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겠다.'가 갖는 의미의 무거움

Feat. 주의! '모르겠다'와 잘 구분할 것.

by 발검무적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어떤 사람이 체제사의 내용을 묻자, 공자께서는 "알지 못하겠다. 그 내용을 아는 자는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여기에다 올려놓고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하시고, 그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앞 장에서 설명하였던 바와 같이, 체제사는 천자의 지위에 있는 자만이 지낼 수 있는 제사이기 때문에,

노나라가 지내서는 안 되는 제사라고 비판했던 공자의 입장은 명확하다.

그런데,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공자가 무언가를 묻는 이에게, '알지 못하겠다'라는 표현을 쓴다.


문자 그대로, '모르겠다'라고 이해해버리는 순간,

당신의 이제까지의 공부는 바닥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공자가 '알지 못하겠다'라고 하는 표현은 말 그대로의 표현이 '물론' 아니다.


공자에게 그 표현은 이렇게 사용된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격이 맞지 않는 사람의 질문에 대해 깔아뭉갤 때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자신이 그 내용에 대해 탐탁히 생각하지 않음을 완곡하지만 강력하게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오는 뒷문장은 앞 문장의 의미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힌트를 준다.

이 장에서, 방점이 실린 것은 뒤의 문장이다.

내용을 단순히 모르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모르겠다고 한 표현의 행간을 알라고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체제사가 얼마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제사인지 그 내용을 언급한다.

그러한 과정을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체제사의 내용을 알면 이치가 밝지 않음이 없고, 정성이 감동하지 않음이 없어서 천하를 다스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이 체제사에 대하여 어찌 참으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었겠는가?"


공부를 하는 초심자가 행여, 공자께서 정말 알지 못하는 바가 있을까 싶어 아마도 주자는 조바심이 났었던가보다.

앞 장에서 설명할 때, 체제사가 단순히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형식적인 것임을 강조한 고리타분한 조선 성리학의 그것이 아님은 이 장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체제사의 의미 자체가 갖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에 대해 다시 강조한 것이다.

첫 문장에 기본적인 예의가 아닌 것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나서, 행여 체제사의 의미가 퇴색될까 싶어, 체제사의 갖는 본연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의 수준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천하의 다스림을 비유하여 논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손바닥에 놓고 보는 듯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예기>에서 "明乎郊社之義·嘗禘之禮, 治國其如指諸掌而已乎"라고 한 것이나,

<중용(中庸)>에서 "明乎郊社之禮·禘嘗之義, 治國其如示諸掌乎"라는 유사한 표현이 나올 정도로 체제사의 예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는 이에게 있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손바닥 위에 물건을 얹어놓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을 쓴다.

아마도 그 당시의 상투적인 표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체제사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왕이 근본에 보답하고 고인에 대해 추모하는 뜻은 체제사보다 깊은 것이 없으니 인효(仁孝)와 성경(誠敬)이 지극한 이가 아니면 족히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

복잡하고 고리타분한 설명이긴 하지만, 핵심은 체제사의 원리를 아는 것이 어떻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의 이치를 깨닫는 것의 근본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앞서 '알지 못하겠다'가 갖는 무게가 여기서 중심을 잡아준다.

그것이 왜 노나라에서 지내면 안 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기본이 된다는 설명이 시작점이다. 이 부분은 전 장에서 '예'의 근본을 설명하였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제사가 갖는 본연의 의미에 더해, 체제사라는 제사가 왜 천자만이 지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내용적인 부분이 추가된다.

이것은 엄밀히 구분하자면, 역사에 대한 부분이다.

그래서 공자는 전통이 제대로 본질을 잃지 않았는지를 그 전 시대의 것으로 증명한다는 설명을 굳이 했던 바 있다.


우리는 부모님에 대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따랐는가?

모든 집안에는 그 집안의 가르침이 있다.

국민학교 때 제출해야 했던 '가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제대로 자식을 교육했던 뼈대 있는 집안에서만 볼 수 있는 '가풍'을 말하는 것이다.

어려서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였을 때부터 엄마의 품에서 배우게 되는 그 모든 것을 '가풍'이라고 한다.

어떤 것은 해서는 안되고 무언가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과서를 펼쳐 놓고 배우지 않지만 매일같이 함께 하며 보고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곧 전인교육이라는 결정체로 이어진다.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은 그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공자를 모르고 <논어>를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현명한 이들은 자식들을 그렇게 가르쳤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자식들이 엇나가거나

삐뚤어지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밥상머리 교육은 고사하고 자식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지조차 알지 못하는 부모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자식이 사고를 치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면

그제야 부모라고 나타나기는 한다.


이러한 가풍은 가장에 의해 주도되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화합과 사랑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가풍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사회를 바로 세우고 국가를 다스리는 것의 기본임을 공자는 늘 강조한다.

다 처자식들 먹고 살리느라고

정신없어 가정을 돌볼 틈이 없었다고?

바깥에서 큰 일을 하느라고

집안을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었다고?

자신의 가정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이들이

사업을 하고 정치를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임을 공자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당신이 지금 뭔가 대단한 일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하느라고

부모님에게 소홀하거나

자식들이 뭘 좋아하고 뭘 하고 다니는 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나는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겠다."


그런 당신은 일단 뭔가 대단할 일을 할 자격도

대단하다고 할만한 그 무엇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이니 그냥 가만히 입 다물고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고쳐라.


당신이 그런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벌어온 돈은

결국 가정을 풍요롭게 하지도

부모님을 기쁘게 하지도,

자식을 훌륭하게 만드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럴 것이라고 자위하는 것은 당신의

삐뚤어진 욕심일 뿐이다.

당신이 정말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이 가족을 둘러보고

다시 한번 반성해보라.


당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당신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지금 그러고 있는지

그 본질이라 할 목적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봐라.


그리하면

공자가 말한

체제사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천하의 다스림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는 듯

쉬워진다는 말이 아주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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