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단편소설
이런 거였을까? 그가 가졌던 생각이···
모르겠어. 이렇게 끝맺어서는 아무것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심플한 결말은 이런 게 아니라구.
그가 가졌던 생각이, 그가 가졌던 생각이···그가 가졌던 생각이 뭐가 어쨌다는 건데?
커피가 아직 남았을 텐데. 들었던 커피잔에서는 굳어버린 커피가 내려올 생각도 안 하고 날 내려다본다.
커피가 어디.
노트북 옆 켠에 늘 두었던 커피, 설탕, 프림이 들어가는 유리병 세트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 어디에 뒀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기 싫어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찾다가 이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앗!”
쨍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발 앞으로 유리병 세트가 커피며 설탕 분들을 뒤섞어 바닥으로 쏟아내고 만다. 맞아. 아까 바로 자리 옆에 놔뒀었지. 이런 돌머리 같으니라구.
<넌 그래서 어디 시집이나 제대로 갈 수 있겠니? 남자도 아닌 계집애가 그렇게 덜렁거리기나 하구. 혼자선 불안해서 발도 안 떨어진다 얘.>
난생처음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떠나시며 내게 집을 맡기시고 불안해하시던 엄마의 그 푸념 섞인 걱정이 뒤에서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늘 보던 엄마라도 있었더라면 눈물이라도 나올 것을. 발끝에 고여 들기 시작한 검붉은 피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만다.
아예 소파 쪽으로 몸을 돌리고 노트북은 덮어 버린다. 새삼스럽게 나에게 너무 넓게 늘어나 버린 거실을 넋 나간 아낙처럼 바라본다. 어지럽혀진 바닥에 깨진 유리와 커피와 뒤섞인 프림과 설탕이 묘한 색의 조화를 이룬다. 그 바로 위쪽으로 늘 있던 그 자리의 유화가 눈에 들어온다.
‘집에 저런 그림이 있었나?’
생각보다 크고 웅장한 느낌의 르노와르를 연상시키는 풍경화다. 맞다. 르노와르. 아버지가 유럽 출장을 갔다가 오시며 사 오셨던 그 그림이다. 사진을 무색케 하는 정물화 같은 은은한 톤의 풍경화. 그런데 원래 저 자리에 걸려 있었나? 정원이 보이는 통유리 밑으로 스며드는 어두운 톤의 암영이 자연적으로 살아난다. 잔뜩 찌푸린 구름의 사이로 화사한 그림 속의 풍경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상처를 소독한 뒤에 붕대로 대강 감싸고, 나도 모르게 그림 앞으로 다가섰다.
‘저게 어디라고 했더라? 프랑스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버지가 날 위해 그 그림을 가져오던 고등학생 시절. 그날도 그렇게 날이 흐렸던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낮이 어두운 밤의 짙음으로 도배되어 버리고 만다.
아니, 어쩌면 이건 밤일지도 몰라.
쓸데없는 상상이 날 잡는다. 어쩐 일일까? 아이들이 밥을 먹고 나서 나른함을 이기지 못해서 인지, 오전에 있던 음악시간이 지루했었던 것인지, 기운들이 없이 축 쳐져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그날 일은 모를 일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맞는 두 번째 가을의 한가운데. 그건 다른 친구들의 것과는 다르다고 볼 것도 없는 똑같은 기성복 같은 나날의 연속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게 다가설 엄청난 변화에 대한 어떤 예상도 하지 못했다. 그럴 틈이 없었을 거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지만.
그가 들어오는 시간은 언제나 그랬지만, 나이 든 총각 선생님의 굵직하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들이 저 멀리 떨어지려는 듯 한층 무르익은 단풍을 보는 것도 그에 대한 국어의 열정이나 그런 감상적인 것 따위는 전혀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실들이 더욱 나를 슬프게 했던가.
<그 사람은 장가도 안 간다니? 서른이 훨씬 더 넘었는데? >
내가 총각 선생님이라며 그를 설명했던 것이 부족했던 거였을까? 엄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예상은 처음 시작했던 것처럼 끝도 한숨으로 맺는다.
<그게 그거야. 너희들한테 인기를 얻기는 다 틀렸겠구나. 어디 그런 사람이 있으니 재미나 있을까. 우리 유진이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우리 유진이도 싫어하지. 안 그러니?>
문이 부드러운 촛농 위를 미끄러지며 기어가는 소리가 익숙하게 들린다.
예외 없이 그가 더부룩한 머리를 내밀며 걸어 들어온다. 수업 시작종이 울린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타난 그의 얼굴은 여전히, 약간은 상기되어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보는 사람을 묘하게 만들고야 만다. 그의 눈빛이 책상들을 향하자 한숨이 구석구석에서 흘러나온다. 나 역시 예외는 아녔다는 점이 지금은 이해가 할 수 없긴 하지만.
왜였을까?
그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것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여고의 총각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사춘기의 여학생들에게 늘 솜사탕 같은 상상을 만들어, 가슴 설렘을 자아내게 하는 통례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만은 그것은 철저한 예외였다. 혹시 그가 노처녀 간호 선생님과의 결혼설이 있었기 때문에? 아니면, 그에게 어딘가 숨겨놓은 아들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어서?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냥 그랬다.
물론 우리 모두가 모를 이유는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가 인기가 없는 따분한 선생이라는 사실을 뒤집을 만큼은 되지 않았다. 그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을 만도 한 국어까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밖에서 보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될 것이었다.
그럼, 이유가?
그의 시를 읽는 소리는 언제나처럼 담배에 찌들어 있었다. 그에게서 언젠가 맡았던 묵은 박하의 것과도 같다가 찌든 담배의 오래된 구석에서 피우는, 그런 것들의 향을 맡은 기억이 있었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그것도 예외 없이 그와 만날 수 있었던, 담임에게 출석부를 전달하고 청소를 검사받으려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어···, 선생님 청소 다 끝났는데요.”
내가 말을 할 때 날 보던 그 미안한 듯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난 그의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막상 그의 앞에 서면 그는 그저 얼굴만 아는 정도의 동네 아저씨 같은 겸연쩍은 얼굴로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얼굴을 수그리며 다시 뭔가를 찾는 사람처럼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는다. 그래. 아마 담배 정도가 되었겠지. 그거 끊으려고 사탕비닐까지 옷주머니에 부스럭거린다는 것 같던데 이 사람은 언제나처럼 의지도 그렇게 박약한 건가? 난 그때 그렇게 그의 진지하다 못해 수그러드는 것의 의미를 그렇게 해석했던 것 같다.
‘후우. 저런 식이니까 늘 인기가 없지. 왜 장가도 못 갔나 했더니만···.’
“자아, 책을 펴고···”
다시 그의 걸걸한 목소리가 나를 잡아끈다. 난 그가 내 바로 앞에서 어정쩡하게 그 낡은 갈색 뿔테 안경을 꺼내고 있을 때까지도 그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역시 그랬을 테니까 별다른 문제랄 것은 없었다.
달콤한 초콜릿 향내가 코끝으로 느껴진다. 어디. 나는 고개를 들고 책을 펴며 그의 얼굴을 본다. 이제까지 피운 담배냄새를 지우려고. 무심한 얼굴표정이다. 아니, 뭔가 속내로는 진중함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우리들의 기대와는 달리 머릿속이 텅 비고, 그 악독하기로 소문난 할머니 교감의 수하로 전락해 버린 배신자라고 낙인찍힌 지 오래됐다.
‘어, 웬일이지?’
그가 날 본다. 정말 나를 보는 건가? 나는 잠시 놀라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그 정도로 내게 새삼스러운 용기를 가진 것에 대해 신선한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시선을 떼지 않고 가만히 조응한다.
“뭐지?”
귀찮다는 식으로 냉랭한 톤으로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묻는다.
“수업하기 전에요.”
내 등뒤에서 무슨 목소리가 나를 누르고 밀쳐낸다. 그럼 그렇지. 내가 아니었어. 그는 겨우 수업시간에만 자신에게 질문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시늉만 하는 정도잖아.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구. 저건 날 향한 시선이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다시 교실을 울린다.
“무슨 말이지? 오늘 여기부터 하겠다고 한 것 같은데···”
나는 이제 다시 좁은 책상과 의자의 테두리 안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실감한다. 그는 자신의 오래된 관습을 침범당한 동네 터줏대감 노인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묻는다. 아까까지 얌전을 떨고 있던 소정이란 계집애가 드디어 칼을 빼어 들고 주춤해하는 그의 어리숙한 놀람을 이미 예견이라도 한 듯 어디곤 찌르고 말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어선다.
“점심시간 바로 다음 시간부터 교과서를 펴고 공부를 한다는 건 아무래도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저희들이 이미 의견일치를 봤거든요. 선생님의 첫사랑 얘기를···”
거기까지 듣고는 나는 다시 시선을 밖으로 돌려 버린다. 저런 교활한 계집애 같으니라구. 한두 번 그런 시도해 봤니? 찔러도 <악> 소리도 내지 않는 카멜롯의 갑옷을 입고 있는 그 고지식한 인간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지? 국어시간마다 늘 자던 넌 그런 건 알 리가 없겠지. 욕이라도 실컷 해주고 싶은 욱하는 감정들이 일어난다. 어리석은 짓이야. 어리석은.
아예 지루한 그들의 대화에서 시선을 돌려버리고, 어두워져 버린 하늘이 박힌 창으로 조용히 눈을 맞춘다. 그 맘 때의 사춘기 소녀의 여림이 아니라도, 난 그런 어두운 회색빛 구름이 깔린 날이 좋았다. 마치 그게 바로 나 같다고 느꼈다. 지금도 그렇게 느끼는지, 그것까지 장담할 수는 없다. 내 삶 중에 어느 한가운데라도 늘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닐 테니까. 아마도 지금은 내가 더러운 먼지가 묻었다 체념해 버린 지 오래니까.
하늘이 한순간이라도 고개를 돌리며 한꺼번에 비를 뿌릴 듯이 우울한 얼굴은 내민다. 그게 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벼락같은 소리는 하늘이 아닌 교실에서 울린다.
이야아아 아!
아이들이 탄성을 내지른 건가? 그것도 그의 수업시간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다시 그들에게 돌린다. 그의 표정이 어린애같이 숙연해지고 천진한 붉은 홍조를 볼가에 띤다. 이유 없이 금세 가슴 한끝이 저려온다. 얄궂은 친구들이 또 저 순진한 아저씨를 놀린 거로구나.
그러나 쓸데없는 내 연민은 그 자리에서 깨져 버렸다. 여지없이.
친구들이 한때의 벼락을 때리고 잘 넘어가지도 않는 교과서를 덮어 버리고는, 그의 얼굴로 눈을 돌린다. 소정이, 그 계집애는 승리를 따낸 수탉이 교교함을 자랑하듯 이제까지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 또 저 계집애가···’
그가 말을 막 꺼내려는 듯한 입매를 움찔거린다. 그도 책에 손가락을 끼우고 걸음을 잰다. 창밖으로 향한 그의 입에서 귀에 익숙한 여자의 이름이 나온 것이 얼핏 들렸다. 이미 그의 눈빛은 그 해 여름, 최루탄의 잔먼지가 앉아 있던 여름날의 캠퍼스로 돌아가 있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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