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야기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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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녀와 직접 마주쳤던 그날 이후로 그녀와의 대화할 기회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와 얼굴을 맞대고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물론 나에게 그녀의 얘기를 해줄 사람도 없었거니와 그럴 기회도 없었긴 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던 것은 우리가 처음 얼굴을 익힌 그 날이후로도, 꽤나 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과외를 하지 않고 가끔 원고를 전달하러 나가는 일 이외에 집 밖을 나갈 일도 별로 없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접촉 자체를 아예 갖고 있지 않았던 터라 기껏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앞집이라고는 해도 굳이 마주칠 이유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하긴 나 역시 그 여자를 본 적이 없는 셈이 된다.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그 여자 역시 나만큼이나 거기 사람들과 유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 역시 어쩌면 나처럼 경직된 분위기로 집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는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지내 왔다, 최소한 그날까지는.
사실인즉은, 은영이 들어오던 날 여자도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가 여자가 들어왔다는 것을 실제로 깨닫고 인식하기까지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들었다. 바로 맞은편의 문만을 열면 들어갈 수 있는 이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자가 들어왔다는 것은 이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날은 여자가 이사 온 날이라기보다는, 은영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던 정신없던 날이었고, 하필이면 그날, 꽤나 많은 짐들이 커다란 전문 이삿짐센터의 건장한 남자들에 의해 실려 들어온 점이라는 것 정도가 기억의 전부였다.
그저 그렇게만 여자를 기억하고 있던 그녀에게 여자가 확실하게 기억된 것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였다. 여자도 그녀도 서로 기억하려 하거나 기억하게 만들고 싶은 의사는 분명히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히 생각보다 빠른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아가씨는 이번에도 빠질 꺼야?”
“아니에요. 이번엔··· 가능하면 가 볼게요.”
반장이라고 소개를 받은 적이 있는 7층에 사는 여자의 목소리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서 있는 그녀를 잡아끌었다.
아파트 내에서도 반상회를 한다는 것이 그리 낯설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압구정동의 50평 대 아파트촌에 사는 여자들이 자신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생각에는 자신이 이 아파트로 입주한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반상회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의구심을 더더욱 야기시켰다는 것이 그녀를 더 불쾌함에 가깝게 밀어다 놓았다.
나이도 젊은 여자가 그것도 혼자서, 그런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부자를 부모로 가지고 있거나 뭔가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할 것이라는 등의 궁금함에 대한 추리를 야기시켰을 거라는 것쯤은 그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연기도 싫었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더 싫었기 때문이었다.
언제 봤다고 누군 줄 알고 내가 내 얘기를?
특히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녀와 친구가 되거나 그녀에게 한층 더 다가설 인종들이 아니라는 것 또한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그때까지와 마찬가지로 전혀 반상회를 나갈 의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장은 그녀가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 못내 불만스러운 티가 너무 나 보였다. 다른 여자들에 비해 도도하고 늘 턱을 3분의 1쯤 들고 다니는 것만 가지고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엄마와 동생들이 살고 있는 시민아파트의 반장 아줌마처럼 수더분하다거나 적당히 옷을 펑퍼짐하게 입는 동네 아줌마는 결코 아니었다.
시민 아파트에서 받던 반상회 결석 시에 내는 범칙금 따위도 없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생활에 편입될 수 없음을 반상회의 불참으로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혼자서 생각을 이어가는 짧은 와중에도 반장 여자는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단번에 현실로 끄집어 올리는 힘이 충분했다.
“무슨 소리야? 가볼게요, 라니. 이번에 안 오면 아가씨네 집에서 집들이라도 할 테니까 이번엔 꼭 올라와. 그리고 알지? 아가씨네 앞집에 이사 온 사람도 이번 같이 오니까, 이 기회에 이웃들끼리 인사 정도는 나눠야지. 안 그래?”
그렇게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냉큼 올라가 버리는 여자를 보며 그녀는 반장 여자가 그곳에 사는 여자들과 분위기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렇게 관심 따위를 갖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분명히 달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긴 하지만, 반장 여자 역시 혼자서 사는 여자였다. 나이는 마흔이 다 되어 보이는데도 혼자서 사는 걸 보면, 독신녀이거나 이혼녀라는 정도의 추측만이 오가는 정도였을 뿐 아무도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그녀의 설명도 없었다. 분명히 애인이라고 여길만한 남자가 가끔 들른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 강남의 부띠끄와 레스토랑이라는 것을 두고서 돈 많은 유명인의 후처라는 말도 돌았다.
하지만 그런 소문들은 그녀에게 있어 귀가 솔깃할만한 가십 축에 끼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반장 여자는 그곳에 사는 다른 사람 얘기하길 좋아하는 이들과 약간의 차이를 갖고, 반장이라는 감투로 다른 사람의 살림살이를 공식적으로 훔쳐볼 수 있는 자격증을 갖춘 호기심 많은 별종이라는 판단이 다였다.
그녀는 그렇게 쭈뼛거리는 특유의 걸음새로 처음 반상회 자리에 서 있었다.
“자아, 인사들 해요. 여기는 206호에 사는 아가씨. 혼자서 살아요. 소설가예요···”
“예? 소설가요?”
반장 여자의 소개는 사뭇 사람들의 주목을 그녀에게 끌어오기에 괜찮은 이슈였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누구 사모님 입네 하면서 거액의 돈을 들여 작가에게 원고까지 맡겨가며 자비출판을 했던 개중 몇몇 여자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그런 출판 경력 아닌 경력으로 문화센터에서 유명한 소설가 선생님에게 자신의 글이 인정받았다는 걸 자식과 이웃에게 은근히 자랑하는 낙으로 삼으며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나이도 한참 어려 보이고 별것도 없어 보이는 초라한 그녀의 모습에 툭하며 떨어지듯 붙여진 ‘소설가’라는 반장 여자의 소개는, 자신들과 함께 자리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눈높이 수준을 맞출 액세서리가 하나 정도는 달려있음을 확인한 셈이었다.
“어머. 그럼 출간한 책도 냈겠네? 이름이 뭐예요?”
“안녕들 하세요?”
여자가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갑작스레 소설가로 소개받은 것도 당황스럽긴 했지만 마치 자신 한 명을 두고 여럿이서 청문회 하는 듯한 상황에 당황하며 뒷걸음을 치려던 순간 그녀의 뒤에서 다시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던 중, 막 들어선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아주 여유 있는 듯한 미소를 띠며 자리에 있던 여자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미끄러지듯 들어와 그 틈에 자연스레 한쪽 귀퉁이에 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오면 어떡해요? 그래도 잘 왔어요. 여기 앉으세요. 다들 아시죠? 207호에 새로 이사 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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