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24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79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신과 전공 서적에 빈번하게 언급되는 내용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입니다. 왜 미국 정신과 전문서적까지 언급하냐구요? 사실 그 내용에는 이민자의 경우 본국의 자살률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는 내용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 나라를 떠나온 사람들마저도 자신이 새롭게 옮긴 나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이 뿌리를 둔 나라의 자살률과 같은 경향성을 보인다는 것은 그것이 그 나라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15년 전에 ‘한국인의 자살’이라는 주제로 책을 저술을 준비한 경험이 있습니다. 집필을 결정하게 되었던 이유는, 정신적으로 힘들어 자살을 생각하는 상담 환자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이미 한국의 자살률이 OECD가입국중에서도 10년 가까이 부동(?)의 1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학자도 그 이유에 대한 분석 논문이나 서적을 명쾌하게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2017년 단 한해를 리투아니아에게 1위를 내준 것 외에 현재까지도 1위는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도나 논문에서 보는 ‘자살률’이라는 용어는 통계상 인구 10만 명당 자살숫자를 조사한 결과인데, 미국은 10만 명 당 12명으로 세계 국가별 통계에서 중간정도의 순위입니다. 반면 한국은 10만 명당 28명으로 미국의 2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니 미국의 정신과 전공서적에 실릴 만도 한 것이지요.
자살을 통계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몇 가지 공통된 특징들이 발견됩니다. 자살하는 성비부터 살펴보면,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의 자살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몇 배이상 높다는 연구결과와는 상반된 현실수치인 셈이지요. 한국인의 경우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자살률보다 약 2.5배가 높습니다. 일본은 3배가 높고, 서유럽은 3~5배가 높고, 동유럽은 무려 5~6배까지 높습니다. 인종으로 변수를 확대하여 추가하면 더 복잡해지는데요. 백인이 다수 거주하는 국가들에서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의 자살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자살한 남성들 중에서 백인이 70%를 차지한다는 것은 인구의 성비 중에서 흑인이나 황인종을 감안하더라도 독특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의 자살률이 그렇게 높은지에 대한 문제로 다시 돌아와 볼까요?
한국인의 자살률이 전 세계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최상위라는 것은 자살이 한국에서 더 이상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제 너무도 빈번하게 우리 주변의 현실이 되어버린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라던가 노령층의 증가로 인한 문제로 대두되는 노인자살,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가족동반자살을 하거나 동반자살 사이트를 통해 자살을 하는 것 등이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상황이거나 이유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살은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한다거나 사랑받고 행복해야 할 가정이 지옥으로 변하는 문제를 겪게 되거나 공부하고 재미있는 10대여야 할 시기가 괴롭힘으로 인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시간들로 축적되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감행되게 되곤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자살한 이들의 케이스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자살을 시도했던 이들의 60~72%, 자살사망자의 80%가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었고, 그중에서 80%~90%는 우울증의 결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평생 한 번이라도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5.6%(약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도 전 국민의 2.5%(약 100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등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수는 29만 명에 불과하고, 이 중에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고작 15만 명 (15%)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의료적으로 인정하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지속적인 ‘치료’등의 도움을 받는 이들의 수치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전문적인 정신ㆍ심리 상담 치료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피의 원인으로는 정서적 문제에 대한 대화를 금기시하는 문화,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정신과 진료에 대한 기록으로 인한 불이익 (취업, 보험가입, 진료 기록 누출 시 타인의 부정적 인식)을 미리 걱정, 심리 상담 치료에 대한 낮은 인식 때문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분위기가 한국을 자살공화국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증거도 또 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등장한 무직자의 자살이라는 독특한 분류가 바로 그것인데요. 지속적인 취업난이나 경제불황으로 인한 해고자들이 연이은 취업 실패와 재취업의 어려움으로 경제적 문제를 겪으면서 그 어려움이 겹쳐 해당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절반을 훨씬 넘는 수치의 구직자들이 ‘취업스트레스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는 것은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떻게 그들에게 불안과 우울로 축적시키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구직자들이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유(복수응답)로 답한 내용을 보면, ‘영원히 취업을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가 가장 많았고, ‘사회적 소속이 없다는 고립감’이나 ‘자신을 무능력하게 보는 주위의 시선’, ‘낮은 외국어 성적’, ‘경제적인 어려움’, ‘출신학교∙학벌’등이 뒤따랐습니다.
그 이유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개 개인적인 이유라고 보기보다는 사회적인 시선에 신경 쓰게 되면서 발생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이유보다는 사회적인 압박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여 년 전에는 하루에 몇 명이 자살한다는 수치가 나오다가 최근에는 40분에 한 명씩 자살한다는 명확한 시점개념으로 한국의 자살이 얼마나 많은지를 강조하는 설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이 최고라는 배경에는 한국사회가 만든 특징이 가장 큰 책임을 배태하고 있는데, 그 중심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시선을 심하게 의식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다른 사람들의 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알면서도 방관하는 것이 점점 더 그 수치를 높여가는데 일조했다는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어느 사회나 우울이라는 감정이 들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희망이 없다고 느끼거나 출구가 없다고 느낄 때,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다는 기대감은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것이 없을 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감정에 부딪히는 순간, 우울은 우울증이라는 병리로 발병하게 되고, 그것은 자살위험을 크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정(情)’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사회에 어느 순간 자살을 부추기는, 그리고 조장하는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한 가지 요인만으로 분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앞으로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한 분석을 하나하나 꺼내볼 텐데요. 그 조각조각으로 보이는 편린들이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여 우리 주변에서 사람이 40분에 한 명씩 죽어나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갈 길을 가게 된 것은 아닌가 한 번쯤은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