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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Feb 05. 2024

집을 옮기는 것이 너무 버거운 일이라 느낀다면...

늙은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열정적이지 못한 것일까?

국내에서 산 시간 못지않게 해외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했던 입장에서 해외에 거처를 한번 정한 곳에서 옮기지 않고 사는 것이 대부분인 경우를 본다.


물론 해외라 언어가 편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이사라는 것은 국내에서도 함부로 감행할 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자잘한 일부터 짐을 옮기고 그 짐을 다시 정리하고 세간살이를 다시 세팅하는 일이라 만만한 일이 아닐 수밖에 없다.


출장처럼 캐리어 한 두 개 정도 채우고 그냥 끌고 단출하게 짐을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살림을 했을 정도로 자잘한 짐들이 생겨나고 4계절 이상의 옷 짐이 벌어진 짐을 다시 챙기고 집을 옮기는 것은 말 그대로 전문이사업체를 통해서 해도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이사가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만도 아니다.


새로 독립하는 새내기의 이사는 설레기 그지없을 것이고, 새로 결혼해서 새로운 살림들을 새로운 보금자리꾸며넣는 신혼부부의 이사 역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지하 단칸방에서 혹은 옥탑방에서 버젓이 햇살이 잘 들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버젓한 집으로 이사하는 업그레이드 형(?) 이사를 하게 된 이의 이사도 누구 못지않게 가슴 부풀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을 떠나오며 가족이 거주하던 곳에서 별장으로 이사하면서도 거의 일주일이 넘도록 나는 끙끙 앓고 그 짐들을 옮기고 버리고 나눠주고 정리하느라 힘겹기 그지없었다. 이사가 다시는 못할 짓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그리 오래지 않아 또 이사를 하게 될 것을 나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외로 날아간다고 별도의 짐을 꾸리고 가족의 짐이 한가득 되는, 그야말로 이민가방이 가득 차는 해외 이주 짐을 통해 이사를 하는 수준으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사택에 들어갔는데,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한 학기만에 학교를 옮기면서 새로운 학교에서 제공해 준 아파트로 또 이사를 해야만 했다.


이사업체를 부르기에도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학교의 대형 차량을 부른다고 해서 한 번에 끝내기도 어려운 애매한 정도의 어마어마한 잔짐들은 그렇게 내가 매번 택시를 불러 캐리어를 몇 개씩 가득 채우고서야 끝이 났고, 그렇게 겨우 2월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이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글을 쓰지 못하게 된 구차한 변명의 한 토막이다.


글을 쓰는 것은 무엇보다 마음이 안정되어야 하고, 또 물리적으로 차분히 한 자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여유가 마련되어야만 한다.


새로이 마련된 주방을 치고, 대리석 바닥을 쓸고 닦고 필요한 물품들을 다시 사고, 장을 보고, 아파트의 수리할 곳들을 수리공을 불러 고치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고치고... 그렇게 글을 차분히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겨우 주말에 억지로 정리되었다고 할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싶었는데, 다시 펑펑 내리는 눈발을 뚫고 비자 갱신을 처리하러 출입국사무소를 다녀와야만 했다.


이것저것 핑계 댈 거리는 많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자 했다면, 그리고 글 쓰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못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랬다. 나는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고, 그 게으름은 한번 벌어지면 글을 쓰지 않게 되고 읽기 싫어지고 다른 생활에 빠져 그렇게 며칠을 또 보낼 수 있을만치 눈처럼 시나브로 소복이 쌓여 아무렇지도 않게 브런치를 덮을 수도 있었다.


그놈의 검찰이 모든 비용 다 대 줄 테니 자기네 증인을 서 달라고 하여 한국행을 급히 나가봐야 하는 일정을 준비하면서도 다시 글을 쓸 마음의 준비를 한다.


글을 쓰는 동안 차가 농익어 진해지는 듯 차분히 가라앉는 그 기분을 규칙적으로 체감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학술적인 글이든 고발성 글이든 조용히 음미하는 문학적인 글이든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책 읽고 글쓰기에 최적의, 겨울만한 계절이 어디 또 있으랴?


아무리 작고 거슬리는 일들이 내 신경을 괴롭히더라도,

해외에 나와 다시 이사를 하며 혼자서 그 많은 짐을 옮기고 정리하고 낑낑대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놓치고 생활에 매몰되어 버리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


그렇게 다시 정신줄을 꽈악 잡아 한 움큼 당겨 팽팽함을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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