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건, 다른 이야기 - 5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009
“판사님 나오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늘 듣는 것이긴 했지만 학교종처럼 들리는 경비의 목소리는 오늘도 지난주와 똑같은 그저 그런 범죄자들의 재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뿐이었다. 형사 단독심의 재판은 늘 그렇다. 일주일에 하루 잡혀 있는 공판일정이긴 했지만 농땡이 치기에는 아주 버겁고 힘겨운 일정이 있을 뿐이었다. 잠깐의 점심시간을 제외하고서는 난 늘 그 비슷한 일정을 치르며 이제 이 지긋지긋하게 느린 사투리는 쓰는 충청도를 벗어나 곧 서울의 중앙지법으로라도 올라갈 수 있는 인사고과를 착실하게 챙길 뿐이다. 그렇게 비슷한 그저 그런 재판들의 연속이고, 그런 업무에 짓눌려 매번 손가락에 낀 고무를 뺄 틈이 없는 와중에도, 단독심이라서 합의부 재판처럼 큰 건이 배당되지도 않아서 공판일에 만나는 것이라고는 늘 만나는 이 동네 출신의 거기서 거기인 변호사들뿐인 지겨운 일상의 시작이었다.
그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또 똑같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공판일의 반복이었다.
“사건번호 2009형제 1834 피고인 김철 씨 나오셨습니까?”
경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오전에 늘어지고 내려가는 눈꺼풀을 올리게 한다.
“예!”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머리숱이 듬성한 남자가 나를 향해 강렬한 눈인사를 건네왔다. 한번 만난 기억이 있긴 하지만, 일일이 그의 인상을 내가 기억할 리 없었다고 여겼는데 이상했던 첫 번째 공판일이 악몽처럼 스멀거리며 기억의 저편에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뭐지? 저 당당하고 강한 눈매는?’
천천히 기록철을 잡아끌어다가 예의 습관적으로 최대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펼친다.
‘그래. 그때 신경 거슬렸던 그 남자 재판이구나! 그래, 이거! 그 약식 증인심문하기로 한 거네!’
재판 전 검토할 때도 그저 늘 있는 교통사고 벌금형에 대해 벌금액을 낮춰달라고 하는 가끔 있는 약식명령에 대한 벌금액이 너무 과하다며 기계적으로 그 금액을 낮춰달라는 정식재판 청구라고만 생각했던 건이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살펴보니 일단 이 건은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음주운전에 대한 과한 단속쯤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사건인데, 새삼스럽게 다시 검찰에서 제출한 서류의 죄명과 공소장을 언뜻 살펴보니 이건 피고인이 음주를 해서 단속을 당하거나 한 건이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피고인의 주소와 이름 등을 확인하며 그의 눈빛과 태도를 확인한다. 일종의 최초 스캔이 이루어졌다.
“검사는 공소사실, 다시 진술해 주세요.”
공소사실은 검찰 측에서 이 피고인을 왜 기소했는지 죄명에 대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한 공소장을 낭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공판검사가 오늘 재판해야 할 관련서류들이 잔뜩 쌓여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다가 쭈뼛거리며 일어나 기계적으로 공소장의 공소사실을 읽는다.
“피고인은 2009년 6월 28일, 운전자이던 피고인의 처가 음주운전을 단속받는 중에 단속을 하던 경찰관의 팔을 고의로 꺾는 폭력행위를 통해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피해자인 경찰관에게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혀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범죄인바 이에 기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깜짝 놀라 늘 이어지던 일상의 패턴을 타고 흐르며 나른하던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뜬금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읽는 것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을 막은 것이었다. 심기가 불편해져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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