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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an 30. 2024

한국인은 왜 생일에 꼭 미역국을 먹나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15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65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전통 중에서도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것은 외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죠. 특히나 국문화가 발달한 한국의 음식문화를 생각해 보면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식감이 미끌거리고 바닷속을 옮겨놓은 듯한 비릿한 내음이 물씬 풍기는 미역국을 도전하기조차 약간 꺼려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분명히 그 이유와 의미를 되새기고 알고 먹었던 시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고 첨단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어느 사이엔가 요즘 부모 세대들조차 왜 한국인들이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다는 서글픈 현실을 접하게 됩니다. 

  생일날의 미역국이란,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음식을 먹었던 한국의 토속적 정서를 바탕으로 조상님들의 선험적 과학상식이 음식문화에 고스란히 투영된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동양 문화를 살펴보면, 생일날 특별한 음식을 먹는 문화는 한국만의 문화가 아닌 동양적인 토속적 정서가 담긴 문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국수를 먹습니다. 국수의 면발처럼 길게 장수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특별히 생일에 먹는 긴 면발의 국수를 ‘장수면’이라고 칭합니다. 실제로 이 전통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고 당나라 무렵부터 생긴 것으로,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밀가루 국수가 당시에는 영양이 풍부한 최고의 고급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그 국수를 해넘이 국수라고 하여 새해를 맞이하면서 먹는데, 국수가 갖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는 그대로 전용되어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생일에 팥밥을 먹습니다. 물론 지금은 퇴색되어 많이 사라진 전통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동지 팥죽을 먹었던 것처럼 팥의 붉은색이 안 좋은 귀신을 물리치고 액땜을 한다는 의미와 동일하게 적용되어 생일에 먹곤 했습니다.

  물론 서양에도 생일날 먹는 특별한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죠. 지금 한국에서도 너무도 당연시되고 전 세계적으로 먹는 생일 케이크는 서양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 케이크는 고대 그리스에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는 음식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출산과 다산, 그리고 번영을 주관하던 여신이던 아르테미스에게 아이들의 지키는 수호신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하며 자신의 아이를 지켜달라고 기존의 주식이던 빵과는 다르게 밀과 꿀, 그리고 과일 등 좋은 재료들을 모두 담아 만들어 제사음식으로 사용했던 것이 케이크가 된 것입니다.

  자아, 왜 미역국 얘기하다가 쓸데없는 잡학으로 빠지냐고 혀를 차고 계셨나요?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생일 음식문화가 갖는 공통성에 눈치를 채기라고 밑밥을 좀 깔아본 것인데, 눈치챈 분이 거의 없으신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전 세계에서 생일날 먹는 음식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밀가루나 팥, 꿀, 과일 등이 갖는 영양학적인 의미를 고려해 보면, 당시로서는 영양가가 높고 그에 더해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아프지 않고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음식들이라는 점이 바로 그 공통점, 되시겠습니다.


  물론, 일반에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한국에서의 생일날 먹는 미역국은 아이를 낳았을 때 어머니들이 먹었던 음식이라는 점에서 생일날 자신을 낳아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다시금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의학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출산 직후 산모가 다량의 출혈을 한 것에 대한 보충을 수혈로 대체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빠진 출혈과 에너지를 보충하고, 영양을 보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미역국을 주식으로 산후조리 내내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산후조리원에서도 그대로 메뉴에 반영하고 있지요.


  미역에는 칼슘과 요오드가 많이 들어 있어 산모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도 아주 좋은 식재료로 과학적 증명이 이미 되어 있습니다. 특히, 기운이 없고 입맛이 없는 산모에게 한국의 국문화의 베이스에 주재료를 미역으로 하여 밥을 말아서 죽처럼 술술 떠먹을 수 있도록 한 음식이 바로 미역국이었던 것이지요. 미역국은 출산으로 인해 연약해진 산모의 뼈를 튼튼하게 회복해 주고, 피를 맑게 하는 역할을 하여 건강을 빨리 되찾아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엄마의 역할을 도와주는데 아주 중요한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였던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책에 담긴 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 속하는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반드시 미역밭을 찾아가 미역을 뜯어먹는 것을 보았는데 고래의 오장육부 안에 있던 나쁜 피들이 미역으로 정화되어 물로 바뀌었는 것을 보고서,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기 시작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그만큼 산모가 출산직후 미역국을 먹었다는 사실에 대한 유래는 오래되었는데요. 공식적인 기록에도 고려시대 때부터 이미 아이를 낳은 산모가 반드시 미역국을 먹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2세기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고려 사람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 미역을 잘 먹는다’고 기록했고,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당서(唐書)>에도, ‘미역은 발해의 함흥 앞바다에서 생산되는데 맛이 뛰어나다’고 했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조선의 실학자였던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미역국은 임산부한테는 신선의 약만큼이나 좋은 음식’이라고 설명한 바 있을 정도이니 이미 일반적인 상식으로 모두에게 알려져 있던 사실임에는 틀림없었던 듯합니다.


  그렇다고, 옛날 산모들이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미역국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는가? 그건 아닙니다. 산모의 머리맡에다 흰쌀밥과 미역국, 그리고 정한수 한 그릇으로 삼신상을 차리고 난 후에야 산모가 비로소 미역국을 한 술 뜰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첫 국밥’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아이를 점지해 준 삼신할머니에게 출산에 대한 감사와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빌면서 미역국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삼일이 지나면 또 미역국과 쌀밥을 차려놓고 삼신할머니에게 빌었고, 출산 후 삼칠일, 즉, 21일째 되는 날에도 삼신상을 차려놓고 아기의 무병장수를 기도했으니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옛날 고비를 넘길 때마다 미역국으로 삼신할머니께 치성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베주머니로 삼신주머니(三神囊)를 만들어 쌀을 채워놓고 벽에 걸어두는 풍속이 있었느니 삼신할머니가 아이를 점지해 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보호하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서양의 아르테미스에게 케이크를 바친 것과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높은지 보이시나요?


  삼신할미라고 하면 보통 무당을 연상하지만 고대 신앙에서 삼신할머니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여신이었다. 때문에 조선의 대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은, ‘아이가 태어나면 흰쌀밥과 미역국으로 삼신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생일날의 미역국이란, 나를 낳아주신 그날의 어머니가 겪은 고통과 고생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생명의 신에게  이제까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신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무병장수의 소원을 비는 아주 뜻깊은 음식인 것입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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