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무엇을 이룬다한들 사람이라 하랴?

by 발검무적
子夏問: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가 물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자하가 "예가 (忠信보다) 뒤겠군요."라고 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깨워주는 사람은 상(자하)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만하다."
자하의 초상화

공자가 얼마나 칭찬에 인색한 스승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누차 설명한 바 있다.

이른바, '춘추필법'이라 하여, 공자가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보면 대놓고 칭찬을 하지도, 폄하를 하지도 않지만 그만의 표현방식은

그야말로 살 떨리는 표현들이 창과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보다 더 살벌하게 확인사살까지 하는 것을 확인하곤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공자가 '더불어 <시경>을 논할만하구나!'라고 말한 것은 극찬에 가깝다.

그 앞에 구체적으로 '나를 흥기시키는 것은 자유밖에 없구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이 극찬을 왜 받았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처음에 언급된 내용은, 지금 정리된 <시경>에는 실리지 않았으나, 당시에 <시경>에는 실렸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실된 시이다.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흰 비단에다가 채색을 가한다'는 내용을 자하가,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라고 잘못 이해하여 질문을 한 것이다.


질문을 잘못하였는데 어리석다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혼내지 않고 도리어 공자는 더 나아간 설명으로 제자 자하를 일깨워준다.

그 유명한 '繪事後素'가 이 장에서 나온다.

뜻은 너무도 간결하고 쉽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한 뒤에 한다.'


본래 이 말은,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에 나오는 말이다.

주자가 살짝 이 말의 설명에 비유를 넣는다.

"마치 사람이 아름다운 자질이 있은 뒤에야 꾸밈을 가할 수 있음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스승 공자가 설명하자, 자하가 이제야 무슨 뜻이지 제대로 알았다며 확인한다.

비교의 대상 없이 '예가 뒤'라는 말을 하자, 제자가 제대로 알아들은 것을 기뻐한 스승이 그를 허여(인정)한다.

예를 뒤로 한다는 것은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를 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반드시 충신(忠信)이라는 기본 자질이 갖춰져야 함을 말한다. 주자는 먼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질을 의미하는 감춰진 단어를 '어질 인(仁)'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충신(忠信)'이라고 해석한다.

사실 그 두 가지의 미묘한 정치적 의미까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 개념 안에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질'이라는 설명으로 대신한다.

그래도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이들을 위해

양 씨(楊氏)가, 이 장의 속뜻을 이렇게 정리해준다.

"단맛은 調味를 받아들이고, 흰 것은 채색을 받아들이며, 충신한 사람이어야만 예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 바탕이 없다면 예가 헛되이 행해지지 않으니, 이것이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한다는 말씀이다."


다시 한번 환기하자면, 이 편은 '예'에 대해 논하고 있는 '팔일편'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당한 참람되이 예를 행하지 못한 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예'가 그래서는 안된다고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그 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예를 제대로 하기 위한 기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자는 한 가지 평가로서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낸다.

자신을 흥기 시킨다는 말로 '敎學相長'의 즐거움을 나타냈으며 <시경>을 언급함으로써 <시경>을 더불어 논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 위한

경계를 뛰어넘고 두루 섭렵하는 학문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가르침을 대신한다.

표면적인 뜻만 이해하는 것도 그것 나름대로 말귀를 알아들은 것이며, 행간의 깊은 뜻까지 읽을 수 있는 자는 그 나름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자신의 등급에 맞게 가져갈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다.


아! 읽는 나이가 변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 다름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실속 없이 겉치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아니 그렇지 않은 자를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다.

실속 없는 허례허식이 얼마나 의미 없는가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자들이 껍데기에 큰 비중을 두고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기준으로 삼는 세상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팔일편'에서 내내 주장하는 것처럼 '예'는 중요하다.

그것이 일실 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지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기 전에 기본으로 갖춰야 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강조하는 것은, 이제 강조가 아니라 필수 불가결한 조건임을 이 장은 말한다.


인간됨이 올바로 서지 않은 자가,

얼마나 많은 성과를 내고

또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그래서 뭇 대중들에게 얼마나 부러움을 사는지

그 모든 것이 평가받기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인간 됨됨이를 묻는다.


사람 좋은 것이 밥 먹여주냐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그리고 내가 다시 풀어 강조하려고 하는 것을

'그냥 사람 좋은 것'정도로 이해했다면

당신은 이 매거진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하면 된다.

추사가 서권기가 없다고 이것은 난이 아니라 부정했던 조희룡의 그림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은,

마냥 다른 사람들에게 사람 좋은 행동을 함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이 무엇인지

여기서 하나부터 다시 논하는 것은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조금씩 공부하며 알아가기로 하자.


명품으로 치장하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통해

고만고만한 것들끼리 기준을 정해

등급을 정하고 그 기준에 부족한 자를 폄하하는 것이 어느사이엔가 불문율처럼 되어 버린 그들에게,

당신들이 사는 것이 잘못된 삶이라고 백번

말해줘 봐야 못 알아듣는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렇게 하는 이들의

심각성은 그나마 좀 낫다.

고향이 어디인지, 어느 대학 출신인지,

그런 같잖은 것으로 패거리를 묶고 엮어

자신들의 말년과 노후를 보장받으려 한다.


아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을 갖추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신이 흰 비단을 먼저 마련해야 함을

깨달은 자라면,

당신이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라.


당신이 당신을 사람답게 만드는 수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하라.

너무도 쉽게 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수긍하고, 심지어 그러한 것들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까지 느끼는

누를 범하지 마라.


당신의 삶을 설계하는 자는

오직 유일하게 당신이다.

공부는 그래서 하는 것이고,

공부한 것대로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면

그 공부는 공부가 아닌 것이 된다.


덧) 마지막 추사와 우봉의 그림에 얽힌 비화는,

이 장의 의미에 빗댄 이야기라 넣었으나,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듯하여,

이후 연재하게 될 그림 이야기로 넘긴다.

궁금한 독자들은 위 그림에 대한 사연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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