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고소(아동학대 재수사) - 15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184
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여기자의 말에 교수가 소스라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누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중양 경찰서 수사과장이요.”
“내가 바로 여청과에서 수사했던 강력팀 팀장에게 전화해서 사실 확인하고 다시 전화할게요.”
“네. 그러세요.”
흥분해서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교수와 달리, 여기자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화를 끊었다. 교수는 바로 여청과 강력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유 있는 느긋하고 늘어지는 목소리의 안 경위가 전화를 받았다.
“네. 안 경위님? 저 김 교수입니다.”
“......”
김 교수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자마자 묘한 정적이 아주 짧지만 느낌상 뭔가 묘하게 긴 여운을 남기듯 느껴졌다.
“안 경위님?”
“아, 네. 교수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 방송사 기자에게 연락을 받았는데요. 재수사하신 거 왜 저한테 아무런 통지가 안 오지요?”
“네? 토, 통지요?”
안 경위가 특유의 느긋하고 늘어지는 말투가 사라지고 다급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말투로 확 바뀌었다.
“네. 통지요. 제가 고소 고발한 사건인데, 왜 저한테 통지가 안옵니까?”
“그건, 그러니까 그 사건이 내사사건이라서...”
“이것 보세요. 그게 내사사건이 아니라는 건 우리 둘 다 알고 있고, 내가 근거를 남기려고 진술조서 말미에 직접 쓰기까지 했잖아요!”
교수가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원하시는 대로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검찰에 송치까지 했는데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송치요?”
흥분했던 김 교수는 ‘송치’라는 말에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방송사 사회부 기자가 연락이 와서 중양서 수사과장과 사실관계 확인 취재를 하던 과정 중에, 초동 수사관이 피의자인 목사가 자기 아이를 던지려고 한 행위가 없었다고 부인했다면서, 재수사과정에서도 아이를 던지려고 한 행위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는 개소리를 하는데요. 그게 어떻게 된 건가요?”
“네?”
뭔가 감추고 있던 것을 현장에서 들킨 사람처럼 안 경위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숨소리만 냈다.
“송치가 되었다고 하셨죠?”
“네.”
“그러면 사건 번호가 있겠네요?”
“네? 아, 그거야 물론 있죠.”
“그 사건 번호 좀 알려주세요. 제가 검찰에 알아보겠습니다.”
“네? 뭐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왜요? 제가 확인하면 안 되는 뭔가라도 있다는 건가요?”
교수가 안 경위의 이상한 행동에 딴지를 걸 듯 되물었다.
“아닙니다. 지금 제가 밖에 나와 있으니까 사무실에 들어가는 대로 바로 문자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중간에 전화를 끊은 임 조사관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아니었다.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방송사 기자에게도 전화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안 경위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안 경위에게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사건번호와 북부지검의 검사실 번호 그리고 담당 검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다릴 틈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303호 검사실입니다.”
“네. 실례지만 사건을 고소 고발한 당사자인데요. 사건에 대해서 통지를 못 받아서 사건이 그쪽으로 송치되었다는 말을 지금 전해 들어서 확인하려고 전화했습니다.”
“네? 어떻게 고소고발인데 통지를 못 받으셨다는 거죠?”
“저도 그게 어이가 없어서 확인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송치했다는 경찰이 사건번호를 알려줬는데 지금 불러드리면 확인할 수 있을까요?”
“네. 불러주세요.”
사건번호를 불러주자 전화받은 여직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듯하더니 몇 초 후에 황당한 대답을 건네 왔다.
“이거 경찰 인지사건인데요? 게다가 이거, 이미 가정법원으로 저희가 넘겨서 종결한 사건인데요?”
“네? 가정법원이요?”
안 경위가 끝까지 진술조서에 적시한 내용을 무시하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하더라도 검찰에서 서류를 손상하거나 고의로 누락시키지 않는 이상 진술조서의 마지막 장에 특이사항을 적는 고소 고발인이 많이 않다는 점에서 그걸 제대로 읽었다면 사건을 내사사건이나 인지사건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에게서 상식을 요구하는 것이 이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했던 김 교수는 그것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가정법원은 또 무슨 소리이며, 사건이 이미 가정법원에서 종결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도저히 영문을 알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거죠?”
“네?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거기 계장이나 수사관 없나요?”
여직원이 취조하듯 물어보는 교수의 태도에 당황하며 전화 수화기를 제대로 막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사관님. 고소고발을 한 당사자라는데요. 사건이 인지사건으로 넘어온 거예요. 왜 그렇게 처리되었느냐고 물어보는데요? 뭐라고 대답해요?”
“나한테 돌려줘봐. 무슨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야, 또?”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자신들의 대화가 그대로 들린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는지 상냥한 척하는 목소리로 바꾸고 전화를 돌려주었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네. 제가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서 고발을 한 고발인데요. 사건 진술조서에 직접 육필로 이 사건이 경찰 측에서 우기는 것처럼 인지사건이나 내사사건이 아니고 내가 경찰청 본청에 직접 항의해서 다시 재수사하게 된 사건이라고 명기했습니다만, 검찰에서 수사를 하면서 그 부분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냥 인지수사라고 인정하고 도장 찍어서 넘긴 건가요?”
중간에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듯 일목요연하게 핵심을 찔러버리는 질문에 여유를 부리던 수사관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다시 천천히 말해줘요?”
“아, 아닙니다. 사건 진술을 하실 때 진술조서에 그런 내용을 모두 적시하셨다구요?”
“네.”
짧고 묵직하게 대답하는 교수의 답변에 수사관의 태도와 확연히 달라졌다.
“잠시만요. 아까 그 사건 번호하고 기록 좀 가지고 와봐.”
그리고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수사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뒤에서야 그의 공손하게 바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저희가 워낙 사건이 많아서요. 제대로 체크를....”
“검사 바꿔주세요.”
“네?”
“담당 검사 바꿔달라구!”
“저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럼 부장검사한테 전화해서 절차대로 해드릴까요?”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수사관에게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지금 검사님이 피의자 심문하러 들어가셔서요. 조금 기다려주시면 이쪽으로 전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전화 끊기 전에 물어봅시다.”
“네.”
“아까 여직원이 이 사건이 이미 가정법원으로 가서 종결되었다고 하던데, 그 내용이 어떻게 된 건지 간략히 정리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 그게요. 지금 보니까 수사한 경찰 쪽에서 가정법원에 ‘보호처분’을 하는 게 맞다는 의견으로 송치를 해와서 저희는 그대로 그냥 가정법원에 결제 도장 찍어서 보낸 것뿐입니다.”
“사건 서류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서 말이죠?”
“아니, 그게... 그러니까...”
“됐고. 그런데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아이를 집어던지려고 한 행위에 대해서 아동학대죄를 물을 때 그렇게 형사처벌도 아닌 그냥 보호처분 의견을 경찰이 보낼 수는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보낸다고 그냥 검찰에서 도장 찍어서 보냅니까?”
“아이를 던져요? 지금 제가 기록을 살펴보니까, 경찰 조사에서 아이를 던지려고 했다는 행위는 없었는데요? 보호처분을 요구한 건, 말다툼을 하는 상황에 아이를 현장에서 안고 있었다. 그래서 아동학대 중에서도 다소 정도가 미약한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호처분 의견으로 송치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네?”
교수는 그제서야 수사과장이 왜 당당하게 스피커폰으로 초동 수사관까지 불러가며 사회부 여기자에게 큰 소리를 쳤는지 모든 퍼즐이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끼워 맞춰졌다.
“왜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내 진술조사를 하나도 안 보고 그냥 경찰의 의견에 도장만 찍어서 보낸 거군요. 정말로.”
어이가 없는 말투로 교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내 진술조서가 분량이 엄청나게 많습디까?”
“네?”
“됐고. 지금 이 사안에 대해서 부장검사실에 직접 항의 전화 들어가는 게 싫으면 검사한테 오늘 퇴근하기 전에 바로 나한테 전화하라고 확실하게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김 교수는 바로 안 경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제는 바로 전화를 받았던 번호이기도 하고 문자메시지를 넣었던 번호였던지라 김 교수인지 아는 목소리로 여유 있는 느기작거리는 특유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안 찬성 경위.”
차갑게 교수가 그의 직위를 붙여 이름을 불렀다.
“네.”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다시 물어봅니다. 피의자인 목사가 아이를 던지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 안고서 말다툼을 했습니까?”
“네?”
질문의 의도나 내용을 빤히 알면서도 마치 생뚱맞은 질문을 받은 사람인 양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경위가 발연기를 시연하며 물었다.
“다시 묻습니다. 어려운 질문 아닙니다. 피의자인 목사가 말다툼 도중에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아이를 물건처럼 들고 나와 피해자들에게 던지려고 한 행위와 말다툼을 하기 전에 아이를 현장에서 안고 있었는데 안은 상태로 말다툼을 했다는 것이 같은 행위인가요?”
“으음, 그게 무슨 말씀인지... 우리가 수사한지도 좀 오래되었고, 제가 맡은 사건이 워낙 많아서....”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시는 건가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교수가 다시 그의 발연기에 혹평을 가하듯 물었다.
“아니. 원하시는 대로 잘못한 사람을 검찰에 송치했고 그렇게 벌 받게 해 드렸잖아요.”
“잘 기억하시네요, 핵심은?”
교수가 다시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아니.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요?”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2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