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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19. 2024

한국인은 왜 전세라는 제도를 사용하는 건가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25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80     


  전세제도는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사한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방식입니다.(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이 유일한 것은 아니고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페루와 인도의 두 도시 수라트, 벵갈루루에도 전세제도의 형태는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가장 활성화되고 일반화된 것은 한국이라 이런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 유래를 확인하기 위해 명확한 한자어의 의미부터 분석해 보면, 전세는 ‘傳貰’라고 쓰는데, 한자를 공부하지 않은 이들이 무턱대고 전세버스의 '전세'나 가령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에게 “니가 여기 전세 냈냐?”라는 할 때 사용되는 ‘전세(專貰)’와는 한자어 자체가 다른 의미입니다. 두 가지 모두, ‘누군가에게 무엇을 빌리다.’라는 의미에서는 같아 보이지만, 전세버스의 전세는 '계약에 의하여 일정 기간 동안 그 사람에게만 빌려주어 다른 사람의 사용을 금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이때의 專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오로지’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독점적, 배타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것에 반해, 부동산에서 의미하는 ‘전할 전(傳)’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부동산에서 의미하는 전세의 정의는, 한국에만 있는 주택 임차 계약 중 한 형태로, 전세권자(임차인, 주택을 빌리는 사람)가 전세금(집값의 50~80%)을 주택 소유자(임대인, 주택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예탁하는 조건으로 주택을 임차한 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전세금을 100% 돌려받고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부동산 임대료(월세)를 따로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월세와는 차별화되는, 그야말로 한국에만 존재하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제도인 셈이지요. 

  그렇다면 전세는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배경하에 생겨났을까요?


  전세의 정확한 정의는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용도에 따라 사용·수익 하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처음 이것을 들으면 마치 월세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세입자에게만 유리하고 집주인에게는 손해만 되는 제도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느냐고 신기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수요자가 주택 소유자에게 무이자로 목돈을 전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계약 기간 동안 잠시 빌려줌으로써 수요자는 집주인에게 매달 월세를 내야 할 의무를 면제받고, 집주인은 수요자에게 매달의 임대료는 받지 못하지만 부동산을 대가로 무이자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목적에서 서로에게 합목적적인 제도라는 이유로 이제까지 존속해 왔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세제도는 민간에서 만들어낸 일종의 사금융제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집을 담보로 한 개인 간의 대출시스템인 셈이지요. 집주인에게 세입자가 무이자로 큰돈을 빌려주고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본인 소유의 집에 일정 기간 들어가 살기로 한 뒤, 서로 주고받아야 할 돈(세입자: 빌려준 돈에 대한 채무 이자 ↔ 집주인: 빌려준 집에 대한 월세(임대료))을 거래의 형태로 현금과 현물의 한시적인 맞교환에 따른 상호채권채무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한없이 기이하기 이를 데없는 이 제도는, 당연히 목돈을 마련하려는 집주인들의 목적성이 반영된 일종의 편법성 방식입니다. 문제는, 세입자가 준 목돈을 집주인이 어떤 이유로 다시 돌려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목돈을 투자 등으로 날려버린 집주인들은 세입자가 퇴거를 요청해도 돌려줄 돈(보증금, 전세금)이 없고, 심각한 경우, 집주인의 자신의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담보 잡혔을 경우 최근 뉴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처럼 법원경매로 넘어가버려 세입자를 당혹게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세제도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미 조선시대에 그 제도는 ‘가사전당제도’라고 하여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목돈을 빌려주고 집을 빌려 쓰는 방식이 만연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가 빚에 대한 담보로 논과 밭을 넘길 수 있다는 전당(典當) 제도에서 집으로 확장되어 적용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퇴계 이황 선생이 정리한 기록이 남아 있어 참고가 됩니다. 


  현재의 전세제도가 완전히 형태를 자리 잡은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인 거주지가 대거 조성되면서 임차인이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주고 임대주택을 사용하는 전세라는 말이 공공연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견해가 정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작은 그러했으나, 본격적으로 현재의 전세제도가 전국적으로 일반화되며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이후라고 보는 것이 중론입니다. 급격한 산업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농촌 인구들이 대거 대도시로 몰려 한국의 주택 수요는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주택 가격이 가계(家計) 지불 능력보다 비싸고 주택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시장 상황을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세제도는 일반화되며 확산됩니다. 주택에 대한 구매 수요는 많았지만 당시는 대출 금리가 높을 뿐만 아니라 주택 금융의 지원시스템 미비로 일반 서민들의 대출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는 대기업의 직장인이거나 공무원이 아니라면 주택 소유자를 포함하여 일반인들이 제도권 은행에서 목돈 대출을 받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던 겁니다. 게다가 집을 소유한 임대인도 임차인으로부터 받는 월세, 사글세로는 목돈을 확보하는데 한계를 느껴 다른 출구를 찾던 터였습니다. 개인들은 공식적으로 어디에서도 목돈을 빌릴 방법이 없었던 시대였던 상황이 전세제도의 안착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당시 모든 자본이 산업, 특히 수출 산업 부문에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과 필요가 모두 맞아떨어지면서 이미 집을 소유하고 있던 집주인들이 또 하나의 주택을 구입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모자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 집을 전세의 형태로 임대하는 관습이 생겨나게 됩니다. 전세 보증금이 이자를 내지 않은 은행대출 역할을 한 것이죠. 당시는 급격한 산업화와 수출호조로 인한 고도성장기였기에, 그 돈을 은행에만 넣어놔도 은행 이자가 10% 이상 붙는 손쉬운 재테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IMF 이전까지 은행 이자는 세금도 붙지 않았습니다. 집주인들 뿐만 아니라, 세입자들 입장에서도 집을 떠나 대도시로 올라올 때 집이나 논을 팔아서 상경하였던 터라 번거롭게 월세를 내기보다 목돈을 맡기고 사는 게 훨씬 부담이 덜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었죠. 이처럼 대한민국의 전세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도입한 제도가 아니라, 집주인과 세입자 서로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사적금융제도였던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월세제도에 비해, 전세제도가 외국인들에게 특이하기 그지없는 이유는 보증금의 사금융화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컨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제외하면 주택의 유지관리보수비용에 대해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가 부담한다는 것도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고 전세기간이 끝나서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사는 동안은 내가 고치고 내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죠.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가 만족하고 시대적 상황까지 그 필요를 가속화시켰기에 모두에게 필요하고 만족스러운 제도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고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못하게 되는 갖가지 상황들이 발생하면서 이는 사회문제로 대두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의 필요에 의해 발생하고 확산되었던 전세제도는 결국 그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점에서 ‘전세사기’라는 악화를 구축하고 맙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미 집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 집을 제외하고 집을 살 집이 아니라 재테크의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결국 다른 사람을 속이고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욕망이 사회적 비극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부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결국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이들이 그 제도를 정착시키고 활성화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이유가 각자의 이익을 만족시키겠다고 했다는 점에서 이 제도가 언제든 사기로 이어져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안전시스템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가 만족하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이익을 본다는 것은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 단순한 사실에 대해서 모르지 않은 이들이 이와 같은 파국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만 아니면 돼.”


  이 묘한 심리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심도 있게 다루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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