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괘씸죄> - 12

누가, 거짓말을 왜 하게 되었을까? - 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012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내가 흔히 말하는 롤모델을 잘못 선정한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녀석을 따라 경찰이 되면서부터 꼬인 문제였다.


“경사로 진급을 했다고? 벌써?”


나는 놀란 목소리로 핸드폰을 다시 부여잡으며 갑자기 높아진 통화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는 선배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파출소 뒤편의 공터로 도망 나왔다.


“정말이야? 너 그럼 이제 경사된 거야?”

“아 그렇다니까요. 내가 형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는 거예요. 다음 주 월요일에 진급하는 걸로 서류 다 올라간 거 확인했어요.”

“와! 너 경장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어떻게 그렇게 빨리 또 진급을 하냐?”

“알려줘요? 이게 맨입으로는 안 되는 거고... 우리 동기들 중에서는 형이 나이가 젤 많잖아요. 그래서 내가 특별히 형한테만 비법을 알려줄 테니까 거하게 한잔 사요. 이번주 야간조 교대하고 쉬는 날 이쪽으로 와요. 내가 근사한 횟집 하나 잡아둘 테니까...”


녀석의 목소리가 상당히 들떠 있는 것을 보면 거짓말로 당진까지 나를 불러 공갈 술을 마셔보려는 수작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함께 순경이 되고 나서 경장으로 가장 빨리 진급한 것도 녀석이었고 누구보다 잔머리 굴리는 쪽에는 탁월한 녀석이었다.


내가 삼수 끝에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도 변변치 않은 지방 전문대를 겨우 졸업하고 나서 동네 농협 마트에서 짐을 내리는 일을 할 때 우연히 만난 것이 녀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녀석은 수완이 좋았다. 동네 삼거리의 핸드폰점에서 삐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내가 몸살이 나도록 짐을 옮기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입을 올렸었다. 다른 불량 계약자들이 다시 환불한 문제 있는 핸드폰을 깨끗하게 손봐서 나 같은 호구에게 팔아먹어 자신의 수입으로 남기는 눈치도 빠르고 손도 빠른 녀석이었다. 내게 팔아먹은 핸드폰이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이었고, 거의 재고에 잡혀 있지도 않는 물건임에도 그렇게 팔아먹어 자신의 수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랑한 것도 녀석이 핸드폰 가게를 때려치우고 경찰학교에 순경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하던 그즈음의 술자리에서였다.


“형한테만 말하는 거니까, 그냥 나 믿고 따라와요. 우리 엄마 말대로 지방에서는 순사가 끗발이 제일이라니까요. 내가 핸드폰 가게 하면서도 순경이 순찰만 와도 우리 가게 주인이 알아서 주머니에 몇 만 원씩 찔러주는 건 일상이었다니까요.”


천안 시내에서도 한참 외곽으로 떨어진 시골에서 내가 곧 서른을 넘기게 된다는 사실은 못내 나를 안달 나게 만들었다. 녀석의 제안은 그야말로 귀에 솔깃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정보가 곧 돈이니까, 형이 그동안 모아둔 돈을 투자한다는 셈 치고 나한테 투자하면 경찰학교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같이 동기가 되면 내가 이것저것 챙겨줄게요. 형 나 못 믿는 거 아니죠?”

“음, 그게 내가 경찰시험을 합격할 수나 있을까?”

“아, 형도 참! 1년에 얼마나 많은 경찰을 뽑는지나 알아요? 내가 될지 안 될지 다 간 보고 나서 하는 거예요. 뭐 경찰학교에 명문대 4년제 나온 애들이 오는 것도 아니고, 경찰에 뜻을 둔 엘리트들은 이미 경찰대에 지원해서 간부 되고,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애들이 간부 시험에 다 들어가고, 결국 밑에서 일할 애들은 그저 그런 애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니까요. 게다가 내가 좀 알아보니까 이게 준비할 게 그다지 많지도 않아요. 족보 정리하는 것도 그렇고, 이미 족보랑 시험 준비는 그냥 이거 몇 권만 외우면 된다니까요?”


녀석이 옆에 들고 나온 떡제본 된 두툼한 책을 쥐고서 흔들어 보였다.


“내가 형한테만 정말 싸게 파는 거니까. 그럼 다른 건 됐고 이 책만 사서 경찰학교에 떨어지면 내가 다시 그 돈 줄게요. 어차피 나도 석 달 동안 이거 달달 외우고 실기준비도 해야 되니까 내일모레부터 둘이서 죽어라 준비 한 번 해봅시다. 그냥 농협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살 거는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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