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것?!

당신의 오늘을 있게 한 분은 누구신가요?

by 발검무적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제사를 지낼 때는, (마치 조상이) 계시는 것처럼 하셨으며, 신을 제사 지낼 때는 신이 계신 듯이 하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마치 제사하지 않은 것과 같다."

옛날에는 종갓집이 아니라 하더라도 제사가 많았다.

기독교라서, 먹고살기 바쁘니까, 제사의 예에 대해서 잘 몰라서 등등의 이유로 제사는 급격히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갔다.

유학에서의 제사는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이 장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자신의 선조에 대한 제사도 있고, 선조 이외의 신에 대해 지내는 제사도 있다.

이 장에서 공자는, 모든 제사를 지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설명한다.


제사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그 제사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며,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굳이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제사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문화중에 하나이다.

공자는 이 장에서 제사를 지낼 때, 마치 제사의 대상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그 마음가짐의 가장 공손하고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여겼다.

특히,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제사에 보내면 마음이 서운하여 그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여기서 주자의 설명 중 방점은, '내 마음이 서운해서'에 있다.

공자의 시대에도 다른 일이 있어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을 법하다.

그런 경우 다른 사람을 내 대신 보냈다고 기록에는 전한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사람을 보내면, '내 마음이 서운하여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하였다.


제사는 내가 망자가 되신 분과 온전하게 다시 만날 수 있는 자리이다.

내가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분을 뵐 수 있는, 그 분과 만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그러니 어찌 서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학을 넘어 유교에서는 제사에 대한 까다로운 과정들이 많다.

준비해야 하는 제수(제사 음식)이라던가

제사상차림의 방법, 제사의 순서, 제사의 절차 및 과정 등등. 심지어 복장에서부터 지방을 쓰는 법까지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여기에서 한 가지만을 강조한다.

내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것과

제사에 참석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대상이 계시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사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공자는 이 장을 통해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원시 유학이 특정 행위에 대한 본질을 강조하는 방식은 이와 같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사람의 감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사한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조금 멀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깝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한다.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고, 첫제사를 할 때도 마치 그분들이 살아계신 것 같고,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말을 걸 것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그런데, 그렇게 1년에 한두 번 있는 제사와, 설날, 그리고 추석을 보내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저마다의 생활에 복귀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이유로

돌아가신 분들을 조금씩 마음에서 '본의 아니게' 희석시켜나간다.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이야기 나누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사는 그나마 눈에 보이지 않는 고인을 기리는 공식적인 약속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회사에 일이 생겨서, 혹은 다른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고인을 직접 보지 못했던 며느리라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손주 세대들은 고인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없음에도 힘들게 제수를 차리고 제사를 준비하며 제사에 참석해서 따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이 힘든 일일 수 있다.

살아생전에도 가족끼리 밥 한번 먹는 데 저마다 바쁜 일이 있고 애인 만나러 가야 한다고 하고,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함께 자리하지 않았던 이들이 직접 얼굴을 보지 않는 제사에 오죽이나 참석하겠는가마는.


그것이 제대로 된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님을

공자는 아주 기본적인 것으로 강조한다.

내가 참석하지 않으면 큰아버지가 화를 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 서운하기 때문에 제사를 했어도 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없다.

내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세상에 없다.

먹고살기 바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것만이 최우선이라면 인간이 동물과 크게 구별되는 부분이 없어지게 된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사유를 하기 때문이고 그 사유는 단순히 생각하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뿌리를 생각하고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이어지며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을 포함하는 사유이다.


예의를 잘 모르고 당장 애인을 만나는 것이 급하고

당장 회사에서의 회식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식에게 부모가 제사에 반드시 참석하라고 호통치지 않는다.

조부모님이나 부모님과의 한 달에 한번, 아니 1년에 한두 번 있는 식사자리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젊은 세대들에게 부모님 세대는 그저 그러냐고, 알겠다고 하고 지나친다.

그런 흐름 때문에 제사문화는 예전과 사뭇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의 변모나 발전상으로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들이 이전 세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아니, 그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다.

하지만, 다음 세대들이 과거 세대에 대해 제대로 추억할 수 있도록 본질에 해당하는 예를 갖추도록 가르치는 것은 다음 세대, 즉 당신의 자식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제대로 하고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정이 다되어 졸린 눈을 부비며 누구의 제사 인지도 모르면서 이상한 목소리를 내며 지방을 읽으라고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다.

방식은 달라질 수 있고, 형태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본질마저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당신이 당신의 자식들에게 배려하고 하는 그 행동이 결국 당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유산 때문에 부모에게 칼을 휘두르고

형제간에 칼부림이 나는 일은,

제사가 갖는 본연의 의미를 어려서부터 익히고 이해한 집안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쉽게 이해할 리 없는 아이 때부터

제대로 된 본질에 대해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 부모 자식 간의 많은 대화와 교육을 필요로 한다.


백세시대가 되어 평균수명이 더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3대가 함께 사는 모습은 줄어들고 있다.

조부모를 주기적으로 찾아뵙는 손주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강남에 건물을 가지고 있는 조부모가

세금 절약을 위해 자식뿐 아니라 손주에게도

증여를 하는 방식이 세무 법무법인 사이에

절세법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물려줘야 하는 것은 건물이나 돈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고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방식에 대해 연구해보라.

결코 한 번에, 혹은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이가,

하려는 일에 실패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였다는 말을 나는 들어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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