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경쟁은 소인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군자가 경쟁하는 법

by 발검무적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다투는 것이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경쟁을 한다. 상대방에게 읍하고 겸양의 뜻을 표한 뒤, 당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술을 마시니 그 다툼이 군자다운 다툼이다."

군자가 다툼(경쟁)하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공자는 이 장에서 군자가 경쟁하는 방식의 대표적인 예로 활쏘기를 든다.

하필이면 왜 활쏘기를 예를 들었을까 하며

의문을 가질 법하다.

<논어>의 이 장뿐만 아니라, <중용>, <예기> 등 다양한 유교 경전에서는 활쏘기를 군자의 대표적인 수양법으로 제시하곤 한다.

먼저 활쏘기가 왜 군자의 경쟁방식에서 대표적인 예로 들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예기(禮記)>에서는 활쏘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射者, 仁之道也. 射求正諸己, 己正而後發. 發而不中, 則不怒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故射者, 進退周旋必中禮,內志正, 外體直, 然後持弓失審固.
"활쏘기는 인의 길이다. 활을 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바름을 구하는 것이다. 자신을 바르게 한 후에 쏜다. 쏜 후 맞지 않으면 자신을 이긴 자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뿐이다. 그러므로 진퇴하고 주선하는 것은 반드시 예에 맞아야 하는 것이고, 안으로는 의지가 바라야 하고 밖으로는 몸을 바르게 해야 하니 그러고 난 후에야 비로소 활을 잡는 것이 견고하게 된다.


삶을 살면서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사실을 공자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공자는 그 불가피한 '경쟁'이 자칫 얼마나 지저분해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활쏘기를 언급한다.


누군가 경쟁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쓰러뜨리고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 다시 말해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이것은 전쟁에 다름 아니다.

공자의 시대는, 약육강식이 실제로 구현되던 춘추전국시대였다.

전쟁으로 대표되는 경쟁은 단순히 승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죽여야만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경쟁'이란 항상 패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활쏘기를 보자.

상대를 제압하거나 상대를 쓰러뜨리는 시합이 아니다.

내가 잘 쏘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문제가 되는 경쟁방식이다.

이 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쏘기 전에 사대에 오르면서 상대에게 정중하게 예의를 표하고,

쏜 결과에 따라 내가 점수가 부족하면 그 벌점으로
내려와서 벌주를 마신다.

기본적으로 벌주를 기분 나빠하며

마시는 이는 없다.

흥을 돋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작은 시합이나 내기에서도

지고서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직접 상대를 쓰러뜨려야만 내가 이기는 경기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대와 상관없이 내가 잘하면 이기고

내가 잘 못하면 지는 활쏘기는

현대의 골프와 비슷하다.

내가 나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고

지게 되어도 내가 나 스스로를 잘 다스리지 못하여

과녁에 명중시키지 못하였으니 나에게서 그 패인을 찾으면 된다.


공자의 시대를 포함하여 근대 이전의 학문의 세계는, 문(文)과 무(武)가 분리되지 않았다.

학문은 단순히 지적능력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와 행동거지를 수양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말 그대로 '수신(修身)'은 몸과 마음을 모두 수양하는 것임을 공자는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이제까지 이 장을 해석하면서 사람들이 놓친 부분을 한 가지 설명해주고자 한다.

위의 활쏘기가 뜬금없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맥락에는 '팔일편과 이것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실제 위에서 설명하는 활쏘기는

단순한 활쏘기가 아니다.

당시 활쏘기를 경연으로 하는 목적은 따로 있었다.

모든 활쏘기에서 저렇게 예의가 엄격하진 않았다.

즉, 위 활쏘기는 '대사(大射)'라고 하여 천자가 함께 제사 지낼 선비를 선발할 때 하던 일종의 선발과정이었다.

왕이 신하와 함께 활쏘기를 하니 당연히 엄격한 예가 갖춰져야만 하는 것은 당연했다.

천자에게 선택되기 위해 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예를 갖추되, 군자로서의 품위를 갖추고 지더라도 그 흥을 깨지 않고 벌주를 마시며 마친다.

말이 쉽지 경쟁을 하면서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활쏘기나 골프마저도 내가 월등히 뛰어나면

이기는 것은 맞지만, 비슷할 경우에는 상대의 실수가 나의 승리를 확정 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실수를 내가 만들거나

상대를 쓰러뜨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

다른 경쟁이나 시합에 비해 수양에 가까운 것은 맞다.


학문이든 활쏘기든 매일같이 수련을 게을리하면

감각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매일같이 동일한 행위를 수련하며

능력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훈련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수련을 할 때는 물론이고

정작 본 경기나 시험에 들어가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멘털을 다스려야

한다는 점에서 활쏘기든 학문이든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한 가지 큰 차이는,

그 지난한 수련과정을 수양을 통해

내공이 쌓인 사람들은 패배하였다고 해서

쉽게 분노하거나 평정심을 잃지 않고

또 그렇다 하여도 그것을 상대방을 향해

표출하기보다는 자신에게서 패인을 찾고

다음을 기약하고 그 원동력을 삼는다.

그것이 공자가 말한 군자의 경쟁하는 방식이다.


먼저 나를 다스리고 수양하는 것.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환경 탓을 하는 것은

소인들이나 하는 짓이며

저급하기 그지없는 수준의 행위임을

우리는 머리로는 너무도 잘 안다.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하여 바닥을 보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이들을 너무도 자주

너무도 쉽게, TV에서도 일상에도 보게 된다.


모든 시작과 끝은 나에게서 나온다.

나를 단련할 뿐이고,

내게서 잘못된 원인을 찾을 뿐이며

잘못된 것이 있다면 나를 통해 고치고

다시 단련 해갈뿐이다.


이 간단하면서도 이르기 어려운 오묘한 이치는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경지도 아니다.


그 길고 어렵다는 <논어>

이렇게 매일 한 장씩 읽어 나가니

진도를 뽑고 있지 않은가?

사소하지만 이 작은 지속적인 공부만으로도

당신의 머리가 트이고

당신의 마음이 열리고

당신의 인성과 양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그 시작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렇게 깨치고 변화하여

노력을 경주하는 이들이 늘어가면

당신이 변하고,

당신의 주변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공자가 그리도

바라마지않았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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