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 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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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2020년 4월 7일 이사 당일의 하루 전 황당한 협박성 내용증명서 목사에게 도착하고 나서 교수 내외는 목사와 계약서(전세계약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목사의 이름이 아닌 목사의 아내 이름으로 해두었다)에 나와 있는 그의 아내 전화로 수차례 유선 연락을 취했던 기록이 캡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협박성 내용증명서까지 보낸 목사와 그의 아내는 교수 내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당장 그다음 날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이사를 할 생각인지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교수는 그렇게 전화를 열댓 번 하다 못해 목사에게 카톡, 전화 메시지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목사님도 기억하시겠지만, 우리 계약서의 특약사항에 손해배상에 동의하여 기명한 사실이 있음을 기억하실 겁니다. 증거를 확보했음에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은 나름의 배려였습니다만, 이리 후안무치한 태도로 일관하고 굳이 법적으로 하자고 하시니 그러면 그렇게 하시지요.
보수비용의 일부를 감안하시겠다고 하여 전체 견적을 보냈고 비교를 증명할 사진까지 보냈음에도 뜬금없이 그 비용 전부를 다 낼까 봐 지레 두려워지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크게 착각하시고 자기 발등을 찍으시는 것 같아 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이삿짐센터에서 바닥재를 잘 깔고 작업하는 것이 행여 쓸데없는 비용이 터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고지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법적 처리를 하자고 내용증명을 보냈으니 보증금 전액은 손해배상이 이루어지기 전까진 내일 날짜로 법원에 공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의 의사를 수렴하기 위해 수차례 카톡과 유선 연결 시도하였으나 연락을 거부하고 받지 않으셔서 유감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법적으로 진행하길 원하시니, 예배 행위에 대한 특약 손해배상도 당연히 증거와 함께 청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던 그는 꼬박꼬박 카톡의 메시지는 확인했다. 내가 판단하건대, 당시 목사는 자신이 더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협박을 하면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더욱 기겁을 하고 겁을 먹어 그의 의도대로 순순히 전세보증금을 줄 것으로 막연히 기대했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눠본 김 교수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는 수차례 언쟁과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서도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보기엔 너무도 어리석은 선전포고를 목사는 하고야 말았다. 그가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착각했다는 내 판단의 근거는 그가 이사 당일 아침 8시에 교수에게 보낸 일방적인 카톡 메시지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이사 시작합니다. 전세보증금 송금해주세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집을 이사하기 시작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가? 굳이 법적으로 ‘동시이행’이라는 어려운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월세든 전세든 살아본 사람이라면, 아니 처음부터 자기 집이 있어 살아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인의 입장이었을 테니 이 대국민의 상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자고로, 계약기간이 만료하고 집을 이사할 때는, 이사가 모두 끝나고 나서 집이 상한 곳이 없는지 주인과 세입자가 집을 둘러보고 확인한 뒤에, 집주인은 보증금을 주고 세입자는 열쇠 등을 넘기는 것으로 ‘동시이행’이라는 것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잔금이 입금되지 않으면 이사 갈 집의 열쇠를 넘겨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때문에 대개 아침부터 이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점심때쯤이 되어서야 이삿짐이 다 빠졌다고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고, 부동산 업자와 함께, 혹은 집주인이 집으로 가서 집이 멀쩡한지를 확인하고 나서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목사는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이라도 되나?
어떻게 생각해도 내 상식으로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 답답함은 이후 벌어질 일들에 대한 황당함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새발의 피)이었다.
교수는 아내와 그 메시지를 받고, 일단 전날 그렇게 전화를 해도 연락이 없었으니 의사를 확실하게 재확인하기 위해 계좌에 보증금을 넣어둔 채, 강남에서 전원주택으로 출발했다. 교수 내외가 자신들의 전원주택에 도착한 것은 11시가 채 되기 전인 10시 40분경이었다.
집 앞에 있어야 할 5톤 이사 트럭은 보이지 않았고, 집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어디에도 이삿짐을 옮기거나 한 흔적은 없었다. 의아하다고 생각한 교수 내외는 차를 세우고 가만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가 문을 두들기니 밖을 빼꼼히 바라보고 있던 거실의 뭇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교수 내외를 맞은 사람은 처음 보는 대머리의 늙은 남자였다.
“아이구, 어서들 오세요. 이게 왠일이랴!”
늙은 대머리의 남자는 굵직한 바리톤의 목소리로 비굴하리만큼 경박한 미소를 띠며 교수 내외를 맞았다. 그의 뒤에서 목사와 그 두 사람의 아내로 보이는 사람들 아이들까지 우르르 나올 듯이 교수 내외를 치어다보고 있었다.
“누구시죠?”
처음 보는 얼굴에 황당한 교수가 대머리 남자에게 되물었다.
“아, 저요? 그게 저어, 잠시만, 제가 나갈 테니까, 그러니까 동생은 좀 들어가 있어.”
마치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그가 현관에 서서 신발을 고쳐 신으며 밖으로 나와 현관문을 굳게 닫았다. 졸지에 아직은 찬바람이 부는 정원으로 밀리듯 교수 내외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야만 했다.
“도대체 누구시죠?”
교수가 다시 신경질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이, 나는 우리 추 목사 형이에요. 교수님 되시죠? 제가 말씀만 많이 듣고 이제사 이렇게 만나 뵙네. 제가 계약하는 날이랑 이사하는 날에도 와서 교수님 부모님도 뵙고 그랬는데...”
목사의 형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덩치가 큰 대머리의 늙은 남자는 걸걸한 굵직한 바리톤의 목소리로 정원의 한쪽 정자로 교수 내외를 이끌며 말했다.
“동생이 워낙 다혈질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사고를 치는 통에 제가 걱정이 돼서 왔어요. 어제 와서 나 여기서 잤다니까? 그래서, 내가 아침에 이사를 한다는데, 뭐 보증금을 못준다네 뭐네 했다고 얘기가 오가고 했다고 해서 이게 뭔가 잘못되었구나 싶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수습하려고 와있었던 거예요. 마침 이렇게 오셨으니 잘 오셨네. 동생이 너무 욱하는 성질이 심해서 도저히 교수님이랑은 말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저랑 얘기하시죠.”
갑작스러운 그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정원으로 통해있는 거실의 대형 유리 쪽으로 교수가 시선을 돌렸다. 마치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는지 궁금했는지 목사와 사람들이 정자 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빤히 보였다. 교수와 시선이 엉키자 마치 자신은 관심이 없었다는 듯이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피하는 것까지 보곤 교수가 다시 남자에게 물었다.
“이사를 8시에 한다고 하더니 이사를 다 끝낸 건가요?”
교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남자가 움찔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8시에 이사가 다 왔는데, 이건 보증금을 받지 못할 상황인데 이사를 진행해서는 안될 것 같더라구, 그래서 내가 그냥 다 돌려보냈지. 돈도 다 줬어요. 그 사람들이 허탕을 쳤네 뭐했네 난리들을 쳐가지구...”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어제부터 얼마나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받지도 않고서?”
“에? 그랬어요? 에휴! 동생이 왜 그랬을까?”
말하는 내내 눈을 이리저리 티 나게 굴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교수는 그가 뭔가 감추는 것이 있다는 것이라던가 그가 진실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금세 읽어낼 수 있었다. 목사가 경상도 말투를 사용하는데, 형이라도 자칭하는 자가 늘어진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도 그들이 형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든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당면한 문제를 이 사람이 형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어쩌자는 겁니까?”
다시 교수가 그에게 쏘아붙이듯 물었다.
“아니, 내가 들어보니까, 집을 동생네가 많이 상하게 했더라구. 그런데 보내주신 견적서를 보니까 이게 2550만 원이나 되니까 동생네는 너무 놀라고 겁도 먹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성질이 욱하다 보니까 또 그렇게 반응했나 보더라고요. 어떻게 서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요?”
남자는 내내 교수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며 뭔가 자기 나름대로 분석이랍시고 머리를 계속 굴리는 듯했다.
“그런 사람이 연락을 이사 전날까지 피하고 이사하는 날 아침에 이사 시작했으니까 보증금 보내달라고 카톡 틱 보내고 맙니까?”
교수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아니, 그러니까, 저 성질머리 때문에 탈이라니까. 이제부터 저랑 얘기하시면 돼. 그러니까...”
“내가 카톡을 보낸 것도 이미 보셨겠지만, 2550만 원 견적서를 보내고 다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견적을 받았으니까 상의하자고 했더니 자기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면서 한 푼도 내놓지 않겠다고 버티는 방식으로 나오는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더 한단 말입니까? 자아, 저 오래된 노송(老松) 보세요. 저걸 저렇게 잘라버리면 저게 얼마나 보기 흉합니까?”
“에? 저걸 누가 저렇게 잘라버렸대?”
남자가 오버하며 굵직한 목소리톤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스럽게 나무로 다가가 이리저리 둘러보는 척을 하며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내가 딱 보니까 우리 교수님이 딱 서울대답네. 나랑 얘기하면 잘 맞으시겠어. 나도 사실은 천안에서 교회를 두 개나 하는 목사여. 내가 신학대학교 학과장도 하고 있고, 나도 학과장하면서 서울대 사람들 많이 대하고 그래 봤는데, 역시 사람들이 머리도 빠르고 이해가 빠르더라구.”
그의 너스레에 교수는 짜증이 슬슬 임계치에 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뒤집어엎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오늘 이사를 하긴 할 겁니까?”
“해야지. 보증금을 받으면 바로 가야지. 저쪽에 가기로 계약도 다 했는데...”
“그러면 집 손상시킨 것에 대한 보상문제는요?”
바로 교수가 다시 핵심을 짚었다.
“그러니까, 그걸 지금부터 말씀을 해보자는 거지. 그래서 2550만 원을 다 받으실 요량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어리숙한 척하면서 앞서 김 교수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 놓치지 않고 전체 견적 금액이 아니라면 그 보상 금액을 최대한 조정하여 줄여서 합의를 보겠다는 본심을 바로 드러낸 것이었다. 교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때문에 더욱 불쾌감이 스멀거리며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먼저 이야기해보시죠. 견적서까지 보냈으면 다 내 잘못이 아니니 한 푼도 못 내놓겠다고 한 동생분과는 다른 상식이 통하는 학과장님이자 목사님이신지...”
교수가 살짝 그의 신분을 찌르며 반응을 보는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러니까, 살면서 그렇게 손상을 입혔으면, 이렇게 나무까지 버젓이 잘랐는데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면 안 되지. 우리 동생이 좀 그런 구석이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잘 달래서 이야기할 테니까, 최대한 그 금액을 좀 줄여주시면...”
“이거 보세요. 이게 무슨 시장에서 콩나물 값 깎는 겁니까? 남의 집에 살면서 버젓이 살림을 손상시켜놓았으면 그것을 원상 복구시키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이고, 법 이전에 다른 사람의 물건을 손상시켰으면 배상하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교수가 참다못한 짜증을 터트리듯 따졌다.
“맞지요. 맞아. 교수님 말씀이 맞아. 맞는데, 그렇다고 2550만 원을 다 내놓으라는 건 너무 과한 처사잖아요. 아까 교수님이 그러셨잖아. 그걸 다 받겠다고 한 건 아니시라구.”
남자가 연신 눈알을 이상한 방향으로 데구르르 굴리며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교수의 아내가 곁에서 참다못해 그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아니, 남편이 이 별장을 하도 애지중지해서 잘 관리하겠다고 해서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전세도 준 건데, 남편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제가 전세 주고 이 꼴이 나서 얼마나 미안한데, 차라리 이렇게 된 김에 깔끔하게 전세를 또 주자고 해서 몇 달 전부터 집을 내놨는데 부동산에서 이 집이 다 망가져서 들어와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니,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로망을 가지고 오는 건데, 지금도 저 현관문만 열어도 무슨 70년대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을 하고, 도대체 집안에서 뭘 했길래 냄새를 없애려고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을 해요? 어떻게 남의 집을 이렇게 망가뜨려놓을 수가 있어요?”
“에휴! 우리 사모님이 마음이 많이 상하셨구나. 너무 그렇게 속상해하지 마시고. 또 집수리하는 전문업자들 불러서 싹 손보시면 다시 깔끔해질 겁니다. 허허허.”
남자의 속 좋은 바리톤 웃음에 교수의 아내가 다시 쏘아붙이듯 물었다.
“그래서 고치겠다고 견적 받은 거 보냈더니 지금 이사하는 날 아침부터 보증금을 내놓으라고 문자 보내고 연락도 안 받고 견적 받은 금액 2550만 원 중에서 도대체 얼마를 부담하겠다고 이런 생쇼를 하는 거예요?”
교수 아내의 구체적인 지적에 남자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는 듯했다.
“그러니까....”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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