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14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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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제 식사라도 한 번 같이 해요.”
“언제 한번 소주라도 한 잔 하죠.”
한국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이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인사말이 외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생경하기 그지없는 공수표로 들려, 한국인들의 문화마저 의심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합니다.
한국도 물론이지만, 외국에서도 함께 식사를 하거나 함께 술을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공동의 목적이 있는 파티에서 만나는 것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굉장히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들 간의 초대와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더더욱 친밀한 거리감을 명확하게 확신하게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인식되기도 하죠. 아무나 나의 집에 불러서 함께 밥을 먹자고 하고 술을 마시자고 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무니까 말이죠.
그런데 한국인들에게 있어 위의 약속들은 공수표라고만도 치부할 수 없는 한국인의 정을 나타냅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던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서로 간의 공감과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내뱉을 수 없는 약속인 것이죠. 즉, 위의 말은 약속을 잡자는 구체적인 제안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 대해서 그 정도의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는 인사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의미마저 퇴색하여 정말로 영혼 없는 인사말로 지금 당장 당신과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면서 하는 말로 전락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 본래 이 약속의 말이 나오게 된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의 애틋함(?)을 여운으로 남기는 한국인 특유의 인사말에서 나온 운치 있는 약속입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 한국인들은 운치 있는 약속을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운치 있는 약속이 바로 ‘첫눈 약속’이라는 겁니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이죠. 공식적으로 눈싸라기가 날리는 것이 첫눈인지 눈이 섞인 비가 내리는 날이 첫눈이 오는 날인지 기상청 직원처럼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네는 그렇게 운치 있게 첫눈 약속을 아주 흔하게 했었습니다.
그것은 봉숭아를 물들이고 그 봉숭아 물이 다 없어지기 전까지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운치 있는 제약(?) 전설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오늘의 글제는 질문의 전제가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은 지키지 않을 약속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말할 때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당연히 합니다. 그것이 설사 언제 며칠 몇 시라고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달해 두는 것이죠.
원래의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에서 그러한 운치는 한국인의 여유로움과 정을 모두 담아내는 복합적인 정서를 표현합니다. 어느 사이엔가 전 세계에서 한국인들은 모든 것을 ‘빨리빨리’ 쳐내는 성격 급한 사람들로 인식되었지만, 아무리 사람을 다그친다고 해도 자연의 시간은 언제나 똑같이 흐른다는 것을 누구보다 한국인들의 조상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시간을 독촉한다고 시간이 빨리 가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실을 알고서 그 안에 사람과 사람 간의 교감을 말에 담아 표현하는 운치 있는 민족이었던 것이죠.
요즘 현대인들이 조상들의 그 본래의 정감 있고 운치 있는 약속의 의미를 마음에 담고 제대로 반영하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끈끈한 정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외국인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마치 ‘언젠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신과 인연이 된다면 그런 자리를 한번 꼭 마련하고 싶습니다.’라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죠.
오히려 말해진 것만 약속이라고 여기고 구체적인 약속에는 지켜야 할 일시나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여기는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그 엉성한 약속의 말이 너무도 무책임하게 들리거나 공허한 약속으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약속이 없이 그다음 단계로 교감을 진행하는 한국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결코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 번도 하지 않고, 술자리를 통해 허심탄회한 서로 간의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고서 더 깊이 있고 더 가까운 관계로 발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구체적인 것을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다시 왜 한국인들이 그런 투의 인사말을 남기는가에 대한 특징을 생각해 보면, 한국인의 특징은 더욱 명징하게 드러납니다. ‘언제’라는 말로 구체적인 약속 시일을 정하지 않는 것은 상대에게 그 언제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당신이라는 점을 인식시켜 주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마음 상태는 당신과 언제 한번 그런 자리를 갖고 싶은데 당신이 어떤 마음인지를 나는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못하겠다. 당신의 정확한 스케줄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정말로 나와 그런 관계로 나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과정을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그때 구체적인 날짜나 장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바로 저 허망해 보이는 약속의 말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이죠.
외국인들이 약속을 잡을 때, 서로 간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나서 자신이 괜찮은 시간과 상대방이 괜찮은 시간을 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그러고 싶은지에 대한 의사를 묻거나 그 심리적 친밀도의 거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빠져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한국인의 저 인사말은 고도의 정치적 의미까지도 포함된 복잡한 수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외국인에게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저와 같은 인사말을 전하는 것은 만나서 반가움이 앞서기는 하지만, 만나지 못했던 그 긴 시간의 간극에 서로 간의 어떤 미묘한 틈이 생겼는지 일일이 말하고 교감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생략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관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그러고 싶지만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기까지는 예열과정이 다시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의 의미는 한국말이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 순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술어의 의미에 따라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단순한 문법적인 설명이 아닙니다. 한국인의 말, 그 표현은 행간에 담고 있는 의미가 훨씬 더 깊고 복잡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아마도 짧은 시간에 파악해 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듯합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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