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가?

by 발검무적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왕손가가 물었다. "'아랫목 신에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엌 신에게 잘 보이라'하니, 무슨 말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질문을 한 왕손가는 위나라의 대부이다.

공자가 위나라에 가서 바로 천자였던 영공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은 왕손가가,

당시 속담을 예로 드는 척하면서 천자인 영공에게 갈 것이 아니라, 실권자인 자신에게 잘 보이는 것이 어떠냐고 은근히 비꼬면서 공자를 떠 본 것이다.

실제 이 속담의 내용을 살펴보면 실권자였던 왕손가에게 빗댄 당시 상황이 잘 드러나있다.


주자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자.

당시에 일반인들이 신에게 올리던 제사는 총 5개의 종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제사의 방식이 독특했다.


다섯 제사 모두 어디에서 제사를 지내더라도 제사를 해당 장소에서 지내고 난 뒤

결국 시동을 맞이해서 가장 우위에 속하는 아랫목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부엌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신주를 부엌 뜰에 설치하고, 그 제사가 끝나면 다시 아랫목에 제수를 진설하여 시동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었기에, 당시 사람들은 아랫목 신은 항상 높이 있기는 하지만 제사의 실질적인 주인이 아니고, 부엌 신은 비록 낮고 천하지만 가장 주요하고 사람들이 많이 올리는 제사이니, 아랫목 신이 천자에 해당한다면, 실질적으로 모든 권력을 쥐고 권세를 자랑하는 공손가 같은 대부가 부엌 신에 해당한다는 비유였다.


그래서 실질적인 부엌 신에게 아부하는 것이 형식적으로 위로 모시는 아랫목 신보다

의미를 갖는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냥 '아니다'로 끝내지 않고 1톤짜리 콘크리트 대못을 왕손가의 머리에 박는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천자를 하늘에 비유하되, 앞선 속담의 아랫목 신정도가 아니라 '하늘' 그 자체를 언급한다.

주자의 주석에 의하면, 하늘은 곧, '이치'이다.

이치를 거스르면 하늘에 죄를 얻게 되니, 아랫목 신이나 부엌 신 따위에게 빌어서 면할 수 있는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부엌 신에게 아첨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랫목 신에게조차 아첨해서는 안된다고 못 박은 것이다.

상위 0.001%,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사람의 화법이다.

상대방이 두 가지 양자택일의 방식으로 물으면 일반인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대답하게 된다.

조금 나은 수준의 사람이라면 두 가지 모두 대답하지 않겠다고 거부할 수 있다.

최상위의 성인이라고 하는 공자는 0.001%의 품격을 보여준다.

"제대로 된 정답을 모르는 너를 위해 내가 제대로 된 답을 알려주마.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너의 기본적인 사고방식도 비뚤어졌구나."


공손가가 이 말의 행간과 무게를 제대로 파악했을지 모르겠으나, 이 깊은 뜻을 조금이라도 알아들었더라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수준이 아니라, 다시 공자의 얼굴을 마주하기 두려워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을 정도의 강력한 참교육이다.

사실 이 말을 가장 충격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삼국지의 조조였다.

위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으나, 말년에 피해망상으로 귀신에게 시달림을 호소하는 조조에게 신하들이 도사를 불러 액풀이를 해야 한다고 권하자 조조가 직접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하늘에 죄를 지으면 어디에도 빌 곳이 없다'라고 한탄한다.

공자의 이 이야기가 2500여 년이 흘렀다.

달나라를 가고 화성에 이주하여 살 계획을 구상할 정도의 최첨단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이 말을 듣지 않아도 될 시대가 되었는가?


사람이 사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요즘엔 퇴보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을 넘어 지나치게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여 탈이 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 안 좋은 결과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해당하지 않는다며 다시 권력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기대야 할 권력이랍시고 권력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한다.

굳이 정치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수에게 아부하는 것보다는 과장에게 잘 보이는 게 더 낫고, 과장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부장에게 잘 보이는 게 낫다고, 스스로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며 그것이 승승장구의 비결인 양 떠들어대는 철없는 이들은 발이 채일 정도로 많이 보인다.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대학, 병원, 법원, 검찰, 경찰

심지어 지자체 말단 주사에 이르기까지 그 몹쓸 썩어빠진 사고방식이 고쳐지긴커녕 만연하고 쑥쑥 자라 자기들끼리 무리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고 말았다.

정권을 바꾸겠다며 이 나라가 잘못되었다고

무너져가는 나라를 되살리겠다는 말을

참람되이 입에 담는 자들을 요즘 자주 본다.

이 나라를 그렇게 만든 자는 다름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지 않냐고 그들의 면전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 후안무치한 자들이 버젓이 위정자의 탈을 쓰고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게 만들어준 이들은

바로 당신들이고, 우리들이다.


2500년 전 중국의 권력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던 속담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조금도 빗나감 없이 적나라하게 그 본연의 뜻을 발현하고 있는 것은 수양을 하는 이들이 사회를 못 바꾼 것이고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을 일깨우는데 실패한 것이다.


당신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성공으로 이끌어

발전하게 하고 싶은가?

아니면, 실패하여 몇 천 년 전의 안 좋은 모습을

반복하고자 하는가?


당신이 바뀌는 것이 아주 작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당신의 변화는 확산될 것이고

그것은 아주 의미 있는 출발이 될 것이다.


당신이 공부를 하는 이유도

바로 그렇게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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