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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08. 2024

한국인은 왜 다른 나라의 풍습을 그렇게 쉽게 따르나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53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11     


  오늘,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어버이날은 부모님이 이제까지 키워주시고 사랑을 주신 것에 대해 자식들이 감사한 마음을 특별히 되새겨보자는 취지로 생긴 날이지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왜 어버이날이 생겼는지 그리고 그 유래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5월 5일 어린이날도 그러하고 5월 15일 스승의 날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분석했던 한국인들의 기념일 챙기기 성향과 연관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2월 14일의 밸런타인데이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초콜릿 회사들의 마케팅 데이가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본래 어버이날의 유래는 사순절의 첫날부터 넷째 주 일요일에 어버이의 영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를 찾던 영국과 그리스의 풍습에서 시작된 것으로, 1907년경 미국의 안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본인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일화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던 중, 1914년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이 5월의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면서부터 정식 기념일이 된 이후 지금까지도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어머니가 살아계신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자신의’ 가슴에 달고서 각종 집회를 열며,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 정확한 풍습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에 건너와서는 의미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꽃을 다는 주체도 원래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어버이날을 기념하게 된 것은, 원래 위에 설명한 미국의 ‘어머니의 날’에서 시작되어 미국을 따라 크리스마스를 냉큼 공휴일로 지정한 이승만 정권의 입김 때문이었습니다. 1956년 국무회의에서 미국의 어머니의 날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가져온 결정에 의해, 당시 한국전쟁 이후 어머니들이 양육은 물론 생업에도 책임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라는 새삼스러운 군더더기를 붙여가며 그 어머니들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어머니날’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어머니의 날’로 지정해 갖가지 경로효친 사상이 담긴 행사를 국가적 차원에서 실시하다가 한국의 가부장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어머니에 경도된 축하분위기에 삐진 형평성을 언급하며 ‘아버지의 날’이 거론되자 17회 차까지 어머니날을 기념하던 것을, 1973년 3월 30일에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6615호)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어버이날’로 바꾸어 지정하게 된 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본래의 형태였던 카네이션을 자신의 가슴에 달고 기념하던 것을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꽃을 기념해야 할 대상에게 바치면서 카네이션의 의미도 조금 빗겨나가기 시작했는데요. 감사의 뜻을 꽃으로 드리는 것까지야 변질은 아니라 하더라도, 감사드려야 할 부모님이 안 계신 사람들은 그저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을 드리지 않는 것으로 소략화된 것은 그야말로 한국적인 오독전파의 대표적 사례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버이날에는 각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와 조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하거나 시즌이 시즌이니만큼 효도관광을 보내드리기도 하며, 기념식장에서는 전국의 시·군·구에서 효자·효부로 선발된 사람에게 ‘효자·효부상’과 상금을 수여하고, 이들에게 산업시찰의 특전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이 날을 전후하여 1주일 동안을 경로주간으로 정해 양로원과 경로당 등을 방문·위로하는 등 어른 공경에 관한 사상을 고취하기도 하였으나 1997년부터 경로주간을 폐지하고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10월을 경로의 달로 정해 별도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머니날에서 시작된 것이 아버지로 그리고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모님이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장사 속 마케팅이 5월 봄나들이시즌과 맞닿으며 활개를 쳤던 것이 사그라든 것이지요.


  정작 이 날을 한국이 따라 하게 만든 미국은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Mother's day)로, 아버지날(Father's day)은 6월 셋째 일요일로 별도로 정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 날이 생기고 나서 꽤 시간이 지난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7월의 넷째 일요일을 별도로 ‘어버이날(Parents' day)’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은 5월 8일로 날짜를 정하지 않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母親節, 母の日)로 정하고, 아버지날(父親節, 父の日)은 셋째 주 일요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중국, 일본 모두 동양의 특성상 꽃을 미국처럼 자신이 달지 않고 한국에서처럼 어머니에게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선물을 드리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 한국과 부쩍 가까워진 베트남은 매년 7월 7일로 콕 집어 어버이날로 기념하고, 영국과 마찬가지로 이 풍습의 기원국에 해당하는 그리스는 매년 1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비슷하게, 평소 남자들은 살림에 손을 대지 않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그리스는 어머니날에는 여자들이 가사를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남자들이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갖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어버이날의 유래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잊으실 뻔하셨나요?


  한국의 휴일 혹은 기념일을 보면, 한국만의 문화를 기념하는 날보다는 외국에서 온 무언가를 기념하겠다는 기념일이나 휴일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원래 그렇다고 살아왔던 한국인들보다는 자신들의 휴일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이렇게 변해서 전해졌구나,라고 느끼는 외국인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이질감을 느끼곤 합니다.


  역사적인 유래를 살펴보면,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지정한 이유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문화에 친화적인 이가 미국의 원조를 등에 업고 나라의 수장이 되었으니 그렇게 되었다는 점도 웃프긴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그러하니 산마다 절이 있는 우리나라에 부처님 오신 날 역시 형평성(?)에 맞춰 휴일로 정해야 한다고 한 것은 더더욱 웃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5월 1일의 노동절을 휴일은 아니면서도 선택적 공휴일로 지내고 원래는 5월 1일이던 어린이날의 취지는 미국처럼 5월 첫째 일요일로 바뀌게 되었다가 기념일은 한국식으로 날짜를 콕 집어야 하기 때문에 5월 5일이 어린이날이 된 웃픈 역사의 연속을 이어오게 됩니다. 

  스승의 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본래의 의도는 ‘우리 겨레의 스승’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전국 온 백성에 가르침을 주어 존경받는 것처럼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생일은 고사하고 제사마저도 음력으로 지내는데, 당시에는 양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왜 5월 15일로 확정되었는가를 살펴보면, 세종대왕의 생일인 음력 1397년 4월 10일이 양력 율리우스력으로 1397년 5월 7일 월요일이고,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1397년 5월 15일 월요일이라서 그날이 스승의 날로 된 것이라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끼워 맞추기 날이 정해진 것인데요. 그 이유마저, 5월 8일 세계 적십자의 날에 스승에게 감사를 전하려고 소년적십자단의 학생들이 학교를 찾아갔던 것이 어버이날과 겹쳐서 일주일 후로 미루자고 하여 만들어낸 날이라는 웃픈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단오를 기념하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한국인들에게 휴일과 기념일이 한국의 고유의 것보다 밖에서 여기저기 다양한 이유로 가져와서 기념하는 데에는 역사적이자 정치적인 이유(어버이날을 휴일로 제정하자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이유와 같습니다.)부터 주먹구구식 한국행정 방식, 한국인의 조용히 묻어가기식 집단주의 사고 등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복잡 다단한 과정들이 혼재되어 빚어낸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렇게 모여진 날들이 5월을 뜬금없이 가정의 달로 만들어 버린 대한민국, 참 재미있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스승에게 감사하는 마음만큼은 돈독해지는 봄날이었으면 합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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