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대길(立春大吉)의 글귀를 바라보며...
명리학에서는 이른바 '대운(大運)'이라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자칫 카지노에서 우연히 잭팟이 터지듯이 대박이 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것은 인간의 사주팔자, 운명이 이른바 10년을 주기로 하여 그 흐름이 바뀌는 시기를 잡아 설명하는 용어이다.
때 이른 1월 설날을 맞이하고 오늘 '입춘(立春)'을 맞으며, 문득 최근 계속해서 생각의 언저리를 맴돌던, 그리고 내 일상을 맴돌고 있는 운명의 흐름이 어떻게 흐르는지에 대해 정리해두고 싶어졌다.
대운(大運)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누구에게나 10년간 주기적으로 운명이 바뀌는 변곡점 정도인 것으로 앞서의 10년과 뒤의 10년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새삼스레 명리학을 강의하며 사주팔자론을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명은 정해진 것이 없으니 오직 사람의 노력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그렇게 노력하고 죽을 똥을 싸며 매달려도 일이 성사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거나 나보다 훨씬 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은 이가 나보다 더 나은 성과를 쟁취하고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운명을 다시 생각하고 점집을 찾아다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명리학만이 아닌 조금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결국 운명은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우주의 에너지와 사람 개개인이 가진 에너지의 파동이 서로 다르니 그것에 감응하고 그것들이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인데, 그렇게 보자면, 명리학의 기본 개념인 10년 대운은, 바이오 리듬처럼 사람의 운명을 사이클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대비시켜 설명할 수 있다.
얼마 전 사고를 당해 갈비뼈가 숨도 쉴 수 없이, 아파오는 경험을 생전 처음 했더랬다.
작년이 대운이었던 내 에너지의 흐름은, 미묘하지만 매우 명확하게 양화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신기함을 조금씩 내게 감지할 수 있는 사인을 보내왔었다.
갑작스레 한국에 돌아오는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만나던 사람들의 양상이 확연히 달라졌고, 그릇되었다고 지적하는 부분들에서, 짜증을 내지 않고 바로잡겠다고 노력을 했더니 그 피드백들이 오래지 않게 바로바로 더 큰 양화로 되돌아왔다.
대운이 양화로 열린다는 것이 마치 아무런 인과과정도 없이 하늘에서 금덩이가 번개 치듯 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 미묘한 변화들이 내가 더 상위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양화를 구축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그런 쪽으로 생각하려 드는 것인지 다소 미묘할 때도 없진 않았다.
내가 극단적인 운명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의 흐름들은 조금씩 하지만 매우 확실하게 내 주변의 에너지들이 긍정적인 것들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매 이벤트마다 느낄 수 있게 사인을 주고 있다.
2주 전에 당한 교통사고에서도, 지금 늑골이 아파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며 숨조차 크게 들이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지는 부분은 지나칠 정도로 또렷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입춘을 맞이한 오늘에도 아주 명확하다.
내가 소망하고 희망하는 바를 향해 노력하고, 그 결과에 매우 감사히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것이다.
2024년을 채 넘기기 전에 하루아침에 비행기 사고로 가족들을 하늘에 보내야만 했던 이들의 아픔을 보면서, 미국에서 어렵게 공부하고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가 로스쿨에 뒤늦게 입학해서 변호사가 되었는데 이제 그 꽃다운 나이의 꿈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출장에서 돌아오다가 세상을 떠난, 고작 서른을 갓 넘긴 여자 변호사의 사고소식을 보면서, 미국에서 한인계라는 꼬리표를 달고, 피겨 대표팀에서 활약하겠다는 꿈에 부풀었던 그 아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결국 사람의 내일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사실이었다.
피눈물을 쏟아가며 노력해도 원하는 대로 결과가 안 나올 때도 있었고, 다른 누구도 아니고 굳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 억울해하며 가슴이 미어터진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대운이 늘 상승하거나 늘 하강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그 대운이 사람이 이전에 뿌려둔 씨앗과 같이 자신의 노력과 대가를 통해 상승으로 갈 수 있는 자양분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알아갔던 것처럼, 간절히 바라고 노력했다면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긍정적인 성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운명처럼 믿는다.
더욱이 나의 입신양명을 위함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 간절한 소망이 결코 아무렇지도 않고 소멸되지 않고 상승 곡선을 타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무지개처럼 흩뿌려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지 보이지 않는 운명을 믿는 것이 아닌, 내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믿어준단 말인가?
차를 수리하기 위해 센터에 입고시키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다시 퇴원을 하고, 번거롭고 짜증 나는 자동차 보험사와의 통화를 하고, 교통사고 조사관과의 딱딱하기 그지없는 사건 조사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들 속에서도 내가 싣고 가는 긍정적인 에너지들이 노란 벽돌로 쭉 이어진 길을 가고 있음을 느끼며 조용히 하지만 쉼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