지···. 지금까지도 굉장히 많이 왔거든요. 대리님은 어떻게 하고 나왔어요? 난 괜찮은 거예요?”


언뜻 말하는 것을 듣자니 회사동료인 것 같았다. 여자가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남자는 일단 회사에 들어갔다가 나온 눈치였다.


맙소사. 회사까지 빼먹으며 수영등록을 하러 온 건가?


“난 내 자리에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침 7시가 너무 이르지 않나 싶었던 예상이 완전히 뒤집혔다니까요. 어떻게 된 게···, 사람들이 벌써 어제부터 날을 새고 여기서 잤다잖아요.”

“말도 안 돼.”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아까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제야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답답하지 않으면 여간해선 안경을 벗지 않는 터였지만, 벌써부터 짜증 난 내 신경은 안경을 벗어 들고 주위로 시선을 트이게 하고서 심호흡을 해야만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안경을 벗어 주위의 것들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뿌옇게만 된 것이 사실임에도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경을 끼고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작고 깨알 같은 먼지가 [정원 14명]이라는 푯말의 밑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서있기 전부터였지 싶었다. 다가가서 그 깨알들이 미리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이들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느새, 마침 그날, 챙기지 못한 내 펜을, 아니, 내 기억력을 탓하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볼펜을 빌려 내 이름 석자를 적어 먼지를 더했다.


이름 석자를 적어놓으면서 그 묘한 군중심리 내지는 집단 무의식에 말려든 것 같은 개운치 못한 느낌이 머리카락을 쭈뼛거리며 일으켜 세웠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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