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이엔가 3년을 꽉 채워버리고 만 브런치력.
<브런치>라는 공간을 알게 되고 글을 처음 올리기 시작한 지 만으로 벌써 3년을 꽉 채우고 말았다.
세월은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술술 물 흐르듯 흘러가니 그럴 만도 하였을 것이라 하더라도 이 공간에 뭐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이제까지 멈추지 않고 글을 채워 넣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년을 채웠을 때만 하더라도,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두 계절을 채 넘기기도 전에, 동토의 대학으로 부임하여 가게 되면서 강제 홀아비생활에 아무런 구애되는 것이 없어지면서 글을 쏟아내느라 하루에 무려 4편씩을 올려 구독자들의 알림을 피아노처럼 두들겨댔더랬다.
하루에, A4 20매를 써 재꼈으니 일주일에 책 한 권이 컨베이어벨트에서 흘러나오는 수준이었더랬다.
그 간략한 역사는 돌 기념 글에 아주 잘 설명되어 있다.
https://brunch.co.kr/@ahura/1164
그렇게 1년을 채웠을 즈음, 나는 본래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를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했고, 알면서 행동하지 않거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가식에 빠져 자신들이 문학소녀이고 양심 있는 서민이라고 코스프레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래서 대거 얼굴이 뜨거워진 자들일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다시 실망하고 글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런치에서의 1년은 1136편에 이르는 장대한 내 하루하루들이었다.
그렇게 1년간 멀리 바다를 보며 글을 양산하던 해외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한국에서의 글쓰기가 진행되었지만 예전만 같을 수는 없었다.
그즈음 2년간의 대장정, <논어> 강독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두 돌에도 예의, 소소한 축하글을 기록으로 남겼더랬다.
https://brunch.co.kr/@ahura/1616
그리고 다시 해외로 떠나오게 되면서, 잠시가 아닌 한국을 떠나오게 되면서 나는 이전에 갖지 않았던 휴지기를 듬성듬성 갖고, 글도 이제 하루에 A4 두어 장밖에 쓰지 않는다.
물론 브런치에 A4 20장씩 쓰던 그날들에도 본래의 직업상 쓰던 학술적 글쓰기나 별도로 쓰던 서적집필은 늘 했었으니 브런치에 공개되는 글이 줄어들었을 뿐 내 글쓰기의 총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 마지막 주가 되었으니 다시 꽉 채운 세 돌이 되었음을 스스로 축하해 주기로 한다. 늘 받던 고액의 원고료나 알랑거리는 편집장이나 담당기자의 부탁이 없어도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써 올리는 글쓰기를 순례길 걷듯 찬찬히 써 내려갔던 내 지난 3년간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수고했다고, 그래도 지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흔들려도 결코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최소한 글을 이들의 마음은 밝혀주었노라고 칭찬해 주기로 한다.
이제까지 썼던 글보다 앞으로 쓸 글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과 그간 써두었음에도 아직 풀지 않은 원고들이 한우충동(汗牛充棟)으로 쌓여있음을 잊지 않기로 한다.
이탈리아의 저 먼 곳에서 정력적으로 글과 사진을 풀어나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던 문우(文友)를 기억하며, 그리고 발검스쿨의 반장을 자처하며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만났던, 갑작스레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를 먼저 보내야만 했던 그를 역시 추억하며,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언제고 한번 들르라고 마음을 전해본다.
왜 엘리엇이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이, 햄릿의 대사를 일본번역어투로 기억하는 이들보다 본래 영어 고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이들이 더 많이 내 글을 읽으며 조금씩 행동하는 양심으로 변해하기를 세 돌을 맞이하며 다시 바라본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그 어느 만우절에, 이렇게 다혈질의 피터팬과 결혼했던 침대를 같이 쓰는 분에게도 더불어 ‘슬쩍’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