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에 신박한 훈수 한 점을 더한다면...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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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배우기 시작해서 눈만 감아도 바둑판과 사활문제가 쏟아지는 바둑초보에게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복기(復棋)라는 것인데요. 복기(復棋)란, 바둑에서,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그게 뭐가 그렇게 신기하기 그지없냐고요? 바둑판 위에 돌을 모두 올리면 가로세로 19줄이니 모두 361자리가 있습니다. 따내고 다시 놓는 경우를 빼놓는다고 하더라도 최소 중간에 돌을 던져 불계로 끝나지 않는 이상, 361수 혹은 그 이상의 수순으로 바둑이 진행된 끝에 종결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 혼자서 놓은 돌도 아니고 상대와 함께 둔 360개 이상의 수순을 다시 외워서 두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래서 복기(復棋)를 처음 본 일반인이나 초보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모두 기억하고 다시 놓는 과정이 신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바둑을 좀 배우고 실력이 어느 정도 올라서게 되면 이 복기(復棋)라는 것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선생님에게 배우는 과정이라면 너무도 당연히 지도 대국의 바둑을 복기(復棋)하며 배우게 되고 독학을 할 경우는 프로들의 명국을 직접 놓아보며 배우기 때문에 이번 격언은 더더욱 당연한 이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위기십결(囲碁十訣)’을 공부하면서도 잠시 언급했었지만, 바둑이 초보를 넘어서 고수의 길을 가기 위한 바둑 훈련 중에서는 프로의 명국(名局) 기보(棋譜)를 통째로 두어보면서 외우는 수련방법이 있습니다. 한 판의 바둑도 아니고 10개 정도의 명국(名局) 기보(棋譜)를 확실하게 외우고 나면 바둑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른다는 정설이 있을 정도로 일반화된(?) 바둑 수련법이지요.
그렇다면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특별한 천재나 프로바둑기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둑을 어느 정도 배운 이들이 복기(復棋)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복기(復棋)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단 바둑에서 하나의 절대적인 명제처럼 여기지는 내용이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바로 그 명제는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라는 말입니다.
처음 바둑돌을 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 돌을 둔 사람은 큰 계획을 가지고 첫 돌로 첫 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첫 수만을 보고 상대가 그 계획은 읽어낼 수는 없지만, 두어 수만 진행되더라도 어떤 모양의 정석으로 혹은 어떤 그림을 그려가려고 하는지를 점점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 계획대로 갈 것인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작전을 파훼할 것인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프로로 향할수록 둘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거의 한정적이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의 수에 대응하는 정수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오면서, (현재는 AI까지 가세하여) 다양한 수가 연구되어 정수라고 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 정해져 있어 그 자리에서만이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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