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대한 사건의 시작을 만나다.
이 소설은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나는 거대 언론사가 운영하는 케이블 TV의 뉴스 사회부 기자다.
나름 SKY라고 불리는 한국의 명문대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대학의 학보사에서 4년 내내 ‘언론고시’라는 부르는 언론사 입사시험을 목표로 노력해왔고, 주요 일간지라고 하는 지금의 회사에서 인턴도 했고, 대학언론상에서 몇 번의 수상도 했던 나름 괜찮은 스펙을 자랑하는 성적으로 우습게 수습딱지를 떼고 케이블이긴 하지만 버젓이 얼굴을 내밀고 “지금까지...~였습니다.”를 마이크에 외칠 수 있는 기자가 된 지 반년이 지났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첫 줄을 내 현재 신분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 것은 내 고백을 끄집어내기가 도저히 쪽팔려 슬쩍 중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끄집어내려고 해서이다.
맞다. 나는 기레기다.
그런데, 수습딱지를 뗀 반년을 포함해서 인턴을 하고 수습을 하는 몇 년이 되는 시간의 경험으로 확언하건대, 나는 기레기 아닌 ‘기자’라고 부를만한 선배나 데스크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기자=기레기’라는 공식에 고개를 끄덕여버릴 지경으로 타락하고 말았다는 스스로의 자평을 내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턱턱 택시를 타고 그 영수증을 받아 회사에 경비로 청구할 수 있는 사회부 새내기 기자이긴 하지만, 케이블 방송사의 특성상 대개 새내기들이 뉴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가다를 뛴다.
그 점에서 보면 나는 최소한 지금 취재의 최전선에서 멋지게 내 명함을 내밀면서 ‘저는 TV장자 기자입니다만...’이라고 하면서 상대의 야코를 죽이는 끗발은 갖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갈망하던 사회부 기자가 된 지 6개월이나 지났건만 나는 6개월 전 수습을 달고 있을 때의 이 사건에서부터 기레기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맞다. 이제부터 내가 고백할 사건은 내가 기레기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빼박 증거이다.
내가 이 고백을 기사를 통해서 방송으로 내보내지도 못하면서 고해성사처럼 여기에 기록하여 남겨두는 것은, 혹시라도 어딘가에 있을 혹은 언젠가 탄생하게 될 ‘기자’들에게 더 이상 기레기들과의 차별점을 갖고 자신의 직업에 대해 최소한의 자부심을 가지라는 같잖은 선배 꼰데 짓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건 내 안에서 어느 어둠 속 한편에 웅크리고 앉아 찌그러져 있을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나의 기자 양심이라고 하는 것에게 보내는 위로이고, 참회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훌륭한 인턴 시절의 실적을 가지고서도 날고기는 S대와 K대 출신의 짱짱한 녀석들에게 밀리고 밀려 케이블까지 기어들어온 것은 언론사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결코 저버릴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악착같이 수습 시절을 버티려고 나름 수습기자로서의 특종까지 꿈꾸곤 했다.
사회부 수습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경찰 마와리다. 경찰서에 붙어 지내면서 사회부 특종이 될만한 사건을 꾸려서 매일같이 선배 기자에게 보고하고 기사가 될만한 것을 꾸려서 검사받고 하는 일의 반복인 셈이다.
말은 쉽지만, 경찰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서를 찾아오는 민원인들이나 사건사고로 경찰서를 스치는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에서 뭐가 왕건이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하고, 뭔가 하나 걸렸을 때는 그 감을 재빨리 확인하기 위해 기동력을 갖추고 팩트 체크를 해야 한다.
물론 그것도 크로스 체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저 적당히 경찰이 던져주는 카더라식의 기사를 꾸미거나 확인되지도 않은 것을 혼자 흥분해서 특종이라고 선배에게 가져다줘봐야 욕만 바가지로 먹을 뿐이다.
그날도 늦은 점심을 햄버거 하나로 간단히 때우고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오는 이들을 슬슬 어슬렁거리며 뭐라고 하는지 뭣 때문에 왔는지 귀동냥을 하던 중이었다. 그나마 강남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동네를 관할하는 경찰서였기에 생각보다 큰 사건들이 툭툭 터져주는 것이 다른 경찰서보다는 훨씬 나았다.
뜬금없이 인기 연예인이 술을 먹고 꽐라가 되어 멀쩡한 가로수를 들이박고 도주하는 사실을 스쿠프(특종)로 잡는 경우도 몇 주전에 있었던 터라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그저 흘려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경찰이 조사도 해보지 않고 그게 성립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해요?”
갑자기 터진 박력 있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 쪽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바라보았다. 체격이 다부져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아내로 보이는 여자를 옆에 앉혀둔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 담당 수사관에게 일갈을 날린 것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언성을 높이시면 큰일 납니다.”
담당 수사관이 당황한 얼굴이 역력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려고 상대를 야코죽이기 위해 묵직한 선빵을 날렸다. 하지만, 일갈을 날린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사건이 안될 수도 있다구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어떻게 지금 고소장을 작성해온 사람한테 버젓이 그런 말을 하죠? 지금부터 내가 녹취를 좀 하겠습니다.”
남자가 핸드폰을 만지며 녹음 버튼을 누르고 수사관의 앞에 핸드폰을 턱 하니 놓았다. 담당 수사관은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도 상대는 그저 무식하게 소리만 지르거나 경찰서가 어떤 곳인지 잘 몰라 무조건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경찰 마와리도 그렇지만 그간의 학보사 기자는 물론이고 인턴을 하면서도 경찰서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어떤 입장이고 얼마나 교육을 받은 사람인지, 무엇보다 그 사람이 아쉬운 입장인지 당당한 입장인지가 대번에 들어왔다. 담당 수사관은 그저 대개의 경찰서를 찾는 일반인을 기대하고 먼저 선빵을 날렸다가 대번에 발려버릴 입장으로 전락해버렸다.
“아니, 저는 대화 녹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잔뜩 쫄아버린 얼굴에 당황해서 얼굴이 벌겋게 되어버린 담당 수사관은 그에게 항변했다. 그러나 이미 상대는 이제 경찰 밥을 먹은 지 채 10년도 넘기지도 못했을 경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레벨이었다.
“대화 당사자간의 녹취는 상대방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대한민국 현행법상 불법녹취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당신 현역 경찰 맞아요?”
재미있는 구경이 시작되었다. 다른 곳을 보는 척했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박진감 있는 싸움은 분명히 그만한 스토리를 담고 있기 마련이었다. 내 귀는 소머즈의 그것이 되어 그쪽에 주파수를 최대치로 맞추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김 형사. 고소인분이신가? 왜 이렇게 흥분하시게 그래?”
‘그럼 그렇지,’
나와 똑같은 계산서가 이미 나온 노련한 강 팀장이 얼른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예의 그 넉살 좋은 미소를 날리며 물었다.
“아니, 그게...”
뭐라고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려는
“제가 팀장입니다만, 뭔가 불편한 일이라고 있으셨던 겁니까?”
“아니, 고소장을 접수하려고 하는데, 변호사가 쓴 게 아니라면 문제가 된다는 둥 헛소리를 하더니 지금 민원 양식에 맞춰 작성해서 가지고 왔더니 혐의가 성립이 되지도 않을 수 있는데 접수를 정말로 할 거냐는 둥 그따위 소리를 하잖아요?”
남자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그가 화가 난 이유를 말했다. 분명히 그가 아까 언성을 높인 것은 흥분해서가 아니라 팀장급을 끌어내려는 모종의 제스처였음을 나도 눈치챘고 이미 능구렁이 팀장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팀장을 대하는 남자의 설명은 높은 사람이 나타나 쫄았다기 보다는 이제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 튀어나왔으니 천천히 설명해주마, 라는 여유가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재미있겠어. 이거 뭐가 있겠는데?’
사건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경험상 저런 교육정도와 처세 수준을 가진 사람이 경찰서에 고소를 하러 왔을 때는 가벼운 사안인 경우가 극히 드물다. 나는 더욱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김 형사,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맞나?”
“아니, 그게, 꼭 조사를 안 하겠다고 한 건 아니구....”
팀장의 갑작스러운 진지한 질문에 김 경사가 꼬리를 내리는 듯 애먼 녹음기가 켜져 있는 핸드폰을 신경 쓰이는 듯 힐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왜 그런 오해를 사는 행동을 해. 죄송합니다. 다른 뜻은 아니고, 아마 일정을 잡기가 그래서 사건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서 그런 말을 한 것이지 사건을 접수하지 않겠다는 의도나 무시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책임지고 이 건에 대해서는 접수에서부터 신경 쓸 테니 노여움 푸시고 일정 잡고 돌아가시죠.”
강 팀장의 발 빠른 대처에 남자가 가만히 핸드폰을 들어 녹음 버튼을 다시 눌렀다.
“고소인 조사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김 경사. 이번 주 오프 전에 빈 시간 잡아서 얼른 알려드려. 고소인 조사니까... 어디 보자. 이거 피의자가 강남구 거주자가 아니네요?”
“네. 그렇습니다.”
남자의 대답에 팀장의 얼굴에 잠시였지만 분명히 희색이 돌았다. 이유는 뻔했다. 피의자가 강남구 거주자가 아니라는 것은 이 사건은 피의자의 주소 관할 경찰서로 이첩되어 처리될 것이고 이쪽에서는 고소인 조서만 꾸며서 그쪽에 넘겨주면 그만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오케이. 얼른 일정 잡아서 알려드리고. 아까 실수한 거 다시 사과드리고.”
팀장은 굉장히 나이스 한 굿 캅 역할로 졸지에 김 경사를 배드 캅으로 만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싱겁게 고소장을 접수하고 삼일 뒤로 일정을 잡은 남자가 아내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막 경제팀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천천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서 나는 팀장과 김 경사의 시선이 끊긴 것까지 확인하고는 재빨리 계단으로 뛰어내려 가 막 경찰서 로비로 나서는 두 사람을 붙잡았다.
“저기, 선생님. 잠시만요.”
“네?”
내가 헐레벌떡 잡는 소리를 내자 여자가 먼저 뒤를 돌아봤다.
“안녕하세요. 저는 TV 장자 사회부 기자입니다만, 선생님이 고소하러 오신 사건에 관심이 좀 있어서요.”
경계의 시선으로 다가서는 것을 움찔하게 만든 남자가 내가 내민 명함을 받고서 힐끔 보고는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케이블 방송사군요?”
“네. 그렇습니다.”
대개 일반인의 경우 이름이 유명한 언론사의 케이블 방송사라서 뭔가 호감을 보이거나 점수를 주고 시작하는 것이 익숙한 반응이었는데, 남자처럼 언론사의 레벨을 이미 꿰고 있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최대한 내가 꼬리를 낮추고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처세에 대해서는 이미 몇 번의 호된 경험을 통해 익혀온 터였다.
“네. 케이블이긴 하지만, TV매체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희 언론사가 유력 일간지가 메인이다 보니 뉴스가 파급력이 있다면 공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뻥이었다. 일간지에서 터트려서 파급력이 있는 뉴스 찌그러기를 다시 영상과 함께 반복하여하는 경우는 있어도 우리 쪽에서 다룬 것을 일간지 쪽에서 가져가거나 공유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이 일간지 쪽과 우리 매체 간의 계급구조였다. 하지만 그것까지 그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버였다.
“내 사건이 아직 뭔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무슨 생각에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물어오는 거죠? 게다가 아직 수습이군요? 경찰 마와리 중이었던가 보죠?”
그는 이미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예리함을 갖춘 상대였다. 이제 나는 꼬리를 내릴 것이 아니라 뒤로 누워 배를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아까 어설픈 경찰을 잡는 모습을 보고 분명히 뭔가 억울한 부분이 있으셔서 고소하러 직접 오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사건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따라왔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여기 카페도 있는데 잠깐 차라도 한잔 하시면서 이야기 들려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최대한 솔직하고 겸손하게 내 진실됨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이런 상대에게서는 국물도 못 건진다는 내 감은 적중했다.
“좋습니다. 당신은 병원일도 있으니까 먼저 가도록 하지. 나는 여기 기자 양반이랑 잠깐 이야기 좀 하고 갈 테니까.”
“그래요. 그럼. 저는 먼저 갈게요.”
경찰서 한 켠에 마련된 허접 하지만 나름 이야기를 할만한 장소가 그곳밖에 없었던 탓에 나는 재빨리 아이스 라떼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대강 우유를 섞어 모양만 비슷하게 나온 라떼를 내밀며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양해를 구했다.
“괜찮으시면 대화를 녹음 좀 해도 될까요? 혹시 제가 놓치는 이야기라도 있을까 싶어서요.”
“편할 대로 하세요.”
그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고 그 거대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시발점이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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