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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07. 2021

환경분쟁조정위원회 - 1

서울시청이 '복마전'이라고 불리는 이유

강남은 지금 재건축 러시 중이다.

도대체 이 많은 재건축 아파트들에 모두 입주하게 되면 그대로인 도로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주차장으로 변할지, 강남을 벗어나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할 상황이다.

재건축 러시의 여러 가지 폐해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지긋지긋한 것은 공사의 소음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은 더더욱 고역이다.

소규모 개인 공사가 아닌 대규모 아파트 건축 공사이기 때문에 소음이 클 수밖에 없고, 주변의 아파트 단지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다.

강남이라는 특징 때문에 이름 없는 시골 중형 건설사들은 찾아볼 수도 없다.

모두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대형 건설사.


그런데, 그 소음과 먼지에 대해 당연히 공사를 하지 않는 주변 아파트 주민들은 피해를 입는다, 그것도 극심하게.

이 이야기는 2021년 지금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나 일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이다.




  처음 공사가 시작된 것은 2018년 여름이었다.

  폭파 시공법으로 기존의 낡은 아파트를 날리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서울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조사관이라는 최모가 나중에 설명한 것을 듣고서야 알았다.

  처음 그 지긋지긋한 소음 때문에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아파트 단지 차원에서 입주자 대표회의가 나선다고 하긴 했다.

  강남 한복판의 30년 이상된 낡은 아파트에는 더 이상 주인이 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새 아파트나 주상복합에 이사 가서 편하게 살지, 낡은 아파트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입주자 대표회의는 세입자가 임원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늙고 집 하나밖에 없는, 어디 가지 못하는 늙은이들로 구성되기가 일쑤였다.

  그런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소음과 분진 문제에 대형 건설사에 항의를 할지 의문이기는 했다.

  어느 정도 공사가 진행되었을 무렵, 모든 정보의 근원이자 확성기로 알려진 아파트 경비에게서 소문이 새어 나왔다.

  "건설사와 합의를 하려고 하니까 이걸 사인해달라고 합니다."

  뭔가 그가 들이밀며 사인을 하라고 했다. 내용 인즉은 도저히 소음이 심하고 불편해서 살 수가 없으니 공사를 중단해달라는 탄원서였다. 경비의 썰에 의하면, 이 탄원서를 모든 아파트 주민들에게 받아서 강남구청에 제출하면 공사가 중단될 지경에 이를 것이고 그러면 그들이 계획한 대로 보상문제가 수월하게 풀릴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당연히 바로 서명을 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기다렸다.

  특별하게 공식적인 설명이 없이, 시간이 흘렀고, 2019년 겨울 즈음에 곧 한 세대당 60여만 원의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는 말이 슬쩍 돌았다.

  그런데, 정작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을 즈음에도 보상금이 입금된다는 소식이 없었다. 이상한 마음에 관리사무소에 다른 일이 있어 들렀다가 슬쩍 물었다.

  "소음 때문에 받는다는 보상금이 왜 여태 지급이 안 되는 겁니까?"

  "네?"

  곧 이 곳도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직장이 불안하다고 공석이던 자리로 온 지 얼마 안 된 관리소장이 되물었다.

  "잘 모르시나, 온 지 얼마 안 되셔서?"

  "아니요. 그거 이미 지지난달에 다 지급된 것으로 아는데요. 모르셨어요?"

  응? 어이가 없었다. 소리 소문 없이 누가 그 돈을 받았다는 건가?

  찬찬히 물었다.

  "누가 언제 그 돈을 받아갔대요?"

  "여기 102 동하고 103동 2라인만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따로 공고는 하지 않아서 모르셨나?"

  괜한 말을 해서 입주자 대표회의의 회장에게 욕을 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말소리로 울리는 것 같은 표정의 관리소장이 애꿎은 서류를 정리하며 시선을 피했다.

  "동이 전부 6동인데, 어떻게 두 동만 그것도 한 동은 케이크 자르듯이 2라인까지만 줬다고요?"

  내 귀를 의심했다. 다른 아파트도 그렇게 여러 환경분쟁 관련 소송을 봐왔지만, 특정동을 케이크 자르듯이 6라인까지 있는 것을 2라인까지 잘라서 지급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건설사 합의 담당자가 누굽니까? 아니, 지금 입주자 대표회의가 몇 동 몇 호지요?"

  순간 욱해서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내듯 던졌다.

  "아니, 그게... 제가 괜한 얘기를 꺼내서...."

  "아니요. 주민한테 명확하게 얘기를 해줬어야죠. 일단 입주자 대표회의는 그만두고서라도 건설현장 담당자에게 물어보도록 할게요."

  그렇게 바로 관리사무소에서 나와 괘씸한 마음에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는 건설현장으로 달려갔다. 큰 크레인과 레미콘이 들락거리고 중국인인지 조선족인지 그들을 위한 중국어로 적힌 안전문구가 적힌 입구를 가로질러 가려니 안전모를 쓴 늙은 남자가 길을 막았다.

  "여기 무슨 용무시죠?"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네?"

  "여기 소음 때문에 책임자를 좀 만나려고 왔는데요."

  "아,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마치 경찰복처럼 비슷하게 입어서 공사현장 근로자가 아닌 경찰이 앞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착시를 노린 복장에 호루라기까지 불어가며 일을 하는 모습이 그들의 의도가 빤히 드러나보였다.

  조금 서 있자니, 안에서 건설사 마크가 찍힌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무슨 일이시죠?"

  "당신이 여기 책임자입니까?"

  "책임자는 아닌데요. 무슨 일이신지...."

  "이 앞 아파트 단지 주민인데, 소음이 그간 너무 심해서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응대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확인을 좀 하려고 왔습니다."

  "아, 그건 보상담당인 과장님 소관인데, 지금 이쪽에 없고, 저 앞쪽 현장에 위치한 사무실에 계시는데 연락처를 주시면 연락을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내 연락처 여기 있습니다. 연락 바로 부탁합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뭐가 어디서부터 스리슬쩍 바뀌었는지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를 한참이 지나서도 오지 않았다. 전화가 온 것은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여보세요. 건설현장의 보상 담당 박지성 과장이라고 합니다."

  "아네. 다름이 아니고, 작년에 한참 보상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보상이 이미 끝났다는 황당한 얘기를 들어서요."

  "네? 보상은 이미 다 끝났고, 입주자 대표회와 합의까지 했습니다."

  "나는 그런 설명을 들은 적도 없고, 합의해준 적도 없는데요."

  "그건 대표성을 갖는 입주자 대표회와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입주자 대표회의 위원들을 뽑는 거 아닌가요? 이미 합의문 다 작성하고, 민형사상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서명까지 다 받았습니다."

  이미 고지를 선점했다는 듯한 건방짐이 약간 흐르는 말투와 막노동 현장에서 현장 근로자들을 다뤄봤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였다. 오히려 그런 말투가 내 거슬림에 기름을 끼얹었다.

  "건설현장의 소음 분쟁과 관련한 손해배상은 입주자 대표회의가 대표할 수 없다는 것도 모릅니까? 손해배상에 대한 법적 대리는 어느 아파트에서 입주자 대표회가 대신할 수 있다고 합디까? 정말 몰라서 그냥 하는 소립니까? 아니면 알면서 지금 뭉개 보겠다는 겁니까?"

  날카로운 목소리에 연이은 지적이 튀어나오자 남자가 주춤했다.

  "네? 아니, 그게..."

  "도대체 입주자 대표회에서 입주자의 손해보상권의 법적대리를 할 수 있다고 누가 그럽디까?"

  "아니, 저희야 당연히 아파트 주민들 전체와 합의를 할 수 없으니까 입주자 대표회의 위원과 1년이 넘게 협의를 했고요. 겨우 작년 겨울에 합의를 하고 이제 보상금까지 다 지급되었는데 지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시면..."

  "뒤통수요? 어디 양아치도 아니고 뒤통수라니요? 게다가 누가 누구에게 뒤통수 어쩌고 하는 겁니까?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보상이 이루어졌는지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요. 게다가 내가 듣기로는 102동 전체와 103동은 2라인만 지급하는 이상한 형태로 보상이 이루어졌다던데요. 그게 말이 됩니까?"

  "저희는 소음과 관련해서 보험사 측에 보험을 가입해서 그 기준으로 전문가들에게 의뢰해서 소음을 다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102동은 공사 현장의 바로 앞이니까 모두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이 났고요. 103동은 옆쪽에 있으니까 2라인까지만 소음이 인정이 되었고, 뒤에 101동과 104동은 아예 보상에 편입되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직접 소음을 측정했다고요?"

  "네? 네. 저희는 그 보상 관련해서도 모두 보험사에 가입이 되어 있기 때문에요."

  "그게 말이 됩니까? 소리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게 되어 있어요. 게다가 소리 자체가 위로 퍼지는데, 우리 집에서 그 소음을 그대로 들려서 tv소리조차 제대로 나지 않을 지경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어쨌거나 저희는 그렇게 완료되었고요. 자세한 건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님에게 물어보시지요."

  그렇게 도망치듯 노가다 과장이 전화를 끊었다.

  바로 찾아간 입주자 대표회의의 회장이라는 작자는 70이 넘은 늙은이였고, 무엇보다 전체 배상을 받았다는 102동의 중간 측에 살고 있었다. 관리사무소를 통해 합의문을 보자고 했더니 관리소장이 회장으로부터 명령이 있었다면서 굳이 합의서를 개인정보 운운하며 공개를 못한다고 버텼다.

  직접 회장이라는 작자의 집 앞에 가서 벨을 누르고 그가 삐죽 고개를 내밀며 주섬거리며 밖으로 나오며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여기서 얘기하지 말고 나갑시다."

  그가 끌고 내려온 1층 현관에 삐딱하게 서서 물었다.

  "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입주자 대표회의의 손해배상 문제에 대한 법적 대리권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102동 전체와 103동 2호 라인만 잘라서 그것도 102동은 세대당 60만 원씩, 103동 2호 라인은 30만 원씩만 받는 합의가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럼 그때 회의할 때 나오지 그랬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 회의가 있거나 전체 합의를 요구할 때는 공지를 하고 의견을 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난 모르겠고. 우리가 합의하고 그렇게 결정한 것도 겨우 한 겁니다."

  "건설사를 압박하려고 소음 관련 민원을 낼 때는 주민들 전체에게 손해배상이 이루어질 것처럼 모든 주민들에게 탄원서 서명을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

  말문이 막혔는지 그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상식적으로 보상금액이 전체로 책정이 되었으면 전체를 나눠야 하는데, 그것도 건설사에서 정해준 것처럼 102동은 전체 60만 원씩 103동은 2호 라인만 그것도 반값만, 이런 식으로 책정한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이해가 되든 안 되는 나는 모르겠고, 알아서 하시요."

  "이거 직무유기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마음대로 하시요. 고소할 수 있음 해보던가!"

  그가 '고소'라는 단어에 혼자서 찔려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듯 엘리베이터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일어나 사소하지만 꽤나 거슬리는 전쟁의 서막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껴 속이 메슥거려왔다.


 - 2편에 계속

https://brunch.co.kr/@ahura/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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